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축제의 거리

2006-04-26     동북아신문 기자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4년 4월 청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체결이 된 후로 화교들이 몰려와 생성 되었습니다. 북성동, 선린동 일대의 5천 평에 청국의 영사와 학교가 설치되고, 중국의 산동반도와 정기적으로 배가 운영되면서 화교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화교들은 중국에서 가지고 온 식료잡화, 소금, 곡물을 팔고 우리나라의 사금 등을 중국으로 보내어 상권을 장악하고 세력을 넓혀 나갔습니다.

   
▲ 사자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청관의 상권이 마비되면서 화교들은 대만, 미국, 동남아시아로 떠나고, 일부는 요리집과 잡화상들을 운영하거나, 일부는 부두근로자로 전락하기도 했답니다

1948년 한국정부가 수립되면서 각종 제도적 제한, 차별대우로 화교 사회는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더불어 1949년 중국정부가 설립되어 외국이동을 금지하면서 더욱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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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1세들은 고유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중국의 큰 명절인 설날과 원소절(보름날)사이의 15일 동안 마을은 온통 축제분위기 였으며,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글을 빨간 종이에 써서 붙이고 색등을 걸어 놓았습니다. 해가 저물면 긴 장대 끝에 폭죽을 수 백개씩 달아 놓고 불꽃놀이를 즐겨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현재 화교 2·3세들이 1백 70여 가구 500여명이 살고 있으며, 자금성, 중화루, 진흥각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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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춤·덩룽·치파오 행렬…


한·중 문화관 개관, 왕희지石像 제막식 열려

 

중국 8개 시·군·현 공무원 100여명도 참가

[조선일보 최재용 기자]

인천 ‘자유공원 벚꽃축제’가 시작된 16일 오후 공원 아랫동네 차이나타운에는 따사로운 봄햇살 속에 모처럼 왁자한 생기가 피어났다. 요란한 음악 속에 힘차게 머리를 흔드는 용춤, 치파오(旗袍·중국 전통의상)를 곱게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화교 아이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덩룽(燈籠·중국식 등)의 행렬, 여기저기서 시끌벅적하게 들려오는 중국말….

최근 2~3년 동안 중국 음식점 외에도 한약방과 도자기용품점, 문방구, 월병(전통 중국 과자) 판매점 등이 잇달아 들어서 꽤 중국풍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차이나타운이라기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많은 이 동네가 오랜만에 ‘차이니스(Chinese)’들로 가득 찬 것이다.

날씨 탓에 벚꽃이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아 벚꽃축제라는 이름은 무색했지만, 그 대신 손님들을 맞아준 개나리와 하얀 목련들 사이에서 한국 속의 중국인들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사진기와 비디오 카메라에 서로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두 딸과 함께 이곳에 왔다가 우연히 이들과 마주친 김영빈(金榮彬·44)씨는 “인천에 살면서 가끔씩 이곳에 와봐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은 중국사람들이 많으니까 진짜 차이나타운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중국인들은 100여명 정도. 산둥(山東)성 랴오청(聊城)시 둥창푸(東昌府)구 등 인천 중구청과 우호교류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내 8개 시·구·현 공무원들이 주류로, 이들은 중구청이 차이나타운 아래 턱에 새로 지은 지상 4층 876평 크기의 ‘한중 문화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오후 3시부터 열린 기념식에는 리빈(李濱) 중국대사와 주잉제(朱英杰) 주한 중국문화원장, 안상수 인천시장, 김홍섭 중구청장,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등도 나와 한국과 중국의 교류 확대에 이곳 문화원이 큰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했다.

개관식에 이어 참석자들은 문화원 4층 공연장에서 인천시립무용단과 웨이하이(威海)시 예술단의 전통춤 공연을 즐긴 데 이어 문화원 앞마당 한쪽에서 중국 동진시대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석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높이 3m, 받침대 높이 1.5m에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석상은 산둥성 린이(臨沂)시 난산(南山)구 인민정부가 중구청의 요청으로 중국에서 제작해 기증한 것이다.

한중 수교 이전부터 한국인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며 지금까지 40여 차례 인천에 와봤다는 웨이하이시 중창무역 박성준(朴成俊·46) 대표는 “중국 도자기 등 문화원의 전시물들이 비록 양은 적지만 질은 낮지 않은 만큼 점차 내용을 보충하고 상설공연 등의 계획을 만들면 차이나타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3시간여 만에 행사를 끝낸 참석자들은 우리 취타대를 앞세우고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돈 뒤 근처 호텔 만찬장으로 향했다. 요란한 태평소 소리에 왁자한 중국말까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공원을 찾은 상춘객 수백여명이 모여들어 좁은 동네가 금세 가득 찼다. 부모를 따라온 몇몇 아이들은 중국말이 신기한 듯 서투른 흉내를 내며 뒤를 따르기도 했다.

그동안 세 번 이곳에 와봤다는 안산시 천산구 인민정부 핑치민(馮啓民) 구장조리(區長助理)는 “올 때마다 규모나 풍경이나 건물들이 계속 달라진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에서 장사를 하는 화교 상인들도 오랜만에 번잡한 동네 풍경에 무척 신이 났다. 그동안 거의 보이지 않던 좌판까지 거리 곳곳에 펼쳐져 중국차와 술, 인형, 부채 등이 손님을 불렀다. 이곳에서 2년째 잡화상을 하고 있다는 여연명(33)씨는 “모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중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니까 동네에 활기가 넘쳐 저절로 웃음이 난다”며 “차이나타운이 앞으로도 계속 번창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