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18>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누구나 다 잘 알듯이 우리말 1인칭 대명사로는 단수로 ‘나’를, 복수로 ‘우리’를 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1인칭 단수를 쓸 자리에 ‘나’ 대신 복수인 ‘우리’를 쓰기를 좋아한다. ‘우리 나라, 우리 학교, 우리 집’ 같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 아빠, 우리 언니, 우리 아들’까지도 모두 흔히 잘 쓰고 있다. 이런 말들은 모두가 공동 소유의 것일 수 있으니 ‘우리’를 붙일 만도 하다.

그러나, ‘우리 남편, 우리 아내’에 이르러서는 어떠한가? 듣기에 따라서는 이상하게 들린다. 이들을 공유하는 또 다른 이가 있단 말인가?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이상한 말들을 잘도 쓰고 있다.

물론, ‘우리’라는 말은 말하는 이가 자기 자신을 찍지 않고 가리킬 경우나, 자기 동아리를 스스로 일컫는 때와,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나’ 대신 사용하였을 경우에는 단수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 된다.

우리가 1인칭 단수로 ‘나’ 대신 ‘우리’를 많이 쓰는 데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공동체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집안이나 가문을 더욱 소중하게 여긴 데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가문을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고, 다른 가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남의 집으로 팔려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더욱 확장되어 민족 수호자와 애국 열사들을 만들어냈다. 외적이 침략하여 올 적마다 관군이 아닌 의병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싸우고, 남녀노소가 가리지 않고 저항한 사실들이 이를 증명하여 준다. 포로로 외국에 끌려간 사람들까지도 한국민임을 강조하고 한국인으로서의 품위와 기백을 잃지 않으려고 온갖 수모와 고통도 참아냈던 것도 모두가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다.

왕자 미사흔(未斯欣)을 탈출시키고 체포되어, 설유하는 왜왕에게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는 될지언정 왜놈의 신하는 될 수 없다’며 신라인(新羅人)의 기백을 외쳐대며 순국한 박제상(朴堤上)이 그렇고, 나라가 망한 뒤에 당(唐)에 들어가 장군으로서 서역 정벌의 큰 공을 이룸으로써 고구려인(高句麗人)의 기개를 온 세상에 떨친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그렇다. 왜국에서 생산된 것은 절대로 먹지 않겠다며 끝내 대마도에서 순절한 한말(韓末)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도 그렇다.

이러한 추론(推論)은 단수 ‘나’가 복수 ‘우리’보다 훨씬 배타적이며, 또 자기 자신만을 집어서 가리키는 국소적(局所的) 제한성(制限性)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해될 수가 있다. ‘내 것, 내 돈, 내 말, 내 일’이라고 말할 경우 자기의 독점(獨占)이나 전유(專有)의 것임을 강조하면서, 따라서 ‘너, 너희’는 관여하지 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생각하여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보통의 경우에 ‘우리 마누라, 우리 신랑’하고 말하는 것을 긍정하더라도 이러한 의도성이 들어 있을 경우에는 ‘내 마누라, 내 신랑’이라고 하는 것도 모두 이런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친근감이나 애정이 어린 뜻으로 ‘내 동생, 내 아기’라고 하여도 그 말에는 소유(所有)의 뜻이 더 큼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우리’ 대신 ‘나’가 자꾸 더 잘 쓰이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나라, 나의 학교, 나의 집’도 잘 쓰이고, ‘나의 아빠, 내 언니, 내 아들’도 흔히 사용되고 있다. ‘우리 것, 우리 방, 우리 엄마’가 ‘내 것, 내 방, 나의 엄마’로 더 잘 쓰여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집단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대가족제에서 핵가족제로 바뀌면서 개인주의가 발달하게 되고, 다시 자기위주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변화된 데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하겠다. 물론 언어학적으로는 복수 개념보다 단수 개념 위주로 잘 쓰이는 영어 등 외국어의 영향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우리’에서 점차 ‘나’로 바뀌어 쓰이는 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다. 우리들이 ‘우리’를 중심으로 하고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사는 삶에서 자꾸 ‘나’를 중심으로 하며 ‘나’를 ‘우리’보다 먼저 앞세우며 사는 삶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더 많은 이기주의자들이 양산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을 위하며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세상이 될까 그것이 걱정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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