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12>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부모는 누구나 초조해 한다. 학교 시설은 어떻고, 함께 공부할 학급 학생들은 어떠한 아이들일까, 지도해 주실 선생님은 엄한 분일까 좋기만 한 사람일까, 그리고 그러한 모든 새로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 아이가 잘 다니며 공부할 수 있을까 등등 어느 한 가지도 걱정되지 않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것이 첫애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음 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취직이 되어 첫 출근을 맞이하게 된 자식을 보게 될 때에도 그렇다. 직장의 시설이나 환경, 함께 일할 동료들, 층층으로 모셔야 할 선배 직원과 상사들, 그리고 맡은 일들을 큰 잘못이 없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걱정스럽게만 여기게 된다.

그러나, 막상 입학하여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그런 걱정들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써 나가는 글자들을 바라보거나, 하나 둘 더해가는 산술 능력을 보게 될 때면 그저 대견스럽게만 느껴지게 된다. 출근하는 자녀를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넥타이 하나 매는 것도 능숙하고 말씨마저 세련돼 가는 것을 보게 되면서는 자랑스럽게 여겨지게 된다.

결혼을 앞둔 자녀를 대할 때에는 이런 초조와 걱정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직은 모든 것이 어리고 모자라며,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적응해 나갈 힘마저 없어 보인다. 더구나,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또 다른 사람과 함께 가정을 꾸며 나갈 것이며, 어떻게 살아갈 수나 있을런지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다. 실상은 그들 자신들도 부모의 그런 걱정 속에서 결혼하고 이제껏 잘 살아왔으면서도 자신들의 자녀들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만을 흔히들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생물들에게는 환경과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풀이나 나무든, 벌레나 짐승이든,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지 그것에 맞추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은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체의 삶의 적응력과 순화력은 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교양이나 인품이 길러지고 쌓아지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해 온 학생들을 대하게 되면, 앳되고 서툴고 부자연스러운 모습과 행동들이 자주 눈에 띄게 되고, 때로는 교양이나 품성의 면에서 어리고 부족함이 쉽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다가 한 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그런 모습들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세련되어졌음을 느끼게 되고 놀라게 되기도 한다.

교양이나 인품은 가르치고 배워지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환경과 조건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면서 몸에 배어들고 잦아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런 말이 있다.

착한 사람과 더불어 살면 지초(芝草)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으나 곧 그것과 더불어 동화되며, 착하지 않은 사람과 더불어 살면 어물 가게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으나 또한 그것과 더불어 동화되게 된다.

실제로, 꽃들이 많이 피어 있는 온실에 들어설 때에는 꽃향기가 강하게 느껴지지만 얼마 안 있어서는 그 향내가 느껴지지 않게 되고, 퇴비를 쌓아 놓은 두엄 칸에 들어설 때에는 강하게 거름 냄새가 맡아지나 역시 얼마 안 있어서 그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다.

물론, 온실이나 퇴비장에 있는 자신들은 그들의 몸에서 향기나 악취가 풍겨지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그들을 만나러 밖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의 몸에서 나는 향내나 냄새를 쉽게 맡을 수가 있다.

이처럼, 교양과 덕성은 자연스럽게 길러지고, 적응하는 속에서 동화되어 쌓아지는 것 같다.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고, 배우겠다고 길러지는 것만이 아닌가 보다. 스스로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갖추어지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은 어느 정도의 교양이나 인품을 갖추었는가는 모르나 남들은 쉽게 느낄 수가 있는 것인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훌륭한 인품, 교양 있는 삶은 좋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길러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쑥이 밭뚝에서는 잎새가 사방으로 퍼지며 키도 얼마 크지 않고 다복하게 자라지만, 꼿꼿하게 위로만 자라는 삼밭(麻田)에서는 삼을 따라 가늘고 길게 위로 자라는 것만 보아도 환경과 조건의 중요성과 그 영향력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러기에, 맹자의 어머니도 자식을 위해서 세 번씩이나 이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조건이 좋다고 하여 훌륭한 삶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환경, 좋은 조건을 주어도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훌륭한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스스로 훌륭하게 살려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뜻에서 율곡전서(栗谷全書)에 있는 다음의 말은 되새겨 볼 만한 것이다.

자기를 닦는 공부에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있으니, 아는 것은 선(善)을 밝히는 것으로써 하고, 행하는 것은 처신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으로써 한다.

수신(修身)의 궁극적인 목적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에 있다면, 착한 것이 무엇인가를 밝혀 알고, 또한 그것을 실행하되 정성스럽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고 훌륭한 삶을 이룰 수가 없다는 말이다. 무엇을 배울 것이냐 하는 것과 함께, 배움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환경과 조건, 상황과 친구 등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집착해 온 것 같다. 그러나, 훌륭한 삶은 어디서 누구와 더불어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한 것임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스스로 애써 선을 배우고, 끊임없이 정성스럽게 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얼마나 대견스럽고 흐뭇했었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온실 속에 들면 꽃향기가 강하게 느껴지고, 거기에서 지내다 보면 몸에서까지 향내가 나기 마련이다. 내게서 그런 향내를 기대할 수 없음은 알지만, 꽃향기나마 맡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꽃밭의 꽃포기에 물을 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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