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숙 약력: 심양 출생. 사평사범학원(현 길림사범대학) 정치계 철학학사. 길림조중 교원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2015).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시집「아름다운 착각」「빛이 오는 방식」「날개는 꿈이 아니다」
김화숙 약력: 심양 출생. 사평사범학원(현 길림사범대학) 정치계 철학학사. 길림조중 교원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2015).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제10회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시집「아름다운 착각」「빛이 오는 방식」「날개는 꿈이 아니다」

 

몰아일체

 

무수한 나뭇잎이

무수한 혀가 되어

빗물을 받아먹고 있다

나무는 수액으로 출렁인다

날갯짓을 멈춘 채

허공을 나는 새처럼

미동도 없이

명상하는 자세로

나무도 허공을 잡는다

수액이 내 몸속을

관통하는 소리

나무와 하나가 된다.

 

 

날개의 예의

 

쫓으려 하지 않았는데도

산책을 하다 보면

비둘기며 까마귀며 참새며

날개를 가진 것들은

가까이 가면 날아오른다

내 몸이 커서 두려운 건지

잠시 멈춰서 올려다보니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앉아서는

머리만 갸웃거릴 뿐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궁금해 하는 내게 한 놈이

날개를 파닥이며 답한다

허공이 날개의 것이라면

땅은 다리의 것

너에게 길을 내주는 건

두려워 피한 것이 아니라

날개 없는 너의 다리에 대한

날개의 예의일 뿐이야.

 

 

본향

 

스산한 구월의 어느날

나무와 나는 할 일이 없어

종일 눈을 들어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더 심심한 얼굴이었고

그 아래를 구름떼가

끊임없이 서쪽으로 흘러갔다

저 구름들도

본향이 그리운 것인가

고국이며 고향이며

엄마며 딸이며 형제며

추억이며 사랑이며

내가 그리운 것들은 모두

그곳에 있다

하늘만 바라보던 나뭇잎

뿌리로 돌아갈 일만 남았듯

몸 따라 쫓아온 나의 생

이제는 어르고 달래어

본향으로 돌아가리라.

 

 

한가위 고향달

 

함께 살고 있는 동생과

해가 지기도 전에

건물이 드문 곳을 찾았다

울산 간절곶에서

일출을 기다리던 심정으로

보름달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만삭이 다된 추석달이

서서히 얼굴을 내밀자

동생은 달이 너무 무거워

떨어질까 걱정했고

나는 달과 눈 맞추려 애썼다

정적이 우리를 감쌌고

보름달은 자매의 소원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아득한 세월 이국살이 하는

쉰을 다 넘긴 자매가

고향집에 계신 노모를

달에서라도 보려고

눈을 밝혀 합장을 했다.

 

 

고서의 향기

 

십 수 년 전 사놓은 책을

며칠 전에 읽었다

책속에서 나오는 향기에

새 눈이 열렸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책속의 감동은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기다려 주었다

순간 돋는 소름

삶에 더 나은 내일은 없고

새로운 내일이 있을 뿐

인생도 독서와 다르지 않아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창조하는 삶이 아니라

발견해가는 삶인 것이다.

 

 

나의 글 높이

 

강한 자 성공한 자

내 글은

그들을 위한

포장지는 되지 않으리

불안하고 나약한 자

끝없이 세상 변두리로

떠밀리는 삶일지라도

바닥에 있음으로

비로소 보이는

걸어 다니는 신발

병든 길냥이 그리고 들꽃

아픈 것들이 낮은 곳에 있듯

진정한 아름다움도

낮은 곳에 있다

내 글의 눈높이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

 

 

고독의 거리

 

떨어져 살아도 함께 산다

해도 따로 살고

달도 따로 산다

엄마는 고향집에서

따로 살고

딸은 이국땅에서

따로 산다

빛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

걱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

그만큼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따로 살아도 함께 산다

누구에게는 달이고

누구에게는 해가 되면서.

 

 

누구 손을 잡아야 하나

 

우리집 냥이와 동갑내기인

옆집 털보 강아지

누가 더 오래 사나

안보이게 경쟁을 벌이며

열네 살에 들어선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산책담당인 할아버지는

그 일 이후 바로 입원하고

할머니는 나만 만나면

내가 강아지라도 되는 것처럼

할아버지 대신인 것처럼

손을 맞잡고 놔주질 않는다

우리 냥이 가는 날

나는 누구 손을 잡아야 하나.

 

*냥이 -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출처  도라지 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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