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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복도에서 리후이가 울먹해서 창호의 앞에 서있었다.

<<어쩌면 좋겠어?>>

<<글쎄말이다...>>

창호도 결단을 내릴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캉아저씨는 퇴원을 하겠다고 우겼다. 병원에서 죽지 않겠다는것이 그의 리유였다. 리후이나 창호의 설복이 먹히지 않았다. 무가내였다.

<<다시 한번 권고해볼가?>>

<<글쎄요. 오빠 말이면 듣기는 하는데...>>

그러면서도 리후이의 얼굴에는 신심이 없었다.

창호는 응급실로 들어갔다. 창호를 보고 캉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고생이구나...>>

<<아픈 사람이 더 고생이지요... 근데 아저씨 왜 병원에서 나가려고 그래요? 며칠 더 치료하고 나은 다음에 나가도 되지 않아요?>>

캉아저씨는 창호를 올려다보면서 가볍게 숨을 내쉬였다.

<<병원에서 죽을수는 없어. 그거다. 인간은 죽을수밖에 없는거지만 어떻게 죽는가는 자신이 선택할수 있는거 아니겠니? 나도 알아. 내 시간이 얼마 없다는걸 나도 알고있어. 그러니까 너무 고집하지 마. 죽는다는걸 난 아마도 너보다는 많이 생각했을거다. 일종 해탈이 아니겠니? 그렇지만 여기 병원에서 요란스레 죽고는싶지 않다... 너는 리해하리라 믿는데?...>>

창호는 무어라고 할지 말을 잃었다. 조용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말속에 있는 깊은 뜻을 리해할것 같기도 하였지만 꼭 무엇이라고 짚을수는 없었다.

<<일루의 희망이라도 백배의 노력을 하는거잖아요? 너무 고집부리지 말아주세요. 캉아저씨, 제가 최선을 다할게요.>>

캉아저씨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최선을 다한다고 가려는 생명을 돌려세우지는 못하는거야. 애쓰지 마. 너 마음을 알겠다만 그것이 내게는 더 고통이야.>>

<<아저씨...>>

창호는 병실에서 나왔다. 복도에 서있던 리후이가 묻는 눈길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창호는 우울하게 머리를 저었다.

<<안되겠어.>>

<<아저씬 숨은 고집이 있었어.>>

창호는 머리를 끄덕이고 의사사무실로 걸어갔다. 중년의 주치의사가 창호를 보고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환자의 요구가 정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아마 리후이가 다 말한 모양이였다. 창호는 의사가 내주는 걸상에 앉았다.

<<괜찬겠습니까? 중환잔데...>>

중년의 의사는 안경너머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눈길속에 의문이 가득하였다. 고개를 갸웃이 하며 의사가 물었다.

<<어떻게 되는 관계입니까? 필경은 한족같은데...>>

창호는 침울하게 대답했다.

<<농촌에 햐향했을 때 한마을에서 살았댔습니다. 우파로 로동개조를 하고 그대로 농촌으로 추방이 되여있었습니다. 아직도...>>

창호는 캉아저씨가 지금도 장가를 가지 않은 사람이라는것을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의 고통과 비극이 쉽사리 다른 사람의 이야기거리로 되는것은 불경하다는 느낌에서였다. 창호는 화제를 돌렸다.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이야기해주십시오. 얼마만큼 견딜것 같습니까?>>

중년의사가 감동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깊은 인연이 있는가 보는데... 어제도 말씀 드렸지만 살아있다는게 기적입니다. 지금은 정신이 돌아서서 좋아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쁜 징조일수도 있습니다. 특효약은 없습니다. 돌아가셔서 절대 안정을 지켜주시고 돌봐드리면 되겠습니다. 맞을 링게르는 여기서 가지고 가십시오. 그 구역에 우리 병원 봉사점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호사를 부르면 가서 주사를 놓아줄것입니다. 만일 급한 일이 있으면 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하십시오... 아무튼 어떤 일이든 각오를 하고계셔야 합니다.>>

창호는 의사의 말을 알아듣고있었다. 최후를 준비하라, 그것이였다. 창호의 뒤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호는 걸상에 앉은채로 머리를 돌렸다. 그를 뒤따라 들어왔던 리후이가 의사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창호는 일어서며 리후이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후이, 그러지 마. 아직은 아니야. 자, 나가자...>>

창호는 의사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럼 일이 있으면 부탁하겠습니다.>>

의사도 따라서 일어섰다.

<<사연이 있는 분인데 안됐군요. 환갑나이같은데... 지금은 칠십에 돌아가도 아깝다고 하는 세월인데...>>

복도로 나오자 창호는 리후이를 불렀다.

<<너무 상심하지 마. 우리 정원에 나가 이야기 좀 해.>>

입원병동앞 정원숲우로 해빛이 무더기로 쏟아지고있었다. 어제 하루종일 온 비로 하여 도시의 공기는 많이 맑아졌고 가을을 맞는 시기라 무르익은 숲의 향기가 정갈하고 농렬했다. 해빛이 쪼이는 벤치우에서 걸어다닐수 있는 환자들이 해빛쪼임을 하고있었고 무성한 아카시아나무옆에 놓인 간이상을 놓고 한무리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있었다. 얼굴들이 모두 굳어져있었다. 아마 위급한 환자를 둔 가족들이리라. 창호는 쓸쓸해지는 자신을 억제할수 없어졌다. 길게 숨을 내쉬며 창호는 뒤에 따라오는 리후이를 돌아다보았다. 리후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여있었다.

<<앉어라. 울겠으면 여기서 실컷 울어.>>

사람이 없는 벤취앞에 서면 창호가 말했다. 리후이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오빠도 앉어. 울지 말재도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 아저씨 너무 불쌍해...>>

창호는 리후이가 울도록 한동안 내버려두었다. 하늘이 맑았다. 가는 바람이 불어오며 라이라크숲의 향기를 실어왔다. 거대한 바위가 누르듯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해빛속에서 고추잠자리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라이라크숲우를 성급하게 맴돌고있었다. 가을이 부담스러운듯싶었다. 리후이가 울음을 그치고 부은 눈으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나 아저씨 불쌍해서 못보겠어. 정말이야. 사람 인생이 어쩜 저럴수가 있어? 너무하잖아? 너무 불공평해. 엄마 이야기로는 너무너무 똑똑한 사람이였대. 무어든 보면 잊지않는 천재였대. 그런데 왜 저렇게 살아야 했어? 나 리해가 안돼. 이게 뭐야? 이게 무슨 평생이란 말이지? 오빠, 나 아저씨 볼 때마다 너무 허무해. 이세상이...>>

창호이 뇌리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비껴지나갔다. 어릴적 기억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주눅이 들어있었다. 침울했고 말수가 적었다. 단어 열개도 안되는 말 한마디로 얻은, 이십여년의 찌들리고 소외된 삶, 누구나 얼굴에 침을 뱉을수 있는 인간의 존재, 언제인가 창호는 <<아우슈비츠는 불타고있는가>>라는 책을 읽으며 엉엉 운적이 있었다. 유태인이라는 리유 하나만으로 독가실로 끌려가야 했던 사람들때문뿐만은 아니였다. 다만 누구에게인가에게 듣기 좋지 않은 말 한마디를 했다고 참담하고 암울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아버지, 그리고 캉아저씨, 그네들의 삶이 이 사회에서는 과연 그렇게 용납할수 없는것이였을가?

<<그래, 생각하면 허무하기도 해.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가? 왜 그런 강요된 삶을 살아야 했는지... 인간은 축복도 받아야지만 저주도 받아야 하는것 아니겠니? 인간은...>>

창호는 심각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을 꺾었다. 누구앞이든 심각하게 이 세상을 이야기한다는것이 부담스럽고 꺼림칙했다. 지금 캉아저씨가 경각을 다투는 이 순간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리후이, 넌 문화혁명이라는걸 모르고있는 세대야. 그러니까 넘 관심하지 마. 다만 난 네가 캉아저씨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어. 돌아가시더라도 눈물로 보내실분이 아니라고 생각해. 난 캉아저씨가 우는걸 본적이 없어. 아니, 우는걸 보는걸 제일 싫어하신분이였더랬어. 전에 농촌에 있을 때였어. 한번은 어떤 일이 있어 캉아저씨앞에서 운 일이 있었어. 그때 캉아저씨는 남자라는 자식이 눈물을 짜서 되는가 그렇게 화를 내셨어. 난 여지껏 캉아저씨가 그처럼 화내는걸 다시는 보지 못했다... 난 눈물로 아저씨를 보내고싶지 않아. 리후이, 너 내 말뜻을 알아듣겠니?>>

리후이는 창호를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모든 의미를 알았다는 표정은 아니였다. 창호는 과거 자기가 왜 그렇게 울었고 왜 캉아저씨가 화를 냈는지를 상세하게 말하기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고있었다.

카이란이 시집을 가게 된다는것을 알게 된 그날, 창호는 캉아저씨네 집에 가서 빌빌 울었다. 그러는 창호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캉아저씨는 상우에 놓여있던 석유등잔을 바닥에 동댕이치며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칼이 목앞에 와도 남자는 울면 안돼! 난 사내자식이 녀자들처럼 빌빌거리고 나약하게 구는 꼬라지만큼 보기 싫은거 없어. 넌 네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큰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에는 너보다 고통스러운 사람이 많고도 많아. 그런 일에 운다면 중국에 흐르는 강이 다 눈물일거다. 난 너보다 더 많은 아픔을 품고 살았다. 그렇지만 울지는 않았다. 누구앞에서나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돼. 그런 모습으로 남의 싸구려 동정을 사려고 해서도 안되는거야. 알았어? 네 힘으로 살아야 돼. 세상에 너를 구해줄 사람은 없어. 없단말이야! 초우타마디!...>>

창호는 캉아저씨가 네에미씹할이라는, 이런 쌍욕을 내뱉는것을 들은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첫번이요, 마지막이요, 유일하게 한번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창호는 캉아저씨가 왜 그렇게 화를 내였는가를 알수 있을것 같았고 그속에 숨어있는 심적인 아픔을 들여다볼수 있을것 같았다.

해빛이 화려하게 화창했다. 그러나 계절을 타서인지 덥지는 않았다. 입원병동의 낡은 벽돌건물벽에 듬성듬성 구멍이 나있었다. 문화혁명시기에 총싸움을 하면서 남긴 총알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의 정원은 평화롭고도 조용했다. 병실안에서는 환자들이 아픔으로 신음하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정원의 숲속은 오히려 활기로 가득했고 가을을 맞으며 여물대로 여문 나무잎들이 싱그러운 냄새를 뿜고있었다.

리후이는 벤취우에서 일어섰다.

<<너무 오래 되였잖아요? 이제 퇴원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러면서 얼굴의 눈물자국을 지우려고 가볍게 화장을 고치고는 짧은 머리를 풀어 손으로 다듬고 핀을 다시 고쳐 꽂았다.

<<오빠가 없으면 어쩔지 모르겠어요. 나 아무 방법도 생각나지 않아요. 머리가 텅 비여있어요. 오빠 정말 고마와요.>>

<<나도 뭐 생각뿐이야. 잘하려고 해도 알아야 하지? 그리고 조선족이라서 한족들 법도 잘 모르고...>>

그러면서 창호는 한숨을 쉬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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