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들이 우는 밤

세찬 물결이였다. 밤낮을 치렁치렁했다. ㅅ자형으로 갈라져서 사방 5리벌을 섬으로 가두어넣은채 아우성치고 울부짖고. 저 시커멓게 높은 성벽을 헐어뭉갤듯, 하늘을 입은채 밀려와 둔치를 물어뜯고 모래톱에 몸부림치던 강파도…그 물바람속에 사철 깃을 갈며 댕기처럼 나붓기던 애달픈 물새들…댕기물새떼며 민댕기물떼새의 가슴엔 씀바귀씨가 움텄던가, 소태나무꽃이 피였던가.
사면이 5리의 길이로 강물에 둘러싸인 섬을 5리섬이라고 불렀다. 5리섬에는 수인들을 가두는 수용소가 있었다. 먼 해방전부터 있던 오랜ㅏ된 감옥이였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꼼꼼히 확인을 해봐도 중국 맨 북쪽 끝머리인 막바지에 박힌 리수구의 섬인것이다. 섬은 목릉강을 생명수로 쓰고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
강은 죄가 없다. 동3성이 일제에게 강점당했던 나날, 강은 묵묵히 침략자들이 훔친 떼목을 흘러보냈고 석탄, 금, 은, 동…을 똑딱선과 나루배로 날라버렸다는것을 안다. 그때문에 감옥이 생겼다. 떼목에서 뛰여내렸거나 똑딱선이나 나루배의 방향을 돌렸거나 반항을 한 로동자들은 죄다 섬감옥에 처넣었다. 십대로부터 칠십고령에 이르기까지 여러 민족 남녀로소가방방곡곡에서 잡혀와 수용되였다 한다.
감옥은 멀리서 보면 깊이 뚫어진 컴컴한 굴아구리처럼 보였고 가까이서 보면 깎아지른듯한 절벽으로 안겨든다. 한겨울에도 파르스름한 이끼류가 돋은 암벽의 꼭대기로 가시철망이 날카론 빛을 튕기며 둘러져있다.
섬촌은 감옥촌이라고도 불렸다. 강물에 갇힌 섬촌에는 애초에 일본인들만 살았다고 그랬다. 감옥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본군인들의 가족이였던것이다.
20여호가 되나마나한 작은 부락이였다. 너무나 조용한 마을이였다. 생기라곤 찾아볼수 없게 황페감만 던져준다. 깊은 밤 물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올적이면 살기를 품고 죽어가는 비명소리가 머리칼이 곤두서설정도 공포에 질린다.
일제가로 망하자 감옥촌에도 불이 질러지고 일본녀인들이 목을 매고 할복을 하고 강물에 뛰여들고…감옥쪽에선 밤마다 울음소리가 들려왔단다. 사람들은 강물이 내는 소리라고도 했고 감옥부근에서 나는 소리라고도 했지만 누구도 딱히 모른다. 구곡간장이 찢어지게 슬픈 울음소리이기도 하고 울다가 웃기도 하는 그런 소름끼칠 소리들이여서 들개나 늑대무리가 일시에 내지르는 울음소리같다고…혼들이 우는 무서운 밤이라고 그랬다…


2. 조선족 감옥장

  일제시기 감옥장은 일본인장교였고 일제가 망한후로는 국민당이 감옥장으로 행세를 했다. 해방전쟁이 터진 이듬해인 1948년 9월의 어느 날부턴가 계서일대인 리수구가 해방군에 의해 점령이 되자 감옥장도 바뀌였는데 1962년 초봄에 리명철이라고 부르는 조선족군인이 조선인이란 찾아볼수조차 없는 곳으로 옥복이라고 부르는 보배둥이 셋째딸을 목마태우고 감옥촌으로 찾아올줄이야…
옥장은 그렇게 감옥촌에다 가족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섬촌은 그때 인가가 오가잡탕으로 늘어서 거의 백여호나 되였다.
섬촌은 이른새벽부터 분주하다. 한족, 만족, 몽골족, 회족, 따이족, 로씨야인, 일본인…퇴역군인, 토비, 국민당군인, 도적놈…들로 신분이 복잡들했다. 개짖는 소리, 염소울음소리, 소, 말, 닭, 오리, 게사니들의 우짖는 소리에 사구려소리, 욕지거리가 한데 퍼부어진다. 그러나 일단 밤이 오면 삼라만상이 쥐죽은듯 고요하다. 섬의 개들은 밤에 짖을줄 모른다. 섬의 사람들은 밤에 나다닐줄 모른다. 문을 꽁꽁 걸고 불을 끄고 잠드는지도 모른다.
섬의 바람소리는 칼끝이 징징 우는 소릴 낸다. 한밤의 강물소리는 소박맞은 아낙의 한탄이 깔린 한숨소리처럼 들린다. 또는 뭔가 소중한것을 잃은 녀인의 바락바락 우는 흐느낌으로, 한없는 그리움이나 후회막급의 그런 슬프디슬픈 울음으로 들리여 몸이 오싹 떨리게까지 한다.
남 다 자는 깊은 밤, 미친년의 미친 웃음소리나 찢어지는 흐느낌소리가 닭이 첫홰를 치는《꼬끼오-》소리에 쫓겨 가뭇없이 어데론가 잦아드는 섬, 시커먼 감옥이 굽어보는 섬에서 감옥장의 딸 옥복이는 깡똥머리를 달랑달랑 맨채로 7살부터 쩍하면 아버지를 따라 감옥성안으로 들어오군 했다.
옥복이 아버지는 일찍 해방전쟁에서 림표가 지휘한 사평전역에 참가했고 조선지원군에 나가 팽덕회사령원의 접견을 받은적 있는 공로있는 군인이였다. 그러므로 상급으로부터 중시를 받았으며 조선족이 없는 한족잡거지구에서 살면서도 한족들의 신망의 눈길을 받으며 살수 있었다.
그러나 섬에 와서부터는 달랐다. 아버지의 관직이 그런것이였으므로 거의 높은 성벽으로 둘러진 감옥속에서 살다싶이했다. 아니, 마치 감옥장인 아버지까지 범인인것처럼 어머니와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까지 엇바꾸밥과 찬을 날라가다보니 집안식솔들, 특히 옥복이는 감옥안을 손금보듯할밖에 없었고 그보다는 자기 집처럼 정이 들던것이다. 그러는 옥복이네 집안을 가끔 온역인듯 피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군복차림으로 허리에 권총을 찼거나 경위원들을 데리고 나서면 동네는 추풍에 락엽 날리듯 사람그림자도 볼수 없다.


3.《학교》

옥복이는 감옥에서 크다싶이했다. 높이 솟은 성벽아래로 죄인들이 구령에 따라 뛰기도 하고 훈시를 받는 장면도 보인다…죄인들이 갇혀있는 감방이 달려있는 긴 복도는 몹시 어둑시그레했다. 죄인들은 수인자를 박은 재빛광목옷을 입고 머리는 빡빡 밀었다.
섬에는 학교가 없었다. 줄배를 당겨서 강을 건너야 소학교에 갈수 있다.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세찰 땐 배가 몹시 기우뚱거려 해마다 애들이 익사하는 통에 적잖은 애들이 중퇴하고만다.
감옥장의 근심거리가 바로 그거였다. 셋째딸을 젤 고와하니 말이다.
아버지는 딸만 여섯을 두었다. 셋째딸의 이름을 리옥복이라 불렀다. 수인들은 옥복이를 감옥 옥자로《옥화》, 감옥의 꽃이라고 불렀다.
1964년, 전례없는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이 터졌다. 《사령부를 폭격하자!》는 모택동의 명령이 전국을 휩쓸었고 방방곡곡에서《범죄》분자들을 잡아내느라 두눈이 혈안이 되였다.
감옥에는 새로운 부류의《범인》들로 차고넘쳤다. 《반당반사회주의분자》,《우파분자》,《오류분자》,《외국특무》,《현행반혁명분자》,《고린내나는 아홉째》,《3자1포4대자유분자》…들로 그 죄과의 성질이 복잡했다. 그런걸 한마디로《잡귀신》이라고 했다.
그해에 옥복이는 나이 10살밖에 안되였으므로 아직 뭐가 뭔지 잘 몰랐다.
   감옥의 긴 복도에선 서리빛 어린 보총들의 육박도가 번쩍이고 뚜꺼덕뚜꺼덕거리는 군화소리가 들린다. 길고 어둡고 침침한 감옥의 복도에선 아무때나 울음소릴 들을수가 있었다. 짧고 긴 울음, 석쉼하고 날카론 울음, 발악적이고 절망적인 울음…그 울음과 울음들엔 불가항력에 대한 원망과 비분이 묻어있었다.
《얘, 넌 집에 가 공부나 해. 왜 자꾸 이런델 따라와. 순 <잡귀신>들인데…그래, 무섭잖니?》
아버지도 말렸고 지어 보초병 군인들도 그랬다.
《공부? 강에 전문 아이들만 잡아먹는 <애귀신>이 있다던데요. 벌써 내 눈으루 봤거든요. 왕보언니도, 우화언니도 죽었어요. 강언덕에 건져졌던데요. 주먹을 꼭 쥐고 이 앙다물고…아이, 무서워. 난 학교 안 가요. 여기가 좋아요. 이렇게 살아서 웃고울고하는 사람들이 좋아요.》
옥복이는 어린 나이에 그런 말을 했다. 군대어른들은 옥복이를 지독한 애라고 했다.
옥복은 감옥안이 전혀 무섭지 않다고 했다. 철창란간사이를 쏙쏙 비집고 들어가서는 긴 복도속을 겁없이 쏘다니며 철창사이로 내민 무섭게 생긴 낯모를 죄수들이 자기 집 식솔이나 친척들인양  방긋방긋 웃어주기도 하고 인사말도 곧잘 나누었다. 더우기 죄꼬만 가시내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것처럼 전문 소리나는 방만 찾아다녔다. 흐느끼는 감방창어구앞에 닿아서는 같이 소리를 모방하여 울어낸다. 그러면 울던 죄수가 두눈이 둥그래서 쳐다보다가 울음을 그친다. 웃는 사람도 있었다. 또 정신병자처럼 필필 웃어대는 죄수를 마주하고는 같이 웃어준다. 그 사람도 웃음을 멈추고는 안위를 찾는다. 량볼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사람도 있고.
《넌 하늘의 별이야. 널 보믄 가을밤을 거니는듯 호젓해지는 마음이란말야…》
감옥안의 사내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해주고있는듯 눈길을 옥복에게서 떼지 못해한다.
《넌 들판의 아름다운 꽃이란다. 널 보믄 <낄뢸릭…> 기러기 우는 오월의 들판에서 한가로이 거니는 기분이잖아…기쁨도 슬픔도 잦아들 그우로 꿈만 부푸는…》
감옥안의 녀자들은 그렇게 말해오고있는듯했다.


4. 초면의 소년범인
    
맏언니가 전보대같이 키 큰 총각한테 붙어다니는게 눈꼴이 시여 아버지가 하루 걸러
《듣자니 무리싸움에서 대갈통이 터진적 있다던데…키 크면 다냐? 미친놈의 가시내갉》
《키 커야 마음도 뭣도 다 크다던데…》
부녀간이 찧고빻던 어느 날, 감옥으로 40대의 녀인이 면회하러 찾아왔다. 아버지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주고받고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따금씩 주고받는 조선말같았다.
《아버지, 저 녀잔 조선족인가요?》
아버진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때 옥복인 그 녀잘 똑바로 뜯어보았다. 얼마나 오래만에 보는 한민족이란 말인가. 그런 선입감이 작용하는것은  귀신의 작간처럼 미묘한것이여서 막을길 바이없었다.
조금후 한번도 본적 없는 십대의 청년이 불려나왔다. 수인복을 입고 까까머리를 밀었다. 겨우 17세라고 했다. 옥복이보다 5살 우였다. 키가 164cm정도밖에 안되여보이는데다 몸까지 여위여 몹시 가냘프고 우울해보였다. 《반당반사회주의분자》이며 《부농》의 자식이라고 했다.
《끄윽끅끅…춘삼아, 얼마나 외롭겠니…억울한 내 아들아, 책을 읽은게 다 죄라니, 이게 무슨 세상이냐…책을 읽어도 당을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한다니…억울하고 불쌍한 내 아들아…억 흑흑…》
가녀린 아들의 어깨박죽을 그러안고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고 옥복이도 울었다.
모자가 갈라질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뭔가 꾸러미를 넘겨주다가 주춤했고 주춤하다간 다시 떨리는 손으로 넘겨준다. 그런데 왠지 꾸러미 하나는 끝내 넘겨주지 못한채 품에 감춘다.
끝내 못 건네는 저 꾸러미안에는 뭣이 들어있을가? 그리고 넘겨준 꾸러미속에 또 뭐가 들었고?…소녀는 그 비밀을 풀수 없어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엄마가 다음달에 또 올게…그때…흑 응응…》
감옥문이 탕  닫길 때까지 어머니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있었다.
춘삼이라고 부르는 저 범죄자는 여적 한번도 본적 없는 청년이였다. 그런데도 어데선가 꼭 보아오던 얼굴처럼 낯익게 보임은 무엇때문일가. 초면의 소년범인이 참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5. 저주받을 《미인》
    
감옥장은 밤낮을 범인관리때문에 눈코뜰새없이 보냈다. 딸 여섯의 성장을 안해한테 맡긴채 들여다볼 사이도 있는것 같잖았다.
딸들은 엄마를 죽여낸다. 20살을 먹은 맏딸은 전보대청년과 련애질에 죽자살자하고 17살에 난 둘째딸은 얼뜨기 장난꾸러기들과 휩쓸어다니면서 영화구경에 제정신이 아니다. 옥복이 아래로 10살, 8살난 녀동생은 소학교에서 공부도 꼴찌다. 거기다 5살난 막내딸이 감기에 걸리고 보채고 하는 통에 엄마는 언제 한번 크림도 반반히 바르고다닐 사이가 없고 머리는 한광주리다. 집안은 빈대잡이, 이잡이, 서캐잡이에 온 구들이 옷가지들로 란장판이 되여있군 했다.
그래도 셋째딸인 옥복이만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을수 있어 쩍하면 학교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감옥으로 들어가 놀수 있었던것이다. 아저씨들의 총도 만져보고 그들의 등에 업혀서 깔깔 웃을수도 있어 어깨가 으쓱했다. 학교에서라면 쩍하면《류망》애들한테 맞기도 하는데 말이다.
너무 어려서부터 감옥에서 커왔기에 소녀는 감옥의 구석구석까지 손금보듯 속속들이 알았고 범인들과 면목이 있었다.《반당반사회주의분자》이든《고린내나는 아홉째》이든《자전거도적놈》이든《쌀도적》이든 지어《살인범》,《강간범》에 이르기까지 범인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똑깉이 대해주었다. 범인들은 벌써 복도에서 발작소리만 들려도 머리를 내밀고《옥화야-》하고 다정하게 불러준다. 시비선악이 전도된 세월이라거나 억울하다거나 그런데 대해선 조금도 모르고있었기때문인데도 말이다.
옥복은 언제나 감옥출입이 무허가통행이였다. 감옥장의 딸이라는데 원인도 있지만 참 예쁘게 생겼기때문이였다. 황차 감옥이란 곳은 남자들 천하이기에 녀자란 벌밭에 수제비꽃마냥 보기 희소함에랴.
거꾸로 무너지듯 시커먼 철문의 쪼각문을 빠져 감옥성벽에 들어서면 기차굴같은 감옥문이 여러갈래로 나뉘여 출구가 나진다. 출구마다 군복에 붉은 혁띠를 두르고 총가목 부여잡은 군인이 둘씩 십여명이나 지키고 서 삼엄하기 그지없다. 그러하건만 옥복에게는 그런 군인들이 이웃집 삼촌처럼 지어 놀이감처럼 보인다.
《아유 옥화, 감옥꽃이 왔구나. 내게루 오려마, 어서…》
어려서부터 옥복이가 나타나면 군인이란 위엄도 잊은채 웃음을 개여올리며 좋아하군 그랬다. 안아주고 업어주고 수염 꺼칠한 볼로 뽀뽀를 해주고 고와 어쩔줄을 모른다.
그런 사랑속에 감옥을 즐겼던 옥복이는 차츰 열살을 넘겨먹으면서 군인아저씨들의 부자연스런 행위에 대해 의심하고 거부감을 가지게 된거였다. 고와하는척하면서 아무 곳이나 만져대고 옥복의 몸뚱이에다 불시에 뼈다귀같이 단단한 국부를 육박해대군 하는 늙은 병사들의 모양이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날 오후, 옥복이는 살그머니 춘삼이가 들어있는 389호 감방문은 향했다.
《얘, 옥화야, 아저씨와 말 좀 나누렴아.》
엄숙하게 총가목 잡고 섰던 옥병이 치근덕거리며 옥화를 막아나섰다
《왜 이래요, 비켜요. 》
《어릴 때야 막 나들었지만 넌 이제 컸잖아, 안돼. 》
옥지기는 소녀의 팔목이며를 쥐려 들며 애를 먹인다.
《난 숙제하러 가요. 선생님이 옥중인상기를 작문으로 써오라고 그랬거든요…울 아버지가 저기 내다봐요. 》
그제야 옥지기는 덴겁을 하며 소녀를 들여보낸다.
소녀는 감방앞에 다달아 흠칫 놀란듯 혀를 쏙 내민다. 분명했다. 좁은 감방구석에 엎드려 골똘히 책을 들여다보는건 꼭 그 여린 청년이였던것이다. 대낮이여도 감방안은 저녁무렵처럼 어둑시그레했다. 그래도 소년은 정신없이 책에 골몰하고있었다.
오, 오전에 어머니에게서 넘겨받은것이 책이였구나. 무슨 책이기에 저토록 정신을 앗긴것일가. 눈여겨보니 곁에는 원주필과 깨알같이 박아쓴 필기장까지 있었다. 대체 뭣에 소질을 련마하는 사람일가, 무척 알고싶었다.
《춘삼오빠. 》
오전에 기억한 이름대로 작은 소리로 불렀다. 곁방에서 낌새를 채지 못하게 부른것이였으나 아주 자신있게 부른 소리였다.
급작스레 자기 이름을 부르자 그것도 녀자의 은은한 목소리여서 소년은 귀신에게 잡혀가듯 부접을 못하며 진땀을 흠뻑 흘렸다.
소년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감방문 쇠창살틈새로 자기를 향해 웃음짓고있는 녀자애는 틀림없는 귀신이였다. 속눈섶 긴 까맣고 커다란 눈, 피를 바른듯 붉은 입술사이로 드러난 흰이…이런 렬악한 곳에, 이틀이 멀다하게 총살당하러 끌려나가며 질러대는 아츠러운 비명소리로 찬 감옥에 이같이 고운 녀인이 자기를 향해 정답게 웃어오다니, 아, 이건 아무래도 염라대왕이《반당반사회주의 분자》로 총살을 앞둔 나에게 보낸 녀귀신이 아닌지…
《으악.》
비명이 나가며 뒤로 넘어가려 하는데
《나얘요. 나 어제 춘삼어머니곁에 서있던 그 녀자애…나도 조선족이얘요, 조선족. 》
녀자애는 정색해서 말을 건넨다.
《니쓰 초우쌘주와아? 》(조선족이라고?)
《쓰더, 워쓰 초우쌘주우. 》(그래요, 나 조선족이얘요.)
춘삼오빠는 한족말 발음이 서툴렀다. 그게 확 마음을 움켜잡는게 이상한 일이였다. 왜 그런지 몰랐다.
《무슨 책을 읽나요? 》
《난…난 모택동저작선을 읽어. 》
《내가 한번 보면 안될가요? 》
그 말이 아니꼽던지 소년은 의아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네가 다 뭔데 함부로 내 일에 참견질이야, 그런 눈길이였다. 눈길속에는 경계와 저주가 새벽빛처럼 번뜩이였다.
소녀는 기가 질렸다. 더 다가설 용기를 잃고있었다. 유감스런 나머지 눈물이 다 글썽해졌다.


6. 《강호의 푸른 물결》

꼬박 한주일이나 감옥을 나가지 않았다. 춘삼이를 범인으로 생각한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감방창문으로 느껴지던 춘삼의 경계에 찬 찬눈길을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기까지 한다.
왜 그럴가? 무슨 책이기에 분명히 조선말로 중얼거리며 서정에 휘말려든걸 듣고 봤는데도 말이다. 모택동저작의 내용이 범인을 서정속에 깊이 묻히게 할수 있을가. 뭘가?…왜 그게 자꾸 알고픈지 모를 일이였다.
소녀는 그러고있는 자신이 얄밉기까지 해났다. 왜소한 그가 뭘 읽든 자기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왜 자꾸 범인과의 미련을 끈적끈적 찰되게만 붙이고있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실망과 원망속에 학교로 갈 맥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감기를 핑게대고 집에 눌러있으려니 맏언니가 키가 전선대같은 한족청년을 집에 끌어들여서 키득거리고 좋아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끝내는 감옥으로 갈수밖에 없었다.
그래, 단념해야지. 범인이 그런 눈길로 날 야멸차게 대하는데 이제 내가 뭐하러 찾아간단말인갉자존심을 여지없이 밟아뭉개면서말이다.
그러나 감옥의 성벽아래서 끔찍한 일을 목격할줄이야. 춘삼이가 먼지 뽀얗게 줄지어 뛰는 범인대렬에서 떨어졌는지 한창 옥졸한테 마구 짓밟히고 구두발에 채이며 맞고있는게 아닌가. 가까이 가보니 춘삼이는 코피투성이였다.
《야, 이 <잡귀신>아, 왜 옥화가 널 찾아갔니? 응? 이 꼬리빵쯔놈아, 네가 무슨 얼림수로 고 미인을 홀렸어? 어서 말해…》
옥졸은 바로 그때문에 트집을 걸어 춘삼이를 구박주하고있는거였다.
《우린 아무 관계도 없단 말이얘요. 그 처녀앤 미인이 아니라 귀신같았지요. 난 그 녀자앨 보고 그날밤 악몽까지 꾸었는데 뭘. 대체 어느 <잡귀신>의 딸인데 불쑥 나타나서…》
춘삼은 맞으면서도 극구 그런 말로 대들고있었다.
내가 춘삼오빠의 눈에 귀신으로 무섭게 보였구나. 그럴수 있겠지. 죽은 귀신들의 혼이 나돈다는 죄수감옥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슬렁슬렁 들어가 활짝 웃어보였으니…옥복은 춘삼이가 더 맞게 내버려둘수 없었다. 자꾸 소녀와 소년의 비밀을 억울하게 까밝히려 드는 옥졸이 변태스럽기만 했다. 쩍하면 말을 걸어와 목덜미 냄새를 맡고저 하던 젊은 키다리 옥졸이였다.
《손떼요! 우리가 무슨 관계있다구요? 춘삼오빠는 지식분자거든요. 저이는 많은 책을 읽었지요. 난 저이한테서 고금중외의 유명한 이야기들을 들으려 했지요. <사마천>, <굴원>, <붉은 바위>, <맑은 하늘>… 범인이라고 해서 장점이 없다는 법 있나요. 범인일수록 그의 장점을 발휘하게 해야지요… 한번만 더 추궁을 하면 나 울 아버지한테 일러줄거얘요.》
옥졸은 소녀앞에 허리를 굽신거리고 웃음을 개여올리며 다신 그러지 않겠으니 제발 옥장과 말하지 말라고 빌고들었다.
그날 오후, 소녀가 다시 감방앞에 나타났다.
《맞은 곳이 아프지 않나요? 코피도 흘리고 아팠겠는데 여기 소염제약을 가져왔어요. 자, 받아요. 》
범인은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웃어보였다. 소년은 작은 체구였지만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불쑥 그가 물었다.
《집의 아버지가 여기 감옥장이시니? 》
소녀는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내가 두루 책들을 읽은줄은 어떻게 아니? 》
《<조선족>인데다 퍽 어린 나이에 억울한 루명을 쓰고 잡혀와 옥고를 치른다고 울 아버지가 말했어요. 또 잡혀온 원인도 밝혀서 나 알구있어요…》
그 말에 소년은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듯하더니
《그때문에 날 찾다니, 얘길 듣기 좋아해?》하고 묻는다.
《그래요,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로동과만 가르치고 로동만 시켜요. 바깥지옥이나 다를바없지요. 》
《내 얘길 나가서 옮겨놓지 않겠다고 약속할수 있어? 》
소녀는 난생 처음으로 장회체 력사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송강이요, 흑선풍 리규요, 양지요, 무송이요, 로지심이요…하는 영웅들의 이름을 들으며 서서히 다른 신비한 세계에 흠뻑 취하고있었다.
철창을 사이둔 소년범의 한어발음은 서툴었으나 하는 얘기가운데의 한어 성구들과 명언은 소녀가 여적 듣지도 보지도 못한것들이 많았다.
범인이 우러러보이였다. 지식이 연박한 그가 부러웠다.
감옥에서 강호의 푸른 물결이 출렁출렁 넘쳐나고있는듯한 느낌이였다.


7. 《이야기 귀신》

섬마을의 황둥이들이 혀를 빼무는 삼복더위가 강물의 울부짖음소릴 데리고온가부다. 강물은 시퍼런 작두날같은 번개를 싣고 덤볐고 북소리같은 우뢰를 수심깊이 두드리며 종횡무진해온다.
감옥밖인 섬마을에도 간혹 알지 못할 병으로 사람이 죽어나갔지만 감옥안에서는 매일이다싶이 범인이 시체로 들려나갔다.
《하, 그것 참 귀신이 곡할 일이군. 하나같이 키다리들만 골라서 단 하루밤새에 꼴깍 숨이 넘어가게 하잖겠나. 죽는 놈가운데 키 작은 놈이란 하나도 없다고. 》
감옥의 딸보의사가 고개를 돌리며 김빠진 소릴 했다.
《이놈의 가시내야, 귀신병이 도는데 전문 키 큰 놈을 골라서 염라대왕 뵈러 데려간다더라. 어서 속 빈 그놈과 걷어치워라.》
아버지는 맏딸만 보면 좋아하는 키다리와 걷어치우라는 소리다. 옥복이 보기에도 그랬다. 왜 감옥장인 아버지는 키 큰 총각들만 눈에 들어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였다. 옥복이도 크면 키가 후리후리하고 팔자수염을 기른 신사총각을 사랑하리라 앙큼한 생각을 해오는데 말이다.
그러나 당금은 귀신에게 홀린듯 마음이 언제나 발길 앞서 감옥에 가있었다. 어데를 둘러봐도 봄날의 동경이나 여름날의 랑만, 가을날의 풍요로움이 없는, 보이고 들리는것이란 사시장철의 어둠과 녹쓴 철갑모, 가시철망의 빛바램 그리고 서리발치는 총창의 장탄소리뿐이지만 옥복의 눈에는 그것들이 능치고 들어붙어 아직 헤쳐보이지 못하고있는 전설처럼 이야기왕국이였던것이다.
왕국? 감옥이 왜 소녀의 눈에 즐거움의 마당으로 여겨지고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아버지가 감옥장이기에 감옥이 무섭지 않을것이고 그래서 긴 복도로 새여나오는 앓음소리, 비명소리들을 찾아 방긋 웃어주고 안위해주는가 하면 들려나오는 시체에서 구더기들이 뚝뚝 떨어지는것도 아랑곳 않고《천당 가 복 받으세요》라고 고사리같은 손을 모아잡고 기도하기도 할것이다. 만약 그런걸 감옥장이 직접 목격했다면 다짜고짜 딸을 감옥밖으로 쫓아냈을거였다. 그러나 감옥장이 리수구와 계서시 그리고 성감옥청들에서 하달되는 사건처리에 관한 심사가 눈코뜰새없이 들이닥치기에 딸이 강건너 학교로 갔겠거니 여기고있는터였다.
끝내 일은 저질러지고말았다. 부인이 울고불며 감옥장인 남편을 찾아온것이다. 옹근 이틀동안이나 옥복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거다. 강 건너 친척집에 갔겠거니 여긴건 오산이였다. 온 감옥안을 휘딱 뒤집었다. 그림자도 볼수 없었다. 그럼 강귀신이 잡아갔단 말인갉《어우, 어우- 》하고 깊은 밤까지 옥복이 엄마는 강가에서 울음을 퍼질러댔다.
사흗날에야 한반에 다니는 애들의 입을 통해 옥복이가 그냥《비판대회이야기》란걸 한다는거였다.
《<비판대회이야기>란건 뭐냐?》
감옥장이 낯색이 하얗게 질리면서 두눈을 휘둥그레 뜬채 캐여물었다.
《옥복이가 뭐 <수호전>, <서유기> 같은 독초책을 많이 봤대요. 그래서 교장이 옥복일 학교 양돈장에다 가두어넣고서 매일마다 <새끼반동파>라고 비판대회를 열지요. 그러면 그 비판대회에서 옥복이가 하는 얘길 듣지요. 얼마나 재미있다구요. 선생님이 듣다가 방귀가 나가는것도 모르고…점심때도 지나고 밥이 올라올 때까지 얘기를 듣다가 <옥복이를 타도하자!>고 웨치고는 비판대회가 끝나군 하지요…》
《저런?! 우리 옥복이가 그런 얘길 알어? 우리 옥복이를 돼지굴에 가두어넣다니…내 교장놈을 그저 진짜 감옥에다 처넣고말테다…》
옥장은 두눈이 둥그래졌다가 치미는 분기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옥복이 네가 대체 누구이고 너의 부모는 무얼 하며 너희 집에 아직도 그런 독초장서가 무진장하겠지. 마저 조사를 해서 감옥에다 처넣으리라던 날에 교장과 담임이 옥장과 마주쳤다.
서슬이 퍼래서 옥장이 한소릴 먹였다.
《내 딸을 내놔! 내 딸 옥복이를 내놔!! 주리를 틀 놈들 …》
앞에 관자놀이 홀쭉한 수염투성이 중늙은이가 으름장을 놓자 교장이
《네가 누군데 엇다대구 언감히 삿대질이냐. 네 이런 딸년이 독초에 인이 박힌걸 보니까 그 웃물일 네놈이야 진짜 <잡귀신>이 아니겠냐. 금방 붙잡으러 가려 했는데 제발루 찾아오다니, 가자! 감옥엘 처넣게스리…》
《내가 바루 감옥장이야! 알어? 이것 봐. 》
앞섶을 헤치고 여윈 배를 툭툭 치는데 보니 이건 뭔가?! 권총을 찬 군대가 아닌가. 교장은 단통 너부러져서 손이야 발이야 눈물코물 짜고 머리가 땅에 닿게 조아리며 제발 감옥에 처넣지 말아달라고 빌었다…


8. 《선생님》

옥장은 이를 갈았다. 무슨 놈의 학교가 나어린 학생을 양돈장의 한구석에다 가두어넣고 공부는커녕《잡귀신》으로 잡는단 말인가. 그런 학교에 딸을 보내 공부시키는것이야말로 호박 쓰고 돼지굴로 들어가는것이나 다를바 없다고 여겼다.
맏딸은 밥술만 떨어지면 나팔바지를 펄럭거리고 선글라스를 걸고서 무리싸움만 하는 건달총각에게 붙어 떨어질줄을 모르고 둘째딸은 눈만 뜨면 쌉쌀개패들과 섞여서 영화구경이나 거리의 골목을 쓸고다닌다. 유독 셋째인 옥복이만은 크면서 더 곱게, 총명하게 번진다. 그런데 보배둥이 딸을 공부시킬 학교가 없게 되였다. 강 건너 리수진이라고 해봤자 중심소학교 하나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기차 타고 계서시로 전학을 시킨다는건 되지도 않을 말이다.
어쩔가, 대체 내 이 보배둥이 딸을 어떡한단 말인갉총명하고 공부에 전념하며 게다가 부모 몰래 옥장인 이 아비마저 못 읽어본《수호전》같은 장회체이야길 개울물같이 엮어낸다니, 그런 천재소녀를 치하하고 격려해줄 대신 비판대상으로 모니 저눔의 학교는 대체 학생을 배워주는 곳인지 인재를 매몰시키는 곳인지 어데 가 물어볼 곳마저 없었다. 코 막고 답답한 노릇이였다.
그렇게 한창 등이 달아할 때였다. 꿈도 못 꿀 신기한 일이 생겼다.
《아버지, 춘삼이라구 그 조선족 <잡귀신청년>을 알지요?》
《알구말구, 왜? 》
딸은 대답도 않은채 아버지의 손에 쪽지 한장을 쥐여주면서
《이걸 전해줄수 있겠나요? 》한다.
죄꼬만 계집애가 언니들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가 단통 우려가 들면서 쪽지를 받아 펼쳤다. 획이 비뚠 글자가 안겨들었다.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춘삼오빠: 난 애들 앞에 오빠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했어요. 선생님은 나를 밤이면 양돈장에 가두어넣고 삶은 호박만 먹였어요. 찬호박을 먹어서 그런지 피똥이 나가요. 오줌도 자주 나가요. 엄마, 아빠가 알고 나를 데려갔어요. 비판받아도 비판대회에서 그냥 력사이야기를 할수 있었는데 그게 아쉬워요. 오빠, 오빠가 보고싶어요. 새로운 이야기를 더 듣고싶어요. 조선글자도 더 배우고싶어요. 배워줄수 있죠? 아버지께 부탁해 이 편지를 전해요.
            경례, 옥복이로부터.
옥장은 두눈이 커졌다. 이게 얼마나 오래동안 못 보아온 우리 글자냐. 아니, 그보다는 이 쪽지의 조선글이 그래 내 딸년이 쓴 글이란 말인가.
《그래 이 조선글이 네 손으루 쓴것이란 말이냐? 》
옥복이는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이걸 언제 배웠는데? 》
《한해전부터 배웠어요. 어떤 날은 온 하루 들어박혀 배우고…》
옥장은 귀여운 딸을 와락 껴안고 뽀뽀해주었다.
《춘삼오빠가 그러는데 앞으로 행복하게 살자면 독서를 해야 한대요. 그리고 조선족이라면 자기 민족의 글과 말을 잊지 말아야 커서 후회없이 살수 있대요. 난 춘삼오빠한테서 조선 글과 말을 계속 배울래요. 재미있어요.》
감옥장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어디 소학생 딸이 하는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있는건 어느덧 키도 한뼘이나 더 크고 숙성해보이는 딸이였다. 
순간 어둠을 가르는 번개불줄기같이 머리속에 번쩍이는게 있었다.
춘삼이, 그 《잡귀신》이 어쩜 내 딸 옥복의 선생님이 될순 없을가라는 기대감이 간절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9. 《특수감방》

옥복이가 조선글과 말을 배우는데 남다른 애착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감옥장으로서는 조선족이란 한사람도 볼수 없는 산재지구에서 자식 여섯이나 별수없이 동화되는걸 생각하면  죄책감으로 가슴 조이군 했다.
옥장은  누구도 몰렀큰일》을 벌였다. 춘삼이를 감옥《모주석저작학습교원》으로 임명한것이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정치범들앞옅선생님》으로 추앙되였다.
정치범들은 대부분이 문외한이였으므로 병음부터 가르치고 쉬운 한문을 들이대고 암기쓰기를 시키는게 보통이였다. 과연 얼마 안 가 춘삼이는 한어문을 썩 잘하여 감옥의 몇백명이나 되는 정치범들뿐 아니라 옥졸들에게서 존대를 받는 인재로 되였다.
   옥장도 감옥정치범들을 정치로 각오시키고 지식도 배워주는《흑룡강성 모주석저작학습선진감옥》으로 북경에까지 회의를 다녀오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단 두달만이였다. 시기가 온것이다. 순 옥장의 보배딸을 위한 계략이였던것이다.
옥장은 춘삼이를《특수감방》으로 옮겼다.
춘삼이가 죄범교원, 우수정치범이기에 그 누구도 시기하거나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고있었다.
특수감방은 사실 자그마한 교실인셈이였다. 8평방메터의 자그마한 칸으로 성벽안의 범죄감시실 복도 맨끝에 달려있었다.
그날 춘삼이는 깜짝 놀랐다. 옥복이 그 계집애가 보낸 편지를 누가 던져넣었는지 바닥에서 주어서 보긴 했지만 옥졸에게 끌려 특수감방으로 나온 날 오후, 그것도 옥장이 친히 자기 방에 나타날줄이야. 더욱 놀라운 일은 옥졸의 뒤에 바로 옥복이가 넥타이를 매고 책가방을 메고 서있는게 아닌가.
《넌 오늘부터 내 딸, 옥복의 <선생님>이 되는거야. 휴일을 제외하곤 매일 오전 4시간을 산수, 조선어문, 한어, 영어를 배워주어야 한다. 이 일은 비밀에 부친다는걸 알아둬… 》
《감사합니다. 감사…》
《넌 아까운 애갉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우리 말과 글은…》
옥장의 말은 춘삼이를 고무하고있었다.
그날밤 달빛은 밝았다.


10. 귀신의 작간

강은 쉼없이 ㅅ자형으로 감옥마을을 가두어넣은채 흘렀고 성벽은 정치범들을 가둔채 천애절벽같이 솟았다. 진짜범죄분자들인 도적놈들과 강간범, 류망들은 잡혀들어올줄 모르고 교원, 기사, 청렴했던 간부만 정치범, 잡귀신이란 루명들을 쓰고 잡혀들어오는 세월은 끝날줄 모르고있다. 아니, 가끔가다 쌀에 뉘격으로 제대로 잡혀오는 놈이 있긴 했었다.
그사이 옥장의 맏딸을 두번씩이나 임신을 시켰다는《한족전보대》총각이 무리싸움을 하던중 칼로 대방을 찔러죽여 무기형을 받고 감옥에 처박혔다.
더욱 기가 찬 일은 옥장에게 두번째《한족전보대》가 생긴거였다. 영화귀신이여서 밤낮 영화만 보고 산다는데 거기다 젊은놈이 술고래란다. 옥장이 잔뜩 벼르던 참인데 덜컹 둘째딸이 임신을 한것이다. 옥장은 화김에 그 청년을 강간범으로 감옥에 처넣었다고 한다.
《키 큰 청년들 열에 아홉은 건달이더라. 키 작고 왜소한 청년들을 보니까 열에 일곱은 살자고 애를 쓰고 리상에 집념을 하더라. 나 키 작은 청년을 사위루 삼으면 삼았지…》
옥장아버지의 신신당부였다. 옥장은 머리가 텅 빈 딸들때문에 기분이 엉망이였다. 입맛을 잃고 잠을 설칠 때가 보통이였다.
자정이 지나 홀로 성벽을 바라보노라면 간드러진 웃음소리, 구곡간장을 찢는 울음소리, 처절한 비명소리 같은것들이 들려오는데 일본말같기도 하고 쏘련말같기도 하여 력사의 비극이 묵은 귀신으로 살아난듯한 착각이 든다. 그럴 때면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가을의 해맑은 강가에 나서도 그렇다. 온통 울음소리로 들려오는건 딸년들땜에 속이 타 재가 된 안해의 가녀린 목줄기에서 찢겨나오는 울음소리까지 가슴 저며오기때문이였다.
모든 희망을 셋째딸에게 걸었다. 어느덧 옥복이도 16살이 되였고 키도 롱구선수처럼 춘삼이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얼마나 치렁치렁한 딸인가.  
춘삼이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기초지식을 잘 다진셈이다. 몇해나 배웠으니 말이다. 옥장인것이 다행이다. 아니라면 옥복이까지 쭉정이로 될번했다.
좀 미흡한 점이라면 아직까지도 춘삼이에게로 다닌다는것이다. 이젠 학습도 자립할수 있는데 말이다. 유감스러운것은 중학교교육체제가 덜돼먹은거였다. 이건 허구한 날 빈하중농을 청해다 일하는것만 배워주니 말이다. 낫으로 옥수수베기, 삽으로 땅파기, 풀뽑기, 소똥말똥은 몰라도 인분 퍼내기까지 시키니 이건 학교인지 변소간인지 모를 일이였다. 그러니 딸이 지식소통이 될《선생님》을 찾아다니는 일도 나쁠것 없었다. 그러나 매일 감옥으로 찾아드는 딸의 처녀티나는 모습을 볼적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칠가 근심이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신심도 든다. 당당한 감옥장의 딸이 한갖 죄범을 넘볼리 없고 춘삼이 또한 겁에 질려 닭살이 돋을거였다. 게다가 딸과 비하면 고니와 두꺼비 격이니 이성이란 운운할 나위가 없다고 말이다. 그래, 딸아 지식이나 실컷 배우렴아, 알고 살아가는게 살아가기 쉬운 일이겠으니.
그런데 감옥장과 그 부인이 꿈도 못 꿀 일이 특수감방에서, 아니 《교실》에서 생기고있었다.
그날 옥복이는 오후에 선생님을 찾아갔다.
《밖에 나갈가요? 가을풍경이 아름다워요. 》
《가을풍경이야 어떠하든 총창이 내 가슴을 막는데. 》
《아쉽군요. 저녁이면 가을밤이라 달이 무척 밝아요. 달빛에 강물이 물고기비늘처럼 번들거리구요…》
《……》
《그럼 저녁에 어스름이 깃들면 또 찾아올게요. 이 교실의 뙤창으로 우리 달빛을 감상하자요, 호호. 》
《너 지금 무슨 말을…나 들을수록 어리벙벙해지누나. 우리가 꼭 련인인것처럼…우린 제자사이구 아니, 난 그런 한가로운 인간이 못돼.》
춘삼이는 풀 한숨을 내쉬였다.그런 춘삼이가 더 재미있는듯 옥분이는 깔깔거린다. 걀쑥걀쑥한 긴 손가락이 선생님 이마를 다독이기까지 하면서. 
춘삼이가 약간 성을 낸다.《넌 왜 웃는거지? 》
그녀는 웃음소릴  끊고 정색해 상대방을 주시한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작을 왜소한 남자, 게다가 수인이건만 왜 이리 사랑하고싶은지, 왜 세상에서 오직 이 남자만이 내 남자이길 바라는건지…
《우리 사랑하면 안돼요? 손중산과 송경령의 나이차가 그렇게 현격했다고 그랬지요…》
《이…죄꼬만 계집애갉누가 들었으면 날 총살하자고 들…네가 전도를 망칠 허탕지껄일 …》
선생이 채 말을 맺지도 못했는데 옥복이가  어미닭이 병아리 품듯 선생을 안고는 입을 맞추고 혀를 남자의 입안으로 쏙 들이미는게 아닌가.
남자는 괴상한 비명같은 소릴 나즈막히 지르면서 몸을 비탈았다.  그러다가 결국 녀자한테 깔렸고 깔려서는 버둥거리다 그대로 안아버렸고 자기도 모르게 용을 쓰며  사정을 해버린것이였다. 그담엔 죽은듯 사지를 맡겨버렸다. 녀자는 기운도 셌다. 남자를 씩씩 떡 이기듯 뭉개고나서야 헐떡거리며 굴러내렸다. 처녀의 얼굴은 빨갰다. 뒤늦게야 잘못을 저지른 소학생처럼 고개를 숙이더니 급기야 문을 차고 달아나버린다.
《아니야, 이건 사실이 아니야. 이건 귀신의…이 감옥에 원래 귀신이 있다더니만 이건 순 귀신의 작간이라구…》
옥복이가 나간 뒤《선생》은 자기 입술을 몇번이나 감빨며 누가 보지나 않았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겁에 질려 몸둘바를 몰랐다.


11. 아름 다운 밤이여

그날 저녁, 정사가 뜻밖으로 일찌기도 찾아올줄이야. 그게 당황하고 공포감에 잔뜩 질려있던 춘삼이에 대한 안위로 되고있었으나 일면 더욱 두렵기도 했다. 16세 소녀는 흰줄무늬 간 곤색학생복을 입고 앞가슴엔 반짝이는 공청단마크를 달았으며 왼팔엔《홍위병》완장을 꼈다. 아름답고 씩씩하고 탐스러워 견딜수 없었다. 왜 그런 느낌이 이제야 드는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소녀가 교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은 벌벌 떨었다. 제자가 천사로 변한것이다. 천사가 어느때 가슴에 구멍을 펑 뚫을 철알을 몰아오는 마귀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구심때문이였다. 그러나 금시 심장이 뛰고 몸이 달아오르는걸 느끼며 숨이 가빠났다. 확, 눈앞으로 고향이 안겨온다. 목릉강 저쪽 산이 길게 끝나는 거기에 토질이 기름져 선홍색 개양귀비와 회색야생 따거리트, 보라빛 엉겅퀴와 자주색 자운영 같은 야생화가 핀 들판이 보인다. 어머니가 흰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다. 아, 지금 옥복이 가시내가 어렸을적 보던 엄마같이 안겨온다…바들바들 떨었다.
달빛이 물처럼 흘러드는 쇠창살 박힌 뙤창아래로 소녀의 긴팔이 남자를  안는다.
《겁나하지 말아요. 사랑에는 죄가 없으며 하느님이 보호해준다고 선생님께서 력사이야기에 끼워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사랑앞에 귀신도 겁나 달아나지요. 》
《이건 될 일이 아냐. 욕망이구 몽상이구 비극일거야…》
《이러지 말아요. 난 오빨 사랑해요. 나 오빨 지킬거얘요. 우린 서로 떨어질수 없어요. 》
《아아, 난 너의 힘을 이길수 없는것처럼 너의 육체를, 이성의 불길을 막을수 없구나. 다 너의 탓일거야…난…난…》
《저 은실은실 달빛아래 희븐희븐 피는 강물꽃들이…》
그러며 소녀가 소녀답잖게 남자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안으니 남자도 허억 신음을 흘리며 제자의 허리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부르르 떨었다…
막지 못할 유혹이였다. 고문도 총살도 무릎 꿇고말 신적인 유혹이였다. 아아, 난 어쩌면 좋아, 그것도 옥장의 보배둥이 딸과 키스를 하였으니…아니, 안돼, 더는 철부지 제자와 련애라는걸 할수가 없지… 춘삼이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쳤지만 귀신의 작간인지 뼈골의 몸이라도 살은 근육지고 어느 곳엔가는 그냥 소뿔이 나며 불을 때듯 몸이 달아올라 고민과 아픔, 공포의 가죽으로 씌워진 정신이 즐거움과 흥분으로 차오르는것을 누를길 없었다. 그런 흥분이 청년의 무서움을 사정없이 쫓아내고있는거였다. 귀가에 들리는 옥복의 속삭임소리에 귀가 멀었고 배구공이 대인듯 자기의 가슴을 누르던 그 전률이 전부 아래도리로 구렁이 기여내리듯한 느낌이였으며 그녀의 목덜미로 솔솔 풍겨오르던 살냄새에 흥분되여 그만 눈에 별이 반짝일 때 그녀의 무릎이든지 손끝이든지를 다쳐놔서 그만 사정을 해버리고선 죽는 시늉까지 했던…그날은 대야같은 달이 금황빛으로 온갖 공포를 몰아낸 아름다운 밤이였다…


12. 그러던 그날밤

별일이란 별것 아닌 일이 별일이라던 말의 뜻을 알겠다.
《야, 난 이러믄 죽는다, 죽어. 》
그러면서도 자꾸 《죽는》짓에서 허둥지둥 헤여못나오는《선생님》이였다.
달빛에라면 옥수수대에 걸려 던져진 여윈 개꼬리같은 조의 그림자같고 별빛에라면 은빛 바늘구멍에 꿰인 나불거리는 실오리같을 옥복이와 춘삼이였다.
《선생니임》
하고는 살풋이 껴안다간 서로 끌어안은지 한참이다싶으면
《랑군니임》
하고 부르며 손이 막 간다…
《옥복이학생》
하고 제자취급을 하면서 틀을 빼다가도 제자쪽에서 캐드득 웃고 랑군님이라고 부르며 손이 막 기여들어 간지르면
《에이, 요 내 사랑, 언젠가는 날 죽이고말 요 귀신같은…》
그러며 발딱 기운을 주면 지는척 엄마같은 제자는 밑에 푹신한 요람이 되여 왜소한 선생님이 비몽사몽간을 넘나들게 한다.
그러다가 그날밤 불 끈 집안으로 시커먼 사내가 불쑥 뛰여들어오며 전지불을 쫙 비추어댈줄이야.
《야, 이 개같은 새끼가 내 보배둥이 딸을 먹어…》
그사이 뒤에서 핑크빛 젖무덤을 파고들며 눈감고 아늑한 꿈나라속을 아련히 날고있던 춘삼이는 단통 머리에 얼굴에 몸에 몽둥이들이 떨어질줄을 몰랐다.
《어마나, 이러지 말아요. 이럼 안돼… 나탓이얘요, 날 때려요, 이거 놔-내탓인것을…》
옥복이가 물매에 든 선생님을 덮치며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괜히 집안추문이 더 험하게 나갈가봐 매질을 멈춘것이다. 


13. 야밤의 울음소리
 
그 이튿날로 춘삼이가 《교실》을 떠나 감방 깊숙이 처박힌건 말할나위도 없다.
《강간죄야! 총살이야. 아니면 무기도형에 처해야 해…》
옥복이 엄마는 악에 받쳐 옥장인 남편의 등을 쳐대며 날뛰군 했다. 
《중국에서 조선말이 무슨 쓸모야…독초로 내 딸을 망쳐낸…여위고 작은것이 비리다, 비려! 마른 명태같은 종자머리갉》  
제자 옥복이는 선생님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교실을 잃었고 리상의 언덕을 잃었다.
비애와 슬픔속에 바장이던 나날에 두 언니가 출가했다. 큰언니는《전보대》를 기다리다 못해 보이라공 한족총각에게로 시집을 가버리고 둘째언니도《전보대》를 기다리다 못해 800m 깊이 석탄 캐는 로총각에게 결혼을 허한것이였다.
《이 기집애야, 넌 한 이태를 더 견디다가 이웃마을 촌장아들에게로 시집가려마. 그 총각이 아주 키 크구 멀끔하더라. 이제 퇴대하면 너 아비와 말하여 감옥문지기로 쓸지도 모르니깐. 》
《싫어요. 난 타민족한테는 시집 안 가요. 춘삼오빠한테 갈래요… 》
옥복이는 쩍하면 울었다. 그러나 울고난후의 울적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랠수가 있었다.
아버지도 모르게 감옥으로 시간 맞춰 달려가면 성벽의 철문지기도, 감방지기도 음특한 눈길로 맞아준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와 처녀의 냄새를 맞는다. 또 실컷 눈요기를 하고는 다투어 변소로 오줌 누러들 간다고 야단들이다. 
옥복이는 죄인들이 성벽안으로 집합할 때를 기다린다. 해살이 이끼 낀 성벽을 비추고 서슬푸른 총창빛을 반사할 때 춘삼이의 여윈 체구도 그속에 애처롭게 끼인다.
그런데 정든 모습을 옥복은 유리창너머로만 바라볼수 있을뿐이였다. 지어 구령소리와 군화소리, 총창소리속에 먼지가 뽀얗게 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눈물이 고여올랐다. 엄마, 아빠가 이 장벽을 세운거라 생각하니 미운 나머지 저주까지 해버렸다.
어쩔가, 난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이를 만나고싶은데… 그런데 짝사랑으로 바장이는 마음 달랠길 없어할무렵 사랑이 절망에로 닿을줄이야.
《4인방》이 꺼꾸러지고 10년동란이 결속되였다. 그 동풍을 빌어 감옥의 많은 《죄인》들이 석방되였는데 그가운데는 춘삼이도 끼였다는게 아닌가.
아, 춘삼오빠가 저 감옥의 성벽안에 없다. 그이는 떠나갔다. 어디로 갔을갉  아버지가 알려주는 주소대로 팔면통현 하서향 보흥촌으로 찾아갔댔으나 약 한달전 그의 집은 소리없이 이사를 갔다는게 아닌가.
열흘이나 나돌며 찾았으나 망망한 대해속에서 바늘찾기처럼 묘연하기만 했다.
《키 크고 영준하고 잘사는 총각들이 쌔고버렸는데 그깟 꾀죄죄한 <잡귀신>을 찾아 몸을 내번지다니…너의 인물체격으로 군대, 법원에서 사업하는 총각들을 얼마든지 찾을수 있을터인데…》
어머니가 그렇게 얼리고 닥칠 때는 아버지는 굳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옥복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하고있었다. 옥복이도 그런 아버지앞에서 더는 기죽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남재녀모>라는데 그이는 키는 작지만 지식이 연박한 사람이지요. 나 그이가 꼭 맘에 들어요. 그리구  우리 집 여섯자매가 모두 한족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야 한다는게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인가요…》
그럴 땐 아버지도 동감인듯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또 길게 한숨을 긋기도 하고.
그간 어머니를 그렇게 설복하고 가끔 어머니와 다투기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보다는 한해가 넘도록 춘삼이를 찾을수 없는것이 더욱 아타까운 일이였다. 
이듬해 가을 초생달이 금황빛으로 아름답던 어느 날 밤, 이악스런 처녀는 끝내 강가에서 통곡을 하고말았다. 마음은 그리움, 슬픔, 갈망으로 뒤바뀌고있었다…야밤이면 목릉강가에서 귀신의 부름처럼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우성치고 울부짖는  세찬 물결소리를 뚫고 쪼박쪼박 들려왔다.


14. 참귀신

만나고싶은 사람을 못 만나는, 가슴에 말뚝 박혀 뽑을길 없음이 죽는 날까지 이어지리라는, 뼈를 갈고 힘줄이 뽑히는 그런 아픔보다도 더한 고역을 장장 긴 가을밤 동안을 울음으로 부득부득 쪼개고나니 강물에 떵떵 얼음이 얼던 어느 날, 문득 그간 난 왜 야밤속을 몰랐지, 그런 깨달음에 놀랐다.
귀신이 나돈다던 강가였다. 감방 저끝에서 《사꾸라》를 부른다는 일본녀자귀신과 성벽우와 감방천정에서 《할라쇼》를 웨친다는 쏘련 털부숭이 사내귀신 못지 않게 할복을 하고 죽은 남편 시신들을 붙잡고 울다가 시커먼 강에 뛰여들어 익사를 했다는 일본녀인들, 토지개혁때 성분매김을 잘못 받고 억울하게 강변 버드나무에 목매여 죽었다는 쌍가매 그리고 《우파》, 《잡귀신》들의 안해들의 구슬픈 사연들이 귀신이 되여 강가에 떠돈다던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목덜미에 찬기운이 섬뜩하게 일던 강가가 아니던가.
실패와 수치, 실망, 억울함, 분노, 저주, 사랑, 적의로 귀신의 비린내가 풍기여 몸이 오싹 떨리고 공포스럽던 력사의 짝사랑의 비애로 유감천만의 울분을 휘몰아낸거였다.
《난 귀신이였어. 그런데 참귀신이고파. 》
그녀는 가끔씩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귀신》과《참된 귀신》의 구별점을 그녀는 그렇게 안다. 귀신은 복수, 한, 수치, 억울함을 못이겨 하는 비극과 재난과 공포를 가져다주는 유형을 짓찢는것이고 무형을 뜻하고 참된 귀신은 오로지 고귀하고 고상한 행위를 좋는 실행신임을 믿는터이다. 그런데 또 막을법 없는것은 그저 안타까운 일일뿐이였다.
이제는 춘삼오빠를 잃은지도 거의 두해가 되여와 절망하고있을무렵이였다.
얼굴이 통통한데다 앞가슴이 두개의 호박을 품은듯하고 허리가 날씬해 걸을 땐 엉뎅이 아래까지 땋아드리운 쌍태머리때문에 감옥촌에서《양귀비》로 이름이 나 북쪽으로 오백리밖에서는 목단강시, 남쪽 백오십리밖에서는 계서시의 총각로동자들의 중매군들이 문턱에 불이 날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 많은 청혼자들 가운데 조선족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옥복은 자기에게 한민족에 대한 정과 사랑을 몸에 습배여 깊숙이 숨쉬게 하고 사라진 이에 대한 유감을 한으로 깨달으며 기죽어있었다.
그날은 소한때라 눈보라가 기승부리고있었다. 옥복은 계서시공안국에서 사업하고있다는 왕강이란 총각을 만났다. 첫눈에 정이 들었다. 큰 키에 바위라도 떠멜 넓은 가슴, 그보다는 진솔함과 정열에 넘치는 책임감이 좋았다.
왕강은 옥복의 목에 붉은색 양털목도리를 둘러주었다. 그들은 강을 따라 우불구불 그냥 걸었다. 떵떵 언 강에서는 이따금 얼음이 짜개지는 소리가 쩌적쩍 들려오고 눈보라가 귀신의 호곡소리처럼 아우성을 쳤으나 왕강은 처녀를 업기도 하고 안기도 하면서 사랑으로 몸을 달구기에 여념없었다.
강추위속에 옥복이와 왕강은 한몸이 되여 뒹굴었다. 처녀는 눈 감고 왕강을 춘삼으로 착각하고있었다. 뜨뜻한 집안도 아니고 첫 만남에 하필이면 꽝꽝 언 강으로 왜 나왔는지 옥복이만 알따름이였다.
왕강의 넓은 품에 안겨 눈감고 키스벼락을 받고있던 옥복이가 갑자기 전률하고 기겁한 소릴 지르며 왕강을 밀쳤다. 분명히 그였다. 이십여메터를 사이두고 서서 똑바로 시선을 걸고있는 사람은 꼭 춘삼오빠였다.
《선생님, 아니 춘삼오빠-》
그렇게 새된 소릴 지르고 달려간 처녀는 등뒤에 왕강이 있다는것도 잊고 왜소한 춘삼이를 동생처럼 껴안고 입을 맞추고 하며 좋아 어쩔줄을 몰랐다.
그런데 옥복의 키스를 받던 춘삼이가 홱 처녀를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강의 버드나무숲속으로 사라져버릴줄이야…


15. 4년후

4년후의 어느 날, 섬촌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새 감옥장이 왔다누만. 장가두 안간 총각감옥장…》, 《에그에그, 영낙없이 귀신한테 정신이 나돌려구 온걸…》, 《글쎄말유, 그간 감옥장 둘이나 귀신한테 혼비백산을 하구 피까지 토한 일두 있다던데… 처녀귀신은 전문 총각을 찾아서…》…
북경중앙민족학원 법학계를 나온 젊은 감옥장, 그는 자진하여 이 감옥을 찾아온것이다. 바로 춘삼이였다.
춘삼이는 그때 석방된후 어머니를 모시고 와 자리를 잡았다.
그는 자나깨나 옥복이를 잊을수 없었다. 이틀이 멀다하게 강을 따라 감옥부근을 찾아가군 했다.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 강물의 흐름소리는 자기가 옥복이에게 들려주고 배워주는 조선글과 이야기소리로 들려오고 한겨울 눈덮인 굽이굽이 강길을 피부색 고운 탐스런 옥복이로 착각을 했으며 무시로 귀청을 쳐오는 쩡쩡 얼음이 갈라터지는 소리와 언 버들등걸을 치는 도끼질소리를 처녀와 나누는 사랑의 신음소리처럼 감전해왔다.
잃지 말아야지. 그녀는 내것이야. 하루 또 하루를 끈질기게 기다리느라면 어느 날엔가는 처녀가 감옥성밖을 나와 만날수도 있을거야. 그녀는 쇠, 나는 지남, 일단 마주치면 우린 다시 못떨어질거야…믿고 또 확신하던 애타던 나날들이였다.
그렇게 만남을 갈구하던 어느 날, 드디여 만난 옥복이, 그녀가 춘삼이 자기보다 훨씬 미남인 한족청년과 키스로 언강을 녹이고있을줄이야… 그녀가 뒤늦게야 춘삼이를 알아보고 달려와 포옹했지만 그때 춘삼이는 이미 배신을 받은 오뇌과 오기로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흐름을 막지 못했다.
그는 사랑과 배신행위에 대한 반발심때 문에 옹근 한해를 이악스레 공부했고 이듬해에 중앙민족학원 법학계에 입학했다.
그러나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옹근 네해를 대학원에서 보냈지만 옥복이를 아예 잊을수 없었다… 아, 내가 왜 이러지, 이러지 말아야 할텐데. 그깟 총각의 품에 안기는 믿지 못할 년을… 그러나 그렇게 이를 앙다물수록, 자신을 저주할수록 옥복이는 더욱 짙은 모습으로 다가서고있었고 살내음으로 자극하고있을줄이야.
졸업을 하고 북경의 법학부 강사직도 뿌리친채 자원으로 기차 타고 흑룡강성 계서시법원의 동의를 얻어 리수구의 감옥을 찾았을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느낌은 마냥 쾌감으로 차오고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그리고 믿고있었다. 귀신, 옥복이가 귀신이였구나. 그녀에게 그같은 흡인력이 있다니 그게 뭘가?…귀신, 그건 귀신일밖에.


16. 귀신은 없었다

총각옥장은 출근하던 첫날 벌써 여러 사람들로부터《귀신고소》를 들었다.
귀신이 있다는것, 귀신력사가 해방전부터 이어오기에 일본계집귀신, 일본사무라이할복귀신, 쏘련녀자귀신, 문화혁명때의 《잡귀신》의 귀신…지금 귀신은 전혀 다른 귀신이란다. 닭이 세홰 치기전 반시간좌우를 높은 성벽우에서 소리소리 곡을 하고 주문같은것을 외워대는듯도 하고 그러다가 닭울음소리가 들리면 웃음과 울음같은 소릴 날리며 사라진다는거였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말들이였다. 그러니 누구도 이곳 감옥장으로 부임받으려 하지 않는다는게 사실이라고 믿을수 있었고 부임받은지 석달안으로 혼비백산을 하고 앓아누웠거나 지어 심장병이 발작하여 죽은 옥장도 있다던 말이 믿어지였다.
《귀신》때문에 저으기 공포감에 질리고 기 질려 하는 옥졸들의 꼴 때문에 신경이 다 날카로와졌다. 그러다가 불쑥 오래동안을 옥복이를 잊고있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비로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다.
십년전의 그 조선족감옥장 리명철을 찾았다. 리명철은 서류에서 준수하고 군인다운 모습으로 올려다본다. 비서는 그가  8년전에 감옥장직을 해임당했는데 그렇게 정력이 넘치던 분이 차츰 그답지 않게 너무나 과묵해지고 사업에도 태만했다고 했다. 아마 집안일이 풀리지 않고 딸년들 엇갈아 리혼을 밥먹듯해서 딸들때문이였을거라고 짚기도 했다.
그 딸들- 자기 민족의 문자와 말을 자랑처럼 잊어먹고 멀리하던, 아버지 권리를 턱대고 안하무인이던, 키 큰 한족총각만 골라가며 련애하던 그 딸들…
그런 딸들의 아버지는 퇴직후 몇년을 더 못살고 돌연 뇌혈전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단다.
유감스러운 점은 감옥내에선 옥복의 내막에 대해 별로 알고있는 사람이 없었다.
옥장 춘삼은 높은 성벽으로 거미줄같이 둘러쳐진 철조망에 오래도록 시선을 걸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 곧장 감옥밖을 나섰다.
초가을이라 아직 모기와 잠태기들이 날쳤고 끼르륵끼르륵 하는 늘매기뱀들이 한낮에도 울어대는 소리가 강쪽에서 들려서 기분이 잡친다. 한낮이라 하늘은 높고 강물은 맑았으나 물결이 세찼다. 배줄이 챙챙 하고 고속성을 튀기며 애처롭다.
강을 따라 에워싸인 감옥섬마을로 갔다.
늙은 할멈을 붙잡고 물었다. 이 마을에 옥복이라고, 그 아비가 원 조선족감옥장이였는데 그 셋째딸을 아느냐고. 로파는 안다고 대답했다. 드문드문 마을소학교로 가 알아들을수 없는 말, 뭐 조선말로 소리소리 질러서 애들 학습시간에 큰 지장을 주곤 하던 그 새애기, 정신착란이 온 처녀란다…
옥장은 마을소학교로 찾아갔다.
《… 불시로 뛰여들어와서는 조선말로 뭔가 마구 뇌까리고 소동을 피웠습니다. 정신착란이 올적마다…이젠 몇해가 잘됩니다…참 아름답게 생긴 처녀인데…아직 살아있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또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아, 누군가 밤에 몇번인가 그 처녈 보았다고 그러던데… 밤에만 나다니는지…》
마을사람들은 누구도 그녀네 집이 어데 있는지를 모른다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귀신이야. 귀신은 볼수도 만질수도 없는 무형이거든…》
그렇게 웨치고는 춘삼은 피뜩 뇌리를 치는게 있어 사유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17. 불가항력의 힘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갉며칠을 두고 고민을 해도 결국 몸서리치게 공포에 질리기만 했다. 그러나 지꿎게 갈마들어 못살게 구는 그 고민을 물리칠수가 없었다.
대체 뭐란 말인가? 귀신의 작간도 아니였다. 그것은 그리움보다도 더 짙은 옥복에 대한 사랑이였다. 망망한 바다가운데 뜬 망뜰배같은 존재임에도 기어이 6자매중 혼자 자기 민족언어를 저버리지 않고 이어가고저 하는 그 고상함이 순결하고 아름다움으로 자석같이 유혹했던것이다.
조선말, 여기선 유독 그녀만이 춘삼이 자기와 조선말을 나눌수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왜 만날수 없는것일갉정신이 이상해진 녀자란 귀신의 조화를 부리니 그것은 결코 무지나 극악의 표현일 대신 순결을 희비극적 행위의 춤사위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던 정신심리학박사 프로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감옥근처를 떠돈다는 귀신이 옥복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만나고싶었다. 귀신일지라도 붙잡고싶어졌다.
될수록 낮에 잠을 푹 자두었다가 밤엔 바깥동정에 귀를 강구었다. 이틀, 나흘, 한주일이 지나도록 귀신은커녕 새의 울음소리도 없이 조용하였다. 밖은 먹물을 풀어놓은듯 캄캄하기만 했다. 감옥성벽가를 울리며 나그네의 울음소리같은 비음이 가끔씩 쪼개져 울릴뿐이였다. 그건 어느 죄수의 한탄섞인 울음이 아니고 악몽일거였다.
《귀신, 일본할복귀신, 로씨야녀인귀신, <문화혁명잡귀신>의 귀신…들이 날 겁나 못 나오는것일갉》
그러며 귀신 만나는 행동을 잊어갈즈음이였다.
초저녁부터 일찍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졌던 젊은 옥장이 괴상한 꿈을 꾸다가 놀라 깬것이다. 전신에 땀이 흥건했다. 꿈에 옥복이가 초록빛 드레스를 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하늘에서 날아내리던것이 눈깜짝할새에 온몸이 피투성이로 되여 춘삼이한테 쓰러지는게 아닌갉오래만에 꿈속으로 찾아온 옥복이였다.
땀을 들일 생각도 없이 반사적으로 옷을 주어입었고 권총을 찼다. 그리고 왜 그런지 쫓기우듯 밖을 나섰다.
높이 둘러쌓인 감옥성벽을 빠져나왔다. 귀가로 강물소리가 들렸고 보느니 창공에 휘영청 금황빛 달이 걸렸다.
내가 대체 왜 나왔단 말인가. 어데로 간단 말인가. 달빛에 손목시계를 보니 자정도 기운 뒤였다. 그래, 돌아가 자야지. 래일은 죄수공판대회를 열어야겠는데…그때였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까알깔깔…아하하…호호…》
그건 녀자의 쏘프라노 웃음소리였다. 그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높았다 하며 팝송처럼 들리고있었다. 왜 그런지 등골이 서늘해나거나 머리카락이 곤두서는게 아니라 흥분에 들떴다. 내가 왜 흥분을 하는걸가. 아아, 이건 오르가즘에 이르는게 아닌가.
아하, 저건 귀신이군! 오, 기다렸던 나의 귀신…그러면서도 오른손은 의례 권총에 가닿았다.
높은 감옥성벽우에서 너울너울 춤추는, 감방 어느 구석에서 귀신이 울고웃고하는 소리들은 근거없는 말이였다. 성벽 철조망우로부터 소리가 들려오는듯도 하고 감옥 어느 구석쪽으로부터 들려오는듯도 했지만 잘 가려서 들으면 소리는 그래도 강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감옥성벽우나 감옥속은 절벽처럼 캄캄했으나 강물은 달덩이에 비껴 은띠를 두른듯 빛나고있었다.
갑자기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오는 바람에 기절초풍하게 놀랐다. 아니 대뜸 리지를 회복하면서 령혼과 몸통속의 피까지 끓는것을 느끼며 흐득 떨었다.
《깔깔…하하하…날 따라와…따라와도 싫다. 난 언녕 그이가 있거든…하하하…꼴꼴꼬올…한민족이거든…》
   몹시나 귀에 익은 목소리같았다. 그래, 이런 광란을 대낮도 아니고 새벽을 앞두고 피우고다니는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일밖엡《잡귀신》이 되여 억울하게 고생을 한 자신이 진짜귀신과 조우를 한다는것도 어쩜 인연이랄지 아니, 어쩜 순결하고 아름다운 《참된 귀신》도 있다던데…
권총을 빼들고 바싹 따랐으나 처녀귀신은 눈깜짝할사이 눈앞에서 사라지고말았다. 머리를 풀어헤친 흰귀신으로 안겨왔는데 귀신은 실로 똑똑히 눈주어 바라볼수가 없게 어른거리다간 사라지면서 천방지축 내닫던 아니, 달빛으로 날아간거였다.
춘삼은 자기도 귀신으로 탈바꿈되는지 정신이 나도는지를 의식할수 없게 헛소리같은 소리가 나가고있음을 어쩌지 못했다.
《…송강이 배머리에 높이 서서 사나운 물결소리를 가르고 방랍을 향해 호령했지. <방랍- 이 대역무도한 도적놈아, 충의란 뭔지도 모르는 역적, 무치한 놈아, 량산박 호한들의 칼을 더럽히기전에 순순히 나와 투항을 못할가>…그러자 방랍이 높은 성벽우에서 아래를 가리켜 대성질호를 했어. <대역무도한 도적무리라니, 충의라니…얼토당토않은 소릴 집어치워라! 무고한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금의에 진수성찬을 누리는 도적이란 고구와 같은 나라를 해치는 좀벌레들이 아니겠냐…송강, 넌 지금 그런 도적들한테 리용되고있는걸 왜 모르느냐! 응당 한편이 되여 진리의 강산을 일궈야 할 우리가 서로 상잔의 피바다를 이루다니 애석하도다!>…화약포와 화살이 일진하고 칼과 칼이 번뜩이면서 량산박 호한들과 방랍 호한들이 싸우니 야속타, 천고에 비극이 아니랴…》
수호전의 그 얘기가 귀신을 불러올줄이야.
흰 소복차림의 미인이 가을밤속에 달빛 머금고서 청년앞에 와 서있었다…
      

에필로그

달밝은 밤이면 젊은 옥장은《귀신》을 만나러 나가군 했다. 아니, 은실은실 달빛아래 희븐희븐 달맞이꽃들이 향기 풍기던 그날밤, 옥장이 건네준 쪽지가 가끔씩 정신이 나돌고 짙게 시들어있던 처녀 얼굴에 화기가 돌게 하고 정신분발에로 정진시킬줄이야.
《사랑하는 옥복이, 나 왔소…옥복이가 몹쓸 병마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아마 이런걸 두고 인연이라는거겠지…난 옥복일 책임져야 할 이 세상 단 한사람인것 같아…》
그건 처방이였다. 정신착란을 고쳐내는 처방이였다.
《귀신이 우리 둘을 만나게 한것 같애》…
만나는 차수가 늘어감에 따라 옥복의 정신병도 많이 나아지던 어느 날, 그날은 늦가을 기러기들이 낄뢸릭낄뢱릭 하고 대야같은 달에 그림자처럼 비껴 날으고 강변 갈꽃들이 부드럽게 볼을 간지럽히는 아름다운 밤이였다.
새삼스럽게, 한참씩은 멍청하니 서있군 하던 처녀가 탐스런 몸매를 춤추듯 놀려서 춘삼옥장의 충동을 가뜩이나 불러일으켜놓고는 속삭이듯 말해올줄이야.
《오빠가 그립던 충동때문에 오기를 느껴서 한족총각의 키스를 오빠로 착각을 하고 받아들였던 그 시각에 꿈이런듯 춘삼오빠가 나타날줄이야…네해전의 그 추운 겨울의 강얼음우에서 난 아마 정신착란이 왔을거얘요…다음 잃었을 사랑에 대한 갈구, 두 언니의 사랑의 비극, 녀동생들의 학교중퇴, 자식들의 전도에 대한 부모의 실망으로 인기된 죽음과 타락들이 날 이지경으로 만든거겠지요… 아, 지금 내앞의 오빠, 우리의 사랑은 꿈 아닌 현실이겠지요…》
《암, 이 섬마을에 우리 둘이 딱 조선족인것처럼. 》
《아직도 내가 귀신처럼 보여요? 》
《어…어허허, 그럼, 귀신이지. 나의 조선말 <수호전>을 알아들으니까 그래 귀신 아녀? 》
《그렇고보니 우리 민족 <언어문자>야말로 귀신이얘요… 그 아무리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라도 싹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귀신이지요.》
… …
흑룡강성 계서시 리수구감옥마을에 가면 아릿다운 조선족처녀선생님이 한족아이들에게 조선 말과 글을 배워주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오늘도 나이 50을 바라보면서 한국방문취업을 가려는 한족들 수십명을 모아놓고《한국어교원》으로 사업열을 올리고있는 아름다운 천사다.
《귀신》은 전 세계 어느 곳에나 다 있다. 조선말이 귀신이 아니랴, 귀신꽃이 피였다… 귀신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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