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으로도 즐거웠던 '동북아 연합'의 꿈
중국이 진정한 '中華' 바란다면 소수민족 흡수 통합 욕심 버려야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하얼빈역 광장에 선 필자.
길림행 기차를 타기 위해 세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 나는 역 광장이 건너다 보이는 나무 그들에 배낭을 깔고 앉았다. 한낮 북국의 햇살은 눈이 부셨고, 약간의 더위를 실어오는 나른한 바람은 내 눈꺼풀을 자꾸 쓸어내렸다. 거기서 바라보는 하얼빈이라는 도시는 중국이 아니라 먼 유럽의 어느 나라 같았다.

하얼빈은 만주어로 '그물을 널어 말리는 곳'을 뜻한다. 19세기 말까지 작은 어촌이었으나 20세기 초 러시아가 철도를 개설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국제도시가 되었다. 아직도 각종 서양 양식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고, 중앙대로에는 당시의 마차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 하얼빈 사람들의 생활이나 문화 수준을 유럽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다. 세계가 급격하게 발전한 근대 이후 주변의 정세가 긍정적이었다면 지금의 하얼빈 인민들은 아주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50개가 넘는 소수민족의 다양한 문화와 거대한 러시아를 배경으로 남쪽의 한반도와 일본의 문화가 겹쳐진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가 꽃 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하얼빈뿐 아니라 만주를 포함한 중국, 그리고 우리 한반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한 세기 전 안중근은 바로 하얼빈역에서 동북아의 평화를 외치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그래,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구성인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아, 나는 어느 날 부산에서 하얼빈 행 국제열차를 탄다. 서울과 평양과 신의주, 단동, 심양, 장춘을 거쳐 하얼빈에 도착한다. 축구 동북아리그 결승전을 보기 위해서다. 하얼빈을 연고로 하는 송화강 팀이 오사카 감바를 꺾고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 역시 평양의 능라도를 이기고 올라온 부산의 대우와 맞붙게 된 것이다. 그날의 기차에는 나와 같은 열광 축구팬뿐 아니라 사업, 친지 방문, 관광을 위해 떠나는 일본·러시아·만주·몽골인 등이 섞여 있다. 하얼빈은 사상 처음으로 동북아리그 결승 진출에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다.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하얼빈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동북아가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동북아시아에는 경천동지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시작은 중국이었다. 중국이 자랑하는 달 왕복 유인우주선이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사되었다가 수십 초 뒤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것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에서 느낀 일본인의 절망보다 더 큰 중국의 절망이자 충격이었다. 충격은 곧 거대 중국에 대한 한계를 실감하게 되었고, 그 한계의 바람은 소수민족 독립을 고무시켰고, 급기야는 중국이 지금껏 고수해오던 통일국가라는 틀을 깨버렸다. 곧 느슨한 연방국가로의 전환이었다. 그로서 중국은 민족과 언어 문화권 단위로 중화, 광동, 운남, 티베트, 신장, 만주 6개국으로 분할됐다. 통일의 논리는 강자와 침략자의 논리다. 중국은 유사이래로 중원지배 곧 통일에 대한 이상이 대륙을 언제나 전쟁에 노출시키는 근본 원인이었다. 그래서 통일을 부르짖는 곳에는 항상 전쟁이 있었다.

중화연방의 출현은 그동안 중국 사회의 갈등과 불안을 해소하고 발전에 속도를 내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의 연해주, 일본의 홋카이도, 규슈와 한반도의 경상, 전라, 평양 지역이 각각 분리 독립되어 역시 연방국가가 되었으며 지금의 유렵 연합과 유사한 동북아 연합이 탄생했다. 이로써 각 지역 및 국가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축구 리그처럼 선의의 경쟁이 시작되어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문화는 한층 풍부해져 바야흐로 세계의 중심 무대가 된 것이다.

중국이 과거처럼 세계의 중심이 되려면 소수민족의 흡수 통합 동화가 아니라 오히려 소수민족의 고유한 가치가 극대화될 때 가능하다. 곧 변방문화가 든든하면 중국은 그들 문화의 중심에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만주의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중국의 손실이요, 동북아와 세계의 손실이다. 만주뿐만 아니라 중국은 많은 소수 민족을 흡수 통합하려는 욕심을 버릴 때 진정 중화다울 수 있는 것이다. 역대로 변방에 대한 피해의식은 연방정부 형태로 군사권을 연방정부가 가지고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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