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공항의 로비는 승객들로 웅성거렸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창호는 비행기시간을 잘못 알고왔다는것을 알았다. 금화와 함께 다시 시간을 확인해보았지만 잘못알고있은것이 확실하였다. 호텔방에서 금희더러 항공권을 보라고 해 여러번 확인했던 창호였다. 그러나 결국은 시간을 잘못 알고 공항에 들이닥친것이였다. 이상했다. 이런 실수는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창호도 깐깐한 편이였지만 금화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무어든 확실하게 하는 성미였다. 멋진 정장의 단추를 잘못채우듯 무언가가 어색하게 되여있었다.

탑승수속까지는 두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커피나 마시면서 기다릴가? 앉을데도 맞갖잖은데...>>

금호는 뭐 그러지 하는 눈으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다. 얼굴이 조각처럼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래요.>>

공항커피숍은 먹거리까지 경영하고있어 좀은 복잡한 편이였다. 로비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모두가 목청을 돋구어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조용한 곳은 지옥에나 있을듯싶었다. 둥그런 커피상을 하고 마주 앉자 레지가 달려왔다. 창호는 커피를, 금화는 쥬스를 주문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할말이 없었다. 창호는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감같은것이 있었다. 그러나 무얼 이야기해야 할지 화제를 찾을수 없었다. 이제 금화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오랬동안은 헤여져있어야 했다. 다정한 부부라면 눈물쯤 뿌려도 부끄럽진 않을 일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리별은 분위기적으로도 감상적인데가 없었다. 마치 담판석에 나선 사람들처럼 표정마저 딱딱했다.

금화는 창호쪽을 보지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쥬스를 마셨다. 깔대를 빠는 소리가 쪼르륵쪼르륵 났다. 쥬스컵이 비여있었다. 창호가 복무원을 부르려고하자 금화가 머리를 저었다.

<<됐어요. 쥬스로 뭐 배를 채우겠어요?>>

<<그럼 먹을거라도 시킬가? 점심시간도 되는데...>>

금화는 힐끗 창호를 쳐다보았다.

<<기내식으로 하죠뭐. 당신 식사 늦어질것 같은데 아예 여기서 하시던지...>>

창호는 시계를 보았다.

<<괜찮아. 좀 늦게 먹지뭐. 혼자서 먹기도 싫고.>>

<<마음대로 하세요.>>

금화는 더 말이 없었다. 이윽토록 침묵이 흘렀다. 창호는 좀더 다정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있었다.

<<한국 가서 돈때문에 너무 우왕좌왕하지마. 넉넉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도 그만큼으로 살지 않아? 가서 힘들면 인차 돌아와도 되고. 건강만 챙겨가지고 와...>>

금화의 표정이 어딘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감동하고있다는 감은 없었다.

<<알았어요. 미라한테 용돈을 너무 펑펑 주지 말아요. 언니한테 주어서 언니가 주도록 해요. 녀자애라는게 너무 돈을 몰라서 걱정이예요. 당신 애한테만은 신경 좀 써주세요. 그리고...>>

금화는 말을 끊고 창호의 얼굴을 살폈다. 창호는 한참이나 말이 없자 몸을 금화쪽으로 당겨갔다.

<<부탁이나 할말이 있음 다 이야기해.>>

금화의 표정이 좀은 망설이고있었다.

<<당신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아무튼 할 말은 해야겠어요. 내가 간 다음 당신이 바람을 피던 첩을 하던 관계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리혼은 안할거예요. 알아두세요...>>

<<당신 지금 무슨 소릴 하고있는거야? 왜 그래?!>>

창호는 금화의 한쪽 눈이 가늘어지는것을 보았고 감으로만 잡을수 있는, 조소같은 미소가 돋아나는것을 보았다.

금화는 눈길을 떨구었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마치 오래동안 외워둔 대사를 외우듯이.

<<당신 때때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얼 얻고싶은지 당신은 생각하고있는거예요? 허울을 벗으세요. 그러면 살기 더 편안해질지도 모르지 않아요. 당신은 나하고 살고있다는데 상당한 피해의식이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녀자들 꽁무니 쫓아다닌다고 잃은것을 되찾을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인생은 시가 아니예요.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것보다 잔혹할지도 몰라요. 저나 당신은 다 같은 체험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예요. 잃을만큼한것은 다 잃은 사람이예요. 그런데도 당신은 자기와 살고있는 사람을 무시하고있었어요. 동류감조차 가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사랑이고 뭐고 할 때 당신은 꼭 같은 인생을 살아온 저를 생각한적이 있어요? 부엌데기쯤으로 생각했어요?...>>

창호는 금화에게 이런 부분이 있다는것이 너무나도 뜻밖이였다. 언제나 조용하고 순종으로 가득하던 금화가 아닌가!

금화의 할아버지는 중국의 토지개혁때 지주라는 그것때문에 청산을 맞고 맞아죽었다. 단순히 자기에게 소유한 땅이 있었기에, 소작농 세명을 썼다는 리유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수 없었다. 재산은 이불까지 농민들이 가져갔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났다. 그들에게 남은것은 솥 두개. 그리고 밥을 퍼먹을만한 그릇 몇개였다. 그때 금화의 아버지가 살아남을수 있은것은 도시의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금화는 태여나는 순간부터 태여나지 말아야 하는 존재였다. 할아버지를 보지도 못했고 유산 하나 받지 못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들 자손에게 끝없는 멸시와 이 세계의 저주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지주의 손녀, 이 하나만으로도 누구든지 그에게 발길질을 해댈수 있었고 그 얼굴에 침을 뱉을수 있었다. 그것은 창호도 마찬가지였다. 동류감이라고? 금화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랬던가? 그랬던것 같았다. 창호와 금화의 결혼은 그들이 꼭 같이 이 사회의 찌꺼기로 분류당하고 버림을 받는 존재였기에 가능했었다. 그럼에도 창호는 그런 동질감을 느낀적이 없었다. 아마 숙명적으로 그 현실을 받아들였는지도 몰랐다.

금화는 조용한 어조로 말하고있었지만 창호는 무딘 칼로 가슴을 쿡 찌르는것 같았다.

<<여보, 무시하다니? 내가 왜 당신을 무시해야 해? 관심이 없었다거나 밖에서 너무 나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당신을 부엌데기나 하인같은 존재로 생각한건 아니였다고. 그럴 리유도 없잖아? 당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리해가 안돼. 우린 싸운적도 없잖아?>>

창호의 말은 거짓이 아니였다. 그들은 싸운적이 없었다. 싸울수 있는 부부간의 정감적인 부분이 모두 삭제되여있었다. 질투도 없고 시기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계약을 수행하듯 일상의 모든것을 챙겨나갔다. 창호는 월급봉투에서 얼마간을 꺼내 소비로 쓰고 금화의 손에 월급봉투가 들어간 다음부터 창호는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가정에 얼마가 쓰이는지를 관계하지 않았다. 금화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큰돈이 쓸 일이 있을 때면 창호에게 얼마만이 필요하다고 통보를 해왔을뿐이였다. 다른 가정이라면 이런 정도라면 이미 위기의 한계에 다달은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서로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무감각은 이 가정을 하나로 묶어두는 끈인지 몰랐다.

금화는 멸시하는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직도 모르셔요? 그것이 바로 무시라는거예요. 당신이 어떻게 했는가는 당신이 알고있을거예요. 당신은 밖에서 바람을 피우면서도 량심적인 가책이라는것조차 느끼지 않았어요. 싸우지 않고 살았다는것으로 변명하려 하지 마세요. 저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있어요? 저도 감정적으로 생동한 인간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있어요? 당신은...>>

금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가 창호가 무어라고 하려고 하자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잃은것을 찾고싶다는 집착에 빠져있는동안 다른 사람의 존재를 무시했어요. 억울하게 잃은 사람이기에 그것을 찾는것은 합리하다라는 론리에 빠져있었어요. 마치 저희 할아버지를 때려죽인 가난한 사람들처럼 말이예요. 가난하기에 부자의것을 빼앗고 죽일수 있다는 론리가 통한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잃은자이기에 얻으려는 무한정한 노력이 합리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억울함을 당했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그 억울함을 풀면 된다라고 생각한거예요? 그동안 전 당신을 리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저에게도 잃은것은 당신 못지않게 많아요. 당신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전 그 지저분한 보상에 대해 집착하지 않았어요. 다만 당신이 불쌍하고 기가 막힐뿐이였어요. 그래서 그만 둔거래요. 몰라서가 아니예요. 당신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를 녀자는 없어요. 전 당신과 함께 사는 녀자예요. 저에게도 녀자가 가지고있는 질투라든가 민감성따위는 가지고있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내가 모를거라고 생각하고있은거예요. 무시하지 않았다구요? 무시하고있었기에 모를거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다는걸 뒤집어 생각해본적이 있어요?...>>

<<여보, 나...>>

창호는 목구멍에 보리가시를 틀어 막은것 같았다. 말이 나가지 않았다. 금화의 얼굴은 창백했다. 목이 마르는지 쥬스잔을 들었다가 빈것인것을 보고 내려놓았다.

<<알아두세요. 말해두었지만 어떻게 되였든 전 리혼은 안해요. 당신은 징벌을 받아야 해요. 저주를 받아야 한단 말이예요... 부자도 저주를 받아야 하지만 가난한 사람도 저주를 받아야 해요. 누구의 가난이나 누구의 상실이 남을 무시하고 때려죽일수 있는 리유가 되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저주를 받아야 해요. 당신까진 용서하려고 했어요. 당신에게는 그래도 동류감같은것이 있었댔으까요. 근데 당신도 꼭 같은 인간일줄은 몰랐어요. 이 말을 하는 순간 저도 당신과 같은 인간이 되는거 아닌가 위구심이 들어요. 그러나 이제 누구를 믿기를 포기했어요. 인간은 저주를 받아야 하는 동물인지도 모르죠. 만일...>>

금화는 말을 끊었다가 잠간 창호를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만일 애의 아빠가 아니라면 전 당신을 용서하지 못했을수도 있어요. 애한테만은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주고싶었을뿐이예요. 허위적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당신이나 무슨 론리로 자기를 정당화하는 인간보다는 허위적이 아닐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바라지도 않지만...>>

금화는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러 랭수 한컵을 주문했다.

창호는 이런 금화를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금화를 생각조차 한적이 없었다. 금화와 사는 동안 창호에게 있어서 금화와 가정은 마치 목도리같다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추우면 생각나고 더우면 언제든지 잊을수 있는 목도리.

<<여보, 나 당신을...>>

창호는 변명하려고 하는 자신이 얼마나 창백한가를 느꼈다. 금화의 말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아무런 정신적인 준비가 없었던 창호로서는 무엇을 어데로부터, 어디서 시작하여 금화를 설복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나 미안해. 여보, 당신을 내가 너무 무관심하고있었어. 그렇지만 당신을 미워한건 아니야. 정말이야...>>

이부분은 맞는 말이였다. 창호는 금화를 미워하거나 증오하고있은것은 아니였다.

금화는 웨이터가 가져온 랭수를 거의 반컵이나 단모금에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컵을 탁자우에 놓았다. 손이 가볍게 떨리고있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어쩌면 저하고 살아준 당신에게 고맙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죠. 저에게는 동년도 청춘도 없었어요. 당신이 있었기에 녀자라는 허울은 가지고살수 있게 된거예요. 그점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하고있어요. 그러나 허무해요. 내 삶이 너무 허무해요. 이세상에 태여나지 말아야 하는 데...>>

금화가 머리를 숙였다. 탁자우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어깨가 흔들리고있었다.

<<여보, 당신?!...>>

창호는 가슴 깊이에서 커다란 회한이 솟구쳐오르는것을 느꼈다. 꼭 같이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였던가?!

<<미안해, 여보!.. 당신 한국 가지 마. 가서 놀다가 인차 돌아와. 내 잘해줄게. 여보...>>

금화는 머리를 들었다. 티슈를 빼내 눈물을 닦고나서 금화는 창호를 쳐다보았다. 자조와 같은 빛이 눈가에 스며있었다.

<<그만두세요. 당신 참회를 듣자고 이런걸 이야기하는건 아니예요. 저도 많은 생각을 하고있었다는걸 모르는게 서운했어요...>>

창호는 서운했다라는 말의 깊은 뜻을 리해할것 같았다. 갈피를 잡고있는것은 아니였지만 자신의 가슴에 도사리고있는, 잔인한 과거의 상처의 흔적이 보이고있는것 같았다.

<<여보, 가지 않아도 돼. 있으면 있는만큼 없으면 없는만큼 살면 되는거잖아?...>>

<<이제 떠났는데 가지 않는다는건 말이 되지 않지 않아요? 미라만 잘 생각해주어요. 언니한테 맞겼다지만 시름을 다 놓은건 아니예요.>>

창호는 이자리에서 금화의 한국행을 막는다는것은 오히려 더 허위적이라는것을 느꼈다.

<<가서 건강 주의해. 건강만 하다면 세상은 기회가 있을거야...>>

뒤에 말은 창호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심은 없었다.

공항로비에서 안내방송이 울렸다.

<<장춘으로부터 한국 인천으로 가는 xxxx호 항공기는 지금 곧 탑승수속을 하게 됩니다. 려객 여러분들은...>>

짐을 부치고 안전검사를 하러 들어가면서 금화는 머리를 돌렸다. 이제 갈게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표정은 없었다. 그러나 창호는 지금 금화가 울고있다고 느끼고있었다. 창호는 손을 저었다. 그러나 그때 금화는 이미 돌아서있었고 검문뒤로 사라지고있었다.

창호는 그런대로 오래도록 서있었다. 갑자기 비행기시간을 잘못알았던것은 금화의 계획속에 있었던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랬다. 금화는 이 말을 하기 위하여 오랬동안 생각하고있었던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생에서 가장 길게 말을 했다. 그렇다면 왜 리별의 마지막 순간을, 그것도 복잡한 공항의 커피숍을 택한것이였을가?

창호는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있었다. 그리고 허무를 가득히 않고 공항을 나섰다. 리륙을 준비하는 비행기의 폭음이 공항광장의 소란한 소음을 덮어버렸다. 창호는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리륙하는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만이 파랗게 개여있었다.

하늘만이 파랗게 개여있다. 하늘이 개임에 리유가 있는것일가? 그렇다면 흐림에는?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는 모든 자아 리유는 무엇인가?...

창호는 자기의 고독한 령혼이 길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어디론가 추락하는것을 보았고 그 허무속으로 빠져들어가는 흔적이 가슴에 아련한 아픔으로 남는것을 보았다. 그리고 죽음의 냄새를 맡았고 뼈저린 고독을 느꼈다.

흘러가는것이 이와 같으니라... 공자의 말이던가?

다음에 계속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