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웅 중국 연변대학교 교수

1963년 일본 나가노에서 질주하는 라치환 선수
1963년 일본 나가노에서 질주하는 라치환 선수

술에 찌든 음력설연휴에 북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어 큰 볼거리가 생겼는데 생뚱맞게 “한복논란”이 터져서 세상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한복논란”이라고 했으니 20여 년 전에 우리 집안에 있었던 “한복논란”부터 이야기할까 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팔남매를 낳아 키우고 공부시키다보니 칠순을 넘어서야 환갑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큰 야단이 났습니다. 연길 광명가두에 있는 노인활동실을 빌려서 환갑잔치를 차리는데, 연변박물관에서 병풍을 싣고 달려왔고 정판룡, 왕유 교수 내외가 조선족의 환갑잔치를 구경시켜 준다고 연변대학에 와있던 외국인 교수 내외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좀 집안자랑 같지만 우리 부모님은 수십 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팔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팔남내 중에 박사, 교수만 대여섯 되니까요. 그러니 환갑상을 받을만 하고 그 장면을 찍어 박물관에 걸어놓고 홍보를 해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박물관 쪽에서는 백두산에 해가 뜨고 높은 소나무가지에 백학들이 앉은 멋진 병풍을 세워놓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을 복판에 모시고 양옆에 정판룡교수와 왕유교수를 모셨지요. 양쪽 날개에는 여러 사돈어른들이 나란히 앉았구요. 여성들은 모두 울긋불긋 화려한 한복을 입었는데 왕유교수가 청색 평상복을 입고 있었어요. 다 아시다시피 왕유교수는 한족이 아닙니까? 평상복을 입고 화려한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들 속에 앉으니 이건 닭 무리의 학이 아니라 오리입니다.

연변박물관의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왕교수님도 한복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팔남매를 다 출세시킨 집안의 환갑잔치라고 사진작품으로 만들어 박물관에 번듯하게 걸어놓을 심산으로 이른 아침부터 박물관에서 고풍스러운 병풍을 가지고 온 분입니다. 그분은 “어동육서, 홍동백서요” 하며 손수 환갑상을 차렸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아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난색을 지었습니다. 누가 감히 왕교수님을 보고 한복으로 갈아입으라고 권할 수 있겠습니까! 속된 비유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은 제가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왕교수님을 조용히 병풍 뒤쪽으로 모셔내다가 

“오늘 환갑상을 받는 장면을 찍어 연변박물관에 영구히 전시한답니다. 죄송하지만 사모님께서도 한복을 입었으면 하는 데요…”
하고 한 마디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왕교수님은 당신 자신의 옷매무시를 이리저리 내려다보더니

“나도 닭 무리에 끼인 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한복이 있어야 입지.”
하고 천만 뜻밖으로 한복을 입겠노라고 했습니다. 나는 얼씨구 좋다 하고 이 소식을 알렸고 누님은 득달 같이 달려가 여벌로 장롱에 넣어두었던 한복을 두 손에 받쳐 들고 달려왔습니다. 누님과 큰 형수가 마치 황후를 모시듯 왕교수님을 옹위해 가지고 병풍 뒤로 들어가는데 얼마 뒤 아낙네들이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새여 나왔습니다.

“과연 미인이야!”
이는 우리 누님의 목소리였고
“아이구, 어쩌면 살결이 이렇게 희지요. 떡가루 같아요.”

이는 큰형수가 혀를 차는 소리였습니다. 나그네 귀 석자라고 했던가요. 나는 그 소리들을 다 들었고 자기도 모르게 슬쩍 건너다 보았습니다. 누님과 큰형수가 왕교수님께 치마를 입히고 나서 저고리를 입힐 차례였는데 두 팔을 벌리고 얌전하게 입혀주기를 기다리는 왕교수님은 그야말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신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비둘기 잔등같은 동그란 어깨, 백옥 같은 두 팔, 이팔청춘 아가씨처럼 홍조를 머금은 두 볼, 그야말로 화용월태가 따로 없습니다.

김호웅 : 연변대학교 조한문학원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 중국 작가협회 회원. 연변대학교 한국학연구센터 소장, 문과 학술위원회 주석 역임.
김호웅 : 연변대학교 조한문학원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 중국 작가협회 회원. 연변대학교 한국학연구센터 소장, 문과 학술위원회 주석 역임.

쉰 고개를 넘어선 분이 이토록 아름다울진대 처녀시절에는 과연 얼마나 청순하고 예뻤을까요! 그래서 모스크바대학에서 류학할 때 천하에 비위 좋고 넉살좋은 정판룡교수도 시퍼런 대낮에는 프러포즈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지지리 못나게도 둘이 암실(暗室)에서 사진을 현상할 때에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덥석 왕유교수의 손을 잡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날 한복을 입고 앉은 왕교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한 떨기 수선화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더욱이 러시아어와 영어를 정통한 유명한 한족 교수가 한복을 입고 조선족 녀성들 사이에 허물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 형제들은 물론이요, 연변박물관의 사진작가도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후일 이 사진이 확대, 현상되어 연변박물관에 전시되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각설하고 북경동계올림픽은 중국의 축제일 뿐만 아니라 60억 세계인의 축제입니다. 이러한 축제에 중앙민족대학의 예쁜 조선족처녀가 한복을 입고 나가 여러 민족의 동창생들과 함께 거폭의 오성붉은기를 들었습니다. 중국과 해외에 있은 조선족 형제자매들은 이 장면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목이 터지게 환성을 질렀고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기자와 정치인들은 "중국이 우리 한복을 훔쳐갔다, 동북공정의 일환이고 문화 침탈이다!"하고 난리를 칩니다. 너무나 치졸한 작태요, 약자 콤플렉스입니다.

약자 콤플렉스를 언더도그마(underdogma)라고 해도 대과는 없을 것입니다. 언더도그마는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는 오류로서, 맹목적으로 약자는 선(善)하고 강자는 악(惡)하다고 보는 현상입니다. 우리 속담으로 쉽게 풀이하자면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논리입니다. 언더도그마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시되고 원칙과 절차가 유명무실해진다는 점입니다. 흔히 약자는 배려와 구호(救护)의 대상이 되기 쉽고 대중들은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동정과 공감을 보내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약자인 누구는 무고한 피해자이고 강자인 누구는 억압적인 악당이다” 라는 식의 극단적인 판단으로 치닫게 된다면 사회문제로 번지게 됩니다. 특히 자신의 지적 허영심과 허세,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약자를 선량한 존재로 추켜세울 때 상황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는 약자에게도 피해를 줄 소지가 있습니다. 기실 이런 견해를 남발하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약자들을 만났을 때 온정적이고 관대하게 행동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 번 “한복논란”에서 한국의 대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후보들도 발끈 노한 체 하였는데, 그 실속은 대선정국에 “한복논란”을 이슈화해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어느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나의 친구가 보내온 문자를 볼까요?

“기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흥분은 금물입니다. 이번 북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처녀를 두고 문화공정이라고 난리를 치는 한국 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건은 한국인들이 흥분할 일이 아닙니다.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의 문화를 나란히 소개하는 가운데 조선족을 빼면 그게 더 조선족을 무시하는 것이겠지요. 만약 이렇게 했다면 한국에서 오히려 조선족을 홀대했다고 흥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국의 정치권까지 나서서 반중정서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는 대선을 앞둔 불미스러운 풍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같은 사람이 의견을 발표한다면 집중포격을 받겠지요. 그러니 한국 지식인 중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친구가 말한 바와 같이 이번 “한복논란”은 한국 언론과 정계, 특히 남에게 알릴 수 없는 정치적 야심을 가진 자들의 무식하고 옹졸하고 경박한 작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첫째, 중국은 다원일체의 중화민족공동체를 건설하고 있고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평등한 권리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각 소수민족이 자기의 말과 글, 음식과 복장을 비롯한 고유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각자의 민족복장을 입고 나라나 세계의 큰 축제에 참가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더더구나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통해 한복을 홍보해 주었는데 “훔쳐갔다”니 참으로 어불성설입니다. 황차 한복은 우리민족의 전통의상으로서 한국이나 조선에 살고 있는 분들은 더 말할 것 없고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이라면 누구나 다 입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녕 약자의 편을 들고 자칫하면 고래싸움에 등 터질 수 있는 해외동포를 사랑한다면 이번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 조선족 처녀가 한복을 입고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의 대접을 받으면서 56개 민족 대표들과 어깨 나란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쳐야 할 게 아닙니까?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1963년 2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제57회 세계남녀속도빙상선수권대회에서 중국 대표선수로 참가하여 1500메터 종목의 금메달을 수상한 적 있는 81세 고령의 라치환선수가 이번 성화봉송식에 참가했는데 이는 왜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에 우리 조선족의 자랑- 라치환과 같은 이들이 보이지 않아야 속 시원하겠습니까?

둘째로 문화의 다양성과 다른 문화에 대한 아량과 포용성이 있어야 하겠지요. 앞에서 사례로 말씀을 드린 왕유교수와 같은 아량과 포용성을 말입니다. 다양한 문화 또는 문명은 상호 교류 속에서 발전하고 "너의 속에 내가 있고 나의 속에 네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례를 들면 또 발끈 화를 내는 분들이 있겠지만, 태극기의 문양도 주역(周易)에서 가져온 것이고 한글 낱말의 40%도 중국 한자에서 가져온 것 아닙니까? 하지만 태극기는 한국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되었고 한국을 상징하는 기치로 되었습니다. 또한 세종대왕 같은 어진 임금은 집현전 학자들을 거느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함으로써 우리민족의 감정과 정서, 역사와 현실을 기록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태극기와 한글이 한국 고유의 문화유산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10여 년전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모국어로 채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모두 얼마나 기뻐하하였습니까? 그런데 올림픽 축제마당에 한복이 나왔는데, 그것도 조선족 처녀가 입고 나왔는데 대관절 무슨 시비를 하는 겁니까.

한국은 수많은 정치, 경제, 외교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반도에 미군의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중한관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조선족 여대생이 한복을 입고 나선 것을 침소봉대해 떠들고 있는 대선 후보들, 그들의 무지와 경박함이라 할까, 속 얕은 잔꾀까지 훤히 들여다보여 참으로 꼴불견이라 하겠습니다. 대통령자리를 넘보는 정치인들까지 “발끈” 하고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난발하니까 일부 네티즌들도 “중국은 코로나를 제외하고 전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의 어느 나라 국민이나 상, 중, 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한국의 망신은 극소수 저질적인 기자, 정치인들이나 네티즌들이 다 시킨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인들 속에 우수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봅니다. 우리는 중한관계의 사절로 중국인민과 어깨를 겯고 일제와 싸운 백범 김구, 예관 신규식과 같은 분들을 기억하고 있고 중한수교 이전부터 중한친선과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온 김준엽, 동훈 선생과 같은 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런 훌륭한 분들을 본받아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네티즌들도 허구한 세월 약자 콤플렉스 또는 언더도그마에 시달리지 말고 품위 있는 세계인으로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고국의 국민 여러분께 한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국을 떠나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사과배라는 메타포를 동원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연변 또는 조선족의 상징으로 되는 사과배는 조선 함경남도 북청의 배나무가지를 베어다가 연변 현지의 돌배나무 줄기에 접목시켜 만들어낸 새로운 과일품종입니다. 연변의 사과배가 연변의 돌배나무 유전인자와 북청의 배나무 유전인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듯이 조선족은 중화의 문화신분과 백의겨레의 문화신분을 동시에 갖고 있는 특수한 민족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조선족은 이중문화신분과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박쥐처럼 기회주의자로 살 수 없습니다. 정판룡교수께서 생전에 조선족을 “중국에 시집온 조선의 딸”로 비유한 적 있지만, 이제 조선족은 발길이 닿는 대로 떠도는 나그네도 아니요, 물결 따라 바람 따라 떠도는 부평초도 아닙니다. 우리 조선족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곳은 중국입니다. 우리는 고려 속요 <정석가>에서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라고 했듯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고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는 무궁화 삼천리강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아울러 연변 또는 중국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면서 투철한 국민의식을 가지고 모범적인 중국국민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조선족의 문화정체성입니다.

이 글을 마치는 순간, 한국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조선족복장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즉 중국에서는 한국의 역사문화전통을 존중함과 아울러 한국에서도 조선족을 망라한 중국 여러 민족의 감정을 존중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중한친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품위 있고 멋진 제안이라 하겠습니다. 이제는 오해와 갈등을 넘어 중한수교 30주년과 “중한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쌍방의 공동한 노력으로 여러 분야의 합작을 심화시키고 양국 인민들 간의 우호적인 감정을 회복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기를 두손 모아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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