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새로운 날갯짓 하는 당당한 기러기 아빠
자식 교육 위해 만주로 간 조민호 시인
연변 문단서 작품 발표 등 왕성한 활동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연길의 문인들과 함께 한 조민호(오른쪽) 시인. 바둑 고수이기도 한 그는 현재 만주에 살면서 기원을 운영하고 있다.
삶의 조건 가운데 '공간(장소)'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간(세월)만큼이나 절대적일 수 있다. 그래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공간 이동을 한다. 보통 이사를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지만 그것도 삶의 환경이 통째로 바뀌는 먼 외국일 때는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 공간이동의 자유와 교육열 과잉으로 하나의 사회문제가 된 것이 이른바 '기러기 아빠'다. 그런데 기러기 아빠가 미국이나 호주만이 아니라 저 대륙, 그것도 만주에도 많이 간다는 사실을 최근 만주에 가서야 알았다. 하기야 제 아무리 영어의 세상이라지만 영어 전문가가 넘쳐나는 이 마당에 새로운 경제 대국인 중국어에 대한 기대는 당연한 것이리라.

그리고 기러기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새이고, 굳이 방향을 따지자면 북쪽으로 가는 것이 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기에 북녘 땅 중국으로 가는 기러기 아빠를 놀라워 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기러기 아빠'란 이름이 절묘하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무척 고달프고 울음소리도 아주 구슬프게 들린다. 그래서 기러기는 늘 슬프게 울며 날아가는 새로 여겨진다. 가족들이 다 저 먼 땅으로 날아 가버리고 혼자 남은 아빠, 중년에 때 아니게 홀아비가 되어 고달프게 직장과 빈 집을 오가며 가족을 그리워 하는 아빠의 모습은 분명히 고달프고 불쌍한 존재인 기러기를 닮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러기 아빠를 별로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이 아니라 참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그 바보스러움이 오히려 화까지 치밀게 한다. 자신이 그 무슨 가시고기도 아니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생활 시기를 포기할 만큼 그것은 가치 있는 선택일까.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다고 해서, 그 유예된 행복이 노년에 보상되어질까. 이렇듯 청년 실업자가 늘고, 효심이 말라가는 세태에 말이다.

그러나 만주로 간 우리의 기러기 아빠는 손수 기러기들을 데리고 그야말로 기러기 아빠(?)답게 날아간 것이니 분명 불쌍한, 아니 등신 같은 기러기 아빠는 아닌 것 같다. 만주에 가서도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왕성한 자기 활동을 한다.

그가 부산에서 활동하던 조민호 시인이다. 그를 연길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 거의 적수가 없을 정도의 바둑 고수(아마5단)인 데다 시집도 몇 권이나 낸 중견 시인이다. 그가 부산의 모든 삶의 조건들을 포기하고 저 만주로 날아간 것은 바로 자식들의 교육 때문이다. 벌써 5년째란다.

물론 그는 그동안 연변 문단에서도 작품 발표 등 시인으로 활동한다. 얼마 전에는 중국 최초의 한국인 문학회를 결성했는데 회원이 20명쯤이라고 했다. 주로 은퇴 학자들이 중심이지만 등단 문인들도 7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 그곳 최초로 기원까지 열어 바둑 강의도 하면서 자기 위치를 찾아가고 있으니 그쯤이면 기러기가 아니라 붙박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길에 온 기러기가 1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연길에는 한국인 학교(조선족 학교와 다름)가 있고, 기업인이 5000명, 상주 한국인 6000여 명과 관광객을 합하면 늘 1만 명 이상의 한국이 연길 살고 있다고 하니 연길은 한국인의 새로운 주거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 문단에서는 조민호 시인뿐 아니라 한 때 소설가 성병오 선생도 건강 요양차 연길에 다년간 살다가 오셨다.

나도 말년에는 그곳에 살아볼 생각으로 여러 가지 궁리 중에 있다. 어차피 두 번 살지 못할 인생이라면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다. 그렇다고 지금껏 살아온 삶 또한 버릴 수 없으니 일 년에 한 반쯤은 만주에서, 반쯤은 한국에서 두 집 살림을 살아보는 것도 제법 그럴싸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러기가 철따라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듯이 한국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한국으로…. 누가 이 신나는 내 꿈을 방해하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이며 기러기에게 배울 점이 아닐까.  국제신문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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