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울고 웃었던 한 많은 인생,
판소리가 있었기에 오늘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민간예인 ‘판소리 대갗로 이름난 아흔에 가까운 신옥화 노인이 의연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2005년에는 연변TV방송국과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의 합작으로 된 다큐멘터리 ‘민간예인 신옥화’가 심양시 소가툰에서 촬영을 개시하여 연변TV방송국에 방송되었다.

2000년에는 심양에서 '신옥화음악회'를 가졌고 중국 중앙TV에도 출연하여 판소리 선을 보였다. 2006년에 그는 '심양시우수민간연예인', '료녕성우수민간연예인' 칭호를 수여 받았다.

신옥화씨는 1920년 7월 4일 한국 전라북도 전주군에서 신씨가문의 5남매중 맏딸로 태여나 아홉살때 양친부모를 잃고 양부모의 손에서 17살인 1936년 10월에 인천 ‘인항권본(예술학원)’을 졸업하였는데 전공은 ‘서도판소리’였다. 그해 10월에 그녀는 함경북도 청진시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신옥화 할머니는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1939년 6월 20일, 남편을 따라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이주, 다시 심양시로 옮겨와 정착했다. 1953년 소가툰에서 연변가무단과 인연을 맺으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연변가무단에서 그는 비로소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그후 연변예술학교건립 초창기에 교편을 잡으면서 국가 일급 예술인들인 전화자, 김선옥 등등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문화대혁명’기간에는 ‘잡귀신’으로 몰려 돈화산골로 밀려나 수년간 ‘노동개조’를 받기도 하였다.

1976년 정년퇴직으로 옌지(延吉) 생활을 접고 선양시 소가툰으로 돌아온 신 할머니는 평생 150여수의 잡가와 판소리, 시조를 불러 채록했다.

2007년에 그는 제자들인 강신자, 전화자 등과 함께 연변TV의 음력설 야회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여 세인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험하고 힘든 인생길에서 신 할머니는 운명의 조롱을 받았지만 전통음악 판소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였기에 오늘에 와서는 ‘중국조선족의 살아있는 전설’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