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건너 삼수갑산의 중심지 '혜산' 시가지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쪽 장백의 활기찬 모습과는 대조적
"그래도 옛날엔 중국서 돈벌러 갔지요"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약간의 풍류끼가 있는 남자라면, 아니 삶의 무게에 눌린 대한민국의 중년 사내라면,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일상으로부터 유배되고 싶은 마음을 한번쯤 가져보았으리라.

 
  삼수갑산을 마주보고 있는 장백은 만주에서도 오지였다. 장백조선족소학교를 방문한 필자.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맘이라 잊으려만

십오 년 정분을 못잊겠네


김소월의 절창 '산'의 한 부분이다. 김소월 시에서는 유독 '삼수갑산'이 많이 나온다. 그것은 조선 최고의 산간오지라는 이미지를 그의 '돌아갈 수 없음' 곧 불귀(不歸)의 정서(情緖)와 딱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삼수와 갑산은 백두산을 끼고 있는 곳이다. 삼수갑산의 중심 소재지가 혜산이고, 그 혜산과 좁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곳이 중국의 '장백(長白)' 조선족자치현이다. 삼수갑산이 조선의 최고 오지이듯 장백 또한 만주 최고 오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길에서 아침에 온 버스가 이도백하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면 늦은 저녁에 도착한다. 그 버스는 각각 연길과 장백에서 출발해서 이도백하에서 만난다. 운전기사는 두 사람이 번갈아 한다. 그 버스는 하루 종일 백두산 기슭을 감아 도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백두산이 얼마나 큰 산인가가 짐작이 된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서쪽 기슭을 돌아 남쪽에 닿으면 거기가 장백인 것이다. 건너 삼수갑산이 보인다.

지형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중국 쪽에서 그 쪽으로 이주해가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장백에 도시가 형성된 것은 조선쪽에서 압록강을 건넜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장백에는 조선족만 살고 있지는 않다.

나는 장백에 두 번 갔다. 한번은 여름에 한번은 한 겨울에 갔다. 1999년 여름에는 통화에서 기차를 타고 송강하에서 택시로 갔고, 2006년 겨울에는 이도백하에서 버스로 갔다. 장백에는 소설가 장영성 선생이 있다. 그는 소설가이지만 소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북만주 출신이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차림새는 땟물에 절은 영락없는 유배자였다. 그만 땟물에 절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그들이 공부하는 학교도 땟물에 절고 절어 있었다. 아니, 장백이라는 도시 전체가 마치 먼 옛날로 돌아와 있는 도시처럼 땟물에 절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땟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냥 '자연 상태의 모습'에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백두산 기슭 그 깊은 곳에 저렇듯 꾸밈없는 원시의 도시가 숨어 있었는지. 아니 먼 과거 속에 홀로 존재하다가 불쑥 나타난 것 같았다. 그래서 나야말로 여행온 것이 아니라 정말 불귀의 유배를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장 선생은 내가 생각하는 유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단한 김일성주의자였고,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였다. 혜산 시내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나는 북한 인민들의 굶주림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신념에 대한 허구성을 건드렸다. 그는 역사에는 시련기가 있고, 조선은 지금 그 시련을 견디고 있다면서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더 이상의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다만 우리가 내려다보는 혜산 시가지는 작은 강 건너에 있는 활기찬 장백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그저 할일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만 보일 뿐 도무지 도시라는 생기를 느낄 수 없었다.

"지금 저래도 옛날엔 중국에서 조선쪽으로 돈벌러갔지요…."

한숨과 함께 독백처럼 내뱉는 그의 말이 그의 눈에 어린 눈물보다 더 씁쓸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도 이제 자신과 같은 신념의 동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문득 그의 눈물겨운 신념에 염치도 없이,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아, 우리에게도 유배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숨어 있는 도시가 없다. 아니 삶에 지친 고단한 중년의 영혼들이 단 며칠이라도 편안히 숨어지낼 곳이 없다. 삼수갑산이나 장백 같은….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