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응모글

 

 

응모글 제28편 최화숙 <아부이야 -아버지에게 드리는 글> 심사평

리동렬 동북아신문 대표,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가슴 먹먹한 父愛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줘

최화숙의 ‘아부야’는 가슴 먹먹한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픈 자식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과, 그 사랑의 진가를 늦게나마 깨닫고 급기야 오열하고 후회하고 감격하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시 자식에게 쏟아붓는 눈물겨운 인생스토리를 우리한테 들려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심리학자는 유전자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지닌 존재가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 안의 유전자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게 만든다”는 것, “부모를 구성하는 유전자가 자신의 카피본을 남기기 위해 부모를 희생시킨다”고 정의한다. 유전자가 사람을 속이든 어쩌든, 아무런 조건이 없는 희생을 세상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찬미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입양을 해서 얻은 자식을 친자식보다 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 순수한 인간적인 부모의 애(愛)가 더 사람을 감동시키고 있다. 최화숙의 ‘아부야’가 바로 그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 글은 비교적 정교한 구성으로 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입양아인 작자가 여섯살때부터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아프게 성장해온 이야기와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차츰 “뿌리의 근원”에 대한 “심리장애”에서 해탈돼 “사랑”의 진의를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의 눈물겨운 희생은 그 사랑을 좀처럼 깨닫지 못한채 아프게 성장해온 작자와 심적 갈등구조를 이뤄 자식이 무엇이고 부애가 무엇이며 부모의 직책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슴 뭉클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한편, 그 주제가 남긴 여운은 한없는 안타까움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순간부터 말문이 열렸다는 작자는 “낮에는 해가 되고 구름이 되고 밤에는 달이 되어” 찾아오는 아버지와 끝없는 대화로 그 안타까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결말에 가서 주제를 한층 심화시켜준 대목도 감명 깊게 읽힌다. 외할머니가 된 필자에게는 이제 “딸과 손녀, 지인, 그리고 문학이란 인생의 지팡이”가 있게 된다. 튼튼한 두 다리와 부모에게서 받은 “봉건적인 교육”이 ‘철밥통’이다고, “내 뿌리의 근원이 무슨 소용인가”며 “나는 의연히 아버지 호적에 남겨진 아버지의 딸”이라고 외치면서 글을 갈무리한다. 아버지가 남긴 “사랑”의 자산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찬미하고 있다.

이 글은 스물여덦개의 자연단락으로 구성됐는데 세부묘사가 디테일하고 생동해서 가슴을 울린다. 작자가 여섯살때부터 외할머니가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새겨진 추억의 구슬(세부)들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촘촘히 꿰어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문체상 이 글은 서간체형식으로 씌어진 수필이다. 편지특성에 맞게 인과(因果) 관계를 풀어나가면서 서간체 특유의 대화형식으로 세상 뜬 아버지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 친근감 있게 호칭하며 자신의 애절한 내면세계를 보여주고자 애썼다. 글 첫머리부터 “아버지, 아버지가 어린 내 손을 잡고 거닐던 이 거리를 나는 내 키를 훨신 초월한 막내딸의 손을 잡고 걷고 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단락이 바뀌거나 과도구가 들어갈 때면 “아버지”를 호칭하며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절절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나가고 있다.

서간체의 글쓰기는 자유로운 표달방식을 탑재할 수 있다. 수필을 써온 경력이 있는 작자이기에 세부묘사와 함께 의론과 서정을 자유자재로 탑재를 해서 가끔 그 정감들이 아주 잘 익은 늦가을 감처럼 감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딸의 손을 잡고 밀착한 몸과 몸의 전율을 감촉 할 때면 행복 바이러스가 샘물처럼 솟아납니다.”, “그 유리알 같던 행복이…”, “천진난만해야 했던 내 동심도 내가 닫아버린 철조망에서 시들어 가고 말았죠”, “수면제를 먹고 의식이 몽롱해지면 언제나 캄캄한 어둠속에서 혼자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내가 보였어요.”, “령혼이 말라버린 내 신경...”, “어머니가 김치를 송송 썰어넣고 끓이다 팍팍 으깬 반짜개 쌀을 넣고 떡꾹 한줌 동동 띄워 끓인 김치밥국에는 아마도 자식을 못 낳는 한 여인의 서러움과 아버지에게 죄스런 마음과 나로 인한 처절함이 한데 어우러져 맛도 별미였는지도 모릅니다.” 등이 그러하다.

공황장애와 자폐증을 앓았던 소녀로부터 끊임없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할머니가 되는 과정을 비단결처럼 촘촘하게 결을 짜서, 세상풍진을 다 이겨낸 한 여인의 희로애락을 마치 독자들이 함께 겪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글을 읽고 나면 “아, 자식이 뭘까?”, “아프다”, “눈물난다”, “사랑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감회에 가슴이 먹먹해난다.

제목도 특이하다. “아부이야”에서 “아부이”는 어무이(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전라도와 경남에서 쓰는 사투리이다. “아버지야”의 호칭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친근감을 강조하면서 제목에서부터 대화상대를 끌어내고 있다. 작자가 분명 인생의 깊이를 알고 깨닳음을 갖고 이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부녀간의 이야기 갈등, 즉 무조건적인 희생과 그 사랑을 이해못하다가 부모가 세상을 뜬 후에야 깨닫게 되는 갈등구조를 끌고가며 애써 주제를 표현하려는 노력은 보이나, 그 갈등을 극대화시켜 좀더 깊이 있게 주제를 풀어나갔더라면 글이 더 무게 있고 짜임새도 한층 정교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서간체의 특성상 이야기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가 있지만, 그래도 앞부분에서 시공간과 사건이 들쭉날쭉해 보이며 엉켜있는 것 같은 느낌을 순간적으로 받았다. ‘습관성 유산’ 사건을 앞에다 쓴 까닭일까? 또 이야기 경중을 가리지 않고 거의 디텔일하게 쓰다보니 좀은 읽기 갑갑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새엄마를 간략하게 쓴 것은 좋았다.) 글감은 취사선택을 잘 해야 된다. 선을 굵게 쭉쭉 풀어갈 때는 풀어가고 세부묘사를 할 때는 디테일하게 쓰는 기교도 필요하다. 서간체 수필의 문학성이 서두에서처럼 전편 글에 좀더 잘 녹아들게 했더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휴먼 인생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앞으로 더좋은 수필 창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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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28편  아부이야 - 아버지에게 드리는 글 (최화숙) ◀

응모글 29편 림연춘 <우린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뿐이고>심사평

전은주 문학평론가,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

이 글은 필자가 10여 년 전, “한국에서 교환생으로 유학생활을” 함께 한 친구 ‘하림’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이 글은 크게 두가지 주제로 나뉜다. 첫째, 친구라는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둘째 코로나가 빼앗아간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첫째, 친구가 오미크론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쿵 내려앉은” 필자는 오랜만에 편지를 쓰게 된다. 편지의 시작은 10년 전 본인들이 한국에서 교환 생활을 했을 때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는 걸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직 미혼인 친구와 이미 결혼하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자신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서술한다. 

세월과 함께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필자는 변하지 않은 자신들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그때든 지금이든 하나의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 우리들의 꿈을 위한 추구인 것 같아. 그 꿈이 위대했든 보잘것없든, 큰 꿈이든, 작은 꿈이든……”

꿈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동력이자 원천이다. 그런 점에서 꿈 꾸는 삶을 함께 지향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필자의 삶에 좋은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 뒤에 오는 새 단락에서 필자는 잘하는 것이 많은, 각자 분명한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친구들을 나열한다. 그 시작말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 시각 너무나도 그리운 우리의 친구들이 떠오르는 구나.” 여기서부터 그 뒤에 등장하는 다양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 한 명, 한 명의 행동이 떠올려질 만큼 섬세하고도 생동하게 그려졌다. 다만 친구 ‘하림’을 대상으로 하는 편지보다는, 필자 본인이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느끼는 소감을 혼잣말로 토로하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생각해보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서 한동안 방황하고 피폐해 있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 로 시작되는 부분은 주어가 빠져 있어 필자 본인의 경험으로 읽히기도 하고, 친구들이 다양한 슬픔과 체념의 경험을 했다는 걸로 읽히기도 하여 의미 전달이 모호하다는 아쉬움을 준다. 

둘째, 필자는 코로나를 전환점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것임을 예상한다. “코로나 전 많은 사람들이 아주 일상적인 일상의 것들을 소중히 하고 감사히 할 줄 몰랐다면 이제 그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으니 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나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피해와, 코로나를 통해 사람들이 얻게 되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 함께 설명한다. 그렇다.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니므로,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주체인 우리에게 달려있다. 부디 필자가 그리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첫번째 주제에서 두번째로 주제로 넘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보니 두 주제가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조금 더 설득력 있게 연결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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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29편  우린 꿈을 위해 달리고 있을 뿐이고 (림연춘) ◀

응모글 30편 강선화 <솔파도는 바닷바람에 놀고 • 련봉산> 심사평

전은주 문학평론가,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

이 글, 「솔파도는 바닷바람에 놀고 • 련봉산」은 “여름방학의 꽁무니나마 붙잡아보려고 아들을 데리고 북대하의 련봉산 구경을” 다녀온 기행문이다. 필자는 련봉산에 얽힌 근현대의 역사적 인물의 행적과 산 곳곳에 베여 있는 사건, 그리고 곳곳에서 만나는 절경과 기묘한 조형물과 그 숨은 이야기를 관광의 순서에 따라 적어 내려간다. 그곳에서 느낀 감격에 겨워 창작한 시도 덧붙인다. 

이 글은, 관광이나 여행을 할 경우에도, 그곳에 얽혀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민담 같은 것에 대한 사전 준비의 필요성을 알게 해준다. 필자의 글을 보면 얼마나 예비 준비를 하고 떠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냥 불쑥 가는 것과 련봉산의 곳곳에 얽힌 시간의 흔적을 미리 알고 가는 것 하고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관광 태도에 대해 치하할 수 있다, 

물론 너무 역사적 사실을 자상하게 설명하다보니 독자는 련봉산의 경관에 대한 관심보다는 역사 기행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글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이 섬세한 것을 넘어서서, 곳곳에 필자의 서정적이고 정감적인 감각표현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많다. 특히 이 글의 마지막 두 단락은 아름답다. 

“빨갛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아프리카 대사막의 플라밍고처럼, 진붉은 늦가을의 단풍잎처럼 서쪽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수백년의 력사를 지키고 서있는 소나무 숲이여! 루루천년을 흘러온 인류 력사와 수천수만년을 파도쳐 온 푸르른 바다여! 그대들의 신비로움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얼마나 무의미하고 쓸쓸할거냐!

면면이 뻗어나간 련봉산은 오늘도 억만년을 출렁거려온 푸르른 파도속에서 청신한 바다향이 듬뿍 실린 미풍에 살랑거리며 조용히 따뜻하게 력사의 매 한페이지를 품고서 세상 방방곡곡에서 구름처럼 모여드는 유람객들을 그 창창한 솔파도소리로 맞아주고 있다.”

  

이러한 서정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지니는 단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회의 취지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며, 우리말을 지녀 가꾸고 쓰고, 아름다운 우리 풍속을 지키면서 우리됨을 잊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조선족 모두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자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므로 비록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조선족끼리 사라지지 않는 우리됨을 공유하여 마음 깊이 새기자는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보면, 이 기행문은 취지에 적합하지 않은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이 지니는 여러 장점이 적절하게 평가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더욱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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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30편  솔파도는 바닷바람에 놀고 - 련봉산기행문 (강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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