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문학특집 --전춘화(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2007년 급 학생)

▲ 작가 전춘화
조금은 의외의 만남이였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화장을 한채 뀀점 카운터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그 녀자를 본건…

얼결에 그 녀자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어색하게나마 웃어주는 그 녀자와는 달리 우왕좌왕하며 눈길을 피하던 내 눈이 갑자기 큰 결심을 한듯 다시 그 녀자의 얼굴에 가 박힌다.

분명히 그 얼굴이다. 살짝 우로 쳐든 여우눈만큼은 여전하건만 그것 말고는 알아볼만한게 없다. 다만 더 알아볼만한게 있다면 본능적으로 내 아픈 기억을 허비는 그 녀자의 과거일것이리라…

어릴적 방학을 맞아 시골에 내려가면 내겐 할머니얼굴만큼이나 반가운 얼굴이 있다. 바로 삼촌 봉태다. 곱슬곱슬한 양머리에 가끔씩 말없이 슴벅이는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봉태삼촌은 말머리가 무거운 사람이였다. 열두살때부터 할머니뒤를 따라 농사일을 했다는 삼촌은 아침에 일찍 깨여나지 않으면 얼굴을 거의 보기 바쁠정도다. 저녘 늦게야 소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삼촌은 돌아오자마자 또 뒤뜨락에 나가 살구나무며 앵두나무며를 한번 쭉- 돌아보고 소에게도 여물을 주고 한참을 싹싹 등허리를 긁어주고나서야 시름놓고 잠자리에 드는 성미다. 그에 비해 막내삼촌은 아직 어려서인지 색시비위만 하고 농사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어제는 로무수출로 한국 나가겠다고 떼질 쓰다가 오늘엔 또 당장 이 시골을 떠난다고 란리다. 오죽 속을 썩였으면 할머니가 쩍하면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겠는가.

“도저히 늙은 이 에미힘으로는 못막아내겠으니 봉규야, 니가 좀 어떻게 해봐라.”

아무래도 맏이인 아버지만은 당해내기 힘들었던지 한번씩 아버지가 시골에 다녀오면 한동안 막내삼촌은 잠잠해지군 한다. 그러나 쩍하면 입에 담는 말이 있다.

“힝- 이대로 그냥 나가다간 서방도 못가고 여기서 로총각이 돼서 죽을게요!”

그때마다 할머니는 늘 그 자리에 없는, 그때쯤엔 또 밭에서 수걱수걱 밭갈이나 하고있을 봉태삼촌을 떠올리며 막내삼촌을 나무란다.

“니 둘째형을 봐라. 너보다 나이가 더 많아두 언제 색시비위를 하더냐- 저렇게 말없이 농사일만 수걱수걱 하구 얼마나 어리무던하냐.”

“그러니까 사람축에 못끼는게요! 소학교도 졸업못하니까 무슨 궁리가 있겠소!”

그때쯤에 할머니는 노발대발하며 막내삼촌을 살릴놈 죽일놈 욕하며 비자루를 집어들기도 한다. 누가 뭐래도 할머니에게 봉태삼촌은 그 어느 자식놈보다 더 보듬어줘야할 존재다.

일찍 과부로 돼버린 할머니에겐 농사일로 다섯형제를 다 공부시키기가 벅찼나보다. 그러나 눈이 까매서 다 공부하고파하는 자식놈들중 어느놈한테도 차마 공부 그만둬라는 말은 할수도 없어서 그런대로 버티고있었는데 어느날엔가 아침일찍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는데 열두살난 봉태삼촌이 말없이 호미를 들고 뒤를 따라오더란다.

“이눔아, 빨리 밥먹고 학교나 갈 일이지 여기는 뭣 하러 따라오는게냐?”

“어무이, 오늘은 선생님이 아파서 학교 못나온대유- 그래서 그냥 어무이 따라 가려는게유-”

언제 한번 거짓말해본적없는 봉태삼촌인지라 할머니는 별생각없이 삼촌을 데리고 김매러 가셨단다. 근데 어린 삼촌이 쉬지도 않고 어찌나 열심히 김을 매는지 할머니는 장하게 느껴져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뒤간에 숨겨놓았던 그 귀한 꿀을 마셔보라고 꺼내주셨단다.

“어무이, 난 몸이 좋아서 일없소… 그냥…큰누나 주오.”

바보스럽게 웃으며 사양하던 봉태삼촌이 문득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꺼내기는 할머니조차 놀란 일이라고 하셨다.

“어무이… 오늘에 김매본게 맥도 별루 안들구 재밋습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 공부 안하구 어무이 같이 농사나 하는게 좋겠습데… 않되오?”

“이놈아, 하라는 공부는 안하구 무슨 생각을 하는게냐? 평생 이 에미처럼 땅이나 뚜지려는게냐?”

고분고분 엉뎅이를 내밀고있으면서 슴벅슴벅 눈을 깜빡이던 봉태삼촌은 할머니눈을 피하면서 겨우 이런 말을 하더란다.

“봉규형님은… 공부두 잘하구 집안이 맏이이니 꼭 공부해서 출세해야 하오. 글구 큰누나나 둘째누나도 공부 잘하는데다가 녀자인데 어떻게 평생 농사를 시키겠소… 글구 봉림이는 이제 겨우 아홉 살인데… 어무이 혼자 농사해서 언제 우리 다섯을 다 공부시키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어무이 같이 농사해서 뒤바라지해야 하는건 나밖에 없을것 같습데…”

한낱 코흘리개로 봤던 봉태삼촌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할머니는 과부설음에 봉태삼촌을 꼭 껴안고 오래오래 우셨단다. 그리고 그뒤로 아무말없이 할머니 뒤꽁무니를 따라 농사일을 했던 사람은 봉태삼촌이였고 비록 늘 밭일에만 매달리다보니 동네에 동무 하나 없는 삼촌이였지만 봉태삼촌이 열심히 일해 뒤바라지를 한 덕에 맏이인 아버지가 그 세월에 대학까지 졸업하고 도시에서 정부기관에 배치받자 동네에서는 누구 하나 감히 봉태삼촌을 깔보지 못하였다. 동네어른들은 늦은 저녁 소수레를 끌고 돌아오는 봉태삼촌을 보면 저마다 혀를 끌끌 차며 할머니댁의 복덩이라고 칭찬을 하신다. 물론 삼촌또래들이야 세상머저리라고 뒤에서 수근대기도 하지만…

가끔씩 시골로 내려올 때면 아버지는 항상 먼저 봉태삼촌부터 찾는다. 그만큼 큰 형님을 아버지만큼 생각했던 봉태삼촌도 큰 형님이 시골로 내려온다는 말을 들으면 그날만큼은 일찍 일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동구밖에까지 마중을 나오군한다.

허나 큰 형님을 보면 봉태삼촌은 항상 그런식이였다. 벙그레 반가운 웃음을 지으면서도 그 무거운 말머리는 도저히 떼지를 못하는것이다.

“농사는 어떠냐?”

의례 농사에 관해서 말해야만 둘만의 화제를 찾을듯싶어서 아버지는 항상 이런식으로 봉태삼촌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옥수수농사는 잘된것 같소. 이제 가을이 되면 소수레에 옥수수 한주머니 실어서 형님한테 실어갈게요.”

분명히 감자농사와 벼농사도 온 동네가 잘되지 않아 법석인걸 아는데도 봉태삼촌은 아버지를 걱정시킬가봐 싱글벙글해보이며 좋은것만 골라 얘기한다.

그런 봉태삼촌이 아버지에겐 항상 고마운 존재고 안스러운 존재다. 가끔은 도시에 올라와서 운전 좀 배우고 택시 몰지 않겠니하고 아버지가 물으면 사람좋게 웃으며 그래도 할머니랑 같이 있으며 농사일이나 하겠다는 삼촌이다.

“그래, 아무때든 이 형님을 찾을일이 있으면 꼭 찾거라.”

아버지가 건네준 명함장을 봉태삼촌은 보배라도 받은듯 구김살없이 그대로 늘 입는 군대복 웃옷 안호주머니에 정히 넣고 다녔다. 허나 단 한번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적은 없었다.

다만 혹시라도 늦가을쯤엔 다 익은 옥수수나 입쌀 같은걸 한주머니에 가득 소수레에 싣고 우리 집까지 전화없이 올뿐이다.

아버지가 집에 없을 땐 전화로 어버지를 부르겠다면 기어이 인츰 돌아가야 한다며 랭수 한사발만 꿀꺽 마시고는 그냥 가버리는 삼촌이다. 언젠가는 집에서 아버지 사무실의 몇몇 동료들을 초대한적이 있었다. 헌데 식사가 끝나 그분들을 배웅하려고 밖에 나가보니 마당에 입쌀 한주머니가 놓여있는게 아닌가?

이 귀한 쌀을 왜 이렇게 마당에 내두는가 하는 동료들의 롱담을 듣는 아버지의 눈확이 갑자기 붉어지신다.

그러고는 들어오자마자 할머니댁에 전화를 건다.

“봉태? 아까 니네집에 쌀 가져간다고 수레 몰구 갔는데 아직도 도착 안한게냐?”

걱정이 실린 할머니목소리다.

분명히 집앞까지 왔건만 안에 아버지 동료들이 있으니 루추한 옷차림으로 차마 들어가기 무엇했나보다.

그날 아버지는 저녁늦게 전화온 봉태삼촌한테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내셨다.

“이놈아- 왔으면 들어오기라도 해야지! 형님집이 뭐가 그리 무서워서 발도 못들여놓는게야? 그래 니눈에는 내가 동료들앞에서 너때문에 낯이 깎여할 형님으로밖에 보이지 않은게냐?”

항상 봉태삼촌에게 따뜻하게 대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노발대발하시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리고 얼마뒤 시골로부터 희소식이 전해졌다. 봉태삼촌을 위해 중매를 서주는분이 생겼다는것이다. 누구보다 기뻐난 아버지는 급한 사무도 마다하고 날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셨다.

중매를 서주는 아줌마가 말씀하는 색시는 그분의 친동생이였다.

“아유- 제 동생이 워낙 이쁘고 집안일도 참하게 잘하는데 맞갖잖은 대상이 없어서 고민하던차 이렇게 봉태를 떠올리게 됐슴다- 봉태가 원래 어리무던하고 농사일도 막힘없이 잘하지 거기다 큰 형님도 도시에서 사업하지 하니까 내 동생에게 딱 맞는 배필인것 같아서… 호호… 봉태형님 생각에는 어떻슴까?”

얼굴에 웃음을 가득 게바른 아줌마의 모습이 웬지 속에 겡키긴 했지만 요즘들어 한결 밝아진 봉태삼촌의 표정을 보며 아버지는 잠간 고려하시다가 말문을 여셨다.

“그래도 중요한건 봉태와 그쪽 동생이 다 맘이 맞아야 되는게 아닌가싶으니 일단은 만나보게 하는게…”

“아이구- 이 정신봐라- 얼릉 만나보게 해야 하는데- 호호-”

대뜸 아버지의 한마디에 동을 달며 허둥지둥 오후에 만나보게하자는 제의를 한다.

그날 점심, 점심밥도 거른채 거울앞에서 서성이는 봉태삼촌을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집이 흔들거린다.

“그리 좋으냐? 허허…”

뭔가 들킨듯 쑥스러워진 봉태삼촌은 괜히 소에게 여물을 줍네하고 나가더니 얼마 안지나 또 인츰 들어와 머리도 빗어보고 아버지가 준 양복도 다듬어본다.

“니 맘에 든다면 인츰 말하거라… 이 형님이 잔치상 하나 못차려주겠냐?”

그리고 그날 오후로 할머니와 부모님, 이모까지 줄줄이 색시집으로 다녀왔다. 한달후 봉태삼촌은 드디여 그 색시와 결혼식을 올렸다. 눈꼬리가 여우처럼 쳐들린게 흠이긴 하다만 색시를 얻어 내내 흐뭇해하는 봉태삼촌에게 그것마저 어쩌면 이쁘게 보였을지도…

“결혼하거들랑 니 안해를 제몸처럼 아끼구 깨알이 쏟아지게 잘 살아야 한다. 이 에미에게 손주 낳아주는것도 잊지 말구-”

이런 말을 하시면서도 봉태삼촌이 결혼하는게 꿈만 같은지 할머니는 자꾸 눈굽을 찍으셨다.

“우리 봉태가 너무 말수가 적어서 답답하더라도 자네가 많이 이해하게-”

“어머님, 무슨 말씀을… 난 그냥 봉태 같은 사람 만난게 얼마나 감사한데요-”

온몸에 닭살이 쫙 돋도록 해사하게 웃으며 봉태삼촌의 팔을 살짝 치는 그 여자, 아니 아지미의 대답에 할머니는 오랜만에 입을 오무리고 호호 웃으신다. 옆에선 부모님과 친척분들의 흐뭇해하는건 물론이고 봉태삼촌까지도 얼굴이 빨개져 머리를 못들 정도다.

일년뒤, 아지미가 덜컹 해님 같은 명이까지 낳자 날마다 농사일을 나가는 봉태삼촌은 힘든줄도 모르고 또 밭을 사들였다. 물론 농사는 봉태삼촌 혼자몫이였다. 결혼한 첫몇달은 그런대로 삼촌의 꽁무니를 따라 농사하러 갑네하던 이모가 배가 불어나기 시작해서부터 집에 누워만있더니 명이를 낳은 뒤에도 집에서 명이를 봅네하면서 관심하지 않는다.

“에구- 그 집 봉태 그러다 지쳐 쓰러지겠소.”

맘 좋은 동네할머니들이 혀를 끌끌 차도, 할머니 가슴이 아파도 늘 명이를 안고 해쪽해쪽 웃으며 할머니앞에서 뱅뱅 도는 아지미한테 뭐라고 말할수는 없었나보다.

그래도 봉태삼촌은 늘 웃었다. 저녁에 들어오면 대충 밥이라도 차려주는 안해가 있어서 행복했고 손을 내밀면 아빠를 알아보고 냉큼 안기는 명이가 있어서 행복했나보다. 혹시라도 곡식을 팔러 장터로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봉태삼촌의 웃옷호주머니에는 쪽지 한장이 들어있다. 아지미가 사오라고 시켜준, 명이한테 줄 리본이랑 자신이 쓸 화장품 같은걸 적은 종이다. 그걸 보배마냥 간직하고있다가 돌아올 때쯤엔 어김없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종이에 적은 그대로를 사갖고 돌아오군 한다.

방학에 나까지도 시골에 있을 때면 아예 명이와 똑같게 내몫까지 사오시는 삼촌이다. 그것도 나한테 직접 건네주는 법이 없다. 슬그머니 할머니집에 왔다가 가마목에 놓고 가면 그만이다.

삼촌이 한번씩 장에 다녀오는 날이면 누구보다도 해쭉해쭉 웃으며 좋아하는게 아지미다. 삼촌이 사온 물건을 이것저것 발라도 보고 걸어도 보다가 “어머- 시장하시죠?”하면서 또 밥상을 차리느라 부산을 떤다.

“에그- 봉태- 이 녀석- 그래서 예전보다 장에 부쩍 나가는구나…”

어느날엔가 장보고 온 삼촌집에 잠간 들렀던 할머니가 그 정경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하신 말씀이다. 맨날 농사하러 나갈 때 입는 운동복을 입고있으면서도, 장보러 갈 때마저도 그걸 입으면서도 어쩌면 아지미와 명이에게 웃음을 줄수 있다는 리유때문에 늘 삼촌의 소수레는 장으로 향했으리라…

아지미는 낮에도 늘 마실을 다녔다.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남편 따라 소수레에 앉아 밭에 나가는 아낙네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이쁜 옷에 처녀 뺨치는 화장으로 동네나들이나 다니는 아지미가 어린 우리 조카들눈에는 낯설게보일수밖에 없었다. 이젠 결혼한지도 어언 6년 세월, 그래도 우리 조카들에게 아지미는 그닥 반기고싶고 매달려 칭얼거리고싶은 존재는 아니였다. 가끔은 할머니앞에서 우리 손에 사탕도 쥐여주고 돈도 쥐여준다지만 받으면 기쁠 대신 웬지 속이 켕기는게 이상했다.

설날때 온 가족이 할머니집에 모이면 두팔을 썩썩 거두고 부엌에서 단 한칼에 숙련된 솜씨로 씨암탉의 목을 베여내고 구수한 닭곰을 만드는 고모나 주방에서 잽싼 솜씨로 갖가지 색갈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엄마와는 달리 우리 조카들틈에 끼여 화투판이나 벌리는 아지미가 얄미웠다.

“아지미는 왜 우리 엄마랑 같이 일 안하구 놀아요?”

어느 한번인가 철없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가 엄마한테 된 꾸지람을 받은 뒤로 더이상 입을 함부로 놀릴수는 없었지만 그대신 우리 조카들은 화투놀이 할 때면 셋이서 한단이 되여 아지미 돈을 따는것으로 불만을 잠재웠다.

동네에서도 아지미는 별로 소문이 좋지는 않았다. 누구 입에선가 아지미를 요사하다느니, 정파답지 못하다느니 하는 말들이 흘러나왔지만 서럽게 할머니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던 아지미는 드센 할머니의 두둔에 동네를 잠잠하게 만들어놓기도 했었다.

허나 어느순간부턴가 처음엔 잔잔한 바람처럼 조금씩 귀속말처럼 동네아낙네들의 입으로 돌던 소문이 드디여 할머니의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글쎄 삼촌이 낮에 밭일을 나간 사이 아지미가 몇번인가 집에 동네 로총각을 들여놓았다는것이다. 동네사람들은 밭일하다 잠간 쉴 때에도 저녘에 동네 큰 나무밑에 모여 한담할 때도 늘 그 일을 화제거리로 삼군 했다. 거기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있는게 자랑인듯 서로 최신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아지미는 억울하다며 펄펄 내뛰였고 “명이 에미가 좀 약긴 하지만 그런짓까지 할 사람은 아닐세.”하며 할머니까지 두둔해나섰다. 헌데 그 일이 삼촌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그렇게도 무던하고 점잖던 삼촌이 꼬리에 불이 달린 황소처럼 화산 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아지미를 편하게 놀게 하고 농사를 열심히 해서 명이를 학교보내고 집에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으면 다 되는줄 알았던 고지식한 삼촌이다. 가끔은 부부끼리 정담을 나누며 밭에 나가는게 부럽긴 하지만 그것마저 원하지 않았던 삼촌이다. 그러한 삼촌이였으니 아무리 소문이래도 그런 말에 꿈쩍 안할리가 있었을갉

저녁에 노기등등해 돌아온 삼촌과 아지미는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아지미는 대뜸 울며불며 그렇게 믿지 못하겠으면 리혼하자느니 뭐니 하면서 명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버렸다.

“에이그- 이 못난놈아- 니 녀편네를 니가 못믿으면 누가 믿겠냐! 눈으로 확인도 못한이상 서로 믿고 따라야 하는게 부부거늘…”

할머니의 꾸중에 며칠뒤 삼촌은 다시 아지미에게 손이야 발이야 빌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다시 잠잠해진지 한달이 지났나… 어느날 아침인가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아지미가 동네가 떠나갈듯 울고불고 떠들며 할머니집에 들어섰다.

“아니… 이게 뭐냐!! 혹시 이게 우리 봉태가 때린거냐? 엥? 어서 말해보거라!!”

“어무이- 흑… 흑… 난 정말 봉태하구 못살겠슴다…”

아지미가 늘여놓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제 점심 웬일인지 삼촌이 느닷없이 집에 뛰여들더란다. 그때 마침 아지미와 소문이 나있던 그 옆집총각이 도끼를 빌리려고 왔을뿐인데 삼촌은 단통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어 그 총각의 면상에 불이 번쩍 나게 주먹을 안기고는 아지미에게까지 손을 댔다는것이다.

가슴까지 치며 통곡하는 아지미앞에서 할머니의 얼굴이 푸르딩딩해진다.

“명이에미… 앞서게.내 가서 그 몹쓸놈을 좀 봐야겠네…”

“흑… 싫슴다… 난 명이 데리구 그냥 언니네 집에 가있겠슴다… 이제는 매까지 다 맞구… 서러워서 어떻게 살아야 함까…”

겨우겨우 아지미를 얼려보낸 할머니는 심장이 크게 놀랬는지 떨리는 손으로 강심제 몇알을 입에 넣으시더니 급히 날 끌고 봉태삼촌집으로 걸음을 재우치신다.

“봉태 있느냐-”

바짝 열기가 오른 할머니가 열려있는 울바자사이로 고래고래 소리쳐봐도 반응이 없다. 문이 열려져있길래 들어가봤더니 이불을 푹 뒤집어쓴채 삼촌이 자고있었다. 아니, 자고있은게 아니라 자는척했다는 말이 더 적절했을것이다.

“이 못난 놈- 일어나보거라…!”

이불을 홱 걷어채며 할머니는 삼촌을 강다짐으로 끌어내 앉힌다.

고개를 푹 숙인 삼촌은 아무말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조차 알아맞추기 힘들 정도로 삼촌의 얼굴은 가려져있었다.

“까짓 소문에 흔들려서 녀편네한테 손까지 댔단 말이냐? 이 에미가 너한테 이렇게 실망하긴 처음이다. 소문이 날수록 명이에미를 더 아껴주고 위로해주지 못할망정 매까지 들이댔으니 이젠 동네에서 뭐라 하겠느냐? 소문이 잠재워지지 않고 더 불거질께다… 명이에미랑 계속 살고싶다면 빨리 가서 명이에미한테 빌거라. 다신 그러지 않을거라고…”

허나 삼촌은 꼼짝하지 않는다. 축 늘어져버린 늙은 범마냥 커다란 체구는 맥을 버린채 앉아있긴 하나 할머니가 어서 일어나라고 흔들어봐도 이미 그 자리에 굳어진 몸마냥 그 순간만큼은 꼼짝 않는다.

“머리 들거라… 에미 좀 보자… 대체 무슨 생각하는지 에미가 좀 알아채기라도 해야 될게 아니냐…”

할머니의 독촉에 가까스레 머리를 든 삼촌의 눈은 벌겋다. 운것 같진 않은데… 운것보다 더 슬픈듯한 느낌이 그 커다란 눈에 실려있었다.

어쩔수 없다는듯 봉태삼촌의 집을 나서는 할머니의 수심이 짙어간다.

“할머니, 왜 자꾸 삼촌만 탓해요? 아지미가 진짜 바람 핀것일수도 있잖아요.”

어린 내 눈엔 삼촌이 불쌍했다. 어린 내 눈으로 척 봐도 잘못한쪽은 아지미인것 같은데 할머니는 왜 끝까지 잘못을 삼촌에게 돌리는지 알수 없었다.

“그러냐? 니눈에도 그렇게 보이냐? 근데 이 할매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봉태 앞으로 어떻게 사노… 차라리 로총각으로 늙게 했을것을 괜히 결혼시켰나…에이구…”

뭐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나는 할머니가 아지미편에 서주는게 봉태삼촌을 위한거라고 들었다. 그게 어떻게 봉태삼촌을 위한것일가? 언제부턴가 수염도 잘 깎지 않고 초췌해가는 삼촌을 보면서도 아지미편에 서는게 삼촌을 위한 길이였다고?

그렇게 사흘이 지나갔다. 그동안 동네에서는 또다시 쉬쉬하며 소문이 돌고있었다. 항상 아지미만 정파답지 못하다고 의심하며 봉태삼촌에 대해선 어질고 순박하다고 칭찬하던 동네사람들이 웬일인지 서서히 삼촌에게 손가락질을 하는것이다.

“뭐시라? 봉태가 녀편네한테 손까지 댔다구?”

“그래 말이유- 동네에서 녀편네에 대한 소문이 안좋으니까 속이 안좋았던게지-”

“그래도 어찌 녀편네를 때리나? 봉태 그 녀석 점잖은줄만 알았더니… 다시 보게 되는구려…”

그런 흉흉한 소문들을 들으면서도 봉태삼촌의 성미를 잘 안다는 할머니는 봉태삼촌을 걱정하면서도 강다짐을 먹고 절대 삼촌한테 들르지는 않았다. 속이 깊은 놈이니 분명히 생각을 추스리고 어찌됐든 아지미한테 용서 구할거라는 생각때문이라 한다. 헌데 동네사람들이 자꾸 할머니한테 이런 귀띔을 해준다. 아지미가 언니집으로 가버린 그날부터 사흘째 삼촌이 밭에 농사하러 나오지 않더라는것이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할머니한테 자꾸 가보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은척을 하셨다. 허나 사흘째 동네에서 자꾸 흉흉한 소문이 도니 그때서야 할머니는 더이상 버틸수가 없었던지 또다시 날 데리고 봉태삼촌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끼니는 제대로 해먹었을가 하는 생각에 삶은 소고기도 보자기에 정히 싸서 들고 한걸음에 봉태삼촌네 집문을 확 열어제낀다. 사흘전 봤던, 덮고있던 이불은 그대로인데 그안에 누워있어야할 삼촌이 없다. 집안 곳곳을 찾아봐도 삼촌은 없다. 설마 변소갔나싶어서 변소문까지 와락 열어보던 할머니다.

이웃집에 행방을 물어봐도 본적 없다는 한마디뿐이다. 동네에 별로 친구라 할만한 사람도 없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다. 밭에 가봤지만 그곳에도 없다. 끝내 그 죽을놈의 불안때문에 할머니는 오열을 터뜨린다.

“어이구- 이 봉태새끼- 어딜 간게냐… 이렇게 에미속을 다 태울 작정인게냐-”

촌장아저씨가 급히 마을회의를 열고 사람들을 동원해 봉태삼촌을 찾자 하기에 이르렀다.

“어제 산에서 봉태를 본적이 있스꾸마…”

제일 늦게 도착한 털보아저씨가 그나마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될듯한 단서를 제공했다.

“뭐? 산?”

몇년전에 이 시골에 살던 대장간집 령감이 산에서 절로 목숨을 끊은적 있은지라 사람들은 숨이 다 막힌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도무지 입을 열지를 못한다.

“에끼- 이 사람들 무슨 못된 상상들을 하나- 그냥 바람쐬러 간것뿐이겠지. 이보게들, 이제부터 셋씩 한조가 돼서 산쪽을 샅샅이 훑게.”

촌장아저씨의 지시에 그제야 사람들은 셋씩 한조가 돼서 뿔뿔이 흩어진다.

겨우겨우 사람들에 의해 부축을 받으며 산에 오르는 할머니는 자꾸자꾸 불안한 마음때문에 눈물을 감추질 못한다.

그때쯤, 어디쪽에선가 “봉태 발견했으꾸마- 여기 여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질겁한 사람들이 서서히 그쪽으로 모이기 시작할 때쯤 할머니는 그 자리에 풍덩 물앉아 오히려 이런 이상한 말만 하셨다.

“우리 봉태… 그기 있는게요? 내…내 여기 있을테니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하오. 내 우리 봉태갉 무사할줄 알았소.”

“삼…삼촌…”

사람들이 몰려있는걸 봐선 필시 뭔가 안좋은 일이 있을거란 생각에 울먹이며 삼촌을 불렀다. 많이 걱정했냐고 사람좋게 웃으며 저쪽에서 막 뛰여올것같은 마음때문에 애타게 불렀는데도 그쪽은 아무런 미동도 없다.

“봉태야- 이눔 자식아- 거기서 뭐하는게야? 에미가 왔는데도 여기로 오지 않고 거기서 뭐하는게야- 봉태야- 봉태야!!”

서서히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높아간다. 실신을 해서 쓰러지셨다가도 다시 일어서서 또 울부짖고… 동네아줌마들이 할머니를 부축해서 겨우겨우 산을 내려왔다. 동네아저씨들에게 들려내려온 봉태삼촌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였다. 다만 약독이 온 몸에 퍼져 거멓게 돼버린 시체였다. 믿을수 없는 현실때문에 그때까지도 울며불며 “우리 삼촌 왜 죽어요?”라고 주위사람들에게 물어야 했던 어린 내게 자살이란 아득히도 먼 일이였었다.

친척들이 다 모인 그 자리에서 뒤늦게야 사실을 알고 달려와 “아이고- 여보- 날 두고 먼저 가버리다니… 이제 나는 어떻게 살라고-”하며 울고부는 아지미가 미웠다. 며칠전 할머니한테 달려와 억울하다고 울고불고 할때의 그 모습 그대로다. 자꾸만 삼촌의 그 순박하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삼촌의 자살을 믿을수가 없었다…

.봉태삼촌의 자살리유에 대해 온 동네가 수근대며 퀴즈 맞추기라도 하는듯 서로서로 추측하는 동안 자신이 모질게 굴어서 불쌍한 봉태삼촌을 죽인거라며 매일매일 락루하던 할머니는 두달만에 삼촌의 뒤를 따라가셨고 그 침울속에서 어느샌가 명이를 데리고 아지미는 종적을 감추였다.

그리고 1년뒤, 그날도 가족들은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아픔만이 기다리고있는 시골땅을 밟았다. 동네어른들이 모여 자그마한 술자리가 벌어진 그 분위기는 침울했다. 나름 그동안의 회포를 나누며 최대한 1년전의 일은 꺼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필시 그 자리는 분명히 1년전의 그 음영이 함께한 자리였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을 확 열어제끼며 봉태삼촌 옆집에 살던 총각이라는자가 문득 비틀거리며 들어선다. 어디서 술을 거나하게 먹었는지 걸음새조차 제대로 잡지를 못한다. 웬일인가싶어 놀란 어느 아낙네가 달려가 부축을 하려는참에 그 총각은 거칠게 부축하려는 손을 팽개치며 거의 기여서 엉기적엉기적 술상께로 다가왔다.

“봉태 아부지… 꺽- 용서해줍지 예? 꺽-”

딸국질까지 해가며 용서해달란 말만 되풀이하는 그 총각이 이상했던지 다시한번 술상에서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벌써 눈치 빠른 몇몇 아낙네들은 낌새를 챘는지 지들끼리 수근덕거렸고 괜히 사고라도 생길가 념려돼 총각을 끌어내가려고 손발을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걸을 맥도 없으면서 자신을 끌어내려는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는 그 힘만은 강렬했다. 수없이 딸국질을 하다가 갑자기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실없이 웃기도 하던 그 총각…

“사람 죽은 날엡 꺽- 당신네들은 편안히 꺽- 앉아서 이렇게 술이나 먹어도- 꺽- 난 못그래꾸마… 꺽- 봉태 이 새끼… 꺽- 죽지만 안했어두 내…이렇게 주정뱅이 되지 않았을텐데…”

누군가 건네주는 랭수에 대충 목을 추기고 그 총각은 사람들 모두가 놀랄 한마디를 던졌다.

“봉태 밭일갔다 돌아오던 날엡 사실은 봉태집에서 명이에미랑 그 짓을 하고있었스꾸마. 봉태가 보구 명이에미 귀썀을 때리길래 잘못했다구 빌구 소문내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이 사람아- 어찌…!”

억이 막혀 아무말도 못하는 할아버지와 옆에서 화를 참지 못해 술병을 들고 저놈을 박살내겠다고 설치는 막내삼촌을 말리는 사람… 그속에서 말없이 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날 죽이든말든 맘대로 합소… 이제 나는 편해져도 됩지… 예? 그동안 꿈마다 봉태 보여서 바루 자지도 못했는데…”

또다시 비칠거리며 문턱을 넘어서는 그 총각을 보며 그때쯤이야 모든게 풀리는듯싶었다. 조금씩 풀려갈수록 죽도록 아지미가 미워나는건 웬일일가? 용서하겠다고 약속한 삼촌이 혹시라도 소문을 낼것 같은 불신때문에 먼저 할머니한테 달려와 울고불고 선손을 쳐야만했던 아지미는 대체 어떤 사람이였을갉 그리고 아지미의 배신과 할머니의 불신, 그 속탄 마음을 함께 술로 달래줄 사람도 없었던 봉태삼촌은 대체 어떤 생각들을 하였던걸갉 처음으로 동네사람들의 억울한 손가락을 받는것도 야속했고 자신의 편에 서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는것에도 삼촌은 속상했을것이다. 농사와 가족이 전부였던 봉태삼촌에게 아지미는 봉태삼촌의 전부가 아니였다. 그럼에도 그 가족을 버릴수가 없어서 결국은 그 못된 약속때문에 변명 한마디 안하고 자신을 버려야만 했던 바보 같은 삼촌은 말그대로 시골남자였다. 결혼할수 있어서 행복했던 그 거대한 느낌이 결국엔 감내할수 없을만큼 거대한 아픔을 불러왔던것, 허나 기억속에 자리잡아있는 봉태라는 사람은 우리 삼촌이였다…

파도같이 갑자기 밀려오는 기억때문에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20대부터는 음료아닌 술이라며 술을 붓어주는 친구에게 잔을 내민채 슬그머니 카운터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그곳에 그 녀자는 없었다. 이젠 술을 마실 나이, 이 나이의 내앞에서도 그 자리에 계속 그 녀자가 앉아있었다면 필시 나는 잔의 술을 몽땅 굽냈으리라.

텅빈 그 자리에 그 녀자가 없었지만 나는 그 자리를 오래도록 보고 또 보았다. 어쩌면 그 녀자가 있었다 가버린 자리는 다 그렇게도 휑뎅그레한것일까…

술의 맛을 느낀다. 쓰겁지만 그래도 오늘은 즐겁다. 마시는게 아니라 술을 배우고있는것이라서 그 술에 봉태삼촌의 순박한 얼굴까지 함께 마셔버리고싶은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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