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응모글

 

응모글 제37편 정진 <딸애의 빛나는 청춘> 심사평

서옥란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어머니와 딸의 아름다운 하모니

이 글은 엄마가 딸애의 편지를 읽으면서 딸애의 성장과정을 가슴따뜻하게 추억해 내려가는 글이다. 하지만 동시에 딸애의 편지를 통해엄마의 모성애를 펼쳐냄으로써 참신한 서사책략을 취하고 있다. 딸애의 편지에서는 엄마의 따뜻한 인성교육, 넓은 아량과 배려 등에서 오늘날의 자신이 있게 됨을 감사한 마음으로 전하고 있고 엄마는 거기에 맞물리는 사건들을 회억하면서 종적 횡적시간적 교차로, 유기적 응집성을 가지고 전개하는 동시에 점차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승화시키고 있다.

어머니는 딸애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주는게 자녀의 성장길에 매우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행여나 제가 가는 길에 말 한마디 오뉴월 서리 될라 모든 모드를 억지로라도 꾹꾹 누르시고 하느님보다 먼저 가슴으로 기도해주는 사람, 바로 엄마이었어요.” 딸은 오늘의 자신이 있음에 가장 우선적인것이 엄마의 믿음과 지지였다고 말한다. 이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엄마의 넓은 아량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애의 강인한 독립성을 키워준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딸애는 나의 도움도 없이 자기절로 수속을 해서 일본에 올” 정도로 무슨 일이나 스스로 해나가며, 일본에 와서 처음 한 일이 바로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는 긴자(銀座)에 있는 파울리스트 커피점으로 데려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리랑카로 자원봉사를 떠난 딸애의 선택에 대해 “될 일만 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아름다운 흔적을 만드는”것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이끌어내면서 “나눔과 실천”, 혼자가 아니라 옆에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빛나는 삶이 된다는 깊은 철리로 승화시킨다.  

이 글은 모녀간의 사랑이라는 주제 이외에 재일 유학생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역사, 봉사를 통한 베품과 나눔의 의미, 글로벌시대 다문화적 삶의 방식 등 다양한 소재들을 이끌어냄으로써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글의 짜임새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조선족들의 정체성 지키기를 위한 실천적 노력들도 읽을 수가 있었다. 결말에서 저자는 ‘혼자’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공동체와 함께 화합하고 소통하는 그런 “청춘”이야말로 진정 ‘빛나는 청춘’, 즉 ‘빛나는 삶’이라는 깊은 주제를 자연스럽게 제시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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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37편  딸애의 빛나는 청춘 (정진) ◀

응모글 38편 조옥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심사평

리동렬 동북아신문 대표,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엄마의 사랑을 소박한 언어로 표현, 주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글감을 골라 써야

조옥순의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라는 글은 제목에서 주제를 밝히고 서두에서 “세상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아주 위대한 것 같다”라고 진일보 주제를 설명했다. 그러니 이 글은 “엄마”의 “위대”함을 쓰고자 한 것이다.

엄마의 “위대”함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가정적인 엄마의 모습은 가정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행동과 품성에서 나타난다. 이것이 일반 상식이고 논리이다. 엄마나 아버지를 쓰면 다들 그렇게 쓴다. 단지, 작자의 체험이 다를 뿐이다. 자기만이 경험하고 깨닫고 느낀 것을 잘 쓰는 것이 글의 무게와 감동을 좌우지 한다.

엄마에 대한 소중한 추억은 엄마와 같이 자류지에 가서 옥수수를 따오고 식구들에게 쌀밥을 먹이기 위해 엿장사를 하러 다니며 평소 자식들에게 정성껏 음식을 해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혀 내놓는 스토리들로 펼쳐진다. 한국에 가서 강제추방 당하고 암에 걸려 방사선치료를 하고 나오자 90세 되는 엄마는 “넌 90세까지 산다. 엄마 말 믿어라”라며 나를 위로해준다. 그래서 작자는 “보드라운 손으로 수술자리를 어루만져 주는 이는 세상에서 단 한사람인 엄마 뿐이다.”라고 깊은 감회를 토로한다.

결말에 가서 작자는 “내가 나의 엄마를 좋아하듯이 나도 나의 자식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서 글과 함께 선물을 사서 일본에 있는 딸에게 보낸다.”라고 글을 마무리한다.

이 글에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에 대한 추억은 별로 특이하지 않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희생정신이 그렇게 감동을 줄만한 스토리로 엮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위대”하지 않는 평범한 엄마이다. 물론 작자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글의 중간 부분쯤에 가서는 엄마보다 나의 이야기를 주로 썼다. 항암치료를 끝내면서 작자는 “몹시 힘들었지만 언제 한번 나약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나에겐 엄마가 있고 귀한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작자는 이 글을 쓸 때 엄마를 쓰고, 또 내가 엄마가 되고 자식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엄마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하며,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는, 가족을 지탱하는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려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이 글이 주제를 표현하는 하나의 특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거기까지이다. 짧은 글에서 이렇게 주제를 표현하기는 어딘가 벅차 보인다. 어디까지나 “엄마”가 주요 인물로 부각되어야 한다. 나는 부차적이고 종속적이며 엄마의 인물형상을 안받침해줘야 한다.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엄마와 연관되도록 구성을 짜는 것이 주제를 표현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제목을 잘 다는 것도 중요하다. 제목은 글의 눈이다. 주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좀더 신선하게 달 수도 있다. 호기심을 갖고 읽어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는 너무 평범해 보이는 제목이다. 대만 영화의 제목을 따서 제목을 달았지만, 그래도 신선한 감이 없다.

이상은 글의 구성과 주제표현 방식에 대해 말했다.

물론, 글이 소박하고 술술 잘 읽혀내려가고 있는 것은 장점이다. 특히 앞부문 자류지에 가서 옥수수를 따오고 엿장사를 하던 시절에 대한 묘사는 그 시절을 겪은 세대들한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감동을 줄만 하다. 또 이야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고 있다. 단지 글의 중심부분에 대해서는 디테일한 묘사와 감정표달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온갖 세상풍파를 다 겪고 함암치료까지 한, 많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써낸 작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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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글 39편 배영춘 <삶의 무게> 심사평

전은주 문학평론가,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

죽음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심각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웬만한 문제라면 금력이나 권력으로 통할 수도 있다. 억만금을 주면 터무니없는 잘못도 적당히 가릴 수 있고, 권력이 강하면 불법이나 억지도 다 통한다. 그쯤 되면 세상의 정의나 불의마저도 돈이나 권력으로 주무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세상의 권력자들이 터무니없는 일도 마다지 않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 누구도 가는 세월, 오는 죽음까지 다 막을 수는 없다.

이 글은 갑자기 닥친 친구의 죽음을 맞는 필자의 소회를 가슴 아프게 또는 담담하게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 묘하게도 그가 말하는 슬프고 우울한 사건이 ‘아름답게’ 들린다. 이 글을 ‘아름답게’로 표현한 이유는, 이 글이 서술하는 사건이 마치 나 자신의 일처럼, 나 자신이 그곳에서 그와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하는 것처럼 현장감 있게, ‘삶의 목소리’로 들린다는 뜻이다. 가장 진솔한 목소리 그 자체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어느 날 밤 “현장 일에 녹초가 되어 달콤한 잠에 빠진 나는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드는” 것으로 이 글이 시작된다. 그는 친구가 돌연사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얼떨떨한 정신을 추스르고 빈소로 향하며 그 친구의 죽음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느닷없이 다가온 그 죽음에 대해 성찰한다.

따지고 보면, 이 글의 구성이나 등장하는 사건 등이 유달리 특출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글이 가슴에 젖어드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건 세상을, 사물을 대한 필자가 지닌 성찰의 깊이 때문일 것 같다. 그렇다. 이 글은 세상을 떠난 그 친구가 살던 고달프고 구차스러운 현실의 삶이나 그와 함께 한 술자리 등에 대한 회상이 전부이다.

망자는 젊었을 때 한국 와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아내의 병구완으로 다 썼다. 2년 전에 아내를 보내고 지금은 셋방살이를 하지만, 유난히 술을 좋아해서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술 약속을 잡는다. 흔히 남자들이 말하듯이 우정의 깊이는 쌓인 술병에 비례해서, 그는 함께 술자리를 한 친구들에게 마음 넉넉하고 편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술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해서 바른 조언도 마다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가슴 아파했던 것은 아홉 살 적에 처가에다 맡겨놓고 한국으로 나왔던 딸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했다. 딸을 위해 남들 못지 않게 돈을 부쳤지만, 딸은 돈보다도 가족 사랑을 더 그리워했다. 지금도 그 딸은 엄마를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조선족의 운명인 걸!

며칠 전, 그 친구는 술을 마시면서, 새삼스레 자기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다. 떠날 걸 미리 예감했을까? 변화무쌍한 현실 생활 속에서도 신뢰 관계를 깨지 않고 지금까지 곁에 남아 준 친구들을 고마워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축복으로 왔다고 해도 돌아갈 때는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았을까?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그처럼 외롭게 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남은 사람은 또 어찌해야 하나?

필자는 망자의 입관식에 참석해서 마지막으로 망자의 얼굴을 보며 그를 보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저마다의 깊은 슬픔에 잠긴다. 관속에 반듯이 누운 얼굴이 지금껏 보아온 어느 때보다 편안하다. 친한 사람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퇴로가 점점 좁혀지는 50대 초반, 중년이 되면 그 슬픔과 외로움이 절실해지는 것 같다.

필자는 그때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서럽지 않았냐고? 그는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아내가 그립고 딸이 보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내면의 슬픔을 감추고 열악한 삶을 살며 다만 딸의 오해가 풀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 가장이 지닌 상처를 엿보였다. 어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디 고통이 없는 삶이 있을까? 친구도 분명 자신의 몸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글을 끝맺는다.

“잘 가시게 친구, 고통 없는 저세상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사랑 쭈욱 이어 가시게나!”

그는 이 말이 부질없다는 것도 알 것이다. 죽은 뒤의 세계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 않는가? 단지 그런 말로 남은 자들은 스스로 위로받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말을 남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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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39편  삶의 무게 (배영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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