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곽승지 저

. 주민생활 수준

연변지역은 도시를 중심으로 2차 산업이 발달하였지만 여전히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중이 높다. 2005년 말 현재 농업인구는 76만7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35.3%에 이른다. 조선족동포들 역시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호구조사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실제 상황과는 차이가 있어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족동포들의 해외 및 연해도시로의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져 한국을 비롯한 해외로 나간 조선족이 30만 명을 넘어섰으며, 연해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이 50만 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변에서 운영되는 한 인터넷매체는 2007년 11월 11일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2007년도 1/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소수민족 자치주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1/4분기 GDP는 44억4천만위안(5천33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8.5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이는 길림성의 평균 성장률보다도 2.5퍼센트 높은 것이다. 연변의 급격한 성장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위해 연변 밖으로 진출한 동포들의 송금이 늘어난데 따른 것이다.

연해도시와 한국 등지에서 막대한 송금을 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동포들의 전체적인 생활수준은 높지 않다. 외지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연변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연변지역의 1인당 GDP는 중국평균보다 1000위안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송출에 따른 막대한 송금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1인당 GDP가 중국평균 보다 낮은 이유는 빈부의 차가 극심한데서 찾을 수 있다. 연변조선족 내에 거주하는 83만 여명의 조선족동포들 중 14만 여명 이상이 극빈자로 분류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전국적으로 가장 빈곤한 현과 현급시 500여개를 국가급 빈곤 현 및 시로 지정해 해마다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연변조선족자치주의 6개 시와 2개 현 중 용정과 화룡 등 2개 시와 안도와 왕청 등 2개 현이 국가급 빈곤 현과 시로 지정되어 있다. 2005년 8월에 제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 130위안(한화 약 16,000원)이 안 되는 조선족 빈곤인구가 142,682명이나 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전체 빈곤인구의 58퍼센트나 차지하고 있다. 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내에서 조선족 극빈자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길 등 도시지역의 조선족동포들의 생활수준은 매우 높다. 일부 부유층들의 소비생활은 한국의 중산층 못지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먹고 입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자동차구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노무송출로 인한 외화수입이 증가하는 것과 이렇게 벌어들인 돈이 소비향락산업에 집중 투자되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다. 문제는 연길시의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최저생활도 영위하지 못하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변경제가 기형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소비행태

조선족사회는 한족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소비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태는 개혁개방 이전보다 이후 더 심화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개혁개방 이전에 조선족 농민은 논 위주로 농사를 지었던 반면 한족 농민은 밭농사 위주로 농사를 지었다. 따라서 조선족 농민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윤택했다. 그러나 조선족 농민은 과소비 성향 때문에 겉으로는 풍족해 보였으나 실제는 저축을 하지 못하는 등 궁핍하게 살았다. 반면 한족 농민은 겉으로는 조선족보다 수입이 덜해 빈궁해 보였지만 실제는 근검절약하여 저축을 하는 등 오히려 여유있는 생활을 하였다.

조선족의 이러한 생활습관은 개혁개방 이후 더 심화됐다. 적지 않은 조선족동포들이 연해도시나 한국 등지에 나가 비교적 큰 돈을 벌었으나 비생산적인 부문에 많은 지출을 함으로써 경제력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말 흑룡강성 목단강시 조선족 농촌의 경우 연인원 6,000여명이 한국 등 외국에서 일해 몇 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그중 3분의 1정도가 비생산적인 생활소비에 탕진했다.

연변에서는 조선족의 과소비행태를 한족과 비교하여 전하는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연변에서 조선족이 택시를 타지 않으면 택시기사가 굶어죽는다는 말이 있다. 한족들은 여간해서 택시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한족은 3명 정도가 모여도 심사숙고한 후 택시를 타지만 조선족은 걸어서 갈만한 거리도 혼자 택시를 타고 간다는 것이다. 또 조선족은 돈이 생기면 그때그때 다 쓰지만 한족은 장롱 깊숙이 모아둔다. 그래서 겉보기와 달리 조선족이 한족들에게 돈을 빌린다고 한다.

이런 과소비 행태는 연길시내에 우후죽순처럼 늘어서 있는 소비향락산업에서도 반증된다. 다방 발마사지방 술집 등이 연길시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주 고객은 조선족동포들이다.

조선족사회의 과도한 소비성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우리민족의 낙천적인 성격과 가무를 즐기는 성향을 들 수 있다. 옛날부터 우리민족은 가무를 좋아해 때마다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를 즐겼다. 이러한 전통은 연변 조선족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져 3.8국제부녀절, 5.1절, 6.1국제아동절, 8.15노인절, 9.3자치주성립기념일 등 주요 기념일을 기해 주민들이 함께 가무를 즐기고 있다. 이런 기념일에 한족들은 특별한 가무를 행하지 않는다.

최근의 과소비행태는 돈을 쉽게 번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애써 고생해 돈을 벌었으면 그만큼 절약하고 의미있게 사용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흥청망청 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쓰게 되고, 돈을 다 쓰고 나면 또 벌면 되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조선족의 과소비행태를 이들의 이민성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한반도에서 이주한 조선족들이 중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함에 따른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스스로 영주이민자로 인식하기보다 “일시적으로 불가피하게 이주한,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으로 간주함으로써 그때그때를 즐기는데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조선족의 이러한 과소비행태는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이러한 소비문화를 생산적인 것으로 바꾸지 않는 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맺기가 역설적으로 연변 조선족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은 한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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