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38>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60년대 초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외국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시간 낭비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실감 있게 들리지를 않았다. 그러나 점차 자라고 살아오면서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실제로 선조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누구를 맞이하고 보내는 일에 비교적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분들은 만남을 즐거워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살았다. 그러기에 만남과 헤어짐에 시간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마중만 해도 그렇다. 마중은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인데 만남보다도 훨씬 더 많이 마음 쓰고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오겠다는 기별을 받으면 며칠 전부터 집 안팎을 쓸고 닦기부터 한다. 반찬을 장만하고 맞이할 방을 치우는 일은 기본이고, 묵어 갈 사람이면 이부자리를 점검하는 것은 물론 등잔과 재떨이에 밤에 들고 다닐 등까지도 깨끗하게 닦아 놓는다.

   온다는 날이면 혹시나 일찍 오지나 않을까 하여 아이들을 개울 건너에까지 가서 기다리게 하고, 일을 하다가도 가끔씩 바라보기도 한다. 멀리서 사람 모습이 나타나면 그가 그인가 살펴보기도 하고, 기침 소리가 들리거나 인기척이 나면 몇 번이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곤 한다.

   이러한 태도는 손님을 맞이하고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웬만큼 바쁜 일이라 해도 손님만 남겨 두고 일하러 가지는 않으며, 심심하지 않도록 무슨 이야기라도 한다. 하나같이 손님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려는 배려인 것이다.

   배웅의 경우는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배웅이 헤어짐의 사후과정인데도 헤어짐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반드시 대문 밖까지 나가며,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방안에 앉아서 보내지는 않는다. 문밖에 나가서도 쉽게 헤어지려 하지 않고, 그만 들어가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으면서도 되돌아오지를 못하곤 한다. 때로는 동구 밖까지 따라가기도 하고, 저만큼 멀어져도 떠나는 사람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서 있기도 한다. 가다 말고 뒤돌아보며 어서 들어가라는 손짓을 보면 걱정 말고 잘 가라고 손을 마주 흔들어 준다. 헤어짐을 아쉬워함이 이처럼 긴 민족은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들의 삶은 마중과 배웅의 시간이 짧아졌다. 때로는 마중과 배웅 자체가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만남보다도 긴 헤어짐이 “잘 있어”, “잘 갚 한 마디로 끝나버린다. 마중과 배웅이 한낱 겉치레가 되고, 이제는 모두가 쓸데없는 짓이요 시간의 낭비로 인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선조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일하고, 또 헤어지며 살아야 한다. 이제는 그것이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기에 만남과 헤어짐에 긴 시간을 쓸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또한 필요하면 즉시 만나고 헤어지며, 전화로 쉽게 풀 수가 있기에 그립고 안타까운 마음이 없어져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자기 유리한 대로만 살고 자신이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립고 아쉬움에 마음 졸이고 안타까워할 만큼의 시간도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삶인 것 같다. 그러기에 엘리베이터가 열리기도 전에 ‘잘 가라’ 하고 현관문을 찰칵 닫는 아파트 주민도 늘어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선조들의 따뜻한 삶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떨어져 있었기에 반가와 하고, 이제는 헤어지기에 안타까이 여길 줄 아는 삶을 그리워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배워야 한다. 헤어져 가다가도 뒤돌아보며 손짓하고, 돌아보면 아직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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