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가을이 문턱을 넘더니 겨울이 깊은 늪 속에 빠진다. 각양각색으로 제 몸을 태우던 낙엽이 한 잎 두 잎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벌거벗은 나무에 삭풍이 분다. 낯선 먹구름이 기웃댄다.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다.

봄이면 꽃 피는 산을 올랐다. 여름의 녹음 산행도 갔다. 가을의 단풍 산행도 즐거웠다. 그러나 겨울의 삭막한 산, 바람과의 싸움을 이기고 높은 산 정상에 올라서 천하를 얻으면 더욱 감개무량하다. 땀 흘리던 인생에서 어찌 값싼 성공 같은 것에 비길 수 있으랴. 겨울 산은 삭막하고 냉정하지만, 겨울 산행은 인생 만사의 승전보 같기도 하고 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 같기도 하다. 우리는 오대산 비로봉 등반을 위해 새벽 6시에 양재동 구민회관 앞에 모이기로 약속을 했다.

심술궂은 어린아이의 표정 같은 하늘. 금방 눈물이라도 뚝뚝 떨굴 것 같은 하늘. 하늘을 닮아 무표정한 얼굴로 하나 둘 약속 장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두툼한 옷차림에 간단한 여장, 그래도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모두들 자리에 앉으라며 인원 점검을 한다. 돼지 소풍날 마리 수세듯 늘었다 줄었다 하더니 대충 맞는다며 버스는 출발했다.

우리는 이내 서울을 떠나 암울한 도시의 옷을 벗었다. 짙은 운무에 가려 점점 시야가 좁아지더니 원주, 안흥, 진부, 대관령을 가까이 하면서 창 밖엔 진눈깨비가 내린다. 눈 오는 겨울은 낭만적이다. 눈 오는 들녘을 한없이 달려서 산까지 왔다. 월정사에서 비좁은 계곡 길을 아슬아슬하게 돌아 다시 상원사까지 차가 올랐다. 여름의 울창한 숲이 발가벗고 희끗희끗한 옷을 입고 바야흐로 우리 일행을 유혹한다. 산 중턱에 서서 오던 길을 돌아보니 저게 바로 신천지다.

노인봉 쪽으로 가면 바닷가 동해로 가는 소금강이지만 우리는 오대산 상상봉인 비로봉을 택했다.

깊은 산에 높은 나무는 비스듬히 누워 있기도 하고 더러는 하늘 높이 직선으로 뻗어 있기도 했다. 한강 물줄기의 원통수 샘물도 마시면서 땀이 억수로 쏟아지는 고행을 강행했다. 가쁜 호흡에 말문도 닫혔다. 오라는 이 없어도 올라가야 한다. 되돌아 내려올 줄 알면서도 올라야 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리라. 농무가 때로는 앞을 가로질러 달아나곤 한다. 오를수록 눈발은 더하고 간밤의 눈꽃은 만발해 떨어지고 다시 피었다. 설화가 아니라 눈꽃, 흰 꽃의 이미지가 더 좋다고 누군가 말한다. 우리 일행은 두어 시간 쯤 올라가 비로봉 적멸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큰 메아리, 큰 바닷바람도 안았다. 스님도 없는 빈 암자에 드니 이미 설화(雪花)는 앉아 있었다. 젊은 여인은 설화처럼 흰 옷을 입고 묵상하고 있었다. 공허한 찬 바람을 얼마나 들이켰는지 두 볼조차 발그레하다. 얼마나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을까. 우리는 화초밭 호랑나비 날갯짓으로 여남은 번 예불을 했다. 자못 엄숙한 분위기에서 적멸궁은 고요했다. 고요하다기보다는 원시적 정적이 고여 옴짝도 않는다.

흰 눈 앞에서 대자연도 비로봉도, 너도 나도 적멸궁, 그리고 젊은 여인도 마님도 모두가 설화(雪花)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설화처럼 희지는 못했다. 도시락에 소주도 한 잔 하니 천하가 내 것이요, 적멸궁의 설화도 내 것이다.

그러나 설화의 기억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비로봉의 눈꽃이 피고 적멸궁의 눈꽃이 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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