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07>

 

 

申 吉 雨   skc663@hanmail.net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동양 사람들은 예로부터 매난국죽(梅蘭菊竹)을 4군자라 하여 유난히 좋아하고 기려 왔다. 그것은 그들 넷이 지니고 있는 풍모나 삶의 모습이 수많은 초목들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하고, 따라서 군자로서 대접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런데, 4군자 가운데에서 매화와 난초와 국화는 모두 꽃을 피우는 것들이고, 또 그 꽃들이 시기적으로 자신들의 전체 모습과 함께 잘 어울리기 때문에 그러한 예찬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유독 대나무만은 그렇지가 않다. 몰론 대나무도 드물게 꽃을 피우기는 하지마는 대개 4군자에 뽑힌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대나무꽃이 핀 모습이 좋아서, 또는 꽃이 피는 시기로 보아 기특하고 가상해서 4군자에 든 것은 아니다. 단지 속이 비었으면서도 가장 곧게 자라며, 아무리 심한 혹한에서도 잎새 하나 떨구지 않고 홀로 꿋꿋이 푸르기만 한 모습과 자세로 뽑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나무는, 매화나 난초나 국화처럼 꽃과 어울어진 한 그루 한 포기 전체의 모습에서가 아닌, 위와 아래를 뺀 몇 마디 굵은 줄기와 잎새들이 달린 몇몇의 잔가지들만으로서의 모습에서 풍겨지는 기상이나 품성에서 더욱 많은 이들의 사랑과 찬탄을 받고 있으니, 그것만으로서도 4군자의 으뜸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대나무꽃은 대개 60년을 주기로 피는데, 한 번 꽃을 피우면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조그마한 꽃송이들이 원추꽃차례로 총총 피어나 4~10센치미터 길이의 꽃이삭을 이루어 온 대밭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리는데, 그 희귀성과 장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대나무는 꽃이 피면 온 대밭이 일제히 피며, 스스로 지니고 있는 영양분을 모두 소모하게 되어서 대개는 말라죽게 된다. 이 얼마나 강한 헌신적인 열정이란 말인가? 어린 시절에 단 한 차례 보았던 대나무꽃에의 놀라움은 곧 이어 시들어 버린 대밭의 모습에서 또 한 번 출렁했고, 꽃을 피우기 위하여 온 몸을 불살라 바친다는 설명을 듣고는 그 강렬한 정렬에 감탄해서 세 번째로 놀랐던 인상을 이제껏 잊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상서로운 새로 여기는 봉황이 훌륭한 임금이 나올 때에만 나타나서 오동나무에 깃을 치고 대나무 열매만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결코 허황되다고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것은 내게 강한 신비감까지 심어 주었던 것이다. 대나무는 이런 면에서도 4군자의 첫째로 꼽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는 용도가 다양하다. 각종 생활 용구와 도구로는 물론, 악기 병장기 오락기 서책 필기구 음식물 담뱃대, 심지어 죽부인에 이르기까지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두루 실용되고 있으니, 이런 차원에서도 죽매난국 순으로 앞세워 불러 주워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나무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는 얽힌 이야기도 많다.

삼국유사 권1 미추왕 죽엽군(竹葉軍) 조에 보면, 신라 14대 유리왕 시절에 이서국이 경주로 쳐들어오자 이를 오래 대항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이상한 병사들이 대나무 잎새를 귀에 달고 와서 도와주어서 물리쳤는데, 그들이 간 곳은 알 수 없고 다만 13대 미추왕의 능 앞에 대나무 잎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선왕의 은공이었음을 알고 그 때부터 그 능을 죽현릉(竹現陵)이라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유사 권2 만파식적(萬波息笛) 조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라 31대 신문왕은 아버지요 선왕인 문무왕을 위해 동해 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다. 그 다음해 5월 초하루에 동해 가운데의 작은 산이 감은사를 향해 조금씩 다가온다는 말을 듣고 왕이 이상히 여겨 이견대(利見臺)에 올라 그 산을 보고 조사시켰더니, 그 산 위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하나로 된다는 보고였다. 왕이 감은사에 묵자 다음날 오시에 대나무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7일 동안 친 뒤 16일에 가라앉았다. 왕이 그 산에 오르니 용이 검은 옥대를 바치면서 피리를 만들어 불면 나라가 화평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궁에 돌아와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 피리를 불면 적병은 물러가고, 병은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장마는 개고, 바람은 그치고, 파도는 잔잔해져서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얼룩대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중국의 순 임금에게는 두 왕비가 있었는데, 순 임금이 돌아가시자 두 왕비는 매일 무덤이 있는 상포 언덕에 올라가 울었다. 그런데, 그 언덕에는 대가 자라고 있었는데 두 왕비의 눈물이 묻자 얼룩이 생기고, 그것이 그 일대의 대나무에 모두 퍼져 오늘날의 얼룩대가 되었다고 한다.

소상반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오나라 우순이 창오야의 싸움에서 전사하자 그의 아내가 소상강 강가의 대나무에 떨어져서 소상강 대나무는 아롱무늬가 생겼다고 한다.

맹종죽(孟宗竹)에는 효자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중국 오나라의 맹종은 효성이 지극했는데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늙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오래 누워 지내다가 어느 겨울날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추운 겨울에 죽순이 있을 턱이 없지만 효성이 지극한 그는 대밭에 들어가서 꿇어앉아서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보니 앉았던 자리에서 죽순이 솟아나 있었다. 하늘이 맹종의 효성에 감동하여 죽순을 솟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대를 맹종죽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죽엽주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중국에 한 착한 소년이 있었는데 아이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 계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계모는 그 소년을 미워해서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는 잘해 주고 없을 때에는 구박을 했는데, 그 소년은 이런 사실을 아버지가 알면 계모가 꾸중을 들을까 오히려 근심했다. 계모는 더욱 못되게 굴어 밥도 그 소년에게는 겨를 많이 섞어 주어서, 먹을 수가 없을 때에는 몰래 집 뒤 대밭에다 버리곤 하였다.

어느 날 그 소년이 밥을 또 버리려고 대밭에 들어갔다가 내버린 밥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고인 물이 아주 맛좋은 술이 된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소년은 그것을 잘 걸러서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고, 그는 그 훌륭한 술맛에 동네 어른들을 모셔다가 대접했다. 이 소문은 원님에게 들어갔고, 술맛을 본 원님은 다시 임금에게 올렸고, 임금은 마침내 그 소년을 불러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 소년은 계모를 벌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사실대로 말했고, 그 말은 들은 임금은 그 착한 마음씨에 감동하여 많은 상을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계모는 감복하여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었고, 그 뒤부터 사람들은 죽엽주를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정몽주와 민영환의 핏자욱에서 났다고 하는 혈죽(血竹)은 꽃말인 충절을 잘 나타내고 있는 설화이지만, 앞에서 말한 죽엽군이나 만파식적의 이야기는 호국심을, 얼룩대 이야기는 깊은 사랑을, 맹종죽과 죽엽주의 설화는 강한 효성을 각각 나타내고 있다. 대나무에 얽힌 설화들은 가히 충(忠)과 효(孝)와 열(烈) 3절을 그대로 깨우치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대나무는 가히 사군자의 첫째로 꼽을 만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대나무는 사군자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군자는 죽매난국의 순서로 불러 주어야만 마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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