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응모글

 

응모글 제1편 최금화 <아침바람 찬바람에> 심사평  

김학송 시인 국가1급작가

최금화씨의 응모글 “아침바람 찬바람에”는 유아들을 중심에 두고 두 세대 사람들의 인정이야기를 풀어내며 육화된 필치로 신변사를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절실한 체험에 대한 미적인 형상화가 우선 돋보인다. 글의 적재적소에 배치한 세 수의 노래말이 묘한 여운을 풍기며 주제를 승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유아들의 언행에 대한 동심소(童心素) 가득한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세필로 그려낸 젊은 엄마의 자식사랑이 함박꽃처럼 만발한 청순한 글이어서 좋다. 꽃잎 싣고 흘러가는 벽계수를 보는듯 마음이 편해진다.

엄마를 통해 맺아진 “녀동생”과의 친분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깨달음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된다. 연변가수 리호원이 부른 옛 노래 가사를 작자의 꿈과 소망으로 연결시킨것이 이 글의 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있다. 문학적요소를 활용할줄 아는 작자의 탄탄한 문장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 전편에 인간미가 다분히 흐르고 시적여운이 풍기는 마무리도 점수감이다.

다만 주제를 진일보 승화시키는 사색의 깊이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 체험글의 차원을 넘어 글재주를 더 신나게 부려볼 일이다.

투병중에도 이런 감성적인 글을 써낸 작자의 최강 투혼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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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글 제1편 아침바람 찬바람에 (최금화)◀

 

응모글 제2편 태명숙 <저녁노을> 심사평  

서옥란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자신과 자연과의 소통, 그리고 내면적 치유

수필은 붓이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도 한다. 이 글은 무형식과 무기교적인 작품처럼 보이지만 논리적이고 차분하게“마음이 가는대로”자신의 생각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갑자기 학교에 갈 수 없고, 직장에 나갈 수 없으며, 친구들을 볼 수 없고, 지병을 앓는 사람도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 고통의 코로나 시대를 그리면서, 이 비상사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코로나로 인해 파괴된 일상으로부터 소소한 삶의 소중함을 이끌어내면서 산행과 명상, 촬영 등 저자의 일상적인 삶에서 코로나 시대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생활방식을 제시하고 독자들의 공명을 이끌어낸다. 자연에 대한 시선으로부터 다시 자신의 내면의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문득 새는 새라도 날지 못하는 타조가 생각난다. 날개가 있어 펴 보지만 날지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날지 못하는 새 타조로부터 자신의 처지와 연계시키고 있는데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언제부터인가 티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개그프로를 봐도 웃음이 별로 없어지고 건강상식 프로를 봐도 나한테 하는 얘기처럼 들린다. 황혼에도 사춘기가 있지 않을가 싶을 정도로 예민해진다.”중년 이상이라면 누구나 마음을 찌를만한 말이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섭리에 거스를 수 없음을 한폭의 풍경화처럼 보여주면서, “나이 들면서 점점 좋아지는 것 중에 하나가 주변을 살펴 볼 여유”임을 발견하고, 인생의 황혼에 대한 남다른 의미찾기를 나선다. 황혼이 비치는 들녘은어두운게 아니라 오히려 더 황홀한 것처럼“여러가지 빛깔로 아주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가면 어떨까?”라면서 자신을 관조한다. 

삶의 언저리에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 그리고 대자연과 부단히 소통하면서 “세월속에 부딪치면서 살아온 보석같은 지혜와 능력”이라는 새로운 발견과 깊은 자아성찰을 보여준다. 이로서 나이를 들면서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외로움과 무기력감과 번뇌 등에 대한 극복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면적 치유를 이루어간다. 글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전반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흘러가서 전형적인 세부, 일화를 장면화하고 형상화하는데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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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글 제2편 저녁노을 (태명숙)◀

 

응모글 제3편 리홍화 <천평> 심사평  

리동렬 작가 동북아신문 사장/대표,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연변작가협회 재한조선족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재한동포문인협회 대표

 

“마음의 천평(天秤)”이 기울면 어떤 일이 생길까?

리홍화의 수기‘천평’을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다. “인생은 다 가질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인생은 선택이라고 했나보다.”하고.

작자는 일찍 그럴듯한 직장을 버리고 대도시로 떠나 성공을 위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집”도 마련하고 부(富)도 일궈낸다. 이제는 부모님을 모셔와서 알콩달콩 재밋게 살겠다는 오랜 숙망을 이룰 수 있게 된 것,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게 부모님이 병환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완전한 “집”에 대한 꿈이 산산조각이 난다. 그제야 작자는 비로서 마음의 “천평”을 들여다보고 오열하면서 자책을 한다. 과연 나의 선택이 옳았는가고?

이 글을 읽고 나면 우리는 작자가 겪은 결코 순탄치 않은 인생 여로의 희로애락을 함께 경험하면서 마치 한부의 인생 드라마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만큼 울림이 큰 글이다.

이 글은 우선, 주제 설정을 잘했다. .

주지하다시피, 의식주(衣食住)는 옷과 음식과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간 생활 불가결의 3대 요소에 해당된다. 그래서 성공을 바라고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집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된다. 집이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듯한, 또는 괜찮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은 모든 도시사람들의 로망이다. 그 소망과 꿈을 이루고자 작자는 대도시에서 '타향살이'의 애달픈 삶을 시작한다. 그 사이 고향에 남겨둔 자식을 데려와서 온정한 가정을 유지해야 했고, 또 자녀 교육을 위해 보다 나은 셋집으로 세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었다. 마침 투자 안목이 있어 1만 원대로 아파트 한채를 마련하는 지혜와 상업적인 안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글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집', '아파트'를 마련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모티브로 이야기가 끈끈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작자는 왜 하필 제목을 "천평(天秤)"이라고 달았을까? 이는 작자가 말고하자 하는 주제가 인생의 "천평"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천평은 공평과 공정의 상징이다. 현대 사회와 도덕은 공평을 제창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진정한 의미의 공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생에는 애환이 있게 된다.

작자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면서 아파트를 마련하고 큰 돈을 벌었지만 종내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이제 부모님을 모시고 귀향을 해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도시 생활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갈 때쯤 아버지가 돌아가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 참담한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말하고자 하는 깊은 주제를 끌어내고 있다.  

결말에서 작자는 이런 독백을 남긴다.

"나의 삶의 질과 자식의 양육과 부모님께 응당 해야 되는 효도 사이, 쌓이는 재물과 엄마에게 남겨진 시간 사이, 부모의 평생 헌신과 내가 한 작은 일들과 부족함 사이, 효자는 못 되고 최소한 책임감으로 이 모든 것들이 균형을 이루도록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천평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하고! 그래서 주인공은 "언젠가는 엄마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드려야 된다"는 "참혹한 현실"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끝내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지 못한, 이 세상에서는 치유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그래서 "내가 걸은 이 길이 과연 정확하고 옳바른 선택이였는지?"하고 가슴에 "천평"을 놓고 자신을 저울질 해본다. 그렇다, 이야말로 타향살이를 해온 이방인들의 "한(恨)"이 아닐까?  

이 글을 읽고나면 독자들은 자연히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정말 안타깝네. 만약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부모님 생전에 도시로 모셔와서 함께 생활을 했었더라면 저런 아픔이야 생기지 않았겠지!?"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물론 그랬더라면 또 다른 인생사가 씌어졌겠지만 "천평"은 그리 많이 기울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정산종사는“일생 생활의 체를 잡는 데에는 정신을 근본 삼아 수양ㆍ연구ㆍ취사로써 의식주를 구해야 한다”(《정산종사법어》 무본편4)고 했다. 곧 의식주란 육신 생활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하고 떠날 수 없는 것이지만 의식주보다 더 요긴한 것은 의식주를 만들어 주는 정신의 삼대요소라는 말이다.

이 글에서 작자도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더라도 그보다 요긴한 인간의 수양 등으로 의식주를 구해야 한다는 철리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음 이 글의 슈제트 구성을 보면 기승전결이 비교적 완변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강하다.

글은 우선 소제목을 달아 이야기를 조리정연하게 전개시키고 있다. "첫살림, 타향살이, 아빠트 아빠트, 천평", 이런 순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집", "아파트"를 매개물로 이야기를 끈끈하게 끌고 나가고 있다.

위에서 밝혔듯 뒷부분 작자의 독백은 이 글의 절정, 백미가 되고 있다.

서두와 결말도 잘 연계되고 어울리고 있다. 서두에서 작자는 "엄마아빠 모습"이 비껴 있는 "초가삼간", "유년시절의 꿈과 알룽한 기억들로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속 한자리를 더 깊이 파고 드는 고향집 전경이다."라고 주제를 묻어두었다가 결말에서는 서두에 들어맞게 "내가 욕심을 버리고 아들 유학을 마치는 즉시로 과감히 회사를 접고 귀향길에 들어섰더라면 엄마 인생의 마침표는 거기가 아닐 수도…", "이제는 부모가 없는 집, 집이 없는 고향, 귀향길이 희미해졌다."라고 주제를 밝히며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또 하나 칭찬하고 싶은 점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삽입해서 이야기의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는 재치이다.

이를테면 "어느 한 번은 침대가 꽝~하고 무너지는 바람에 지진이 일어난줄 알고 셋이 순간에 풀떡 뛰여내렸던 일도 있었으니 침대도 집과 꼭같이 골동이였던 모양이다.", "친구가 보내준 귀한 양청후 게가 꽁꽁 묶어놓은 팔다리를 풀어헤치고 벽지를 따라 높은 곳까지 기여 올랐던 것이다." 등 묘사가 그러하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부모님들의 사랑과 로환(老患)으로 저물어가는 인생을 안타깝게 표현한 작자의 언어, 행동 묘사도 주목하고 싶다.

이를테면 엄마가 소주로 돌아가는 딸애에게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라며 "나를 당겨 꼭 안아주면서 아주 서럽게 눈물을 흘리셨다"..."나는 혼자 쿨쩍대면서 이러는 엄마를 못내 나무랐다. "참, 안하던 짓 하면서"라고. 부모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함축된 대화 장면을 작자는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마음속 깊이 상처를 받은 사람만이 오랜 새김질을 해서 내놓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의 수기를 완벽하게 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조금 아쉬웠던 것은 주제의 울림을 더 깊게 보여줄 수 있는 세부들을 더러 놓치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면 부보님들이 사랑하는 자식과 함께, 또는 가까이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나 그런 세부에 대한 묘사들을 간과한 점 등이 그러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부모님들의 마음 말이다. 아빠의 죽음을 너무 간단하게 스치듯 서술한 부분도 아쉬웠다.

서두에서 보여준 "집"에 대한 묘사처럼 전반 이야기에 그런 감칠맛 있고 생동한 묘사들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하고싶다. 작자의 문장 실력으로는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한 일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스스로 자문해본다. “마음의 ‘천평’이 기울면 어떤 일이 생길까?”하고. 그래서 우리들 인생에는 ‘마음의 천평’을 바로 잡아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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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3 천평 (리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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