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중국어로 만주 어디든 들어가 돈되는 일은 무엇이든 해내
한~중 페리호 보따리상 등 한국인 늘어
현재 연변과 비슷할 만큼 빠르게 한국화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눈덮인 단동 압록강철교.
단동(丹東)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 중국사람(한족과 만주족), 조선족, 한국사람, 북한사람 등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북한 붕괴에 대비해 미국 일본 등 주변 나라들의 스파이들까지 몰려 각축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압록강 하구에서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단동은 인구 200만이 넘는 중국 최대의 국경도시이다. 지금은 한국, 중국, 북한의 삼국 무역의 중심이다. 특히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압록강철교의 정식 명칭이며, 북한에서는 조중우의교라 한다)가 말해 주듯이 혈맹의 두 나라 사이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그뿐 아니라 현재 북한의 대외 무역 대부분이 바로 단동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실 단동이라는 도시는 '조선'(북한)이라는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다. 조선을 빼면 단동을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정작 단동에서 쉽게 눈에 띄는 사람은 조선사람이 아닌 한국사람들이다. 그것은 오늘날 두 체제의 활력과 그 힘의 차이를 실감하게 한다.

연변 등 중국 내 다른 조선족 밀집 지역들이 조선족의 비율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에 비하면 단동은 오히려 한국인의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 현재 연변과 비슷할 정도로 '한국화'되고 있다. 한국의 작은 기업이나 병원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서울 경기지역 사람들은 단동으로 값싼 의료여행을 오는 경우도 많다. 거기다가 고구려 옛 서울이었던 환인, 집안과 가깝고, 모든 목욕탕이 온천물을 사용하는 등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돈에 눈이 먼 일부 업자들에 의해 '북한 사파리 여행'이 성행하는 등 역기능도 있지만 아무튼 단동은 현재 가장 한국과 관련이 깊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특히 삼마루(三馬路) 주변은 거의 한국의 도시를 방불케 한다. 그래선지 '단동'이란 도시 이름도 중국식 발음인 '단뚱'이 많이 순화되어 거의 '단둥'에 가깝고, '단동'이라 해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여름 나는 단동에서 활약하고 있는 '의지의 한국인'을 여럿 만났다. 국내적으로 촛불시위다 뭐다 시끄러웠지만 그들은 지금도 나라밖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고 있었다.

하나. 노래방 사장 한 씨. 대구 출신으로 단동 삼마루에서 5년차 '아리랑'노래방을 경영하고 있다. 나는 그를 배 안에서 만났다. 그 인연으로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에 들었고, 단동 문인들도 소개받는 등 여러 가지 여행 편리를 봤다. 민박은 1박 3식 1인당 50위안이지만 호텔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단동에 처음 가는 사람은 호텔 대신에 삼마루에 있는 민박집을 권하고 싶다. 삼마루는 시내 중심에다가 압록강이 가까워 여러 모로 편리하다.

둘. 중조무역 사장 강 씨. 한 사장에게 소개받아 하루 저녁 여흥을 같이 즐겼다. 무역회사 사장이라지만 사실상 스파이 같았다.

셋. 중국 가는 배 안에서 한 사장과 같이 만난 따이공(代工) 최 씨. 그는 일반 따이공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페리호의 보따리상을 따이공이라 한다. 옛날에는 황해를 건너는 배들이 대부분 중국 상인들의 것이었다지만, 요즈음은 모두 한국의 배이고, 상인들도 모두 한국 사람들이다. 어마어마한 그들의 봇짐과 그것을 하나라도 더 실으려는 것이 전장을 방불케 한다. 느슨한 일상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한국 수출의 첨병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대부분 배에서 자고 배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따이공은 그들만이 아니다. 내륙 곳곳을 다이어리 한 권 들고 누비고 있다. 최 씨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만주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디서든 최 씨 같은 따이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서툰 중국어로 저 흥안령 너머까지 만주 어디든 들어가서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이 들어가고, 그 다음 대기업이 진출한다. 해서 만주에는 일본 기업보다 한국 기업이 많다. 그것이 모두 자신들의 희생이 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배를 타면 그들의 짐 하나 정도는 대리로 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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