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를 넘어, 또 다른 길을 떠남” -천운영 소설 <잘가라, 서커스> 문학동네 2005

천운영의 <잘가라, 서커스>는 연변 맞선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된 연변출신 여성과 목소리를 잃은 한국남성의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어릴 적 서커스를 하다가, 전깃줄에 목이 조이는 사고로 인하여 목소리를 잃은 남성의 동생과 연변여성 해화의 시점이 번갈아 반복되면서, 서로 다른 입장에서 본인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목소리를 잃은 남성은 언제나 동생에 의존하면서 살았고, 동생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했으며, 동생의 연변 맞선여행 동행으로, 동생의 허가를 얻어 결혼까지 결정하였다.

반면, 연변출신 해화는 한국으로 “시집”갈 것을 결정한 후, 홀어머니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에게만 간단한 작별을 고하고 한국에 입국한다. 어찌되었건, 맞선여행을 통하여 우연히 만나게 된 이 두 사람의 공통 관심은 “결혼”이었지만, 일주일 만에 결혼식을 올린 낯선 상대방과 소통하는 데에 그 한계는 명확했다. 이 소설은 서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로 다른 욕망과 상이한 소통 방법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과정을 다음의 이야기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첫째, 목소리를 잃은 남성의 어머니는 죽기 전 아들의 결혼식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병약한 어머니는 그렇게 바라던 며느리를 맞이하고선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고, 목소리를 잃은 형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동생도 배를 타고 형을 떠나버린다. 이제, 목소리를 잃은 남편에게 남은 유일한 사람은 연변에서 온 그의 부인 해화. 해화는 철저하게 외로운 “나그네”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남편은 해화 마저 떠날까봐 점점 불안해하면서, 전깃줄로 그녀의 손을 칭칭 감아놓고 밤에 잠을 잔다. 남편의 불안증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남편은 더욱 폭력적으로 해화를 소유하려고 하자, 이를 못 견딘 해화는 맨몸으로 집을 떠나게 된다.

목소리 없는 남편이 혼자서 살아내야 하는 그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목소리라는 필수적인 소통의 매체를 상실한 남편과 소통하려는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로는 소통에 끊임없이 실패하게 되자, 해화는 다른 길을 떠난다.

둘째, 맨발로, 잠옷 바람으로 집을 떠난 해화는 좌판 노점상을 하다가, 여관 청소를 하면서 힘겹게 다시 길 위에 선다. 해화는 “나그네” 걱정을 하지만, 그녀가 떠나는 것이 두려워 피멍이 들도록 전깃줄로 칭칭 감고 잠을 자던 그 “선한” 남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해화는 어디에도 의존할 수도, 할 곳도 없이 길 위에서 혼자 오롯이 가야만 하게 된 것이다.

셋째,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남편의 동생인 시동생 역시 길을 떠난다. 막일을 하던 시동생은 친구가 배타고 중국에 가자는 권유를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배를 탄다. 해화가 연변에서 한국으로 온 것과 어찌 보면 반대방향으로, 속초에서 자루비노 항을 오가는 배를 타면서 의도치 않게 밀수품을 전달하기도 하고, 차익을 남기기도 한다. 외로운 형을 두고, 배를 탔는데, 그동안 형수인 해화는 떠나버렸다. 형은 형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서, 해화를 찾아 무작정 떠났다. 그러다가 중국에 도착하여, 연길 서시장 한가운데에서 해화를 찾아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그 절망감으로 인하여 돌아오는 배위에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서커스”이다. 소설 첫 장에서 지은이 천운영은 서커스는 “위험을 내포한다. 지독한 훈련을 통해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서커스다. 그러니 서커스에서 얻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측은함이다”라고 언급한다. 서커스는 본인의 육체적인 고통을 넘어, 청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박수갈채를 받아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서커스 단원은 본인의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기쁨을 위해서 살며, 고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실수에 대비해야 한다.

 이 소설에서 맞선여행을 통한 결혼은 서커스에 가까운 훈련-갑작스레 만난 낯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상대방과의 소통-을 요구하지만, 때로는 소통불가능성 때문에 긴장과 위험은 극대화되고, 서로는 각자 다른 길을 찾아 떠나기를 결정하기도 한다. 곡예를 넘은 후, 서커스 단원이 또 다른 길을 떠나듯, 불가능한 소통을 시도했던 해화와 목소리를 잃은 남편은 다른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중국동포타운신문 연재)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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