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16>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어느 면에서 자기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에 상당한 부담감을 지니고 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기에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거나 괘념하지 않고 살기보다는 늘 열등감에 젖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누가 그 열등 부분을 건드리기만 하면 대개는 감정을 폭발시키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 열등감을 다른 것을 잘 하거나 어떤 큰 일을 해내는 것으로 심리적 보상을 받는 것을 본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른 것을 통하여 대체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부족한 면이 많은 우리들에게는 큰 암시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중요한 자극이 되기도 한다.

 

중국의 좌전(左傳)이라는 책은 좌구명(左丘明)이 앞을 보지 못하는 열등을 대신 보상하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고, 역사책 사기(史記)는 거세 형벌을 받은 사마천(司馬遷)이 그 열등 보상으로 지어낸 것이다.

이러한 면은 이름을 대신하는 자(字)를 지어 줄 때에도 고려되었다.

당나라의 유명한 문장가 한유(韓愈)는 이름자가 ‘나아갈 유(愈)’여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고 자를 퇴지(退之)라고 하였고, 조선초의 학자 권근(權近)은 이름자가 ‘가까울 근(近)’이어서 보완의 뜻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노력하여 나아가면 가히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아 가달(可達)이라 하였으며,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를 짓는 데에 참여했던 안지(安止)는 지(止)가 ‘머물다’의 뜻이어서 행하라는 의미로 자행(子行)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열등 보상은 어른들의 가르침이나 교육에서도 나타난다. 조선 선조(宣祖) 때 좌의정을 지낸 정탁(鄭琢)이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서 공부를 하고 떠날 때 선생은 ‘뒤란에 소를 한 마리 매어 놓았으니 타고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뒤란에 가 보았으나 소는 없었다. 이 때 조식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고 한다.

“자네는 말이나 의기가 너무 날카롭고 재빨라 마치 말을 타고 달리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날랜 말은 넘어지기가 쉬운 것이니 소를 타야 하는 것이다. 소는 느리고 둔한 것 같지만 그런 소를 타야 능히 멀리까지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소를 준다고 한 것이다.”

정탁은 스승이 준 이 마음의 소를 타고 다녔기에 정승까지 되었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다고 한다.

왕자로 태어나서 날카로운 재간과 지략과 경륜을 가지고서도 태어날 때부터 말더듬이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여 큰 뜻을 펴지 못하고, 도리어 비참하게 된 한비자가 쓴 유명한 책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의 위에 서려거든 칼날을 세우지 말고 팔푼(八分)쯤 무디게 하여야 한다.”

처세에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하여 볼 만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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