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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자연스럽게 창호가 주인이 되여 한턱 내게 되여있었고 정준태가 왔으므로 인순이가 오게 된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그러나 인순이가 이 자리에 있는것이 창호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동안 노래방과 식당을 경영하면서 창호와 인순이는 거의 매일마다 함께 있었다. 정준태가 인순이에게 전화를 하여 창호를 도와주라고 청이 있었고 처음부터 노래방과 식당의 수속관계로부터 인테리어, 직원모집까지 참여한 인순이는 자연스레 식당쪽 경영을 거의 도맡아보고있었다.

그날 인순이와 첫 관계가 있은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번이 또 있었다. 서로의 집착은 없었고 사랑과 같은 그런 정열도 없었다. 마치 계약에 따르듯 한번의 눈길로 서로의 속심을 읽었고 그러면 식사가 있고 기분이 좋으면 가라오케나 볼링장으로 향했고 그다음으로는 인순이의 집으로 갔다. 두사람은 서로를 탐닉하면서도 언어로 되는 사랑을 표시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 만들어진 불문율처럼 그들은 사랑과 열정의 사이에 하나의 담장을 쳐놓고있었다.

좌석은 정준태와 인순이가 함께, 그리고 창호와 나래가 앉게 되여있었다. 창호는 마주 앉은 인순이가 마음에 걸렸다. 인순이가 나래와 창호가 어떤 관계인가를 모를수 없었고 아직까지 그런 남녀의 관계에까지 가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고있더라도 창호로서는 내적인 심리모순과 불안이 있었다.

다행히 인순이는 좌석의 분위기를 리드해나가고있었다. 나래와는 녀자들끼리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주고 정준태와는 녀자답게 깔깔거렸다. 피끗 창호에게로 스치는 눈길속에는 긴장을 하고있는 창호에 대한 불만같은것이 섞이여있었다. 창호는 마음을 다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 서먹서먹해지는 자신을 다독였다.

<<창호씨는 우리 나래가 오니까 그만 주눅이 들어있네요. 안그랬잖아요?>>

창호는 인순이의 뒤말의 가시에 찔리우면서 분위기를 잡으려고 애썼다.

<<안그랬지가 뭐지요? 다른 때에는 뭐가 달랐던가요?>>

인순이는 맞은편에 앉은 나래에게 익살스러운 얼굴을 지어보이고는 창호에게 말했다.

<<언제나 녀자들 앞에서는 군자연체 하고 심각한 말들만 골라서 해서 총명하다고 으스대는 녀자들 주눅들이던분 아니예요? 오늘은 다르다 그거예요. 왜 그러시죠? 사랑에 빠지면 사람은 바보가 된다고 하던데...>>

인순이는 말하고나서 정준태에게 얼굴을 돌리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창호는 인순의 말속에 담긴 총명을 읽었다. 분위기를 잡지 못하는 창호에게 침을 놓고 정준태와 나래에게는 자기와 창호사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묘하게 표현한것이였다. 창호는 자신이 바보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술잔을 들었다.

<<술이나 들어요. 인순씨한테는 두손들었어요. 중국 녀자들 닮아가지고 남자들 완전히 비지로 만들어버리니...>>

창호는 나래에게 얼굴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중국사는 녀자들 무섭다니까. 서양에서는 페미니즘이다 녀성운동이다 해서 녀권을 신장했다는데 여기 중국은 말이야 우리 할배가 중국 오실때부터 녀성상위였다 그거야. 중국 녀자들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한번은 말이야 중국 친구집에 손님으로 갔는데 친구가 앞치마를 두르고 료리를 하는거야. 친구의 녀편네는 우리하고 이야기를 하고. 남편이 료리를 올리는데 료리의 색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고 남편을 구박해대는데 료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을 얻은 자기가 미친년이라는거야. 기가 막혀서, 완전히 어린애취급을 하더라고...>>

나래는 어린애같은 얼굴을 하고 재미있게 듣고있었다. 무슨 아라비안나이트냐하는 표정이였다.

<<중국사람이라고 다 그렇겠어요? 그런 사람 따로 있겠지요.>>

인순이가 나래의 말을 받았다.

<<다 그런건 아니예요. 그러나 창호씨가 한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니예요. 대부분 중국사람가정은 녀자가 주인인셈이죠.>>

정준태가 수긍을 해왔다.

<<나도 중국 많이 다녀서 좀 인상이 있기는 한데 중국녀자들 남편 다루는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쇼핑을 하는데 남편은 크고 작은 짐을 들고지고했는데 녀자는 빈손으로 가면서 빨리 따르지 않는다고 야단을 하더라구요...>>

인순이가 정준태를 보면서 웃었다.

<<정사장님은 중국말도 모르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부부인걸 알았어요? 중국녀자들 욕하는 자리라고 소설 쓰지는 말아요?>>

정준태는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

<<왜 몰라요? 보면 아는거지. 그런것 뭐 말 알아들어서 아는거예요? 감으로 잡는거지. 나 이제 중국 열번도 더 왔다갔어요.>>

창호가 웃으며 정준태를 말렸다.

<<중국녀자들 안주해서 술이나 마셔요. 우리 나래는 아직 건배도 제의하지 못했어요.>>

인순이가 할끗 창호를 쳐다보았다. 조소하는 눈빛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우리 나래?...>>

창호는 얼굴을 붉혔다. 오기같은것이 치밀었다.

<<자, 우리 나래 술 한잔 권해. 장모가 권해도 녀자가 권하는 술이 맛있다는데...>>

나래가 술잔을 들었다. 이국땅에 처음 오는 격동이 아직도 채 가셔지지 않은 모양, 나래의 얼굴은 천진함으로 가득하였다.

<<너무 재미있어요. 중국남자들 그렇게 녀자들 잘해준다면 저 중국 시집와야겠네요. 좋은 중국남자 만나서 손발에 털나봐야겠어요. 인순언니 소개해줄래요? 그럼 전 그걸 위해 건배를 할게요.>>

인순이는 나래의 말이 땅에 떨어지기전에 인차 받았다.

<<그러지요. 중국 우수한 남자들 많거든요. 중매 잘서면 술 석잔이라는데 한번 노력해볼게요.>>

정준태가 끼여들었다.

<<그럼 우리 렴선생은 어쩌고? 불원천리 중국 찾아온것이 그래 렴선생 찬밥만들려고 온거야?>>

<<아이구, 왜 이 멋없는 창호를 안주로 하는거예요? 자, 건배를 제의했으니 술을 마셔요... 나래, 너 중국으로 온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무 반갑고 놀랍고 기쁘다. 건배!...>>

<<저런!>>

정준태가 술잔을 들고 마시려고 하지 않고 웃었다.

<<반갑고, 놀랍고, 기쁘고, 감탄사가 련속이네요? 렴선생 오늘 한턱 내서는 안되겠어요.>>

창호는 정준태의 말에 인차 대답을 하지 않고 나래에게 얼굴을 돌렸다.

<<나래가 말해봐. 오늘 사실은 네가 가장 존귀한 손님이 되였으니까 너의 말을 따라야 할거야.>>

나래는 수줍게 웃었다. 그러나 얼굴에 피여오르는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데 전 오빠의 지령대로 할게요. 여긴 중국이지 않아요? 중국식으로는 어떻게 노는지 전 모르니까 따를수밖에 없잖아요?...>>

창호는 들었던 술잔을 상에 놓고 나래의 손등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래, 그럼 오늘 우리 나이트클럽에 갈가? 아님 디스코홀에 갈가? 나래 네가 결정해봐.>>

창호는 말하고나서 인차 속으로 나이트클럽은 말하지 말았었을걸 하고 후회를 했다. 하이란시의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는 비슷한데가 많아 구분이 잘 안되였다. 창호는 인순이와의 첫 관계가 가라오케에서 시작이 되였음을 의식하고 나래가 디스코홀을 선택하기를 내심 바라고있었다.

<<어때? 땀 한번 쫙 빼보는것도 좋겠지?>>

창호는 나래를 유도하고있었다. 다행히 나래는 그 유도에 순순히 넘어가주었다.

<<그러죠뭐. 디스코홀이 좋겠어요. 오빠 춤 잘추어요?>>

<<뭐 남들이 하는대로 흔들어보는거지 뭐.>>

이렇게 합의는 이루어진셈이였다.

식사를 끝내고 일행은 <<광란맨하탄>>이라는 상호를 가진 디스코홀로 향했다. 도어맨의 안내로 홀에 들어서자 폭풍같은 음악이 귀청을 때렸다. 명멸하는 장식등의 번뜩임속에서 젊은 남녀들이 광란의 도가니속에 잠겨 온몸을 흔들어대고있었다. 도어맨이 그들에게 좌석을 배정해주고 가자 하늘색 유니폼우에 붉은 띠를 두른 보이가 다가왔다. 창호가 정준태에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무어로 드실래요? 맥주요?>>

<<그래요. 중국 독주는 이미 마셨으니까 맥주가 좋겠어요.>>

창호는 보이에게 맥주를 시키고 명태와 과일안주를 시켰다.

잠간이 지나자 보이가 맥주며 안주를 담은 쟁반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그들의 컵에 맥주를 부어주고는 인사를 하고 갔다. 때마침 디스코음악이 끝났다. 이상하리만치 잠간의 정적이 깃들었다. 춤추던 사람들이 홀에서 빠지려고 서두를 때 조용한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왔다. 인순이가 맥주컵을 들고 창호의 잔에 살짝 부딫쳤다.

<<우리 춤춰요. 한국하고 중국은 춤추는게 틀리니까 공부를 좀 시켜야죠?>>

창호는 인순이가 무언가를 말하고싶어하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창호는 순순히 일어서서 홀로 나갔다. 인순이가 창호의 왼손을 잡으며 오른손을 어깨우에 가볍게 얹었다. 음악은 왈쯔곡이였다. 인순이는 조금은 서성대는 창호를 천천히 리드하며 홀의 중심으로 빠져들어갔다.

<<저를 너무 의식하지 말아요. 분위기 그렇게 깨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되였든 나래나 정사장은 손님이지 않아요?... 그리고 나래는 창호씨만 믿고온거예요. 상처를 주지 말아요...>>

조명이 어두워 인순이의 표정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투속에서는 실려있는 부담감이 엿보였다.

<<의식하려는건 아니구요, 과정을 무시할수 없다는 생각이 들뿐이예요. 아무튼 고마와요. 나래가 이렇게 들이닥칠줄은 정말 모르고있었요. 나래는...>>

창호가 나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자 인순이는 무리하게 창호의 말을 꺾었다.

<<나래도 녀자예요. 어떤 녀자라도 상처를 주는건 금물이예요. 잘해주세요...>>

창호는 씁쓸해져서 입을 다물고있었다.

음악 한곡이 끝나자 창호와 인순이는 홀에서 나와 좌석으로 돌아갔다. 정준태가 털썩털썩 박수를 쳤다.

<<멋진 커플이군요. 중국 사람들 춤에는 죽인다니까요...>>

나래도 미소를 짓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창호오빠 춤추는 모습 보니까 남자다운 매력 만점이네요? 춤공부를 하셨어요?>>

창호는 나래의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대학 다닐 때 배운거야. 여기 대학에서는 다 배워주거든. 사교무라고 불러.>>

<<사교무?...>>

<<그래, 교제에 필요한 무용이라는 뜻이지.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 중국은 아주 페쇄적이여서 남녀가 모일수 있고 교제를 할만한 자리가 없었어. 그 방편이 바로 이런 춤을 추는거로 남녀간의 교제하는 자리를 만든거지...>>

나래는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리해를 하고있는 표정은 아니였다.

다시 디스코음악이 터졌다. 정준태가 선줄을 이끌어 그들은 홀에 나가 디스코를 추기 시작했다. 나래의 춤가락은 가히 멋지다고 할만했다. 어깨를 스치는 생머리가 몸을 흔드는 절주에 따라 춤을 추고 늘씬한 허리가 섹시하게 유혹하고있었다. 자아를 잃고 무아경에 빠져있는 나래는 마치 청순한 소녀처럼 약동적이고 싱싱했다. 지금의 그를 보고 이미 스믈 일곱을 먹은 녀자라고 할 사람은 없을것이였다. 창호는 나래의 매력에 깊이깊이 빠지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디스코홀에서 나와 호텔로 가는 택시에 앉은 그들은 아직도 디스코의 률동에서 헤여나오지 못한듯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네사람은 이제 호텔에 들어가서 방을 어떻게 배분할것인가를 고민하고있었다.

호텔이 로비에 들어서자 창호는 인순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인순이는 그러는 창호의 눈길을 무시하며 정준태의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우린 호텔 커피숍에서 무얼 좀 마시고 가요. 할 이야기도 있구요.>>

<<그래요? 그럼 우리 렴선생이랑 함께 가요. 아직 잘 때는 아니니까.>>

정준태의 말은 눈치가 무디여서가 아니였다.

창호는 정준태의 심증을 어림잡고 나래의 팔을 잡았다.

<<두분 이야기할게 있다니까 우린 그대로 방으로 가. 나도 일찍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마지막 말을 들으며 인순이가 할끗 창호를 쳐다보았다. 조소의 빛이 살같이 스쳤다.

<<그러세요. 전 정사장하고 이야기 좀 해야니까, 그럼 좋은 밤 되세요...>>

창호는 얼굴이 다는것을 느꼈다. 오기가 치밀었다.

<<나래, 그럼 우린 올라가자. 자, 그럼 좋은 밤.>>

창호는 나래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밤이라 엘리베이터에는 다른 승객이 없었다. 창호는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있는 나래를 보면서 이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그 몇번의 만남을 회상했다.

<<감시카메라가 없다면 여기서 널 입맞추고싶어...>>

나래가 놀라듯 얼굴을 들어 창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지한 창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놀람의 빛은 사라지고 잔잔한 감동이 예쁘게 얼굴을 물들였다.

<<오빠 너무 순수해요.>>

<<그렇게 보이니?>>

<<네, 여기 중국계신분들 하나같이 순박하고 순수해보여요. 티없어보이구요...>>

창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한국은 자본주의여서 그런가?>>

나래가 창호의 손을 잡았다.

<<그럼 사회주의여서 오빠가 순수해보여요?>>

창호는 나래의 작은 손을 꼭 쥐여주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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