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허련순

누군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타인의 돈을 주었을 때 제일 먼저 어떤 반응을 보일가?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달라야 하는것이 상식일텐데도  이외로 거의 비슷한 반응이라는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대부분 순간적으로 발로 돈을 밟고 시치미를 뗀단다.

그리고  빠르게 주위부터 살핀다는데 그것은 리성을 동반하지 않은 인간의 무의식계통에서 일어나는 가장 빠른 반응이라고 한다. 주위를 확인하는것이 왜 필요했을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주은 돈은 내것이고 본 사람이 있으면 내것이 아니라는 빠른 계산 때문이 아니면 가장 원초적인 인간본능에 의한 무의식행위일것이다.

그녀가 반지를 주었을 때도 옆에 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자기것으로 만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반지가 다이야라는것을 몰랐다. 몇푼 안되는 악세사리로만 간주하였고. 그래서 그것을 자기것으로 만드는것에 훨씬 쉬웠을것이다. 그녀는 열흘 동안이나 다른 사람의 다이야반지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아무런 가책과 죄의식도 느끼지 못했고 아무런 긴장감이나 불안감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다이야라는것을 알았더라면 쉽게 호주머니에 넣지 못했을것이라고 나중에 말했지만 그것도 다 믿을수 없는 말이다. 다이야반지임을 알게 되였고 임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된후 오히려 반지를 소유하고싶은 욕망이 더 강렬해졌다는 사실을 그녀는 부인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자기의것이 아니였지만 지금 와서 그것을 임자에게 돌려주는것은 마치 자기의 물건을 남한테 주어야 하는것처럼 아깝고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단순히 자기의 소지품속에 열흘간 함께 지냈다는 리유에서만이였을가?


1

그무렵, 그녀는 려관청소를 하면서 손님들이 두고 가는 물건을 모으는데  은근히 재미를 붙이고있었다. 처음에는 버리기 아까워서 그냥 모아두었는데 차츰 욕심이 생겨 더 돈되는 물건은 없을가, 두리번거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가 주은 물건중에는 녀자들의 머리를 묶는 헝겁띠나 큐빅이 박힌 삔, 그리고 립스틱이나 파운데이숀이 있는가 하면 아이라이너와 립라이너를 그리는 펜슬이나 눈섭을 올리는 마스카라도 있다. 운이 좋을 때는 예쁜 귀걸이나 반지 그리고 제법 이쁘고 깜찍한 부로찌도 있다. 일부러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잊고 미처 챙겨가지 못한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그속에는 꽤 비싼것도 있었지만 그것을 찾으려 오는 손님은 없었다. 부부도 아닌 외간남자와 녀자가 려관에서 자고 갔는데 불륜현장에 다시 나타나 자기 얼굴을 확인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을것이다.

간혹 틀이를 놓고 가는 로인네들도 있었다. 하지만 틀이는 꼭 다시 와서 찾아간다. 틀이가 비싸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한번 틀이를 맞추는데 치과에 다니는 그 번거로움도 만만치 않기때문일것이다. 그런데 틀이라는것이 이상하다. 려관방에서 보는  틀이는 치과에서 보는 틀이보다 다르다. 마치 타인의 냄새나는 치부를 들여다보는듯 징그럽고 끔찍스러워 소름이 돋는다.
그녀가 려관방에 놓고 간 손님의 틀이를 쓰레기통에 넣어 페기처분한 일이 있었다. 손으로 만지는것조차 몸서리쳐져서 비자루로 그냥 쓰레기 주머니에 쓸어넣어버렸다. 그런데 이틀날 임자가 찾아와서 틀이를 내놓으라고 하는 바람에 하루종일 두더지처럼 냄새나는 쓰레기더미에 코를 박고 틀이를 찾는 곤혹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날 그녀는 주인녀자앞에서 재수없다고 툴툴거렸다.
“이도 없는 분들이 련애는 왜 한답니까?”
“야가 시방 무러카노? 이가 없따꼬 잇몸도 없것나? 이가 없으믄 잇 몸으로 한다카드라.”
주인녀자는 틀이를 한 로인네들이래도 많이만 왔음 쓰겄다며 킬킬 웃었다…

그때 주인녀자가 인터폰으로 그녀를 찾았다.
“희아, 특실손님이 나겄어.”
“네 가요.”
그녀는 필요한 비품을 챙겨가지고 비상층계로 올라갔다. 특실은 4층에 있었다. 엘레베터가 있었지만 직원들은 손님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비상층계를 리용하게 되여있다. 려관에 오는 손님들은 누구나 타인의 눈에 띄는것을 제일 꺼린다. 손님과 손님끼리 만나는것도 그렇지만 주인들이나 일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것도 원치 않는다. 그런 곳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때문에 주인은 직원들에게 엘레베터나 복도에서 손님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한다. 

손님이 타고온 차번호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번호판 막이를 사용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고 손님들이 정사를 나누고 돌아갈 때 방키를 카운터에 맏기지 않고 엘fp베터에 놓고 갈수 있도록 거기에 바구니를 놓아두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손님들은 방값을 낼 때만 카운터에서 잠간 주인과 얼굴을 마주볼뿐 그외에는 타인과 얼굴 마주칠 일이 없다.
희아, 그녀의 이름은 원래 희아가 아니라 봉희였다. 박봉희. 그녀가 이곳에 취직하던 날, 주인녀자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와따, 봉희가 뭐꼬? 촌스럽게스리. 봉짜 빼고 그냥 희아라코 부르는게 안좋나?”
“글쎄요…”
그녀의 반응은 어눌하고 애매했다. 이름을 고치는것이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이름을 고치는것은 그녀한테 별로 큰 의미가 없었다. 잠시 돈만 벌고 떠날 곳인데 봉희면 어떻고 희아면 어떠랴. 그냥 이름없이 아줌마로 불리워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을것이기때문이였다.
“그케 하는데 의견없재?”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였다. 다그치는 주인녀자의 눈빛은 다른 대답을 원하지 않는것 같아서였다.
희아로 불리우는것이 한참은 얼굴에 벌레가 기여가는듯 간지럽고 따끈따끈했지만 그런 느낌도 잠간이였다. 일년간이나 쭉 그렇게 불리우고나니 오히려 봉희란 이름이 촌스럽고  거슬렸다. 희아로 불리면서  봉희가 아닌 또다른 희아로 사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원래의 이름에서 봉자 하나만 줄였을뿐인데도 훨씬 아련하고 이쁘고 세련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로 하여금 희아가 아니고 봉희라는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사람은 남편이였다. 희아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수없이 말해주었는데도 그녀의 남편은 어김없이 봉희라고 불렀다.
“봉희 있시예?”
물어보나마나 카운터로 하는 남편의 전화다. 남편은 카운터로 전화할 때만 주인녀자의 부산말씨를 따라할려고 무진 애를 썼다.
“봉희가 누군디예? 여기 그런 사람 없는디예?”
“거기 중국아줌마 없시예?”
“중국아줌마라꼬? 중국아줌마는 있어예.”
주인녀자가 전화를 바꾸어주면서 눈살과 함께 입까지 비튼다.
“니네 남편도 고집이 여간찮다. 말끝마다 봉희, 봉희, 희아라코 불르면 어디 덧니난다카나?”
“소를 잡자나요? 그러니깐 소를 닮아가나봐요.”
그녀는 주인녀자한테는 롱담을 했지만 남편한테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아무리 세련되고 우아하게 살고싶어도 남편이 눈치없이 자기를 촌스럽게 끌어내린다는 생각에서였다.
“여기서는 희아라고 부른다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씀까?”
그녀가  이발사이로  찢어발기듯 안타까움을 호소한다.
“한국에서는 술집 같은데서만 이름을 바꾼다던데 거기 혹시 술집이요?”
“술집은 무슨. 려관이라고 몇번 말했씀까?”
“려관인데 왜 이름을 고치는가 말이 내말은.”
“내가 그러고싶은게 아니구 여기 사람들이 신경쓰여서 그런다니깐…”
“글쎄 왜 남의 이름이 신경쓰이냐구?  그게 이상하단 말이 내말은 .”
남편은 그녀를 믿지 못하는듯했다. 전화를 할 때마다 어디냐, 뭘 하고있느냐부터 묻는다. 간단하게 대답을 하면 자세히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면 꼬치꼬치 따지는 차수가 늘어나서 짜증스럽다. 그는 위장결혼을 하고 한국간 녀자들 대부분이 한국국적을 얻어내기 위하여 한국남자와 한집에서 동거한다는 말을 친구들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니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면 말이 위장결혼이지 사실상 부부로 살고있는것이 한국쪽 현실인데 어느 남자인들 걱정이 되지 않겠냐, 오히려 걱정을 하지 않는 남자가 더 이상하다고 한다.
그 도적놈하고는 지금도 만나냐, 제일 마지막에 만난것이 언제냐고도   불쑥불쑥 물어보기도 했다. 갑자기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어물거리면  대답이 시원치 않는걸 보니 만나고있구만, 하고 넘겨짚거나 다그치기도 한다. 남편이 도적놈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그녀가 한국에 가기 위하여 서류상으로 결혼한 한국남자를 말한다.
 
그녀가 특별히 특실청소를 좋아하는것은 김사장이 데리고오는 젊은 녀자때문이다. 대림장의 특실은 다른 방보다 더 크고 호화롭고 가격도 배로 비싸 보통손님들보다 돈있는 손님들이 많이 리용한다. 김사장은 거의 한주에 한번씩 오는데 그가 데리고 오는 녀자는 하루에 호텔 몇곳을 오가면서 여러 남자를 상대하는 젊은 녀자다. 팬티 한장에도 몇십만원짜리를 입고 다니고  빽이나 화장품이나 소지품들은 모두 수입품이다. 그러다보니 그녀가 버리고 가거나 두고 가는 머리삔이나 브로찌, 그리고 화장품들은 보통 몇십만원씩 하는것들이다.
그들에게서 이런것들은 살과 살을 부비면 자연히 떨어져나가는  비듬정도일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지겹고 힘든 로동을 견디는데에 큰  위로와 보람이였다. 그리하여 특실청소를 들어갈 때면 새로운것을 꿈꾸는 소녀처럼 들뜨군 했다.
오늘은 뭘 주을가? 머리삔? 아니면 브로찌?
가끔은 김사장의 젊은 녀자의 하얀 스카프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차분한데다가 반짝반짝 윤택이 흐르는 폼이 진짜  실크인듯했다. 미친 녀자가 아니고는 그 비싼 실크스카프를 려관에 두고 갈리는 없겠지만 희아는 잠자리에서까지 젊은 녀자의 스카프를 떠올리군 한다. 만약 김사장의 젊은 녀자가  끝까지 그것을 려관방에 내버리고 가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돈을 다 벌고 귀국할 때는 꼭 그 녀자의 스카프와 똑같은것을 사가지고 귀국할것이라고 그녀는 마음먹고있었다.
그녀는 늘 그랬듯이 청소하기전에 침대머리부터 꼼꼼히 살폈다.  녀자들은 남자와 정사를 나누면서 머리삔이나 머리를 묶어던 끈을 뽑아서  침대머리에 놓고는 그냥 가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또 침대와 시트사이를 들어보기도 한다. 가끔씩 동전이 침대시트틈사이에 끼여있을 때도 있다. 손님들이 급할 때는 옷을 입은채로 서로 껴안고 딩굴면서 옷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모양이다. 그런 날이면 오백원짜리 동전외에 천원짜리나 오천원짜리 지페도 줏는다. 하지만 이날은 일진이 나쁜 날인듯했다. 침대밑이며 화장품 진렬장이며 차를 마시는 차탁우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백원짜리 동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웬일이지? 김사장의 녀자가 바뀌였나?

매일마다 팁을 놓던 손님이 갑자기 팁을 놓지 않았을 때처럼 허전하였다.
에이 깍쟁이들. 그녀는 깍쟁이라 욕하면서 손님이 어지럽혀놓은 침대호청을 걷어냈다. 매일마다 하는 일이지만 할 때마다 근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혼자서 침대호청을 갈아끼우는 일은 녀자들이 하기에는 너무도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대부분 려관들에서는 침대호청을 갈아끼는 일만은 젊은 남자들을 쓴다고 한다.
그녀는 먼저 침대머리쪽의 매트를 들고 깨끗한 호청을 단단히 끼우고나서 반대쪽의 침대모서리를 발로 지긋이 밀면서 시트를 량손으로 바짝 당겼다. 그녀의 가느다란 팔에 파란 힘줄이 그녀를 리탈하려고 악을 쓰는듯 아슬하게 불거져있었다. 한껏 당겨진 호청을 구김이 가지 않게  안간힘을 써가며 침대메트사이에 말아넣는다. 다음에 량옆의 호청을 반듯하게 당겨서 안쪽으로 말아넣는다. 나무 판대기에서 갓 들어낸 두부판 처럼 침대가 반듯하게 정리되자 그녀는 이리저리 태쳐져있는 이불을    개여서 침대끝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놓는다. 침대가 다 손질되자 거울앞에 지저분하게 버려진 면봉이며 휴지를 비닐주머니에 쓸어담은 뒤 걸레로 진렬장을 닦고 스킨, 로션, 무수, 그리고 콘돔을 차례로 비취한다.  소형랭장고에는 비타오백 한병과 오렌지쥬스 한병을 채워넎는다. 마지막으로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는 두장의 타올로 번갈아가면서 방바닥을 문지르고나서 휴지통까지 마저 비운다. 방청소가 끝나자 화장실과 욕실 청소를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정사를 나누고 빠져나간 뒤자리를 치우는 일은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주체못할 인욕과 씨름한 침대의 모습은 늘 태풍이 휩쓸고 간 백사장 같다. 여기저기 나딩구는 시트며 이불이며 타올이며  휴지며… 코 같이 찐뜩찐뜩한 액체가 묻어있는 냄새나는 휴지뭉치들은 하루종일 울렁증이 일게 한다. 처음에는 맨손으로 휴지를 만졌다가 손가락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휴지쪼가리들을 뜯어내면서 먹은것을 다 토해내기도 하였다.
  그녀는 욕실 거울에 튕겨진 물방을을  닦고 샴푸와 린스, 욕제, 치약을 차례로 정돈하고 쑤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탕안을 빡빡 문지른다. 다음에 락스를 풀어 변기안을 문지르고 나중에 마무리로 바닥에 물을 끼얹는다. 언제나 똑같은 순서다. 그런데 그때 땡그랑 하는 야무진 쇠소리가 화장실 바닥에서 딩굴었다.

2


뭐지? 하수구 수채구멍에 유난히 반짝반짝거리는 물건이 걸려있었다. 까만색 테두리에 중간에 당콩알만큼한 하얀 알이 박혀있었다. 그 하얀 알이 보석처럼 유난히 빛나고있었다. 순간, 하복부를 질주하는 간지럼 비슷한 쾌감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멋진 남자반지였다. 그것을 집어올리는 그녀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물밑에서 맨손으로 퍼득거리는 큰 물고기를 낚아올렸을 때처럼 벅차고 경희로웠다.
이게 단희아버지한테 맞을라나?
그녀는 자신의 약지와 무명지, 검지에 번갈아 끼여보면서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맞든안맞든 무슨 상관이야. 주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거지.
    그녀는 화장실 변기뚜껑우에 엉덩이를 놓고 남편한테 전화를 하였다. 
“단희 아버지. 제가 오늘 당신을 줄려고 반지를 샀슴다. 그것도 아주 비싼놈으로. 좋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열띤 시뜩함이 뚝뚝 떨어졌다. 스스로도 놀랬다.   대책없이 거짓말을 해버린것이다. 그녀는 어이없었다. 하지만 자책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의 순발력에 감탄을 하였다. 주은 반지라고 말하는것보다 일부러 샀다고 하는편이 남편한테 점수따고 생색내는데 훨씬  도움될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아직 빚도 채 갚지 못했는데 반지는 무슨? 어디서 샀는지 빨리 가서 데베(도로) 물리요.”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하긴 공짜로 주었다고 해도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할 남편인줄 그녀는 안다. 하지만 주은 반지를 어디 가서 물리겠는가.
“여보, 당신이 단희를 공부시키느라 고생한다고 제가 일부러 큰 마음 먹고 산건데 내 성의를 생각해서도 물리라는 말을 하지 마쇼. 지금 물리면 살 때 값을 못받슴다. 원래 물려도 주지 않겠지만…”
  “백정인 주제에 반지찼다고 고기가 웃겠소. 물리지 못하믄  당신꺼하고 바꿔오든지.”
  처음과는 달리 남편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녀의 성의에 감동받은것 같았다.
  “난 매일 물질하느라 반지가 필요없슴다.”
  “내 말이 그 말이, 맨날 칼질하고 도끼질하는 손에 반지끼면 푬이나 나겠소?”
 “그냥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구 받으면 아이됨까? 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겜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은 나를 믿지 못하지만 내 마음에는 당신밖에 없슴다.”
   그녀는 이참에 남편의 괜한 의심 같은걸 해소해버리고 남편에 대한 자기의 진정한 마음을 전하고싶었다.
 “그거야 나도 알지… 그럼 언제 보낼거요?”
   “내가 집으로 갈 때 가지고 갈게.”
 “그렇게 오래 기다리라고? 누기 오는 인편에 보내면 아이 되겠소?”
 “무스게 그리 급함까?”
 “하루라도 빨리 차구싶어서…”
 “백정은 반지가 필요없다며?”
 “말이 그렇다는거지 백정은 사람이 아닌가?”
그녀는 이마살을 찡그렸다. 하루라도 빨리 차고싶다는 남편의 말이 웬지 낯설면서 서운하게 들린다. 남자가 왜 반지를 차고싶을가? 그녀는 은반지 하나 없는 자신의 열손가락을 쓸쓸하게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반지가 공짜로 생겼으니 선물한다고 한거지, 남편한테 반지 같은것을 선물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적이 없다. 한국에 온지 일년이 되였는데 아직 올 때 진 빚도 채 갚지 못했다. 빛갚고 아이를 공부시켜야 하고 그리고 살집도 장만해야 하였다. 아직도 돈이 들어가야할 일이 많고도 많다.
남편은 반지를 빨리 보내라고 보챘다. 손에 고기피가 마를 사이 없는 사람이 언제 반지를 끼고 다니려고 그러냐고 하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에게까지 마누라가 반지를 선물로 샀다고 벌써 자랑을 했다고 한다. 더 웃기는것은 동창생의 생일에 가서 반지얘기를 꺼냈더니 어떤 친구가 무슨 반지냐고 묻길래 아무래도 금반지 아니면 보석반지 아니겠냐고  했다는것이다.
“당신이 샀다는 반지가 도대체 무슨 반지요? 나는 뭔지 모르면서 내친김에 우시대고싶어서 그렇게 말해버렸단말이. 내가 잘못 말한건 아니제?”
“차차 보면 알걸 뭘 애들처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녀?”
그녀는 당황했다. 반지면 다 같은 반지지, 하고 살았던것은 세상에 금반지, 보석반지가 있다는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없는 사람이 꼭 보석이요 금이요 가릴 처지가 못되니 싸구려라도 대충 반지라고 손가락에 걸고 다니면 되지 하는 의미에서였다. 하긴 여적 금반지나 보석반지가 아니라 은 반지조차도 손가락에 걸어보지 못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손에 걸려있는 반지도 그게 진짜보석인지 가짜보석인지 잘 알지 못했으니 반지면 다 같은 반지라고 생각하는것도 틀리지는 않는다.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는 미안했다. 괜히 비싼놈이라고 얘기해서 남편이 금반지나 보석이라고 착각하고있는것 같아서 말이다. 그녀는 주은 반지가 무슨 반진지 알지도 못했고 알수도 없었다. 다만 보통악세사리보다는 좀 비쌀것 같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있었을뿐이다. 그런 생각 역시 아무 과학적인 근거도 없었다. 다만 그 반지를 줏는 순간부터 다른 때보다 훨씬 긴장되고 불안했다는 점이 그런 생각을 가지도록 부추겼거나 아니면 남편한테 선물로 비싼 반지를 샀다고 한 자기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3

그뒤로, 한 열흘쯤 지난 어느날 오후였다. 반짝이는 해살이 유리창으로 부서져내리고있다. 그 화창함이 견딜수가 없다. 죽어라고 일을 할 땐 해살이 찬란한지, 비가 오는지 느끼지 못하다가 한가할 땐 잠간씩 거리로 뛰쳐나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군 한다. 그녀는 방청소를 끝내고 세탁기를 돌리고있었다. 오후에는 한가로울듯싶어 잠간 남대문시장이나 구경하고 올가 궁리를 하고있었다.
그때 주인녀자가 세탁실로 들어오더니 밑도끝도없이 들이댔다.
“혹시 접때 특실청소하믄서 반지 못봤나?”
주인녀자의 얼굴이 다른날 같지 않게  딱딱하게 굳어져있었다.
“반지요? 무슨 반지를 그러시는데요?”
그 무렵 그녀는 반지를 주었던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있었다.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에 희아가 특실청소를 한거는 맞재?”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만 끄덕이였다.
“그렇다믄 청소하믄서 남자반지를 몬봤나?”
그제야 그녀는 알아차렸다. 그 반지라면 그녀가 남편한테 대한 자기의 사랑의 징표라며 선물한지도 이미 열흘이 지났다. 남편은 그 반지를 선물받은후부터 전화할 때면 도적놈 다짐따듯하던 니앙스가 사라지고 대신 살갑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 반지를 자기에 대한 그녀의 사랑의 표징으로 믿고있음이 분명했다. 그런 남편에게 당신한테 선물한 반지는  청소하다 주은것이였는데 임자가 찾아서 돌려주었다고 번복할 자신이 없었다. 원자리에 돌려놓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자신이 없는것은  어쩌면 실제의 시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환산된 결과일지 모른다.
    그녀는 딱 잡아뗐다.
“반지를 못보았는데요.”
“정말이재?”
“네.”
“이거 어쩌노? 니도 잘 알겠지만 다이야락카는게 그게 억수로 비싸다카던데… 그런 귀중한걸 잊어버렸으니 김사장은 꼭 찾을라꼬 할끼고… 한동안 대림장이 시끄럽게 생겼다.”
“다이야요?”
“그래. 다이야라칸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짜릿한 전률의 긴 파장이 그를 사로잡았다. 금새 방광이 터질것 같다. 급한 심호흡을 되풀이하는 동안 정신이 자기것이 아닌듯 둥 떠나가는것을 느꼈다. 주인녀자는 그녀의 놀라움을 눈치채지 못하는듯했다. 하긴 자기도 처음에 김사장의 입에서 다이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그렇게 놀랬으니깐.
“정-말 그게 다이야래요?”
“니는 속꼬만 살았나. 내가 다이야락코 몇번이나 곱씹어야 알아듣겄나. 김사장의 말로는 이천만원짜리락카든디, 나도 처음 알았다. 다이야가 아무리  비싸다캐도 그리 비싼줄 말이다.”
“에이, 롱담이겠죠. 그렇게 비싼거라면 려관 같은데 놓고 갈라구요. 그리고 이게 언제예요?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와서 찾아요?”
그녀는 다이야라는 말을 믿을수 없었다.
“김사장이 뭐드라 거짓말을 했쌌겠어? 그 사람이 녀자를 좋아하는 냥반이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냥반은 아니여.”    “하지만 다이야라는것이 믿기지 않네요.”
“내도 그런 매음이 안드는건 아니지만 본인이 기락카는데 우리가 뭐라칼낀데.”
그녀는 눈을 착 내리깔고 수거수걱 빨래만 걷어낸다. 웬지 주인녀자와 눈을 마주치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비싸다캐도 잃어버리면 그만이제. 어디 가서 찾는다꼬.”
주인녀자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방을 나간다.
 끌신끄는 소리가 계단아래로 질겅질겅 내려가고있었다. 한참후 더이상 끌신 끄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는 방문을 잠궜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소지품 상자에서 반지를 끄집어내여 입술에 이리저리 갔다대본다. 중국에서 온 친구가 반지를 산다고 해서 함께 종로에 있는 보석점에 갔을 때 보석상이 하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보석은 광물이라 무겁고 차가워서 진짜라면 입술에 대면 선뜩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술은 이게 차거운건지 선뜩한건지 구별할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것은 이것이 정말로 이천만원짜리 다이야반지라면 남편한테 절대 줄수 없다는 그 생각이였다. 짧은 시간동안 그녀의 머리는 억만겹의 세월을 회전하듯 빨리 돌았다. 이천만원을 손에 쥔다면 당장이라도 집으로 가고싶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피곤한 몸을 마음대로 뉘울수 있는 등이 따습은 자기집이 그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매일마다 보듬고 만지며 강아지냄새 같은 그 부드럽고 살가운 감각을 느끼며 아침저녁으로 딸한테 밥해주고 도시락 싸주고 저녁에는 길에 나서서 늦게 돌아오는 딸을 기다리고 아이의 무거은 가방도 들어주고싶다. 일요일이나 명절때는 딸과 같이 꽃향기 넘치는 공원이나 들에 가서 도시락도 까먹고싶다. 딸과 같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행복할것 같다.

그리고 이곳이 지겹기도 하였다. 썩은 우유에 향수를 풀어놓은것 같은 이름할수 없는 퀘퀘한 냄새가 질펀한 이곳은 그녀에게는 남편의 푸주칸과 다름없다. 빨간 조명아래 붉은 속살을 훤히 드러내놓고 쇠고랑에 걸려있는 고기들이 풍기는 피비린내나는 푸주칸 말이다. 그리고 남녀가 수없이 엉덩이를 짓쪼아대는 그 철썩거리는 소리들을 듣노라면 푸주칸에 걸려있는 고기들의 엉덩이에 찍혀있는 푸른 도장들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손님들의 육욕을 태우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쏟아내는 정욕의 찌꺼기들을 처리하면서 자기 몸속에서 끓는 정열을 콩서리하듯 혼자서 태우고 죽여가는 그 시간들속에서 점점 매마르고 사그라져가는 자기몸속의 생명의 소리를 듣는것도 두렵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있겠냐 하지만  이 일은 젊은 녀자한테는 랭혹한 시련이였다.  떠나고싶었던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무조건 떠날수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것은 그것이 진짜로 다이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이였다. 그리고 진짜다이야라고 확인을 하더라도 당장은 이곳을 떠날수 없었다. 월급을 받는 날이 아직 한주일정도 남아있고 한달 밀린 로임을 받아야 한다. 주인녀자는 일년동안 쭉 한달 로임을 밀려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녀자들은 대타로 일하는 사람을 구할사이도 주지 않고  아무때든 가고싶으면 훌쩍 떠나버리기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휴지로 반지를 돌돌 말아서 비닐에 꽁꽁 싼 다음 트렁크의 안 주머니에 넣고 열쇠를 잠그었다. 트렁크를 침대밑에 밀어넣으려다가 시름이 놓이지 않아서 다시 열쇠를 열었다. 혹시 주인녀자가 다시 올라와서 트렁크를 열어보자고 하면 꼼짝못하고 들키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한참  망설이다가 베개의 쪼르레기를 열고 베개속 중간에 반지를 넣고 쪼르레기를 못열도록 바느실로 꽁꽁 꿰맸다. 그러고나서 방을 나서는데 카운터에서 주인 녀자가 김사장과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왔다가신 뒤로예, 그 방에 벌써 다른 손님을  두번이나 더 받았다 아입니까. 하믄 그 다이라카는 반지가 정말로 그 방에 놓고 갔다코해도   어느 손님이 가져갔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꺼? 아이고 사장님도, 참말로, 좀 빨리 오시제, 와 이리 늦게 오셨습니껴?  벌써 한주가 지났다 아임니꺼?”
“청소하는 중국아줌마 한번 만나게 해주시죠?”
  김사장의 목소리가 까칠하게 날이 서있었다.
  이층 층계 중간쯤에서 가만히 엿듣고있던 그녀는 자기를 만나고싶다는 김사장의 말에 도망을 가듯 숨을 죽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래쪽에서 주인녀자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사실은예, 그날 중국아줌마가 몸이 아파서 내가 대신했다 아입니꺼. 지는 청소하면서 반지 같은건 못봤습니더. 안그래도 우리 대림장에서는 손님들이 놓고간 물건은 싹다 보관을 했다가 주인이 찾아오면 돌려드립니더. 그나 저나 이런 일이 생겨서 얼마나 놀라셨겠써예.”
  주인녀자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고있었다. 김사장이 왔다간 뒤에 손님을 두번이나 받았다는것도 그녀가 아파서 주인녀자가 대신 청소를 했다는것도 사실이 아니다. 주인녀자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 그녀는 알수 없었다.
  김사장이 돌아가고나자 주인녀자가 다시 그녀를 찾아 이층으로 올라왔다.
“니가 정말로 반지 몬본긴가?”
“정말 못봤어요.”
“그런데 니 얼굴이 와 그렇노?”
“내 얼굴이 왜요?”
  그녀가 흠칫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백지장 같다. 어디 아픈거 아이가?”
“머리가 좀 아파서 그런가봐요.”
“신경 좀 썻더만은 내도 머리가 아플라칸다. 잠깐 눈을 부칠락카니 베개 좀 줘봐.”
그녀가 굳어진채 서서 어쩔바를 모르는데 주인녀자가 벌써 그녀의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면서 반지가 들어가있는 베개를 끌어다 머리밑에 고이면서 말했다.
“와 쪼르레기가 있는데 바늘로 꿰멨노?”
  그녀는 등곬으로 식은땀이 짝  흘러내렸다.
“쪼르레기가 고장이 나서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두사람은 곁눈으로 서로를 쏘아보았다. 그것은 순간이였다. 머리속이 하얗게 비여지면서 그녀는 자기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조차 알수 없었다. 그런데 주인녀자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는듯 눈을 감고있었다.
  댜행히 그날은 그렇게 조용이 지나갔다.

4

  그날밤, 그녀는 종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두려워했던것이 곧 일어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다. 눅눅한 방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듯이 후덥지근하다. 창밖에서는 새의 날개짓과 같은 비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비속에서 내다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바다우에 떠있는 고기배처럼 출렁인다. 그녀는 자기가 서있는 곳이 도시에 떠있는 아득히 먼 섬 같이 느껴졌다.
  서울의 그 어느 구석에도 만나야할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쉬는 날 답답하여 고속터미널 대합실에나 지하철에 온종일 앉아있어도 아는 사람도 알아보려고 주춤거리는 사람도 없다. 혼자의 방에서 신열에 앓아 누워도 아프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고 따로 미음 써주는 사람도 없었다. 온전히 낯설고 외로운 섬이였다. 이때처럼 치렬하게 집이 그리운적은 없다. 돈을 벌려고 한창 사춘기의 딸을 남편한테 맡기고 어떤 남자의 안해도 아니고 딸의 엄마도 아닌 돈버는 기계로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남의 이름으로 살아온지 벌써 일년이 넘었다. 다이야반지사건만 아니였어도 지금 이 시간에 아무 갈등도 없이 시간을 갉아먹는 딱정벌레처럼 밤에는 자고 낮에는 일만 하면서도 아무 불만없이 잘살았을것이다. 다이야반지는 그녀에게 너무나 큰 유혹이였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두려움이면서도   죽음보다 더 무서운 유혹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지금 베개속에 그냥 두는것은 위험했다. 그때 계시처럼 천장에서 툭- 하고 뭔가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커다란 거미였다. 밤거미는 도적을 불러온다는데 그녀는 신경을 바짝 세우고 거미의 거동을 살피였다. 거미는 그녀쪽으로 기여오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창문쪽으로 향한다. 창턱벽으로  기여오르는 거미를 보면서 그녀는 아, 하고 신음과도 같은 탄성을 질렀다. 창턱에는 별로 싱싱하지도 그렇다고 마르지도 않은 란(蘭)화분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화분통을 내리워 화분과 함께 흙을 들어내고 그속에 반지를 넣고 다시 화분을 원래대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도로 화분을 들어내고 반지를 꺼냈다. 화분은 누구나 마음대로 보고 만질수 있다. 더욱이 그녀가 쓰는 방은 세탁실이여서 주인녀자가  마음대로 들어올수 있다. 언제든 내킬 때마다 화분에 물을 줄수 있고 기음을 맬수도 있으며 지어 주인녀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원래의 화분을 뽑아버리고 다른 화분을 옮겨심을수도 있는 일이였다.
  방 한칸이라도 손님을 더 받기 위해 주인녀자는  세탁실 한쪽에  침대를 놓고 그녀를 자게 하였다. 려관이란 방이 돈을 버는 곳이다. 토요일이나 크리스마스때는 평일보다 가격이 더 비싼데도 손님이 넘친다. 방이 부족하여 찾아온 손님을 받지 못하고 도로 보내는 때도 있는데 주인녀자는 자기의 살을 도려내듯이 아까워한다. 그리고 그것이 청소하는 사람들이 청소를 빨리 하지 않은 탓인듯 일하는 사람들과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런 날 좀만 눈치없이 늦장을 부렸다가는 짤리는수도 있었다.
  누구도 찾을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가?  있었다. 그것은 깊고깊은 바다속 같고 어둡고 두려운 동굴 같은 곳이다. 형체는 알수 없지만 그곳을 응시하면 어둠속에서 웅성거리는 울림까지 들린다. 무얼가, 잡힐듯말듯하다가 결국 그것은 형태가 분명하기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꺼멓게 세월에 그을고 썩은 고향집 서까래우의 검은 입구가 턱 하니 나타난다. 두렵거나 도망가고싶거나 숨고싶을 때마다 신의 계시처럼 나타나군 하는 곳이다. 어릴적에는 숨박꼭질을 해도 그곳이 생각났고 지어 전쟁이 나도 온 식구가 그속에 숨으면 안전할거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여섯살때였다.
  한밤중에 그녀는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자욱소리와 미칠듯이 짖어대는 개울음소리에 깨여났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집주위를 배회하면서 손전지를 마구 비춰대고 마을의 개들은 그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짖어대고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가 어머니의 이불속에 기여들어가는데 출입문이 벌컥 열리고  검은 장정 둘이 아버지를 이불속에서 끌어냈다. 이어 그녀와 어머니도 밖으로 끌려나왔다. 아버지는 두팔을 뒤로 결박당한채   마당에 끓어앉아있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비밀문서를 어디다 감추었냐고 윽박지르고있었다. 아버지가 비밀문서 같은것을 숨긴적이 없다고 말하자 그들은 몽둥이로 아버지를 사정없이  때리고 발길질을 해댔다.
  그때 서까래우에 뭐가 있는것 같다는 소리가 사랑칸쪽에서 들려왔다. 아버지를 에워싸고있던  사람들이 사랑칸으로 우르르 쓸어갔다. 
  뭐가 있다는걸가?
  그녀는 겁이 났다. 아버지 어머니를 잡아갈 리유가 될만큼 아주 중요한것이 나올것 같아서였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시오를 세운 지붕과 천장사이에 있는 서까래우로 기여올라가서 긴 장대기로 마구 들쑤셔댔다. 천장에서 흙부스러기가 우스스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한참 들볶았지만 그들은 거미줄만 가득 뒤집어쓰고 빈손으로 내려왔다.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장정들은 아버지를 찌프차에 태우고 마을을 떠났다.
  이튿날 해가 질무렵에 아버지는 초죽음이 되여 들것에 들리여 돌아왔다. 그 사람들의 추궁과 심문은 끊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서까래우를 가리키며 그우에 비밀문서를 숨겼다고 하시고는 그날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셨다. 문제는 검은 양복쟁이들이 그뒤에도 몇번 찾아와서 서까래우를 수색했지만 끝내 비밀문서를 찾아내지 못했다는점이다.
  서까래우에는 도대체 뭐가 있었을가?
  그것은 어린시절 그녀에게 어둠과 두려움의 기억이였던 동시에 질긴 의문과 끝없는 호기심이였다. 
  그녀는 짬만 있으면 사다리를 놓고 서까래우를 살폈다. 천정과 지붕 사이에 또 하나의 작은 공간이 있었다. 지붕을 만들기 위해 세운 가시오와 천정을 받쳐주는 서까래 사이에는 흙을 받쳐주기 위해 수수깡으로 엮은 산자가 펴져있었다. 그속은 깊고 깊은 동굴 같았으며 죽은 짐승의 내장 같았다. 조금씩 손으로 더듬으면서 앞으로 기여들어가면  파싹파싹 부서지는 수수깡의 썩은 냄새와 먼지냄새가 코를 찌른다. 한발짝 옮길 때마다  거미줄이 복벽처럼 얼굴에 달라붙어 눈을 뜰수 없는데다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노래기와 각종 벌레들이 가슴팍을 파고들며 기여다녔다. 매번 세발짝이상 안으로 들어가본적이 없이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나오군 하였다. 제일 끝 어딘가에 아버지가 숨겼다는 비밀문서라는것이 꼭  있을것이라고 그녀는 믿고있었다. 그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것은 그들이  끝까지 들어가보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믿었다.
  철이 들무렵 어머니에게 그녀는  물었다.
“아버지가 서까래우에 무엇을 숨겼는지 엄마는 아시죠?”
“뭘 숨기기는.”
  뜻밖에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심드렁했다.
“날 속이려들지 마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전에 서까래밑에 숨겼다고 하셨던 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아무 자백이래도 하지 않으면 죽일것 같으니깐 그냥 그 사람들이 묻는대로  대답한것뿐이야.”
“그 사람들이 찾고있은건 도대체 뭐였어요?”
“너의 세째삼촌이 무슨 특무라나? 그때는 웬 특무가 그리 많은지… 그 사람들은 삼촌의 비밀자료를 아버지가 숨겼다고 생각한거지. 사실 서까래우엔 아무것도 없어.”
  어머니는 서까래우에는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목숨을 가져갈만큼 중요한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될것 같았는데, 그래야 공평할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다는것은 무언가 아쉽고 억울하고 허탈하였다. 그녀의 어린시절을 통째로 두렵게 했고 비밀스럽게 했던 그곳의 비밀은 너무도 시시하게 끝나버린것이다.
  어른이 될쯤에야 그녀는 서까래우의 비밀은 동란시대의 무모함이 만들어 낸 허망된 잡극이였음을 알게 되였다. 지금은 그 초가집이  헐리우고 그곳에 이미 국제공항이 들어선지도 십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서까래우는  여전히 석연치 않고 불투명한 형태로 어른이 된 그녀의 기억에 남아있다.  아버지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때문만은 아닐것이다. 아버지의 죽음마저 삼키고 함구무언이였던 그곳은 어쩌면 일생동안 그녀가 숨어살고싶어하는 도피처였는지도 모른다. 숨을수만 있다면 지금도 그곳에 꽁꽁 숨어버리고싶다.
그녀는 결국 덮고있던 이불 혼설기를 뜯었다. 그리고 이불솜안에 반지를 넣고  반지가 그안에서 돌아다니지 않도록 바느실로  고정시키고 다시 이불 혼설기를  꿰맸다.
그러고나자 그녀의 창문은 스프레이를 뿌린것처럼 새벽녘의 회색으로 옅어가고있었다. 유리에는 갈색의 조그만한 모기와 날벌레가 붙어서 죽은듯이 꼼짝을 안하고있었다.

5

아침, 그녀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아침이 두려웠고 빨리 또다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오지 말아야 할것이 올것 같은 불안과 초조함은 이미 그녀의 내면에 눌려사는 친숙한 감정이 되여 앞마당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타이어의 소리에도 옆방에서 들려오는 변기의 물내리는 소리와 복도를  지나가는 손님들의 조심스러운 발자욱소리에도 놀라고 불안해진다. 모든 소음들이 죄다 이불속에 감춰진 자기 반지에 향한 끊임없는 집착이나 추궁처럼 바짝 긴장해진다.
방청소를 하다말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끝내 자기방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주인녀자가 세탁기를 돌리고있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는 눈빛으로 주인녀자가 놀랍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놀라기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에도 주인녀자가 세탁물을 가지고 이곳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웬지 자연스럽지 않다. 꼭 반지를 찾기 위해 여기 와있는것 같아 신경이 곤두선다.
“갑자기 달거리가 와서요.”
생리대를 찾는척하면서 그녀는 침대우를 살폈다. 그런데 침대우에 있어야할 이불이 없었다. 숨이 멎는듯했다. 틀림없이 주인녀자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속을 내여보일가봐 당장 따지지도 못한다. 다만  잘못 내려앉은 새처럼 안절부절못할뿐이였다. 주인녀자도 모르는 나라를 돌아다니는 려행자처럼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제할일만 할뿐이다.  그녀도 주인녀자도 서로  겉도는 기분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제 이불, 혹시 못보셨어요?”
  그녀가 방을 나가며 어색하게 침묵을 깼다.
“이불이락캤나?”
“네.”
“그게 말인기라 해빛쪼임을 시킬라꼬 옥상에 가져갔다 아이가. 어제 거기 잠간 누버보니껴니 이불에 누기가 있길래 그리했다. 와. 이불 잊어버릴가봐 놀랬나?”
“네. 좀.”
“놀라기는. 대림장에 쌔구뿌린게 이불인데 그렇게 놀랄게 뭐이 있노?”
“갑자기 이불이 없으니까 그렇죠.”
그녀는 얼버무리며 곧추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불은 안이 겉으로 향한대로 걸려있었다. 만약에 주인녀자가 이불속에 반지를 꺼내갔다고 하더라도 내 반지를 내놓으라고 드러내놓고 말할 처지가 아니였다. 그녀는  손으로 이불을 터는척하면서 재빨리 발끝이 놓이는쪽을 만져보았다. 다행히 반지는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이불속의 반지를 다시 바지 안주머니에 옮기고 빈침으로 고정시켰다. 누가 몸을 수색하지 않는한 몸에 간수하는것이 안전할것이였다.
그녀는 될수록이면 사람이 있는 곳을 피하고  묵묵히  일만 하였다.

6

그날은 쉬는 날이였다. 그녀는  전에 친구와 같이 갔던 피카디리극장 길건너편에 있는 《천년보석족을 찾아갔다. 진렬대안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웃으면서 물었다.
“찾으시는게 있습니까?”
“아니요.”
  그녀는 자그만하게 대답하면서 잠간 주위를 들러보았다. 다른 손님이 없는것을 확인하고나서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보석에 대한 감정도 해주나요?”
“네. 가지고 오셨으면 어디 봅시다.”
  그녀는 속옷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반지를 꺼내여 진렬대우에 놓았다. 남자는 손에 하얀 면장갑을 끼더니 핀셋트로 반지를 집어서 알콜로 살살  닦는것이였다. 그런 다음 백색의 알을 들어내여 탈지면우에다 놓고 눈을 쪼프리고 이윽히 들여다보다가 진렬장속에서 햐얀 보석을 핀셋트로 집어 내여 탈지면우에 나란히 놓고 색갈과 광채를 살피였다. 그런 연후에 다시 핀셋트로 반지를 집어 입김을 불더니 그 흐림이 사라지기전에 반지의 뒤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다음 표면으로 돌려놓고 다시 입김을 불어 흐리게 하더니 반지를 돌려가면서 자세히 보는것이였다. 그러고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간 눈을 창밖에 주고 멀리 보고있다가 다시 처음에 했던 순서대로 하나도 빼지 않고 차례로 되풀이하는것이였다. 

  드디여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다이야가 맞습니다. 다이야몬드는 색채와 광택과 흠의 유무에 따라서 그 가격차이가 나거든요. 다이야몬드는 그 특징상 완전무결한것은 희소하답니다. 말하자면 내부에 균렬이 있거나 속에 기포가 있거나 혹은 가공할 때 컷트면에 흠이 생길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 다이야는 아주 완벽할정도로 흠이 없고 색채와 광택도 량호합니다.”
“그럼 가격은 얼마나 가요?”
“처음에 구입할 때는 아마 이천만원 넘게 주었을것 같아요.”
  모래밭을 걷듯 그녀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짧은 심호흡을 토해내는 동안 정신이 자기몸을 리탈하는듯 붕 떠갔다. 반지를 팔지 않겠느냐는 남자의 목소리를 뒤로 한채 그녀는 자리를 떴다.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있는다면 그 남자한테 뭔가를 들켜벌릴가봐 겁났다. 다이야라는것이 확인되였으니 이제는 떠나는 일만 남았다. 더이상 누구와도 함께 있기가 두려웠다.
  그녀는 조용히 떠날 준비를 다그쳤다.

 

7


  마지막날이였다. 하루만 있으면 귀국을 하게 된다. 월급을 받는 날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귀국해야 할것 같다고. 이외로 주인녀자는 쉽게 받아주었다. 남편이 아프면 귀국해야지, 떠나는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국에 오더라도 다른데 가지 말고 대림장에 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주인녀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려고 떠나기 전날까지 그녀는 방청소를 하였다. 평소대로 오전에 방청소를 다 마치고 세탁물을 가지고 세탁실로 올라가는데 주인녀자가 불렀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서있는 그녀의 손에는 안주와 술이 담긴 쟁반이 들려있었다.
    “세탁물은 내한테 주고 이 술과 안주를 김사장한테 퍼떡 가져가고 오겠나.”
    “술심부름을  왜 갑자기 저를 시키는지…”
    후련하게 뱉어내지 못하는 자기의 목소리가 마치 뜨거운 우유에 생긴 얇은 막이 이몸에 들러붙을 때처럼 입안에서 걸리적거렸다. 술심부름은 서울총각의 몫이다. 주인녀자는 평소에 손님방에 술심부름 같은걸 녀자 종업원한테 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김사장의 술심부름을 시키는지 그녀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태연한척했지만 두려움이 깁스처럼 온몸을 옥죄여와 숨이 막혀 헛기침을 토해냈다.
“김사장님이 꼭 희아를 만나게 해달라카는데 낸들 무슨 방법이 있겄나.”
    주인녀자는 입귀를 살짝 들어올리면서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뺨은 굳어져있었다.
    “김사장이 절 만나서 뭐하게요?”
“그건 나도 모르제. 가보면 알지 않겄나?”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저 웃음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가?
복도의 빨간 불이 어두움을 더욱 깊게 하려는듯 깜빡거렸다. 그녀는 뒤로 몇발자국 물러서다가 다리힘이 빠지면서 주저앉듯  비칠했다.
“왜 그락카는데?”
    그녀가 파고드는듯한 시선으로 다가왔다.
“아… 아니예요.”
     그녀는 쟁반을 들고 총망히 층계를 올랐다. 마치 거대한 힘에 위해 멱살을 잡아채여 어딘가를 무작정 끌려가는듯 벌걸음이 허둥허둥했다.
.   특실이 가까워올수록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반지를 복도 어딘가에 버렸다가 나올 때 다시 줏고싶어도 그럴수가 없었다. 카운더 씨씨티비로 주인녀자가 보고있을것이다. 앞에는 김사장이 기다리고  뒤에는 주인녀자가 지켜보고있다. 반지야말로 죽고싶은 녀자의 눈앞에 놓여진 양재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처음부터 반지를 가지지 말았어야함을  처음으로 후회하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해도 돌이킬수 없음에 안타까웠다. 김사장은 반지를 내놓으라고 할것이고 그녀가 내놓지 않고 버틴다고 해도 김사장은 어떤 수단으로든 그녀의 몸속에 숨긴 반지를 찾아낼것이다. 

특실앞에서 그녀는 눈을 감고 짧게 심호흡을 하였다. 어떤 구실이라도 만들어서 들어가지 않고싶었다. 이때, 안에서 절망도 갈망도 아닌 환자의 환청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자의 신음소리였다. 몸뚱아리가 어딘가에 끼였거나 접혀져있거나 짓찢기는듯 소리가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들렸다. 철썩철썩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녀는 몸속 깊은 곳에서 작은 새가 나래치듯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해일처럼 부서지는 파도가 온몸을 쓸어가듯 휘청거린다. 더이상 그곳에 서있는것은 자신이 부끄러울것 같았다. 그녀가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주인녀자가 어느새 그의 앞에 서있었다.
“와?”
“들어갈 상황이 아니여서요.”
“기서 잠간 지둘렀다가  들어가라꼬.”
  이상했다. 두사람의 말을 엿듣기라도 한듯 방안이 조용해졌다. 시작하자마자 끝난 모양이다.
“끝난겨벼. 어여 들어가지 않고 뭐하고 서있노.”
  주인녀자는 그녀 대신 노크를 하고는 들어가라고 눈짓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다. 영원히 이렇게 문을 열어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있는데 스륵스륵 뱀이 스풀을 헤치듯 끌신을 끄는 소리가 문께로 다가오더니 이어 찰깍하고 잠금쇠를 푸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하얀색의 가운을 입은 륙십대의 남자가 힘이 빠져 후줄근한  모습을 드러냈다. 김사장이였다. 땀이 번진 얼굴에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내려와 붙어있었다.
“뭔가?”
  오래동안 작동하지 않은 기계처럼 녹이 쓸고 까칠한  목소리였다.  
“김사장님께서 술과 안주를…”
  김사장님께서 시킨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고 할려다가 아무래도 김사장이 술을 시킨것 같지 않아서 그녀는 말을 바꾸었다.
“우리 사장님께서 가져가라고 해서요.”
“알았어.”
  김사장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문을 쾅하고 닫아버린다. 찰칵하고 걸리는 잠근쇠의 소리가 깊은 단절을 느끼게 한다.  김사장이 그녀를 기어이 만나자 했다는것도 거짓말인것 같았다. 주인녀자가 혼자서 꾸민것이 틀림없다. 그녀를  벼랑끝까지 몰아세워 스스로 반지를 가졌다고 자백이래도 받고싶었을것이다.
  녀자가 층계 맨끝에서 그녀를 기다리고있었다.
“별일없었나?”
  마치 별일있기를 바라는 사람 같았다.
“무슨 일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듯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여. 그냥 물어본거여.”
 

8
  무사히, 모든 수속절차를 마치고 그녀는 연길탑승게이트앞 대기석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리고있었다. 누구도 뒤쫓아올 사람은 더는 없을것이다. 이제 두려움도 떨림도 조금씩 가셔지고 서서히 안정이 찾아왔다.  출발시간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좌석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지만 자고싶지는 않았다.
아직도 현실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가방을 무릎우에 끌어다가 쟈크를 열었다. 이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고싶었다. 어떻게 그 작은 반지가 이천만원이 된다는건지… 가방안쪽에 붙어있는  작은 주머니의 쟈크를 열던 그녀가 소스라쳤다.
왜지?
그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하여 손으로 가방안 여기저기를  헤집어도 반지는 손에 닿지 않았다. 급해난 그녀는 짐승내장을 모조리 끄집어내듯이 가방안의 물건을 죄다 땅바닥에 쏟아냈다. 려관방에서 주어 모은 머리삔이며 화장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그속에는 다이야반지는 없었다. 빗본건 아닌가싶어 빈 가방을 거꾸로 들고 두번 세번 털고 또 털고 소지품을 콩나물 줏듯 하나하나 털어서 옮기면서 보고 또 보아도 끝까지 반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닭털이 수면우로 내려앉듯이 그녀는 소리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끝까지 끌어안고있던 보따리를 기어이 홍수에 놓아버린것 같이 허탈하고 안타깝고 한스럽다. 아침에 샤워하기전에 그녀는 속옷속에 있던 반지를 꺼내여 메고 다니는 가방속에 넣었다. 큰 짐은 부치고 작은 가방은 기내에 메고 오를수 있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가방은 늘 그녀의 곁에 있었다.  주인녀자가 공항뻐스를 타는 곳까지 가방을 들어준다고 너무 극성을 피워 잠간 들게 했지만 고작 걸어서 십오분도 안되는 거리이고 그것도 그녀와 함께 걸었다. 그 사이에 반지를 빼냈다고는 누구도 믿지 않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지는 나래라도 돋힌듯 그녀의 가방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수 있는지 황당할뿐이였다. 정말 처음부터 다이야반지라는것을 줏기나 한건지 그녀는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마치 꿈을 꾸고있는듯했다. 다이야를 가지고있었던것이 꿈이였는지 아니면 반지를 잃어버린것이 꿈인지… 대기실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소지품을 주어담으면서  그저 구름속을 헤매는것 같았다. 멍하니 넋을 놓고있는 그녀의 두눈속에는 눈물이 고여있다. 원하던것을 손안에 넣었다고 완벽하게 생각하는 그 순간에 그것을 도로 빼앗아버리는 삶의 고지식함에 절망하였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아무것도 내여놓지 못했던 서까래우의 그 깊고깊은 허무의 동굴이 떠오른다.
“그속에는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어.”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도 환청처럼 들린다.
그래,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거다. 얻은것도 없고 잃은것도 없다. 모든것은 제자리로 돌아온것뿐이다. 제자리로 돌아온다는것이 별건가.  누군가를 속이다가 결국 내가 누군가에 속는거지. 속이고 속았으니 제자리로 돌아온거지뭐. 모든것을 내여놓은후의 섭섭함은 그저 멍하고 알싸할  뿐이다.
더이상 무너질것도 내여놓을것도 없는데 커튼처럼 끌리는 비의 비린내가 그녀의 옷자락에 자꾸 기여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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