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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날 저녁 창호는 레이훙에게 양고기뀀을 사먹이지 못하고말았다. 저녁때가 되자 비는 멎었고 추가로 날씨도 쌀쌀해져 뜨거운 화로를 놓고 양고기를 구워먹는다는건 금상첨화라 할만도 하였다. 서민적인 기분이 풍기는 양고기뀀집에서 남들의 안목을 의식하지 않고 높은 소리로 지껄여보고 짭짭 입맛을 다시는 멋, 창호는 오래동안 그런 자리에서 물러나있었다. 그런 곳에서 소외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창호는 오늘저녁은 취하도록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당영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레이훙 혼자만 데리고 가면 뭔가 이상해질 눈길들이 부담스러워 누구를 함께 데리고 갈가 고민하고있던중이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이맘때면 퇴근뒤라서 전화가 있을리 없었다. 때로 있기는 했지만 많이는 잘못 걸린 전화고 그렇지 않다라고 하더라도 시시껄렁한, 한창 술판에 취기가 도도해서 생각이 나 부르는, 그런 전화였다. 창호는 미친놈들이고 속으로 욕하면서 전화가 우는대로 놔두었다. 그러나 전화소리는 집요했다. 마치 받지 않는다면 세상 끝날 때까지라도 한다고 작정을 한듯싶었다. 창호의 인내력이 한계에 이르러 전화를 드는 찰나였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인순이의 달아오른 얼굴이 달려들어왔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아요?!>>

<<지금 받고있잖아요!>>

창호의 대답에는 신경질이 섞여있었다. 그러나 전화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창호의 얼굴은 굳어졌다.

<<와이!... 썬머?!... 캉아저씨가?!... 알았어...>>

창호는 수화기를 놓고 인순이에게 돌아섰다.

<<제가 하향했을 때 잘 알고지내던 분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가셨대요. 저 레이...>>

창호는 레이훙이라고 말하려 하다가 말허리를 잘랐다.

<<직원들에게 저가 급한 일이 있어서 갔다고 말해주세요. 부탁할게요.>>

인순이는 갈피를 잡을수 없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가 너무 황황해하는 창호를 보기 안쓰러웠는지 한마디 했다.

<<전화가 왔길래 사무실에 있을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기에 제가 달려온거예요.>>

<<고마와요. 저 지금 가봐야 해요.>>

창호는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시립병원으로!...>>

전화는 리후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캉아저씨기 저녁 식사후 쓰러졌는데 지금 병원에서 구급중이라는것이였다. 사실 창호는 캉아저씨의 병이 엄중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다만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리라 생각지 못했을뿐이였다.

캉아저씨는 창호에게 있어서 그 아련한 과거를 이어주는 끈이기도 했었다. 정도 정이였지만 캉아저씨를 만나면 언제나 과거를 이야기하게 되고 그런속에서 성장과 생존의 력사를 확인하군 하였다. 캉아저씨의 병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창호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빠지지 않고 문안을 다녔다. 로처녀인 리후이가 병시중을 하고있어 큰 근심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창호는 주말이 되면 캉아저씨한테로 가는것이 이 수개월간의 정해진 일과였다. 전번주까지만 해도 캉아저씨는 변소출입도 혼자서 하고있었다. 그런데 쓰러지다니?...

창호가 병원의 응급실에 들어섰을 때에는 캉아저씨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링게르를 맞고있었다.

<<캉아저씨!...>>

그러나 캉아저씨는 대답이 없었다. 리후이가 울먹해서 말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요...>>

구급을 책임진 의사는 머리를 저었다.

<<후사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당뇨병합병증입니다. 신체의 모든 기관들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졌습니다. 생명이 지탱하고있다는것마저 기적입니다. 친척이 되십니까?>>

의사는 그렇게 말해놓고는 창호가 조선족이라는걸 알아채고 실수를 느끼며 말머리를 돌렸다.

<<중국사람들은 침대에서 운명하지 않게 하는데 등잔이나 명지(冥紙)도 준비해두는것이 좋을것입니다.>>

사실 의사의 뒤말은 자기이 실수를 막기위한 방패에 지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등잔을 켜거나 명지를 태울수 없아는것을 창호는 알고있었다. 창호는 의사의 말을 꺾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경제적인 문제는 고려하지 말고요. 하루라도 더 살게 해주십시오. 너무나 힘들게 살아오신분입니다. 선생님...>>

창호는 목이 메였다. 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무엇을 알고 그런것이 아니라 창호의 태도에 감격한것이였다.

<<미국에서 들여온 신종 약품이 있기는 합니다만 가격이 엄청납니다. 잠시 원기를 돌릴수도 있지요.>>

창호는 생각의 여지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창호는 의사와의 면담을 끝내고 응급실로 돌아왔다. 조금이 지나자 간호사가 새로 낸 처방에 따라 약을 가지고 와 원래의 링게르병과 바꾸었다. 링게르병의 영문문자를 보고 리후이가 놀라며 창호를 쳐다보았다.

<<오빠, 이제 아무리 좋은 약도 아저씨를 구하지 못해! 비싼 약이라 해서 생명이 연장이 될것 같아? 그러지 마....>>

<<조금이라도 연장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 돼. 캉아저씨만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돼. 그리고...>>

창호는 아저씨에게는 그런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목이 메였다.

리후이는 그러는 창호를 보며 울음을 참느라고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 고마워. 나 아저씨 대신해 감사할게...>>

<<바보야, 캉아저씬 너한테만큼이나 나한테도 귀중한 사람이야... 그리구 고향에 계시는 친척들에게 알려야 할게 아니야?>>

리후이는 눈가를 훔치며 돌아섰다. 난처한 기색이였다.

<<사실 중경에 작은 삼촌이 계시긴 하지만 너무 멀어가지고 어떨지 모르겠어. 그리고 오래동안 서로 소식이 없었거든.>>

창호는 가슴이 저려오는 애수를 느꼈다. 한숨을 내쉬며 창호가 말했다.

<<그래도 소식은 전해봐. 만일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여기서 항공권까지라도 책임질테니 한번 다녀오시라고 해. 다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리 알고...>>

그래도 리후이는 신심이 없는 모양이였다.

<<글쎄.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가 있어?>>

창호는 잠간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사람이란 죽음앞에서는 관대해질수도 있어. 그리고 캉아저씨가 그걸 바랄거라는 생각이 들어. 필경 사람이란 허공에서 떨어진건 아니야.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는건 누가 선택한거 아니야. 그것이 떼여버리겠다고 해서 떼여지는건 아니지 않니?>>

리후이는 신심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알았어.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

캉아저씨는 동북사람이 아니였다. 그랬기에 동북에 친척이라고는 유일하게 리후이밖에 없었다. 그것도 할머니쪽으로 되는 먼 친척일뿐이였다. 캉아저씨의 고향은 중경시내에서도 이백여키로 떨어진 오강가였다. 캉아저씨는 때때로 오강에서 고기를 잡던 이야기며 오강을 오가는 짐배며 여객선들에 대해 이야기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강의 그 무서운 홍수에 대해서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캉아저씨는 우파가 된후로 지금까지 고향에 다녀온적이 없었다.

캉아저씨는 고향에서는 소학교로부터 수재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고향마을에서는 첫 대학생이기도 하였다. 어떻게 되여 할빈의 림업대학에 입학이 되고 거의 대학졸업과 함께 우파로 되여 북대황의 로동개조농장으로 쫓겨갔다. 그로하여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피해가 시작되고 가족에서는 일체 련락을 끊어버렸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우파에 대한 시정이 있어 도시로 돌아왔으나 친인척간의 정은 이미 멀어질대로 멀어져있었다. 부모라도 건재했다면 고향으로 가는것이 도리라고 할수도 있었겠지만 캉아저씨가 우파로 개조를 하고 문화혁명이라는 수난을 겪는 사이 부모는 선후로 세상을 떳고 그 소식마저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간단한 편지로 전달이 되였다.

창호는 캉아저씨의 병상옆에 걸상을 가져다놓고 앉았다. 캉아저씨의 가슴이 풀무처럼 가쁘게 오르내리고있었다. 고통스러운지 때때로 얼굴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창호는 젖은 수건으로 식은땀이 돋는 캉아저씨의 이마를 딲아주었다. 아직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 생명의 완강함에 경외지심이 들뿐이였다.

새벽녘이 되자 피로가 몰려들었다. 캉아저씨가 맞는 링게르병에서 규칙적으로 기포가 솟아올랐다. 창호는 링게르관에 떨지는 약물의 방울을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하나둘 세기 시작했다. 일곱, 여덟, 아홉... 어느때인가 저 방울은 끝이 날것이다. 인생도 저런것일가?...

창호는 공산사로 가고있었다. 커다란 좌상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달마의 얼굴이였다. 공산사에는 달마를 모시지 않았던데?... 그러고 바다가 보였다. 창호는 바다로 뛰여들었다. 찡관스님이 말하던 혼귀석에 파도가 하얀 물보라를 일구고있었다. 추웠다. 바다물이 그토록 차갑게 온몸을 적시고있었다. 창호는 사람살리라고 소리를 지르고싶었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깊은 나락으로 깊이깊이 빠져들어가고만있었다.

<<아, 안돼...>>

창호는 번쩍 눈을 떳다. 몸이 오싹했다. 난방이 없어 병실이 추웠다. 그제야 깜빡 잠이 들었음을 의식하고 링게르병부터 보았다. 약물이 내려간것을 보아 십여분은 잔것 같았다. 창호는 병상의 캉아저씨에게 눈길을 돌렸다.

<<캉아저씨?!...>>

캉아저씨는 맑갖게 눈을 뜨고 창호를 바라보고있었다. 담담한 그 눈길에서 창호는 아무런 감정의 의미를 읽을수 없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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