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난 연변을 방문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나갔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방문했던 용정의 신화촌과 개산툰등의 변경마을들은 급격한 인구감소로 아주 썰렁했다. 소문대로 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한족 농민들도 마을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에 갈 기회를 부지런히 찾고, 갈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모두 나간다는데,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 나가지 못하는 조선족 동포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추방되어 돌아온 이들과 결혼 수속 시 “진실성”이 의심되어 한국행 비자를 못 받은 동포들이었다. 이름하여, “위장결혼피해자”들이다.

연변 위장결혼 피해자들의 자료들을 2년간 모아오고, 한국을 오가면서 정부와 수차례 협상을 시도한 한 조선족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위장결혼이 발각되어 추방되어 온자, 둘째, 브로커가 체포되어 결혼수속이 끝난 후 “진실성” 부족으로 판명된 자, 셋째, 돈을 받은 후 알선한 브로커와 한국 측 상대가 소식이 없어진 자로 구분된다. 이중 두 번째 범주의 피해자들이 절대 다수를 이룬다. 이 변호사는 결혼피해자만 750건 정도 접수한 상태이지만, 위장결혼으로 판명 된 이후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는 것은 현재 제도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연변에 있는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수소문을 통해서 위장/결혼과 관련된 몇 명의 피해자들을 어렵게 만나 보았다. 그중 세명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연길에 거주하는 45세 여성은 2003년 한국 식당에서 “불법”으로 일하다가, 한국 측 동료의 고발로 추방되었다. 중국으로 돌아온 후, 금전적인 문제로 시작된 갈등으로 남편과 이혼하면서, 중국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 여성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서 한국에 재입국을 희망하던 중, 한국남성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브로커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소개로 만나게 된 한국 남성과의 관계가 발전하게 되었다. 한국에 갈 날을 기다리면서 결혼수속을 마쳤다. 그런데, 2003년 추방 기록 때문에 결혼수속을 마치고도, 결혼비자를 받지 못했다. 그 이후, 한국남성과 잦은 전화통화를 통하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다른 입국방법이 없어 지금까지 중국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2004년부터 시작된 4년간의 이혼수속을 올해가 되어서야 마쳤다. 이 여성은 이 결혼은 “절대 위장”이 아니며, “우리는 서로 좋아 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함께 할 수 없는 경우라고 했다.

훈춘에 거주하는 57세 여성도 한국에서 추방된 경험이 있다. 남편과 사별하면서, 한국남성과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남성은 일용직 노동자였고, 재혼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서, 별다른 소개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모든 결혼수속을 마치고, 결혼비자도 나왔고, 남편과도 일정이 다 맞추어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출입국관리소에서 남편에게 전화통화 연결을 요구했다. 그런데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 여성은 인천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되어 중국으로 바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 이후 이 여성은 건강상태가 악화 되었고, 아직도 “종무소식”인 그 남성과 서류상 혼인관계를 맺고 있다. 이혼소속을 하는 데에 드는 변호사 비용(100만원에서 300만원, 변호사마다 다르게 요구)도 만만치 않고, 호적정리를 한다고 해도, 추방이력 때문에 한국에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해, 별 손을 쓰지 못한 채, 몇 년째 기다리고만 있다.

화룡에 거주하는 52세 여성은 한국에 가 본적이 없다. “걸어 다닐 줄 알면 다 간다”는 한국인데, 아직도 한국에 한 번도 못 가본 게 못내 아쉽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과 이혼한 후, 한국에 “시집” 가기로 결심했다. 빚을 내고, 모아두었던 퇴직금을 털어서 결혼 수속을 시작했다. 중국 측에서 필요한 서류처리는 본인이 직접 담당했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만나본 한국 측 상대가 맘이 좋고, 성실한 것 같아서, 힘들지만 부지런히 수속을 하러 다녔다. 혼인신고가 다 되고 결혼비자를 접수 했는데, “진실성 부족”으로 비자는 기각 되었다. 후에 알게 된 것 이지만, 브로커가 경찰에 잡히면서, 이 결혼의 “진실성 부족”을 증언했다. 그 결과 한국 측 남성도 벌금형 300만원을 받았다. 이 모든 처벌이 한국에서는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이 여성은 한국남성과 서류상 혼인관계에 묶여 있다. 남들 다 가본다는 한국에 아직도 가보지도 못한 채, 한국 사람의 부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으로 입국하는데 필요한 비자가 거부 되었을 때에는 개인별 상이한 출입국관련 사유들이 있다. 위의 사례들처럼 추방당한 경력이 재입국을 가로 막기도 하고, 결혼의 “진실성 부족”이 한국입국의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으로 입국한 조선족 여성들에 대한 지배적 담론은, 그들이 한국남성과 “진정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으로 입국하고 합당한 체류자격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한국남성과 결혼 후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여성들은 한국국적을 이용하여, 가족초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시장”에 내다 팔아서 돈벌이를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의 이러한 통상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연변에서 만난 여성들의 증언은 “위장/결혼”이 한국과 중국에 걸쳐 있는 여러 명의 공모자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장” 결혼이든, “진짜” 결혼이든, 중국과 한국의 당사자들의 감정과 의지와 상관없이, 금전거래관계의 여부와 브로커의 증언에 따라서, 이 결혼의 “진실성”은 판단되곤 한다. “위장” 결혼의 당사자, 브로커, 그리고 재외공관이 모두 공모자라면, 그리고 모두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증언과 판단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진실성 부족”이라는 결혼 비자 기각사유는 완전히 진실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 여성들은 위장결혼의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또는 공모자인가? 위의 사례들은 “위장결혼”으로 단순 범주화된 조선족과 한국인과의 결혼관계 내부에는 진실 또는 거짓으로 구분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선과 치열한 물질적 이익들이 교차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비공식적 통로를 통하여 발전된 위장결혼의 역학 관계 속에서 “진실성 부족”을 판단할 공정한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서로의 입장에서 따라 진실성을 증언하고 주장하는 “위장/결혼”을 둘러싸고 너무 많은 “공모자”들이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다.

< 중국동포타운신문 137기 연재>   

권준희 :  미국 듀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을 밝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재외동포 인권단체 지구촌동포청년연대(KIN)에서 활동했고 오사카, 도쿄, 홋카이도 등지를 방문하여 재일동포들을 만나 “ ‘조선적’ 재일동포 3세 민족정체성에 관한연구-조선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라는 석사논문을 2002년에 발표. 이주와 재외동포에 대한 관심을 지속 확장시키면서, 현재 중국조선족 동포들의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초국가적 이주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 논문은 조선족 개인과 연변사회가 일상화된 조선족 이주(노무송출)의 맥락 속에서 “발전” 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상상하고, 비판하고, 실천하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연변과 서울을 오가며 현지조사중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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