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즘 좀 풍파가 있었다. 조선소를 그만둘가를 고려하다가 다시 주저앉은것이다.

케리지할 일이 있으면 케리지를 끌고 다니고 그것이 없으면 작업장청소를 허리 끊어지게 해야 하고 그것도 다 끝나면 용접사 혼자서도 어련히 할일을 기어이 따라다니면서 도와주라고 잔심부름을 시키는데 굳이 이름을 만들면 용접공도 아니요 청소부도 아니요 조공도 아닌 잡부노릇을 하면서 좋은 말은 한마디도 없이 싫은 말만 들어오는것이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싫었다.

그날도 별로 할일이 없었다. 오전에 하던 케리지일이 좀 남아서 그것을 끝내고 장비를 정리하는데 청소를 하라고 한다. 혼자서도 반시간이면 할일을 넷이서 하니 불과 십여분만에 끝나버렸다. 휴식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고 그래서 철룡이와 둘이서 저쪽 작업장에 이리저리 널려있는 케블선을 감았다. 다 감았는데도 휴식시간까지 아직 5분이 남아있어서 블록안에 들어(사실 남들이 보는 곳에 서있기가 눈치가 보였다)가 담배를 붙여물었다.

《뭘해? 어서 내려와!》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강태공의 험악한 얼굴뒤에 반장의 얼굴이 보였다. 나를 제일 싫어하는 반장이라지만 휴식시간이 다 되였고 또 그가 시킨 일을 다 해놓은데다 시키지 않은 일까지 했으니 무슨 할말이 있겠냐싶어 휴식실까지 따라들어갔다.

《사람들이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그래야지.  놀 구멍만 찾아다니구!》 말소리가 곱지 않았다. 참을성이 없는 내가 대답했다. 《이때까지 시킨 일을 하지 않은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정말 싫다니까!》 언젠가 나를 반말로 욕하다가 언쟁이 생긴 후부터는 나를 당신이라고 부른다. 《케리지를 다 하고 반장이 시키는 청소도 다 했고 또 시키지 않은 일까지 했는데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안하고 놀기만 한 사람은 말 아니 하고 우리만 욕하는겁니까?》 그냥 존경어를 써가면서 해석하기에 힘썼다.

《이런 말대꾸는!  당신처럼 말대꾸하는 사람이 제일 싫단말이요. 말을 하면 가만히 있을게지 딱딱 말대꾸질 하면서...》 억울했다. 같이 청소하던 사람들은 그자리에 멀쩡히 서서 놀아도 욕 한마디 없지만 우리는 어처구니없이 당하기만 하는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휴식시간이 되기 십분전에 휴식실에 들어가도 괜찮지만 우리는 오분전에 담배를 피웠다고 야단맞는것이다. 등골이 오싹해날 정도로 한국에 온것이 싫어지기도 하였다.

안전모를 구석에 팽개치고 당장 그만둘 태세로 소장실을 찾았다. 사람 좋은 소장이 안색이 좋지 않은 나를 보고 참 미안하다고 말한다. 눈치를 챘지만 요즘 일이 바빠서 말하지 못했는데 다른 작업장에 배치할 타산이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언어사용방식이 다르고 경쟁의식이 다르니까 그럴수도 있으니 많이 리해해달라는 소장의 말에 그래도 수긍이 간다. 그럴수도 있으려니 하지만 반장이라는 사람이 내놓고 나를 싫다는데 머리 수그리고 함께 일할수 없지 않은가?

그날 돌아와 온 저녁 고민했다. 고향마을에서 온 김모씨(52세)는 그사이 다섯번이나 직장을 바꾸면서 돈은 벌지 못하고 사람만 초췌해졌다고 한다. 연길에서 온 박모(53세)녀성은 일당을 나가던 첫날에 당한 정경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참으라고 말한다. 그런 일이야 비일비재인데, 돈만 많이 벌면 되지, 중국에 돌아가면 누가 한국에서 《치푸》를 받았다고 비웃을것 같은가 하는것이 그들의 리유다. 한국에 와서는 한국식사유로 한국식에 습관되자는것이 대다수 방취자들의 생각일수도 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같아서는 말이 나왔던김에 그냥 짐을 꿍쳐메고 누님이 있는 천안으로 가고도 싶었다. 거기라도 가서 이전에 그렇게 두려워하던 노가다를 뛰는것이 차라리 좋지 않을가고도 생각해보았다. 가는데까지 가보자는 결정을 내리고 새벽 두시에야 잠이 들었다. 길림신문/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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