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현실진단과 미래가치 평가] 곽승지 저

한국사회에서는 한민족이 연변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한 시점을 대체로 1860년대로 이해한다. 한반도에 기근이 들어 생활이 어렵게 되면서 두만강과 압록강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강을 건너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 같은 경우가 있었지만 대체로 춘경추귀의 형태로서 정착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주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1900년대 초까지의 경작을 위한 생계형 이주,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된 시점부터 1920년대까지 일제의 조선 강점에 분개하며 몸소 저항하기 위한 독립운동 참가형 이주, 그리고 1930년대 이후 일본총독부가 군량미 확보를 위해 추진한 강요에 의한 비자발적 농업이주 등이다.

1900년대 초까지의 생계형 이주는 대체로 두만강과 압록강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강을 건너 강 주변지역에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연변지역에 북한과 연고가 있는 조선족 동포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00년대 초부터 1920년대까지의 독립운동 참가형 이주는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대상지도 독립운동이 가능한 지역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연변지역은 물론 압록강 이북의 서간도지역 그리고 연해주 지역과 흑룡강성 지역 일대도 포함된다. 그리고 1930년대 이후 일제의 강요에 의한 비자발적 농업이주는 남한지역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으며 연변지역보다 요녕성과 흑룡강성 지역 등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족사회는 조선족의 연변이주가 시작된 시점을 훨씬 더 소급해 청나라시대로 잡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보편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선족의 역사적 전통을 확장함으로써 한반도와의 연관성 보다 독립성을 강조하려는 측면이 있다.

연변 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이야기 중국조선족력사>는 “2백년 전에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동북에 와서 정착한 것이 중국조선족이주사의 주류이다”고 적으면서도 “그러나 중국 후금시기에 벌써 중국 땅에 건너와 산 조선사람들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조선족 이주사를 기본적으로 2백년 전부터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 연원은 후금시대로까지 소급하고 있는 것이다.

0. 조선족의 위상과 역할

현재 중국전역의 조선족 총수는 약 193만 여명에 이른다. 이를 연고별로 나누면 북한지역 출신이 전체의 50%, 남한지역 출신이 30% 정도이다. 전체 조선족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살고 있는 연변지역의 지리적 특성상 북한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가까운 연변지역에 북한지역에 연고를 가진 사람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등지에는 상대적으로 남한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족은 수적으로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12번째로 많다. 또한 배후에 남한과 북한이라는 민족적 배후국가를 두고 있다. 배후국가가 있는 소수민족은 몽골족과 신강위구르족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동포들 가운데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중국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선족은 남한과 북한을 이어주는 매개자이다. 이는 남북통일의 중개자인 동시에 통일이후 문화융합자로 역할 할 것임을 의미한다.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연변은 남한과 북한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서 양쪽에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중수교 이전 조선족동포들은 북한에 일방적으로 경도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중립적 위치에서 남북한을 이어줄 수 있게 됐다.

조선족은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차단된 북한사회에 새로운 정보와 선진문물을 전파하는 북한변화의 촉매자이다. 북한이 비록 제한적으로나마 개혁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 스스로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족동포들과 북한사람들의 왕래는 북한이 외부세계와 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북한도 이러한 문제를 의식해 최근 중국과의 영사협정을 맺어 북중국경의 출입을 제한하려하고 있다. 또한 조선족사회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이미 개혁개방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북한주민들의 문화적 충격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족은 한국의 중국진출을 돕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중국 연해도시에는 많은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는데 한국과 중국 간의 지리적 접근성이나 같은 동양문화권에 있다는 문화적 동질성 등의 이유도 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조선족동포들의 조력 덕분이다. 그들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언어적 소통을 원만히 하도록 도와준 것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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