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25>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명절때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 극심한 교통 체증이다.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고 되돌아 오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밀려들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자동차까지 해마다 수십만 대씩 느는데다 버스나 봉고차 같은 대량 수송 수단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려는 추세가 겹쳐서 교통 체증은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저속도로가 되는 것은 이제는 당연시되었고, 국도와 지방도로까지도 차들이 가다서다를 반복하기는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러한 일은 대도시들도 비슷하지만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남한 4700만 인구의 4분의 1이 서울에 모여 살 뿐만 아니라 서울 주변까지 합하면 거의 반수가 집중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시간 거리인 서울과 대전 사이는 어떤 길로 가도 너댓 시간씩 걸려야 되고, 네 시간이면 되는 서울 강릉 사이는 심하면 열 시간 이상이나 걸리기도 한다. 경상도나 전라도의 남도 지역에서 오후에 출발하면 서울에는 으레 한밤중에 도착하고, 아침에 속초나 삼척에서 떠나면 다음날 새벽에야 서울에 닿기도 한다.

   교통 사정이 이런 지경이니, 명절 때 고향 오가기는 고역중의 고역이 되어버렸다. 물과 먹을 것을 싸가는 것은 필수가 되었고, 덮을 것과 놀 것을 챙기는 것도 필요하게 되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승객들이 나와 바람쐬고 담소하는 광경은 이제는 현대의 새로운 한 명절 모습이 되어버렸다.

   고향에서 손꼽아 기다리던 할아버지 할머니도, 해가 넘어가기 전에 오던 손주들이 어두워서야 들어오고 초저녁이면 다 모이던 자녀 친족들이 한밤중이나 새벽에야 도착하니 지쳐버린다. 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체되는 사정을 겪으며 오니 답답함이 덜 하지만, 기다리는 노인들은 무한정 무작정으로 어서 오기만을 바라는 심정이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이처럼 극심한 교통 체증을 피해 아예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시골의 노인들이 서울에서 사는 자식이나 친척들 집으로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교통이 막히지 않아서 노인들도 마음 졸이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오갈 수 있고, 자녀와 손주 친척들이 몇 배의 시간 고생을 하지 않게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명절을 서울에서 쇠기는 처음에는 자식들이 민망해 하였으나 서로 부담도 안 되고 편해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추석날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서울의 강남고속버스 터미날 하행선 매표창구 주변에는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서울역에도 내려가는 시골 노인들과 전송 나온 젊은이들로 만원이었다고 한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추석날 하루 동안 서울을 빠져 나간 차량 대수가 16만 2천여 대였다고 한다. 이는 평소 주말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대로 서울로 올라온 차는 15만 4천여 대여서 명절을 쇠고 귀성하는 차가 8천여 대가 더 많은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더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 집중화가 되면서 생활의 중심이 실질적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옮겨진 데에서 오는 한 현상이다. 도시 집중 현상이 삶의 편리성과 실리성 위주에서 왔듯이 ‘명절 서울에서 쇠기’도 같은 이유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람들이 실리 위주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데에서 젊은이와 노인들이 다 같이 뜻이 맞아버린 데에서 생겨진 새로운 명절 쇠기인 것이다.

   그러나, 명절 쇠기를 어떻게 그렇게만 생각하고 그렇게 쇨 것인가? 명절때마저 고향의 모습과 정취를 맛보지 못하고 훈훈한 시골 인심과 오랜 만의 일가 친척 이웃 친지들의 따뜻한 정들을 느끼고 주고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명절 서울에서 쇠기’는 그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서울의 자식들이 고향을 오고가는 데에서 겪던 고생과 어려움을 고향에서 사는 노인들이 대신 겪게 되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다가 우리가 정들여 살던 고향을 잃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또한 고향만 잃는 것이 아니라 멀지 않아 각박한 세상에 각박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가끔 찾아가고 위안을 받을 마음의 고향마저 잃을 것만 같아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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