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응모글

 

응모글 43편 김광림 <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노래> 심사평

전은주 문학평론가,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

 

이 글은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 이야기로 시작된다.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거 스노의 아내인 님 웨일즈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항일혁명가인 김산을 취재하여, “조선인들의 치열한 저항과 불굴의 투쟁을 생동하게” 그려냈다. 책에서 김산은 천부적으로 지도자의 자질을 타고난 진보적 사고를 지닌 투사로, 진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순례자 등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장지락이라는 조선혁명가는 역사의 기억속에서 망각” 되었을 수도 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를 소개한 필자는 이제 천오백자나 되는 긴 이야기로 자신의 <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노래>를 전개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독자는 김산의 투쟁사와는 또 다른 재일조선족의 투쟁사를 기대하게 된다. 

 

필자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일본에서 보냈다. 그러면서 수많은 조선족과 만나 서로 교류하고, 또 여러 단체의 결성에도 관여했다. 그리하여 필자는, “수많은 조선족과 함께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청춘과 중년의 시절 국경을 넘나들면서 뜨겁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도 분명히 우리들의 ‘아리랑’이 아닐까 하고 자문”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생략된 채 사실 기록에만 집중되어 있어 『아리랑』을 읽는 듯한 감동은 가지지 못했다. 물론 “조선족들이 모이면 술이나 마시는 기풍을 없애려고 술모임을 거의 가지지 않기로 했다”는 구절에서는 삶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 뭉클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글은 재일조선족 단체 결성에 대한 생생한 자료이자 기록이다. 최초에 결성한 《동방학우회》에서 시작된 조선족 모임은 그 이후 《연변대학일본학우회》, 《천지협회》, 《중국조선족연구학회》 등으로 발전되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쉼터미디어》, 《세계한인무역협회치바지회》, 《재일조선족축구협회》등 여러 성격을 지닌 단체가 결성된다. 그리고 2010년대에는 《재일조선족경영자협회》, 《연변일중일본학우회》,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우리세미나》, 《재일조선족친목회》등이 생겨났고 현재 일본에는 조선족 단체가 30개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단체의 출발과 목적 그리고 활동 내역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음으로써 단체모임 결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재일 조선족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한 편의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외에도 필자는 미국과 영국에서 만난 3명의 조선족 인사들 (김만수 박사, 박영애 원장, 박송림 선생)과의 만남도 적었다. 조선족들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어떻게 정착하고 살아가는지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자 하는 필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은 저마다의 ‘아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제 ‘조선족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화두를 내세우며 조선족의 미래 전망을 그린다. 

 

“중국 국내와 한국, 일본, 미국 등 국제사회에 흩어져 살아가는 조선족의 모습을 널리 관찰해보면 우리들의 희망이 보인다. 우리민족의 민요에 나오는 아리랑 고개, 그것은 분명 희망을 찾아서 넘어가는 고개일 것이다.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면서 희망을 찾아서 넘어가는 아리랑 고개, 우리 모두가 지금 아리랑 고개를 넘는 것이 아닐까?”

 

이는 필자의 희망사항이자, 모든 조선족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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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43편  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노래 (김광림) ◀

 

 

응모글 44편 박은자 <서울 블루스>심사평

김학송 시인 국가1급작가

 

박은자씨의 “서울 블루스”는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잔잔한 필치로 그려낸 한편의 생동한 생활수기이다.

 

우선 주제를 암시적으로 드러낸 글의 제목부터 눈에 뜨인다. 인생고해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작자의 락관적인 자세가 넌지시 드러나 좋다.

 

어차피 인생은 세월의 리듬에 맞추어 한껏 몸을 뒤척이는 춤놀이가 아니던가!

 

딸애의 뒷바라지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타향살이는 팬더믹 사태로 하여 설상가상이다. 악귀 같은 온역을 이겨내고 식당잡부로 일하며 온갖 고생 끝에 마침내 한국살이에 적응하는 일가족의 이야기가 독자를 감동 시킨다.

 

문장이 진실하고 생동하며 글의 결구도 비교적 짜이고 어휘력도 점수감이다.

 

다만 전반 글이 사실을 전달하는데 그치고 더 깊은 사색으로 글의 주제를 문화수필의 경지로 승화시키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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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44편  서울 블루스 (박은자) ◀

 

 

응모글 45편 최우림 <키잡이> 심사평

리동렬 동북아신문 대표,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겨레의 리더를 상징적으로 부각한 “키잡이”의 노래

최우림의 "키잡이"는 상징수법으로 씌어진 짧은 서정산문이다. 일반산문의 특징은 시와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솔직하고도 내밀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상대적으로 '투명한' 글이다. 그런데 '키잡이'는 일반 산문의 특성을 떠나 운률의 외형적 규범속에서 서정적으로 쓰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여기서 '키잡이'의 문체가 시인가 아니면 '서정산문'인가를 규명하는 것은 자못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글이 서사시로 씌어졌다면 달리 생각해봐야겠지만, 아니면 이번 "글짓기" 요구에 부합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키잡이' 글의 행을 쭉 붙여놓으면 우리는 이 글이 결코 "절제된 언어와 압축된 형태로 내면화된 세계의 주관적이고 은밀한 심성을 토로(吐露)"한 시의 형식으로 씌어진 게 아니란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서정산문'이라고 규명하고 싶다. 서사에 사색과 서정을 담아 쓴 산문이란 뜻이다.

 

"키잡이"가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가 살펴보자.

"벽두촌에 태어나서 자란 산골 사내아이"는 매일 조깅하며 "바다로 나가는 꿈을 꾼다". "바다를 보지 못하고 바다로 나오기 전에는", "바다가 아릅답게만 여겼고", "격랑을 또 자유롭게만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실제 바다로 나와보니 "일망무제한 바다는 험난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무작정 배타고 바다에 나온 나는 나 혼자 스스로 헤쳐가는 선장"이 된다. "오로지 튼튼히 키를 잡아야”만 “승객들에게도 고통이 적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불행히도 불청객 코로나19는 석삼 년째 순순히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저어가느라면 언젠간 피안에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쉼없이 풍랑을 헤쳐나아가"면서 "세상에 다시 없는 장사"로 거듭날 것을 결심한다. 그러면 "승객들도 파란곡절 이겨낸 격정 넘치는 그 항로를 자랑스럽게 되새기게 될 것"이다고 서정을 토론한다.

그러고 보면 “키잡이”는 다분히 상징성을 띠고있다. 주인공인 "나"는 도전하는 용기를 갖고 넓은 세상으로 떠나와서 이제는 어느덧 "기잡이"인 "회사의 오너"가 되었다. 한배를 탄 "승객", 회사 직원들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그래서 "키"를 단단히 잡고 바짝 정신 차려 이 세상의 풍파를 이겨나가야 한다. 작자는 이런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 글의 ‘시작 노트’를 보니 정말 그러하다. 작자는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를 멀리 떠나 낯선 타향에서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온갖 험난을 물리치며 창업을 하고 계시는 우리 겨레의 사업가들과 연구학자분들 그리고 각 단체를 이끌어나가는 리더들에게 삼가드립니다.”라고 글 쓴 목적을 밝혔다. “키잡이”인 “나”는 우리 겨례 “리더”들의 상징이었다.

 

상징수법을 즐겨 쓴 이 글의 몇 구절은 음미해볼 맛이 있다. "푸른 물에 비낀 아침과 저녁 노을/물보라 안겨주는 그 격랑을 또/자유롭게만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라든가 "또한 바다는 짜기도 하고 쓰기도 합니다", "무작정 배타고 바다에 나온 나는 나혼자 스스로 헤쳐가는 선장입니다"라는 표현들이 그러하다.

 

이 글의 단점은 야기성이 부족한 것, 서사가 잘 그려지지 않은 점이라겠다. 문장이 상징적인 서정산문으로 씌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너무 상징적으로 짧게 쓰게 되면 이번 "글짓기"에서 요구하는 “생동성”, "감화력" 등 요구에 못미칠 수가 있다.

 

“글짓기" 공모에 응하는 중요한 자세는 "공모"가 제시하는 "요구"를 잘 해득해서 그에 알맞는 문체를 선택해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고향을 떠나 해외에서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모든 “키잡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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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글 제45편 키잡이 (최우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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