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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의 거리는 한산하였다. 눈이 온뒤라 기압이 낮아서인지 대기는 매연냄새로 목이 칼칼했고 도시의 분위기 또한 우울해보였다. 식당의 상호를 올려다보고 창호는 주춤했다.

<<이건 중국료리집이잖아요?>>

인순이가 그게 뭐 이상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이니까 중국료리집 당연하지 않아요>>

<<전 인순씨가 단골로 다니는 집이라니까 한식집인줄 알았죠.>>

인순이는 앞에 서서 걸어들어갔다. 식당안은 조명은 많았지만 어두은 감이 있었다. 자주빛 색상을 주색으로 한 인테리어때문인가싶었다. 부조를 한 창문들과 칸막이들, 벽에 걸려있는 경극인물탈들, 그리고 문우에 드리워진 빨간 중국매듭(中國結)들, 벽에 걸린 수묵화와 서예들, 모든 것이 고풍스러웠고 담담한 위엄을 내뿜고있었다.

<<이 식당의 주인은 문화인인가보죠? 식당을 아주 문화쌀롱처럼 인테리어했군요.>>

인순이가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하는 창호에게 대답했다.

<<원래 시 서예가협회에서 일하던 분이 꾸린것이예요. 부인이 경영을 맞고 본인은 지금 북경에 가있어요. 역시 <하해>인셈이죠. 창호씨하고 같다고하면 될까요? 일류의 서예가는 못되지만 성급, 국가급, 상을 받은 서예작품도 있어요. 장인정신이 대단한 분인데 직장을 버린거죠.>>

창호는 걸상에 앉으며 인순이의 말을 유심히 듣고있었다.

<<잘 아시는 분이예요?>>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는 없죠. 몇번 술좌석에서 만난적이 있어요. 친구한데 끌려갔다가 만나게 됐고 그러다보니 서로 련락이 되더군요. 한족으로는 너무 깔깔했어요. 조선말은 하지는 못했지만 많이 알아듣구요. 하이란시에서 자란 사람답더군요.>>

<<그런 사이이면 글이라도 받아두셨어요?>>

인순이는 입귀를 들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전 그런 청탁은 못해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유명인이라고 찰싹 달라붙어 글이나 달라하는 그런 얌치는 없어요. 자존심이라 할까요? 뭐 그런거겠죠.>>

인순이의 미소가 이쁘게 빛나고있었다. 창호는 여지껏 이런 미소를 짓는 인순이가 처음이였다. 내심 이 미소가 어디에 숨어있었기에 내가 발견해내지 못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순씨는 참 이쁘군요?>>

<<네?!>>

당돌한지 인순이는 창호의 얼굴에 시선을 박았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창호는 실수같은 것을 느꼈다.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창호는 얼굴을 붉혔다.

<<아니, 갑자기 인순씨에게 숨은 매력이 있다는걸 느꼈어요.>>

인순이는 소리를 내 웃었다.

<<녀자는 이쁘다는 칭찬에 약하다지만 저한테는 잘 안통할건데요? 거기다 창호씨 프로급인거 저 알고있으니 더 약해지지 못할건데요?>>

창호는 말문이 막혔다. 다행히 복무원이 와서 무엇을 주문하겠는가 물으며 메뉴를 내밀었다. 인순이가 먼저 메뉴를 받고 다시 창호에게 넘기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제가 내는거로 해요. 창호씨 맛으로 주문해보아요.>>

창호는 메뉴를 인순이앞에 밀어놓았다.

<<오늘 저의 일을 도왔으니 제가 내는게 명분이지요. 남의 로동을 착취하면 안되지.>>

몇번을 밀고 밀어놓고 하다가 인순이가 메뉴를 펼쳤다.

<<그럼 간단히 하지요. 창호씨 아직 부자가 아니니까...>>

메뉴를 들여다보며 인순이가 복무원에게 말했다.

<<작은 갈비튀김하구요, 마늘에 겨자나물볶음, 조기찜, 그리고 야채샐러드를 주세요...>>

그리고는 창호에게 얼굴을 돌렸다.

<<마실건 뭐로 할까요?>>

창호는 메뉴를 청하는 인순의 모습에서 깔깔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읽고있었다.

<<배갈로 하지요. 중국료리에 맥주는 좀 맛떨어지지 않습니까?>>

인순이가 웃었다.

<<그러니까 중성으로 시켰잖아요. 맥주안주도 있고 배갈안주도 있으니까 창호씨 좋을대로 하세요. 전 따라가면 되니까.>>

<<배갈도 드셔요?>>

<<녀자는 배갈을 마시지 말라는 법이 있어요?>>

창호는 어깨를 으쓱 했다.

<<녀중호걸이신가? 그럼 배갈로 해요.>>

<<그렇게 전세대적인 사유를 하지 말아요. 지금은 녀성상위시대가 오고있어요.>>

창호는 인순이앞에서 조금은 주눅이 드는감이 들었다. 그것에 불만을 느끼며 창호는 한마디 던졌다.

<<녀성상위시대가 오면 인류의 존재는 위험천만하게 되는거 아니예요?>>

인순이가 웃으며서 반문했다.

<<녀성이 해방이 되는게 그렇게 무서우세요? 우리 렴창호기자님이 언제부터 그런 시골샌님처럼 머리가 굳어있어요?>>

<<그런가?...>>

두사람은 소리를 내여 웃었다. 창호는 인순이의 세련된 대화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창호와 인순이가 자기들 기분에 소리내여 웃고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렴경리?!...>>

상앞에 마주 않아있던 창호와 인순이는 소리를 따라 동시에 옆으로 얼굴을 돌렸다.

수저며 작은 접시, 컵과 잔을 담은 쟁반을 들고 서있는 복무원을 본 두사람은 동시에 입을 딱 벌렸다.

<<레이훙?!...>>

레이훙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채 어쩔바를 몰라 하며 허둥거렸다.

<<네가? 아니, 훙이 어떻게 여기 있어요? 여기서 일하고있었어?>>

레이훙은 창호의 묻는 말에 인차 대답을 못하고 꺽꺽거렸다.

<<네, 사실은...>>

인순이가 차갑게 물었다. 어조에 서리가 가득했다.

<<그럼 아가씬 거짓말을 했군요? 왜 여기서 일하고있다는 말을 안했어요?>>

레이훙은 떨리는 목소리로 가맣게 죽어들며 대답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였어요. 여기서 일하는걸 알면 안될가 두려워서... 그리고 꼭 조선족회사에 들어가싶어서요.>>

그래도 인순이는 태도는 여전히 날카로왔다.

<<어떤 리유가 있든 거짓말을 해서는 안돼요. 우리 회사에서는 어떤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쟁반을 든 레이훙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있었다. 그러나 살짝 치뜨는 눈길속에 반항이 빛이 섬광처럼 스쳐지나갔다.

<<여기에 들어온지도 두달밖에 안되였어요. 조선족회사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전 하이란시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었어요. 그래서 먼저 발을 붙이려고 이 식당에 복무원으로 들어왔어요...>>

창호가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인순이를 말렸다.

<<그만하세요. 리유가 되지는 않아요?>>

그리고는 레이훙의 대답에 흥취를 가지고 물었다.

<<조선족회사에 들어오려는데 무슨 리유가 있어요?>>

레이훙은 관후한 미소를 짓고있는 창호에게서 신심을 얻었는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선족들이 사는 곳에서 조선말을 배우고싶었어요. 하이란시는 조선족들이 주요한 민족이니까 언어환경이 좋지 않아요? 리유라면 그것이예요....>>

창호는 조선말을 배우겠다는 레이훙에게 호감이 갔고 오전에 레이훙을 직원으로 쓰기로 한것이 잘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말 배우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하필이면 조선말을 배워서 뭘하려구요? 그 정력이면 영어나 다른 언어공부를 하는게 좋지 않아요?>>

창호는 만일 다른 언어공부를 하겠다고 한다면 학비정도는 대줄수 있다는 말을 하려다 인순이앞에서 충동적으로 보일것 같아 뒤말은 생략해버렸다.

레이훙은 인순이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고향에서 학교에 다닐 때 조선족동창들 몇이 있었어요. 그애들한테서 배운 기초도 좀 있고하니까 제대로 배우고싶어서 언어환경이 좋은 하이란시에 온거예요...>>

창호가 무언가를 또 물으려는데 인순이가 얄팍한 얼굴에 경멸비슷한 기색을 띄웠다.

<<창호씨, 애가 서빙을 하고있어요. 이담 물어도 되지 않겠어요?>>

창호는 얼굴을 붉혔다.

<<인순씨 너무 맵군요?>>

분위기가 이상했다. 레이훙은 그들앞에다 수저며 컵이며 잔을 차례놓고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저 갈게요. 렴경리, 저가 거짓말 했다고 채용을 취소하는거 아니죠?>>

창호는 손을 저었다.

<<우리 회사에 오겠다면 좋은 일이지. 왜 취소를 해요? 오히려 여기서 공부를 했으니 우린 학비를 안내고 넘 좋아서?>>

레이훙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얼굴에 홍조를 피우며 미소를 지었다. 창호는 그 미소가 너무나 청순하게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면접때는 화장기 하나 없어 수수해보였으나 가볍게 화장하고 나타난 지금의 레이훙은 성숙한 처녀의 매력과 풋풋함이 물씬 풍기고 있다.

레이훙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룸에서 나갔다. 몸에 붙는 유니폼을 입은 뒤모습이 봇나무처럼 이뻤다.

<<중국애들은 체격 하나 죽인다니까.>>

인순이가 입을 삐쭉했다.

<<죽여요? 토끼는 굴앞에 풀을 먹지 않는대요. 저-애-를 따버리세요.>>

창호는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네?! 따다니요?>>

인순이의 표정은 단호했다.

<<저애를 받지 말라는 뜻이예요.>>

창호는 인순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요? 조선말공부하겠다고 조선족회사에 들어오겠다는게 뭐 그렇게 기분이 나빠요? 하물며 그건 좋은 일이지 않아요? 식당에서 일도 하고있으니 처음부터 훈련을 시킬 필요도 없고 좀 좋아서요?... 왜 그러세요? 인상이 그렇게 빵점이예요?>>

인순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하다는게 걸리는군요. 사람은 한번 거짓말을 하면 두 번 또 할수 있는거예요. 그리구 조선말공부를 한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 어느 새빠진 사람이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조선말공부를 해요?... 사기성같은게 보여서 싫네요...>>

창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넘 그렇게 심각하게 문제를 보지 말아요. 사기성이라니요? 조선말공부를 하고싶다는게 사기성이예요? 성실하고 안한건 누구나 첫 만남에 알수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지내보다가 불성실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때 내보내도 늦지 않지 않아요?>>

인순이는 창호의 말이 길어지자 불쾌한 기색을 지었다.

<<아이구 됐어요. 그렇게 물고는 왜 늘어져요? 저애를 받든 안받든 저하고 무슨 관계예요? 데리고 일을 할 창호씨가 알아서 하겠죠. 전 금밖에 사람이니까요.>>

복무원이 료리를 가져와서 불쾌한 화제는 끝낼만한 계기가 생긴셈이였다.

창호가 술병을 잡았다.

<<자, 술부터 마십시다. 배도 많이 고팠는데... 녀중호걸님 오늘은 취하게 마시는거죠? 오늘 고마웠어요...>>

두사람은 건배를 하고 술을 마셨다. 잔을 놓으며 창호가 꼬드김이 없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두사람의 식사라, 조금 낭만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인순이의 눈이 악의 없이 창호의 눈을 찔렀다.

<<프로가 아니랄가 그러세요? 왜 자꾸 표현을 하셔요? 창호씨 제왕적인 혼이 있는가봐요.>>

<<제왕적? 그건 어느 사전에 있는 말이지요?>>

<<저의 사전에 있어요. 녀자를 밝히는 사람을 대접해 부르는 말, 이렇게 해석이 되어있어요.>>

창호는 한국에서의 일을 의식했다. 그리고 인순이가 고의적으로 그 일을 회상시키고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남자니까 삼천궁녀쯤은 생각해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욕심이 굴뚝이군요?>>

두사람은 깔깔 웃었다. 이때 레이훙이 마지막 남은 료리를 가지고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웃는 그들에게 표정없는 눈길을 박으며 료리접시를 상우에 놓았다.

<<겨자나물 볶음입니다.>>

그리고는 먼저 창호쪽에 허리를 굽혔다.

<<맛있게 드세요.>>

창호가 레이훙의 이쁘장한 모습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모레부터는 우리 회사에 출근해 훈련을 받아야는데 여기 정리는 다 됐어?>>

창호의 어투가 변해있었다.

<<네, 이미 사직을 신청해놓았어요. 렴경리님 감사합니다.>>

레이훙이 딱딱한 공식어로 대답했다. 내심 깔려있는 강인함이 엿보여서 창호는 필경 한족은 한족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레이훙은 례절로 인순이쪽을 향해 약간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인순이의 얼굴을 스치는 레이훙의 눈길속에 숨은 적의가 섬광처럼 반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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