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현실진단과 미래가치 평가] 곽승지 저

중국 국적의 조선족은 물론 북한 국적의 조교는 중국과 북한을 왕래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물론 연변에 친인척이 있는 북한주민들도 연변방문이 용이하다. 지리적으로 연변과 가까운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지역 주민들은 물론 평양 등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자주 왕래한다. 연변이 북한으로 가는 중요한 통로인 셈이다.

북한으로 향하는 통로로서 연변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에 숨통을 열어주는 대북교역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폐쇄사회인 북한에 새로운 문물과 정보를 전파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실질적 담당자는 물론 조선족과 북한국적의 조교들이다. 연변에 연고가 있는 북한사람들이나 두만강을 넘나드는 꽃제비들도 제한적이지만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연변의 지역적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최근 중국이 북한과의 교역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족들이 북한과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중교역에서 조선족과 조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보따리 장사의 수준이지만 연변에 연고가 있는 북한사람들도 직접 교역에 나서기도 한다.

보도에 따르면 2006년 상반기에 연변의 대외무역 총액은 3억6천7백만 달러였는데 이중 대북무역액이 1억2천4백만 달러였다. 연변지역 전체 무역액의 3분의 1이 북한과의 교역인 셈이다.

연변지역에서 북한을 상대로 사업하는 한국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한국사람이 직접 북한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조선족동포들과 합작 형태로 이루어진다. 북한의 농수산물을 사들여 연변에서 가공하여 한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 주된 사업형태이다.

연변지역이 북한으로 통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북한을 도우려는 사람들도 연변에서 활동한다. 한국사람도 있고 또 제3국사람들도 있다. 일부는 아예 북한을 염두에 두고 연변에 들어왔지만 일부는 연변지역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왔다가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을 접하고 이들을 함께 돕는 사람들도 있다.

. 변경지대로서 월경협력의 장

연변은 남으로는 백두산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으로는 러시아 연해주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북한 및 러시아와 맞닿아 있는 경계선의 총길이는 768.5km이며 이중 북한과는 522.5km, 러시아와는 246km이다. 북한과 중국 간의 경계를 이루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총 1,334km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 두만강과 압록강 수계로 이루어져 있고 육계는 불과 45km에 불과하다.

두만강은 중국의 연변과 북한의 함경북도 및 양강도 지방과 연해 있다. 압록강은 중국의 길림성 및 요녕성 지역과 북한의 양강도 평안북도 자강도 지방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의 압록강 접경지대는 현재의 연변과는 상관이 없지만 과거 서간도지역이다.

북한과 중국은 월경협력을 위해 압록강과 두만강 상에 모두 17개의 출입처(口岸)를 두고 경제문화적 관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중국에서 구안(口岸)은 출입통로, 출입처, 통상구, 교두 등으로도 불리며 세관, 변방부대(출입국 관리), 검역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북한과 중국 간 출입문제는 2001년 체결한 “변경 출입처 설치 및 그 관리제도 협약”에 근거하고 있다.

북중간 출입처는 권하-원정, 사타자-샛별, 도문-남양, 개산둔-삼봉, 삼합-회령, 남평-무산, 고성리-삼장, 쌍목봉-상두봉, 장백-혜산, 임강-중강, 청석-운봉, 집안-만포, 노호초-위원, 태평만-삭주, 단동-신의주(육로), 단동-신의주(철로), 단지항-신의주항 등이다.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한해 동안 출입처를 통해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은 34만명, 중국을 방문한 북한주민은 12만 명에 이른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나갈 수 있는 출입처가 있다. 이곳은 연변과 러시아 연해주를 이어주는 한편 연변이 최단시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의 동춘해운이 러시아의 자루비노항과 속초를 오가며 연변의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연변지역은 두만강 하구의 약 15km가 막혀 해상로가 봉쇄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연변지역은 훈춘을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1860년 베이징 조약이전까지 지금의 연해주 지역은 중국의 관할 하에 있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진한시대 이후 민간에서는 훈춘으로부터 염주(鹽州)-호시네도-일본까지의 항로를 <동북아시아의 비단길>로 불렀다. 그리고 이 노선을 따라 일본으로 34차례, 일본은 중국으로 13차례나 왕래했다.

북경조약으로 연해주지역이 러시아영토로 귀속되었지만 중국은 두만강하구를 이용하여 동해상으로 나가는 해상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1886년 이른바 <중-러훈춘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중국 기선이 두만강을 출입할 수 있도록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두만강 입구가 봉쇄된 것은 1938년부터이다. 일본이 연변지역을 강점해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연해주지역의 조선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데 이어 두만강마저 봉쇄한 것이다. 이후 연변지역은 해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잃고 내륙지역으로 고립되게 되었다.(차철구․한수영,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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