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19>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미국에 사는 30대 중반의 한 여인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이민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웃에 사는 미국인 사내아이를 만났다. 무심히 한국에서처럼 이름을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대고는 자기에게도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더란다. 의외의 질문에 약간 당돌하다는 느낌을 느끼면서 이름을 말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그 아이가 와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딸애를 찾더라는 것이다. ‘아주머니’나 ‘누구 어머니’로만 듣고 살던 그 여인으로서는 좀 당황해지면서 기분이 언짢아졌다고 한다.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이것이 미국 이민 생활의 첫 번째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들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불쾌한 생각이 들지 않게 되기까지에는 한참이 걸렸다고 한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어느 교포 부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일인 남편과 사는 그 부인은 아이들에게 일찍 한국어를 가르쳤고, 아이들과는 집안에서 한국어를 가지고 쓰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도 이러한 이중 언어 사용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 자신은 한국어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어서 남보다는 한국어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일로 화가 잔뜩 난 아이한테 아버지에게 식사하라고 이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독일인인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밥 처먹어라.”

깜짝 놀라 아이를 사납게 흘겨보고는 얼른 남편의 낯빛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식탁으로 오더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아이를 불러 조용히 일러 주었지만 스스로 얼굴이 붉어 올라 혼이 났었다고 한다. 자신이 평소에 아이들에게 평온하고 다정할 때에는 조용히 ‘밥 먹어라’고 하였고, 급하거나 다정하지 않은 때에는 ‘밥 먹어’라고 하였으며, 화가 많이 났을 때에는 실제로 ‘밥 처먹어라’라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한국어 교사인 어머니가 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배우고 그대로 스스럼없이 사용하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 그 부인은 크게 반성하고, 식사 때면 언제나 ‘진지 잡수셔요’라고 하라고 이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뒤부터는 한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늘 조심하면서 그 말이 품위가 있는 말인가를 생각하곤 한다고 하였다.

이 두 이야기는 삶의 방식과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언어생활의 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앞의 이야기는 위아래와 상관없이 같은 말로 사는 서양인에게서 받은 당황이고, 뒤의 것은 반대로 기분과 감정에 따라서 달리 쓰는 한국어를 함부로 쓴 데에서 받은 당황이다. 예의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서는 어른과 아이,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구별 없이 쓰는 언어생활에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오래 동안 예의를 존중하며 살아왔다. 우리말에 경어법이 가장 복잡하고 다양하게 발달된 것은 그러한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어를 잘 가르치기에는 의사소통만 되도록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처지와 입장, 상황과 관계, 기분과 감정 등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이러한 경어법의 적절한 사용까지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어를 배워 무심코 쓰는 외국인이 가끔 우리를 웃기곤 하는 경우는 어법이 틀리거나 억양이 이상해서보다도 흔히 이 경어법의 부적절한 표현에서 오는 것임을 생각해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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