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소설가의 중국동북지대 답사기

[박명호의 만주일기 <1> 프롤로그 '놈놈놈'과 만주 개장수
민족의 희미한 기억 '만주의 삶'을 찾아서
시중 책이나 교실선 정사나 기록문학인 독립군 투쟁사만 있고
꿈을 좇아 건너갔던 수많은 조선청년들의 애환어린 삶은 없어
당시 개장수가 많았던 건 조선족도 많았다는 반증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옌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풍경에서 '만주에서 말타고 개장수'했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오토바이 타고 개장수'했다는 말로 변한 사연을 떠올렸다. 이 지역은 우리 민족의 '구체적인 삶의 장소'였다.


오늘부터 '여섯빛깔 문화 이야기'의 하나로 '소설가 박명호 의 만주일기'를 매주 월요일 연재한다. 박명호 씨 글 속의 만주는 중국 옌볜 일원을 포함한 동북 3성 지대를 가리킨다. 이 곳은 고대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과 밀접한 연관을 맺어온 지역이며 현재도 많은 조선족들이 살아가면서 우리 문화와 언어를 간직하고 있다. 동북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형성과 활발한 교류야말로 오늘날 한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제임을 감안할 때, 이 지역은 앞으로 '한민족 문화예술네트워크' 형성의 핵심이 될 것이다. 부산의 소설가 박명호 씨는 그동안 자주 이 지역을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이 지역 문학인들과 문화예술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을 예정이다.

 
◆필자 박명호는 …

1955년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 장편소설 '가롯의 창세기' 소설집 '또야 안뇽' '돈돈' 등. 제5회 부산작가상 수상.


우리에게 만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독립군'과 '개장수'이다.

만주와 우리 사이에는 두 번의 긴 단절이 있었다.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천 년 이상, 해방 뒤 이념의 대립으로 50여 년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 역사에는 정사와 야사가 있듯이, 문학에도 기록문학이 있고 구비문학이 있다. 독립군 이야기가 정사이고 기록문학이라면 개장수 이야기는 야사이고 구비문학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만주 역사는 독립군의 투쟁사뿐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웃 어른들로부터 만주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총 들고 싸운 독립군 이야기가 아니라 웃음과 눈물이 있는, 그러면서 만주라는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신비하고도 호기심이 넘치는 이야기들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이야기를 통칭 '만주개장수 이야기'라 하고, 그 시절 그곳의 경험을 '개장수 시절', 또는 약간 허풍이 가미되면 '오토바이 타고 개장사 할 때'라 한다. 그 말 속에는 만주를 경험하지 못한 해방 후 세대들에게 대해 그들이 가졌던 어떤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그것이 발전되어 나중에는 과거 잘 나가던 시절(비록 고생을 했더라도)에 허풍 섞인 자랑을 할 제면 모두 '왕년 만주 개장수 시절'로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던 세대들이 지난 세월 동안 하나 둘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 이야기를 듣던 세대들도 중년 이상으로 늙어버렸다. 이제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다. 다만 정사와 기록문학이랄 수 있는 독립군 이야기만이 교실에서 또는 책으로 새로운 세대들에게 반복될 따름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개장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 영화 '놈놈놈'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단숨에 500만이 넘는 관객이 찾을 만큼 인기를 끈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만주개장수' 이야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거기서 실제 중심인물은 '좋은 놈(정우성 분)'이 아니라 '이상한 놈(송강호 분)'이라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대사 속에서 '양반 놈 밑에 사나 일본 놈 밑에 사나 마찬가지다'라고 비아냥대는 것도 역사책에 기록된 것처럼 민족이나 계급과 같은 거대 담론이나 이념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의 이야기 곧 개장수 이야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놈놈놈'이 보물을 찾아 헤매듯이 당시 조선의 청년들은 꿈을 찾아 만주를 누볐다. 그러한 이야기가 곧 '개장수' 이야기인 것이다.

그들이 만주에서 경험한 수많은 종류의 일들이 있었을 텐데 왜 두루뭉술 '개장수'라 했을까? 당시 만주에는 개장수가 정말 그렇게 많았을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만주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주 어디를 가든 개고기 식당이 있다. 그것은 만주 어디에도 조선족이 있다는 뜻이다. 한족이나 만주족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특히 만주족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개를 많이 기른다. 그래서 밑천 없이 만주로 건너온 조선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곧 '개장수'였다. 늙은 개는 말만 잘하면 공짜로 얻을 수도 있었다. 헐값에 개를 구해 개고기를 파는 장사야말로 누가 봐도 가장 손쉬운 돈벌이임에 틀림없다.

물론 독립군 이야기보다 개장수 이야기에는 허풍이 많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독립군 이야기에 없는 우리의 웃음과 눈물이 배어 있는 진솔한 인간적 냄새가 담겨 있다. 나는 본디 정사보다 야사를 더 믿는 편이다. 우리가 학습한 역사들이 어쩌면 속이 빠져나가버린 뱀허물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독립군 이야기보다 개장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이유이며, 때로는 정사보다 야사가 더 진실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 사이소-'.

여럿이 둘러앉아 농(弄)짙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지는 만주개장수 놀이는 꽤 재미있는 놀이였다.

<다음에 계속=국제신문 연재>

본지 제공=박명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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