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쌀쌀한 가을날씨다. 어제밤에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려서 그런지 바람이 맵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날이 희붐히 밝아오기전에 벌써들 나와서 운동을 한다고 야단들이다. 아빠트단지안에 호수를 파고 낚시터를 만들고 그 주위로 제법 공원을 만들어놓았다.
용수는 오늘도 날이 채 밝기전에 벌써 낚시터에 우두커니 나와 앉아있다.
강태공처럼 곧은 낚시로 세상을 낚으려고 하는것은 아니지만 떡밥을 끼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다.
남들은 건강을 위해서 나와 운동을 하지만 용수는 그것이 아니였다.
벌써 얼마동안인지 그는 매일 아침이면 이렇게 부랴부랴 낚시터로 나와 앉아있었다.
그의 뒤에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세륜에 못이겨 허리를 구부정하고 서있다.
그 아래에서는 파파머리가 된 한 늙은이가 물구나무서기운동을 열심히 하고있었다.
두손으로 땅을 짚고 허리를 나무에 기대며 두다리를 공중으로 내뻗고 거꾸로 서있는다.
용수는 뒤를 돌아본다. 적삼이 말아올라간 곳으로 흰배가 흉측하게 드러나있다.
지지벌개진 그의 얼굴에서는 송골땀이 뚝뚝 떨어지고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하냥 다리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목에서는 힘줄이 툭툭 튀고있었다.
순간 용수의 눈길과 그의 눈길이 부딪쳤다.
거꾸로 선 사람과의 눈길이 일직선에 있을수가 없었다.
힐끔! 그가 웃는것 같았다.
용수도 씨물 웃어보였다.
거꾸로 선 그의 몰골이 너무 우습강스러웠던것이다.
아니 그의 눈에는 되려 용수가 거꾸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도레미화…󰡓하고 발성련습을 하는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어딘가 평화로운 아침이다. 낚시대를 손에 들고 한참이나 앉아있던 용수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다. 꽤나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뒤의 늙은이는 여전히 물구나무서기를 하고있다.
용수는 낚시를 거두었다가 다시 던지며 무엇이 그리 근심이 되는지 자기도 모르게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토한다.
용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기가 한 일이 어디가 잘못되였는지 알수가 없었다.
교통규칙위반!
그것도 아닌것 같다.
교통규칙위반이라면 기껏해야 벌금을 안기고 면허증을 몰수하면 그만이겠지만…
이건 아니다. 아니, 이건 아니란다.
뭐 큰 과오를 범했다고 한다.
명명히 그는 붉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건너간 죄밖에 없는데…이건 형사사건이라고 한다. 이건 엄중한 정치문제라고 한다.
며칠전만 해도 거기는 붉은 신호등이 설치되여있지 않았다. 조그마한 비포장도로였기에 차량들이 마음대로 다닐수가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국제도시로 만든다고 하면서 언제부터인지 여기에다가도 신호등을 설치해놓고 차량들을 통제하고있었다.
그는 그런줄도 모르고 휘파람을 휙휙 불며 신이 나서 차를 몰고 십자거리를 건느는데 맞은켠 골목에 숨어있던 사복경찰이 불쑥 나타나서 그의 앞을 막아나섰던것이다.
그는 드디여 경찰차에 올라야 했고 그리고 어딘가 삼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어느 어둑컴컴한 방에 갇혀야 했고 다음은 끝없는 심문을 받아야 했다.
󰡒왜 그 길을 택했느냐?󰡓
󰡒집으로 가다보니…󰡓
󰡒신호등을 못보았냐?󰡓
󰡒실은…󰡓
실은 용수는 신호등을 보지 못했다. 매일 퇴근해서 집으로 갈 때면 그는 항상 이 길을 택했는데 며칠전 출장가기전까지만 해도 거기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것이다. 그리 큰 신호등을 눈이 멀지 않은 이상 못볼리가 없다는것이다.
󰡒차는 네것이냐?󰡓
󰡒아닙니다.󰡓
󰡒누구것이냐?󰡓
󰡒저 단위의 과장것입니다.󰡓
󰡒과장것이라…이 차는 어디서 났다더냐?󰡓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는 확답을 줄수가 없었다. 대방은 표독스럽게 그를 쏘아본다.
한사람이 심문하고 나간 뒤에 또 다른 한사람이 앞에 와 앉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묻는 말은 똑같았다.
󰡒왜 그 길을 택했느냐?󰡓
󰡒신호등을 못보았냐?󰡓
󰡒차는 누구것이냐?󰡓
󰡒어디에서 샀다더냐?󰡓
깍듯이 대하는 나이 많은 경찰들보다는 젊은이들이 더 건방지였다.
󰡒자식! 매를 한번 맛봐야 승인할가보군…󰡓
󰡒자식, 지식분자라는게…󰡓
이런 말들이 오간 뒤에는 용수는 발세례를 받아야 했고 멱살을 거머쥐는것도 가만있어야 했다.
기어코 승인하라는것이였다. 기어코 무엇을 자백하라고 했다. 지금 다 알고있으니 자백할 기회를 준다는것이였다. 그러니 죄를 작게 만들려면 아는대로 다 탄백하라는것이였다.
용수는 아는만큼은 다 말했다고 했다. 벌금을 얼마든지 낼테니 놓아달라고 애걸했다. 그런데 자기네들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란다. 당신의 그 그릇된 머리를 씻어주는데 목적이 있다는것이다. 이걸 보고 《세뇌》라고 한다는것이다.
󰡒세뇌!󰡓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법없이도 살수 있다는 그가 세뇌를 당해야 하니, 일편단심 사업에 종사한 사람이 세뇌를 해야 한다니…
이렇게 그는 열몇시간을 륜번으로 여러 사람들의 심문을 받아야 했다. 그것도 똑같은 질문으로…
아마 이런 상황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버티다가 마감에는 정신이 헛갈리며 아무 죄나 승인하고마는가부다.
그런데 용수만은 달랐다. 밤낮을 거꾸로 사는 그에게는 밤이 되려 더 정신이 말개지는 시간이였다. 드디여 그들이 하나 둘 졸기 시작했고 마침내 용수는 풀려나오게 되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가 않았다.
구에서 조사받던데로부터 시로, 마감에는 성에까지 올라왔고 뭐 성장까지 지시를 내렸다는것이다.
기어코 죄를 만들어서 《세뇌》를 할판이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당당하던 그가 자기도 모르게 《죄인》이 되여 자기스스로가 자기를 용서할수가 없었고 불려다니는 자기 꼴이 한심해서 자신이 미워나기도 했다.
직장에 나가니 동료들의 눈치가 신경을 건드린다. 보는 눈길이 딱 마치 온역을 피하는듯한 느낌이다. 실은 그렇게 관심을 해주고 동정을 해주고 자기편에 서주겠다는 직원들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은 적막한 무덤과도 같다. 이런 《수캠를 차마 집사람들과 해명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오직 낚시터가 그의 제일 좋은 안식처였다.
떡밥없는 곧은 낚시를 물우에 던져놓고 앉아있노라면 낚시를 하는지 아니면 앉아서 쉼을 하는지 주문하기 어려운만큼 사람들의 주의력을 피할수가 있었다.
그는 얼마를 앉아있었는지 모른다.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늙은이도 언젠가 집으로 들어가고 없고 자기 혼자만 호젓한 호수가에 앉아있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있다. 벌써 하루의 시간을 이렇게 멍하니 앉아있다. 이제는 모기떼들이 윙윙 머리우를 감돈다. 목덜미며 귀뿌리며가 따금따금해나도 그는 모르는지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다.
용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웠다.
그의 아버지는 《우파》란 모자를 쓰고 돌아가셨다.
물론 지금은 《우파》란 모자를 벗겨주고 명예를 회복해주긴 했지만 아버지는 그날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끊었던것이다.
반《우파》투쟁이 시작되였다.
단위마다 비례에 따라 《우파》를 잡아내야 했는데 처음에는 누구도 걸려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파》도 단위마다 그 명액이 있는만큼 조치를 대야 했다. 운동을 주도하러 내려갔던 공작대원은 처음에는 회의를 열고 당에서 잘못을 들으려고 하니 의견을 제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다들 멀뚱멀뚱 서로서로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그래서 공작대원은 발칵 성을 냈다. 여기 공산당원은 정말 문제라는것이다. 이렇게 당을 사랑하지 않고 당성이 없어서야 어떻게 되겠느냐고 사람들을 추겼다. 당에서 이렇게 진실하게 의견청취를 하는데 당원으로서 입다물고 있는것이 그래 말이 되는가고말이다. 먼저 적극분자들부터 말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말한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절대로 죄로 다스리지 않고 되려 입을 꾹 다물고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문제가 있다고 을러멨다.
그래서 용수 아버지는 당지부서기가 무슨 일에서나 민주가 없고 너무 독단적이라고 의견을 제기했고 따라서 다른 최아저씨도 이렇게 나아가다가는 단위의 풍기가 좋지 못하고 사람들의 열정이 식고 당의 사업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수 있으니 이번 운동에 당지부서기를  갈아버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수 아버지도 초기에는 말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항상 적극적인 그였기에 청렴하지 못한 지부서기한테 의견을 제기했을뿐이였다.
상급에서 내려온 공작대는 아버지가 모범역할을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발동이 걸려 다들 열이 올라 지부서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웬걸! 마감에는 그의 아버지가 공산당을 모욕했다는 《죄》로 《우파분자》모자를 덜컥 쓰게 되였다. 말한자는 죄가 없다는 말은 하나의 올가미에 지나지 않았다. 리유인즉 여기의 당대표는 바로 지부서기인데 지부서기를 부정하면 공산당을 부정하는셈이란다.
어처구니없게 《우파》모자를 뒤집어쓴 용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서 천장만 올려다보며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몇번이나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의 아버지는 대들보에 목을 매고말았다.
아버지는 자기의 잘못을 승인할수가 없었고 잘못없이 당해야만 하는 자기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던것이였다.
낮에 나가 조사를 받고 돌아와서는 밤새껏 한숨만 풀풀 내쉬며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던 그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 영수는 읽을수가 있을것 같았다.
지금 그는 근 40일동안 밤잠을 설치고있었다. 머리가 터질것만 같고 눈이 천근무게가 되여 내려오면서도 도저히 잠들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말못할 악몽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뭐가 뭔지 판단이 가지가 않았다. 정말 자기가 진 죄가 그렇게 큰지 암만 생각해도 리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 이 정도로 조사를 받고 이렇게 큰 간부들을 놀래워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민족을 위해서 큰일을 한다는 령도들이 이런 사소한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니 참 한심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아예 다 승인하고 일을 빨리 마무리짓고싶었다. 그래서 검사문을 쓰고 또 썼다. 구에서 달라면 구에다 보내고 시에서 요구하면 시에다 보내고 물론 성도 빠뜨릴수가 없었다.
조사를 받을대로 받고 검사문을 쓸대로 다 썼지만 그래도 일은 끝나지가 않았다.
사촌의 팔촌까지 서캐처럼 훑으면서 기어코 다른 그 어떤 단서를 찾아내겠다는 자세였다.
날마다 낮이면 여기저기로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다보니 밤이면 항상 악몽에서 깨여난다. 그리고는 아무리 뒤척여도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몇번이고 수면제를 콱 먹고 그대로 잠들어버릴가고 생각해본다. 실컷 잠을 자보는것이 원이였다. 아무 일도 없다. 진 죄가 없는데…하면서도 그는 왜 그런지 마음이 뒤숭숭해나고 불안하기만 하다.
아니, 시달려야 할 현실이 싫었고 그 자식같은 젊은애들한테 불려다녀야 하는것이 한심했다.
매일 밤 먹는 수면제가 한알 두알 늘어난다. 정말 언젠가는 병채로 먹고 아무 근심없이 자고싶다.
몇번이나 약병을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날밝기를 기다리는것만큼 애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암만 뒤척거려도 잠은 안오고 머리는 터질듯이 아프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들 달게 잠든 이 밤중에 일어나서 서성거릴수도 없는것이고… 그저 누워서 자는척해야 하는 그것이 정말 고역이였다.
집식구들 앞에서 그는 태연한척해야 했다. 매일 심장병으로 시름시름 앓는 안해한테 부담을 주기 싫었고 아무 일에나 밸만 나면 욱하는 불같은 성격을 가진 아들한테 키질할수는도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타서 재가 되는 그 마음을 하루도 아니고 근 40일을 숨기려니 그 고생이 말이 아니였다.
깨여나서도 자는척해야 했고 목구멍으로 안넘어가는 밥도 억지로 먹는 흉내를 내야 했다. 안해가 줄어드는 식욕에 이상한 눈길을 던져오기는 하지만 그는 속이 안좋아서 그런다는 핑계로 얼버무려버렸다.
밥을 먹고 태연하게 한손에 가방을 들고 그는 집문을 나선다. 후-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단위로 걸어간다. 생각같아서는 출근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싶지만 그래도 자기를 리해해주는 회장이 고마웠다.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는 다시 문앞에서 기다리고있던 경찰들한테 붙들려 죄수차에 앉아 구류소로 향해야 했다.
그들은 교통규칙위반외의 그 무엇을 솔직하게 탄백하라는것이였다. 누가 시켰고 당시 누구하고 전화를 했고…10년전의 그 일은 또 어떻게 되였고…무슨 목적인가고 꼬치꼬치 캐여물었다. 기어코 무슨 단서를 찾아내서 《죄인》으로 다스리겠다는 태세였다.
그는 10년전의 일을 기억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지어 당시 무슨 옷을 입었던것마저 다 알고있었다.
󰡒차는 누구것이지?󰡓
이제는 계속 이런 같은 질문을 들이댄다.
󰡒저의 과장것을 빌렸습니다.󰡓
󰡒과장은 이 차를 어디에서 구했다던가?󰡓
󰡒그건…잘 모르겠는데요…󰡓
그는 말을 얼버무리였다.
그를 잡으려고 한것이 아니라 바로 과장을 잡아내자니 이렇게 그가 말려든것이 아닐가.
후에 알고보니 이 차는 김과장이 암시장에서 산것인데 바로 도난한 차를 모르고 산것이였다.
그러니 이 숨어있는 차도난사건의 내막을 캐여서 절도집단을 잡아내려는것이니 그럴만도 했다. 자기도 모르게 말려든것이 재수없는 일이였다.
그런데 때마침 과장이 출국중인만큼 경찰들은 기어코 용수를 통해서 단서를 찾고 절도집단을 한 그물에 잡아내려고 했다.
그걸 모르는 그는 그저 애나고 한심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날도 그는 그 젊은 경찰한테(후에 알고보니 경찰이 아니라 치안협조원이라고 가두에서 뽑은 보안원이였다.) 귀쌈을 둬개 얻어맞았다. 너무나 솔직하지 않고 교활하다는것이였다. 너같은 놈은 매로 다스려야 죄를 승인한다는것이였다.
그 치욕을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찰을 신고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 한마디에 되려 더 호되게 매를 맞아야 했다. 경찰이 때리지 않은 이상 어디에 가서 하소연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보안원이란 바로 백성들속에서 온 사람들이기에 처분을 준단들 어떻게 주겠는가 말이다.
오후에 그들은 무슨 급한 공무집행이 있다면서 그를 풀어주었다. 거기에서 겨우 풀려나온 그는 어디를 가려고 해도 갈데가 없었다. 머리를 들어보니 맑은 창공에는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도는데 그의 기분은 말이 아니였다. 터벅터벅 자기도 모르게 다시 낚시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내내 거기에 앉아있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오늘따라 낚시가 잘 안되는지 낚시군들이 일찌기 낚시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그는 이 고독스럽고 한심한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은은한 달빛이 잔잔한 물결에 부서지며 그를 보고 손짓하는것 같았다. 물속이 그렇게 편안하고 아담할것만 같았다.
그는 첨벙첨벙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입 한번 잘못 놀린 탓으로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어야 했던 아버지가 그립다. 평생 그는 어린 자식들을 버리고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가 괘씸할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각 그는 너무나도 아버지를 리해할수가 있었다.
첨벙첨벧
물이 무릎을 넘고있었다.
잔잔한 물결이 큰 이랑을 일구며 달빛이 와그르르 깨지고있었다.
어디선가 잉어 한마리가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서 첨벙하고 물우로 몸을 솟구친다.
허리까지 온다… 초가을인지라 물이 꽤 차다. 아래도리가 빳빳해나며 발이 저리다.
이제 몇발자국만 더 디디고나서 첨벙하고 앞으로 몸을 솟구치면 호수는 이게 웬 떡이냐듯 꼴깍하고 그를 삼킬것이다. 그러면 모든 고뇌와 불안과 모욕이 다 사라질것이다.
󰡒아저씨!󰡓
바로 이때 어디선가 챙챙한 한 소녀의 목소리가 귀가에 들려왔다.
그는 주춤하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는 자기의 이런 몰골을 그 누구에게라도 보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물론 죽고나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죽지 못하는것이다. 사람들한테 발견되여 구원되고 또 인공호흡을 한다고 부산을 피울 그 정경이 아름답지가 않았다.
󰡒아저씨! 어디예요? 여기가 어디지요? 저를 큰길까지 데려다줄수 없을가요?󰡓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소경이였다. 눈먼 소녀가 지팽이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애타게 부르짖고있었다.
󰡒아저씨! 지금 고기잡고계시지요? 물첨벙소리를 들으니 고기를 잡고계시는것 같네요. 잠간이라도 일손 멈추고 저를 큰길까지만 데려다줄수 없을가요?󰡓
앞을 못보는 소경이였기에 천만다행이였다.
소녀는 그를 어부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물속에서 걸어나왔다. 그리고 소녀의 한손을 잡고 천천히 큰길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저씨, 고마워요!󰡓
소녀는 깍듯이 인사하고는 지팽이로 이리저리 땅을 짚으며 앞으로 걸어가고있었다.
󰡒어두운데 조심해서 들어가렴!󰡓
그는 왜 그런지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어 이렇게 소녀의 등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예, 고마워요! 그리고 아저씨도 날이 쌀쌀한데 고기 그만 잡고 빨리 집으로 들어가세요.󰡓
󰡒그러마.󰡓
그는 더는 물속으로 걸어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멀어져가는 소녀의 뒤모습을 한참동안 멀거니 쳐다보다가 그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다.
안해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였다. 그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을 세탁기안에 넣어 굴렸다.
식탁우에는 오늘밤 손님이 있어 늦게 돌아온다고 안해가 남긴 쪽지가 댕그라니 놓여있었다.
대충 밥술을 들다말고 침대우에 벌렁 몸을 던진다.
또 지루한 하루의 밤이 시작된다.
아무 일도 없다 하면서도 은근히 걱정이 되여 잠을 이룰수가 없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들가말가 하는데 어떤 악몽에 놀라 다시 깨여난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겨우 새벽 3시였다.
갑자기 눈먼 소녀가 생각났다. 그녀의 챙챙한 목소리가 귀가에 쟁쟁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큰길까지 데려다주니 기뻐하던 그 모습이 아직 력력하다.
빨리 날이 밝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노라니 드디여 창문이 희붐히 밝아온다. 그는 고양이마냥 조심조심 숨을 죽이며 밖으로 나온다.
낚시터에는 아직 한사람도 나와있지 않았다. 여기서만이 그의 아픈 마음을 달랠수가 있었다.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느티나무아래 여전히 한 늙은이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있었다.
󰡒자네도 한번 따라하지 않겠나?󰡓
늙은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요!󰡓
용수는 물구나무서기운동이 썩 내키지가 않았다.
󰡒자네 한번 올라와서 해보게나. 추운 날씨에 그냥 맨땅에 앉아있기보다는 운동이 퍽 좋을것이네.󰡓
용수는 일어서며 늙은이를 쳐다본다.
늙은이는 두다리를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켜세운다.
용수는 느티나무곁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두손을 땅에 짚고 몸을 우로 날린다. 그런데 몸이 말을 잘 듣지가 않는다. 두다리를 쭉 펴기도전에 몸이 기우뚱거리며 중심을 잡을수가 없었다.
󰡒자… 두팔에 힘을 주고 다리는 이렇게 올리게!󰡓
늙은이는 용수의 다리를 두손으로 잡고 느티나무에 갖다댄다.
드디여 용수는 거꾸로 선다. 이내 거꾸로 된 세상이 용수의 한눈에 안겨온다.
집이 뒤번져졌고 나무가 거꾸로 자라고…하늘이 빙글빙글 돈다.
󰡒어떤가? 세상은 이렇게 거꾸로 볼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네.󰡓
의미심장한 말이였다. 세상을 거꾸로 본다. 늙은이는 의미심장하게 수염을 내리쓸며 머리를 끄덕이고있었다.
󰡒젊은이, 매일 한번 이렇게 물구나무서기를 해보게나…세상 보는 눈길이 달라질것이네!󰡓
말을 마친 늙은이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힘차게 걸음을 옮겨디디고있었다.
팔힘을 잃은 용수의 몸은 이내 무너진다. 팔다리가 후둘후둘 떨린다.
용수는 다시 숨을 헐떡이며 낚시터로 내려와 앉는다.
󰡒아저씨!󰡓
한참 맨바닥에 앉아있노라니 뒤에서 그 눈먼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언제부터인지 그녀가 지팽이를 짚고 뒤에 서있지를 않는가.
󰡒여기에 앉으렴!󰡓
그는 소녀의 손을 잡고 옆에 앉혔다.
맨바닥인데도 소녀는 스스럼없이 그의 옆에 가 앉는다.
󰡒아저씨, 전 행여나 하고 불러보았는데 정말 나와 계시네요. 또 고기 잡으러 나오셨나요?󰡓
󰡒아니…응…그래 낚시하러 나왔지…󰡓
그는 소녀의 말에 뒤말을 잇지 못했다.
󰡒아저씨, 물고기는 어떻게 생겼나요?󰡓
󰡒응, 뭐라 할갉희고…기다랗고…뭐 그렇지 뭐.󰡓
󰡒흰색갈은 어떤 색인가요?󰡓
󰡒흰색갈은 깨끗하고…오, 우리 민족이 즐기는 색갈이지…󰡓
󰡒그러면 우리 민족의 피같나요?󰡓
󰡒아니지…피는 희지 않아…󰡓
󰡒그럼 피는 어떤 색갈인가요?󰡓
󰡒피는 빨갛지…󰡓
󰡒빨간 색갈은 어떤 색갈인가요?󰡓
󰡒빨간 색갈은 뜨거운 색갈이지…󰡓
󰡒뜨겁다면…?󰡓
소녀는 알듯말듯한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보이지도 않는 눈을 나한테로 향하고있었다.
󰡒근데 아저씨는 뭐가 그리 마땅찮아서 매일 여기에 나와 앉아있죠?󰡓
󰡒그건…낚시하러 나왔지.󰡓
󰡒근데 아저씨 고기 한마리 낚는거 못 느꼈어요?󰡓
󰡒난 고기를 낚으러 나오는것이 아니지…󰡓
󰡒그러면 강태공처럼 세상을 낚으려 하나요. 호호호…󰡓
󰡒그것도 아니야. 나는 말이야, 고독을 낚으러 나오지󰡓
󰡒고독을요?!… 저는 아저씨처럼 앞을 바라볼수만 있다면 아무런 근심도 없을것 같아요.󰡓
󰡒너한테는 그렇지만…나한테는 그것이 아니야…나는 지금 마음에서 피를 흘리고있거든…󰡓
그는 요새 그의 신변에서 발생한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고싶었다. 정말 아무한테도 속심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버리면 속이 시원할것만 같았다.
그는 드디여 하나하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녀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조용히 듣고있었다.
그의 팔을 낀 소녀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바르르 떨리고있었다.
󰡒아저씨, 래일부터 제가 아저씨를 동무해드리겠어요.󰡓
󰡒아니야, 지금 나는 비상시기거든. 너한테도 련루가 될수 있어.󰡓
󰡒아저씨만 시끄러워하지 않으면 저는 너무나 좋아요. 실은 저도 홀로 집에 있자니 너무 고독하거든요.󰡓
󰡒그렇겠구나. 우리 다 고독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거 아닐가!󰡓
용수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입속으로 중얼거리고있었다.
그로부터 낚시터에는 용수가 나가기전에 이미 소녀가  와있었다.
사람들은 온역이라도 피하듯 하나 둘 용수를 멀리하는데 소녀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그의 곁에 와있었다.
󰡒아저씨, 흰색은 어떤 색갈인가요?󰡓
󰡒흰색은…󰡓
󰡒그럼 빨간색은요?󰡓
󰡒빨간색은…󰡓
󰡒흰색과 빨간색을 구분할수 있는 방법을 저한테 가르쳐줄수 없을가요?󰡓
그녀는 그냥 흰색과 빨간색에 대해 궁금했던 모양이다.
󰡒흰색은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색갈이고 빨간색은 피색이거든. 말하자면 사람들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색갈…󰡓
나는 암만 해도 눈먼 소녀한테 흰색과 빨간색을 알아듣게 설명할수가 없었다.
󰡒아저씨, 저의 제일 큰 소망이 무엇인지 아세요?󰡓
󰡒뭐지?󰡓
󰡒바로 눈을 떠서 흰색과 빨간색을 분간하는거예요.󰡓
󰡒그럴 날이 꼭 오겠지.󰡓
󰡒흰색은 우리 민족의 색갈이고 빨간색은 우리 사람들의 심장이라고 했죠?…󰡓
󰡒그런데 흰색이라고 다 아름다운것은 아니거든. 때가 묻으면 역시 검은 색보다도 더 더러워.󰡓
󰡒그래요!󰡓
󰡒빨간 피속에도 검은 피가 흐를수가 있고…󰡓
󰡒?!󰡓
용수는 흰색과 빨간색에 항상 호기심을 갖고있는 소녀한테 더 무엇이라 말해줄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소녀한테는 이 세상의 모든것이 다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른다.
실은 무엇을 모르는것이 되려 속이 편한 법이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보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것이 부럽기만 하다. 모르면 상상에 맡길수가 있으니 나름대로 아름답게 생각하면 되는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가 못하다. 아름답지 못한 일이 너무도 많고 많은것이다.
소녀와 헤여진 시간이 지루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그 시간부터 용수한테는 또 그 정신적 압력이 시작된다. 태연한척해야만 하는 그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되려 악몽이 시작된다.
《우파분자》로 몰리웠던 아버지가 자주 악몽에서 나타난다.
긴 혀를 내밀고 대들보에 매달려있을 아버지가 눈앞에 선하다.
󰡒얘야, 나는 죄가 없다. 현실을 말했을뿐인데 우파로 몰아붙이다니…󰡓
아버지는 지금도 이런 말을 하는것만 같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죄가 없어요. 이미 정부에서 시정해주었어요.󰡓
그는 이렇게 아버지한테 말해주고싶었다. 그런데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아버지한테 명예를 회복해준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용수 아버지도 이렇게 밤을 지새웠을것이다. 정말 없는 죄를 승인하려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가.
너무나 억울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그 눈먼 소녀를 떠올린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소녀였다.
그의 마음도 정결하게 되는지 차츰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이튿날 소녀를 만나게 될 시간만을 기다리게 된다.
소녀의 모습이 그의 텅 빈 마음구석을 조금씩 조금씩 채우며 불안했던 기분이 차츰 사라진다.
소녀는 아름다웠다. 20년전에 그가 어느 려관에서 출장나온 그녀를 본 순간 반해버렸던 그 심정과 다를바가 없었다.
항상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의 이름은 백설이였다. 살결이 너무나 흰 아름다운 녀인였다.
백설!
그는 자기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자기가 제일 어려운 시기에 삶의 용기를 가지고 찾아온 이 눈먼 소녀를 생각한다.     
이제는 두렵지가 않다. 경찰이 찾아오고 어디를 불려가서 조사를 받아도 용수는 무섭지가 않았다. 그한테는 소녀가 있기때문이였다. 온 세상을 얻은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이 세상에서 어찌 모든 사람이 다 리해해주기를 기대하겠는가. 한사람만 리해해주는것으로 족했다.
마음의 병은 오직 사랑만이 치료할수 있는 법이였다. 사랑이 있으면 그 무엇도 이겨낼수가 있다. 물론 순 이성의 사랑이 아닐지라도…
인정은 고민에 빠진 그를 구해주고있었다.
소녀와 손을 잡고 호수가를 거니는 일만큼 행복한것이  없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좀 할수 있다는데서 오는 만족감에서 그는 적어도 지금과 같은 역경에서 빠져나올수가 있었다.
󰡒아저씨, 흰색은 어떤 색갈이예요?󰡓
󰡒아저씨, 빨간색은 어떤 색갈이예요?󰡓
만나면 여전히 그런 물음이였다. 소녀는 흰색과 빨간색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독을 메꿔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드디여 흰색과 빨간색의 구별을 설명해주어야 했다.
그들은 만나면 다시 헤여지기가 섭섭해졌다. 뭐 긴 말도 없는데 서로가 서로의 고독을 몰아내주고있었다.
이 세상에서 소녀만 곁에 있어준다면 그는 아무도 두렵지가 않을것 같았다.
이번에는 성의 어느 단위에서 그를 불렀다. 차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겼고 공모자는 누군가를 말하라는것이였다.
김과장의 차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본인이 나타나서 해명하기전에는 당신은 죄를 회피할수가 없다는것이였다.
그런데 그를 놀라게 한것은 그와 소녀가 같이 있었던  그 정경이 다 카메라에 담겨있었던것이다.
󰡒이 계집애는 누구얏? 공모자지?󰡓
정말 억이 막힐 노릇이였다.
탄백하지 않으면 《불륜죄》로 감옥에 잡아넣겠다고 을러멨다.
손만 잡아본 그들한테 불륜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녀한테 루가 미칠가봐 슬그머니 겁이 났다. 그렇게 여린 소녀를 불러다가 조사를 할가봐 걱정이였다.
그는 일이 다 해명되기전에는 소녀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낚시터에 숨어서 소녀를 쳐다볼수밖에 없었다. 눈 먼 소녀는 그 시간이면 꼭꼭 낚시터에 나와 그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한시도 앉아있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소녀의 모습에서 그는 소녀가 얼마나 그를 기다리고있는지를 느낄수가 있었다.
당금이라도 뛰쳐나가서 소녀를 한품에 안아주고싶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다 어느 렌즈안에 담겨진다는걸 생각할 때 흥분을 가라앉힐수밖에 없었다.
그가 검사당하는건 하나도 무서울게 없었다. 문제는 소녀가 말려들어서 그런 치욕을 받을가봐 걱정이였다.
오래동안 서서 서성거리던 소녀가 드디여 머리를 푹 떨구고 지팽이로 길을 더듬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이튿날부터 보름동안 그는 구류소에 갇혀 조사를 받아야 했다. 기어코 죄를 승인하고 공모자를 대라는것이였다.
그런데 죄가 없는 이상 공모자가 있을리 만무했다.
다시 풀려나왔다. 그는 더는 참을수가 없어서 호수가로 달려갔다.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했던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소녀가 없었다.
그는 소녀의 핸드폰에 신호를 넣었다. 그런데 뚜뚜- 소리만 날뿐 신호가 가지 않았다. 종래로 전화기를 끄고있지 않던 소녀였다.
그는 음성메시지를 남겨놓고 한시도 놓치지 않고 핸드폰을 손에 들고 다녔다. 당금이라도 소녀가 핸드폰을 열고 그한테로 소식을 줄것만 같았다. 그런데 밤 열두시가 되여도 핸드폰은 울리지가 않았다.
더럭 겁이 났다. 그를 기다리던 소녀가 실망한 나머지 만남을 포기하지나 않았을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
밤은 역시 그한테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였다. 그는 자며 말며 또 악몽에 빠져든다. 이번에는 《우파분자》로 몰렸던 아버지가 아니였다. 소녀가 그를 그냥 피하는 꿈이였다.
어느 천주교당이였다. 녀성들은 흰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남자들은 정숙하게 옷을 입고 머리를 푹 숙이고 서있다.

할레루야!
너희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하나니!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오늘 탄생하셨도다.
할레루야!

한창 례배를 드리는데 용수가 아무리 곁으로 오라 해도 소녀는 모른척하고 그와 멀리 떨어진 곳에  서있다. 그가 한발작 걸어가면 소녀는 한발작 뒤로 물러서며 항상 그 거리에 서있다. 아무리 거리를 좁히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눈먼 소녀가 어떻게 그의 행적을 아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고 기꺼이 가장 비천하고 낮은 모습으로 말구유에 눕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림하신것입니다…

례배가 끝나자 그는 부랴부랴 소녀곁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앞을 보지도 못하는 소녀가 얼마나 행동이 빠른지 어느새 례배당을 빠져나가고있었다.
그는 너무나 가슴이 아파 꿈결에도 쿨적쿨적 흐느꼈다.
며칠을 나가보았지만 소녀는 여전히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는 호수가에 있는 느티나무에 지친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웃통을 벗어던지고 물구나무서기를 시험해본다.
한눈에 안겨오는것은 뭉게뭉게 피여서 어디론가 부랴부랴 달아나고있는 먹장구름이였다.
때론 거꾸로 세상을 한번 바라보라던 늙은이의 말소리가 지금 이 시각 귀가에 들려온다.
밤마다 그냥 악몽이였다. 이번에는 억울하다며 《우파》모자를 벗겨달라는 아버지와 그를 본척만척하는 소녀의 두 얼굴이 번갈아 꿈에서 나타난다.
후에 안 일이지만 소녀는 그가 풀려나오는 그 시간에 역시 경찰에 불려갔던것이다. 어떻게 용수를 알게 되였고 그와 무슨 관계냐는 질문을 나흘동안이나 받다가 풀려나왔다는것이다.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소경이 어떻게 절도죄를 저지른단 말인가? 그저 그와 같이 있었다는 죄로 소녀는 그렇게나 힘들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는 소녀 보기가 정말 민망스러웠다. 자기때문에 며칠동안 그 험한 고생을 겪었어야 할 소녀가 불쌍해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불쑥 나타났다. 생각밖으로 소녀는 기분이 그닥 나쁘지가 않았다. 만나자마자 그의 품에 와락 안기며 울음보를 터뜨리기는 했지만 억울해서 울기보다는 만남에서 오는 기쁨의 눈물인것 같기도 했다.
󰡒아저씨, 어디에 가셨댔어요? 정말 호젓했어요!󰡓
소녀는 그의 품에서 그냥 이 한마디만 외우고있었다. 이 한마디면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수가 있었다.
마음이 착하다고 너를 가만 놔두는 세상이 아니였다.
제아무리 법없이 살려고 해도 너를 가만 놔두는 세상이 아니였다.
정말 말그대로 나무는 가만있으려 하는데 바람이 가만놔두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도가니속에 빠져들고말았다. 그러나 절대로 이성의 사랑이 아니였다. 그건 한 고독한 인간 대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이였다. 단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마음이 뒤숭숭해서 견딜수가 없었고 단 한시라도 통화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해서 참을수가 없었다.
정말 사랑에 이렇게 큰 힘이 있는줄은 몰랐다.
뭐 검사요, 죄요 다 중요하지가 않았다. 죄가 있어 불려다니는것도 무섭지가 않았다. 직장에서 제명당한다 하더라도 두려울것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있으니 무엇이든 이겨나갈 힘이 있었다.
그는 매일 여기저기를 불려다니며 검사를 받아야 했고 소녀 또한 매일매일 호수가에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카메라에 찍혀 다시 검사를 받을수도 있다는 충고에도 그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감옥이든 어디든 되려 같이 있을수만 있다면 달갑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미 중년에 들어선 용수는 때론 어린 소녀의 품에 안겨 한참씩이나 울기까지 했다. 조사를 받으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소녀의 품에서 풀수가 있었다. 제아무리 대장부라 하더라도 때론 어린애가 되는것이 바로 남자인가보다.
아무도 없는 낚시터에서 따뜻한 가을해살을 받으며 소녀의 품에 쓰러져있으면 세상만사가 다 편한것 같았다.
그러면 소녀는 그 눈먼 손으로도 더듬어서 아저씨의 손톱을 깎아주고있었다. 너무나 보기 좋은 평화의 순간이였다.
󰡒아저씨, 흰색이 어떤 색갈이죠?󰡓
󰡒흰색은…말하자면…󰡓
딱 무엇이라 찍어 말하기가 힘들었다.
하늘색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하늘에는 흰색도 있지만 파란색이 더 많은것 같다. 우리앞에 있는 호수색갈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물안에는 오물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세상에 순 흰색은 없거든…󰡓
그는 얼버무릴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빨간색은 어떤 색갈인가요?󰡓
󰡒빨간색은…어떻게 말해야 알가?󰡓
피색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여러번 말해줬어도 리해를 못하고있다. 저 단풍 든 산이 빨간색이라고 알려주고싶었지만 산속에는 독사도 더러 있다.
󰡒아저씨, <우파>가 무엇이예요?󰡓
󰡒엉?!󰡓
그는 눈이 둥그래진다.
󰡒아저씨가 우파새끼라고 하던데요?󰡓
󰡒……󰡓
󰡒우파는 흰색이라고 하던데요, 맞나요?󰡓
그는 뭐라고 말할수가 없었다. 《우파》를 《흑오류》(黑五類)라고 하는 말은 들었어도 흰색과 련계된다는것은 듣다 처음이다.
󰡒우파는 검은 부류라고 하지 희다고 말하지 않거든…󰡓
󰡒검은건 다 나쁘나요?󰡓
󰡒다 그런것도 아니지…󰡓
소녀가 물어올수록 용수는 어리벙벙해진다. 그렇다고 호기심에 가득 차있는 소녀한테 아무런 확답도 주지 못하는 자기가 안타깝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 과장이 외국에서 돌아왔고 과장이 제공한 단서에 좇아 차도난사건의 주모자를 붙잡았고 따라서 용수도 혐의를 벗게 되였다.
그러나 그한테는 꼬물만큼의 기쁨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너무나 홀가분한 기분이였다. 경찰측에서는 차도난사건은 해명되였지만 소녀의 감정을 희롱했다며 불도덕이라고 힐난했다. 행동이 없었기에 법적으로는 어쩔수가 없지만…도덕법정에서는 이미 그를 판결했다고 했다.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일은 용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지만 《세뇌》는 여전히 해야 한다고 했다.
소녀와의 대화에서 흑백을 분간하지 않은것은 립장이 분명하지 않은것이고 그러기에 많은 사상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첫눈이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눈은 내리자마자 녹아서 얼면서 길은 미끄럽기가 그지없었다.
다시 소녀를 만나면 흰색을 눈에다 비교해서 알려주면 될것 같았다.
그런데 소녀는 더는 낚시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길이 미끄러우니 그 불편한 몸을 가지고 바깥출입을 할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용수는 매일 아침 낚시터로 향했다. 물론 손에 낚시대를 들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느티나무아래에 와서 그 늙은이가 가르쳤던것처럼 물구나무서기를 열심히 하고있었다.
고독이 다시 시작됐다. 소녀가 없는 삶은 고독이였다. 아니, 기다림속에서 고통을 삭이면서 애난 삶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수는 신문에서 이런 보도를 보았다.
한 소경소녀가 길을 건느다가 붉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하던 승용차에 깔리여 목숨을 잃었다.
󰡒!󰡓
딱히 그 소녀인지는 몰라도 용수는 웬지 불안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여보게 젊은이, 뭐 그리 골똘히 생각하나? 여기에 와서 나와 물구나무서기를 안하겠나?󰡓
일년 사시장철 아침운동을 견지해오는, 세상을 밝게 사는 멋진 늙은이였다. 용수는 애탄 가슴을 달래며 늙은이가 가르치는대로 나무밑에 가서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몸이 많이 허약해져 겨우 몸을 거꾸로 세울수가 있었다.
거꾸로 서있는 그의 눈에는 온 세상이 뒤범벅이 되여있었다.
사람들은 거꾸로 살고있었다. 얼굴이 찡그러지고 귀가 거꾸로 생기고 코구멍이 하늘로 향하고 입이 세로 째졌다. 사람들은 거꾸로 걸어다니고 거꾸로 웃고 거꾸로 울고…
저 멀리 뻗어있는 평소에는 제일 높다고 뽐내던 보이라굴뚝도 거꾸로 서서 검은 연기와 같이 오물들을 스스럼없이 뿜어낸다.
용수는 맥이 빠져 몸을 일으켜세운다. 너무 오래 있은 탓인지 머리가 휭하고 어지럼증과 같이 눈앞에서는 불빛이 아물거린다. 몸을 비칠거려본다. 사람도 굴뚝도 오물도 빙빙 돈다. 눈에 보이는것은 온통 마땅찮은 세상이다.
눈을 딱 감아본다.
그리고 폴싹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렇게도 편안할수가 없었다.
굴뚝에서 뿜어내던 오물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앞은 캄캄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것이 되려 깨끗하다.
용수는 순간 소경소녀를 떠올린다.
그렇게 환상에 빠져 아름다움에서 살던 소녀였다.
그는 자기도 이렇게 소경으로 태여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고 생각해본다.
……
몇달이 지난 어느 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검은 안경을 낀 사나이 하나가 느티나무아래에서 물구나무서기운동을 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 신문에는 이런 뉴스가 실렸다.
…국제올림픽 소식통에 의하면 2008년 북경장애인올림픽에서는 물구나무서기운동을 한 종목에 넣는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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