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문학지- [도라지 수필세계]

아침해가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바람으로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루의 기대마저 저버린 하늘이 원망스럽게 시뿌옇다. 완전히 포기한 얼굴이다.
길을 떠나야 하는데 차로 움직여야 하는데 폭우라니 망설이지 않을수가 없다.

날씨가 좋을 때라도 연길부터 장춘까지는 장거리이고 연도의 도로상황도 렬악하다보니 좋은 코스는 아니다. 앞에서 벌어질 상황을 도무지 예측할수 없는 상황에서 전직기사도 아닌 겨우 초보를 면한 운전자가 가기에는 머나먼 행로였다.

하지만 떠나야 하는 길이였다. 때로는 이렇게 자기가 원하지 않는 길을 떠나기도 한다.

샤와를 하고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한잔 마셨다. 차에서 먹을 도시락과 음료도 준비하고 갈아입을 옷, 책, CD, 줄줄이 챙겨넣었다. 그리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탱크 가득 넣었다.

아침 아홉시가 다돼서야 출발을 했다.  도로도 좋고 오가는 차량도 적고 비도 안올 때 거침없이 달렸다.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며 달리다보니 도로표식은 어느새 안도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고있다. 때는 벌써 한낮이였고 강렬한 태양에 눈이 부셨다.

운전을 하다보면 가담가담 란폭운전을 하는 기사들도 불쑥불쑥 새치기를 하는 기사들도 있지만 나는 다 넘어가준다. 시간에 쫓기우는 사람이겠지, 먹고 살려고 그러겠지. 나름대로 그들을 위해 그럴듯한 리유를 찾아준다. 그런데 때로는 한번 양보하면 여러 차량을 일일이 다 보내야 하고 나만 오도가도 못하고 멈춰있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내뒤에 있는 차들은 빵빵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눈 감으면 코 베여갈 세상에 양보가 웬 말이냐 하는 투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양보를 받은 사람은 고마운줄을 모르고 내뒤에 서있던 사람들은 나와 같이 희생양이 되였기에 불만이 쌓이고. 나만 난감하고 힘들어지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다음엔 양보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금방 보슬비가 내렸는지 나무도 꽃도 풀잎도 촉촉하다. 기분이 산뜻하다.
아예 창문을 활짝 열고 달렸다. 맑고 시원한 공기에 마음까지 상쾌해난다. 꽃내음이 난다. 풀냄새가 싱그럽다. 흥분과 격정, 행복이 찾아들었다.
산사이의 좁은 도로로 접어들자 도로 량옆에 산들이 웅장한 모습을 하고 서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푸르른 숲과 노란 들꽃, 출렁이는 강물
여기서 쉬여갈가요? 강물에 손도 담그어보고 꽃도 꺾고. 저 융단 같은 풀밭을 맨발로 걸어보고싶네요.

하지만 너무 어둡기전에 장춘에 도착하려면 여기서 머뭇거릴 사이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지는것 같았다. 지나가는 비겠지. 우리는 서로를 위안하고 격려하면서 희망과 용기로 가득차 길을 조여갔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끼고 비방울이 점점 커졌다. 바람도 질세라 기승을 부렸다. 정말 폭우가 쏟아지려나? 바람을 가르며 우쭐하며 달리던 앞차들이 휘청거리는 모습들도 보였다. 몇번 가슴이 철렁했다.
폭우가 내리면 돈화까지만 가고 더 가지 말아야지. 돈화에서 하루밤 묵어가든지 아니면 기차를 리용하든지 다른 방법을 대야지. 의외의 사고가 생기는 날이면 모든게 끝나지 않는가.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내 가족이 있고 그리고 모든게 있을수 있지 않는가.

산골짜기를 넘어서니 언제 그랬더냐싶게 비줄기가 약해져있다. 어디에도 비가 퍼붓고 지나간 흔적은 없었다. 사위는 너무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산골짜기와 산너머의 풍경이 이렇게 완판 다를수가.
우리는 또 의미있는 눈맞춤을 한다.
봐, 괜찮을거라고 했잖아?
그럼, 누가 가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언제 그랬더냐싶게 구름이 말끔히 걷혀있고 바람이 싱그럽다. 우리는 다시 웃고 떠들고 유쾌한 이야기로 차안을 메운다. 신바람이 난다, 행복하다.

산골짜기를 만나면 또다시 막막하기 그지없다. 한치앞을 가려볼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끼여있고 길이 미끄러워 차도 비틀거린다. 깜빡하다가는 낭떠러지로 처박힐 판이다. 우리 얼굴에는 다시 수심이 어리고 서로 말은 안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목적지까지 순조롭게 갈수 있을가? 우리가 왜 이 길을 떠났지? 이젠 되돌아갈수도 없다. 후회도 하고 회의도 느낀다.

수없이 많은 올리막을 넘었다. 앞에 얼마나 많은 올리막이 기다리고있을지 알수가 없었고 내리막의 즐거움을 느끼기도전에 또다른 올리막이 다시 나타났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또 내리막이 나타나기도 했다.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었고 험한 산골짜기가 있는가 하면 탄탄대로도 있었다.
교통규칙을 무시하고 오고가는 차들을 다 무시하고 매너없이, 사정없이 달리는 차도 있었다. 우리를 앞질러가는 차들도 있었고 뒤떨어져서 천천히 달리는 차들도 있었다.

한발 앞서간다고 영원히 앞서는것도 아니고 한발 늦어졌다고 영원히 뒤떨어지는건 아니였다. 앞서봐야 얼마 앞서지 못하고 늦어봐야 얼마 늦지 않다. 몇분 더 늦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것도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는거다. 결국은 모두 목적지까지 가게 돼있다. 천천히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이 오히려 더 안전하게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지도 모른다.

어느쯤에 가보면 앞서가던 그 차들을 다시 볼수 있었다. 접촉사고를 내고 내가 옳거니 네가 그르거니 시비하는 차들도 보이고 웅뎅이에 빠져 어쩔줄 몰라 쩔쩔매는 차들도 보인다. 흐름을 무시하고 다른 차량들이 안중에 없으니 어디가 걸리고 부서질수밖에.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지는 해는 하늘에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남기고 퇴장을 했다. 비온 뒤의 저녁노을이 더욱 붉게 보였다. 이제 남은건 고속도로다. 4차선이라 한쪽 눈을 감고도 질주할수 있는 장(장춘)길(길림)고속도로다.
곧게 뻗은 탄탄대로를 달리노라니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멀리 고층건물들에서 새여나온 화려한 불빛들이 눈앞에 아름답게 다가왔다가 스치는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다시 멀어져간다.

다리가 아프다, 팔도 아프다. 같은 속도, 같은 자세로 요지부동으로 달려야 하니 팔과 다리가 싫증이 난거다. 스릴이 없어서 운전하는 재미도 없었다. 때로는 오른쪽으로 크게, 때로는 왼쪽으로 작게 핸들을 틀기도 하고 때로는 악셀을 때로는 제동을 걸면서, 그리고 앞에서 예상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그것을 대처하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달려야 운전의 묘미를 느낄수 있는게 아닐가?
도로변의 풍경도 똑같아서 영 재미가 없다. 고속도로에서의 질주는 너무 따분했다. 평온하고 안전해서 좋긴 했지만 그래도 예쁜 풀밭도 있고 연기 피여오르는 인가도 있고 풀 뜯는 소도 있고 비도 있고 바람도 있고 풀냄새도 있고 물소리도 있던 조마조마하고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달려야만 했던 그때가 그리웠다.

이럴줄 알았으면 연도의 풍경도 감상하고 꽃냄새도 실컷 맡고 맨발로 파란 풀밭도 걸어보고 파란 하늘도 실컷 봤을걸 그랬다는 후회도 없지 않았다.
어렴풋이 장춘시내가 보인다. 석양속에 잠긴 장춘시내가 숙연하고 장엄하게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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