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의 연변리포트

0. 가치관 문제

50대 이상 중장년의 조선족은 대부분 혼인상대로 조선족을 선택했다. 한족 등 다른 민족과의 혼인은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조선족동포들이 집거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기 때문에 굳이 다른 민족과 결혼을 할 이유도 없었다. 더욱이 이런 공동체생활로 인해 문화적 정체성이 강하게 형성된 반면 타민족과의 언어소통은 원활하지 못했는데 이런 점도 다른 민족과의 통혼을 하지 않았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 조선족 여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결혼도 하지 못하고 늙어가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같은 민족만을 결혼대상으로 고집할만한 여유가 없다. 따라서 요즘은 조선족마을에서 한족며느리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나이든 부모들도 한족처녀를 마다하지 않는다.

또 개혁개방과 문명화로 민족 간 문화적 교류가 커졌을 뿐 아니라 조선족사회에서 한족 등 타민족과의 접촉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이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다. 특히 중국의 급격한 경제발전을 지켜보면서 조선족동포들이 한족사회를 재평가하게 된 것도 결혼관의 변화를 촉발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결혼관의 이 같은 변화는 민족관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민족에 대한 가치 보다 현실적 필요를 더 중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중국사회에 동화되는데 더 용이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한족은 90여개 민족이 동화되어 이루어졌다는 연구결과는 조선족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낳는다. 중국 과학원 유전연구소 한 연구원은 한족의 70-80%는 원래 한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 구성원들이 동화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조선족 역시 동화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 이런 현상이 심화될 경우 개개인의 미래는 있겠지만 조선족의 미래는 없다. 조선족의 미래가 없으면 동북아시아의 미래도 없다. 조선족을 연변과 함께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중국지향의 정치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한민족 지향의 문화적 정체성을 통해 동북아시아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심적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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