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우리나라 옛 기와집들을 바라보면 그 멋진 모습에 나는 늘 감탄하곤 한다. 몇 채가 어울러진 양반집 건물들을 보아도 그렇고, 누각이나 정자를 바라볼 때에도 그렇다. 특히 궁궐이나 큰 사찰의 건물들을 보노라면 이런 감동은 더욱 크게 일어난다. 그러한 건물들의 용마루나 처마의 선들이 보여 주는 아름다움이 너무나도 은근하고 미묘하며, 지붕의 바닥면이 펼쳐 주는 날렵한 곡면의 모습이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워 볼수록 감동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감동은 외국을 다녀 보면 더욱 새롭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우리 건물들만이 지닌 독특한 선(線)과 면(面)이 어울려 나오는 아름다움에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 건물들의 미는, 서양의 것은 물론 동양의 다른 나라 건물들이 지닌 아름다움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양의 건물들을 보면 거의가 직선(直線)을 잘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외곽은 물론 지붕의 용마루와 처마의 선은 대부분이 평평한 직선으로 되어 있다. 출입문이나 창틀, 난간이나 유리창들도 마찬가지이다. 기껏 곡선을 이용한 것이라고 해야 지붕이나 맨 위층 창의 윗부분을 둥글게 꾸미는 정도인데, 그것도 흔하지 않다. 이 창틀마저도 작은 직선이 연결된 다각형에 의한 둥근 모양인 것들이 많다.

   서양 건물들의 또 하나의 특색은 건물 대부분이 평면(平面)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벽면은 거의가 평면 구조이고, 지붕의 바닥들도 대부분 평평한 모습들이다. 대표적인 건물들인 그들의 궁전이나 성당들을 보아도 이와 같은 특징은 쉽게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서양의 건물들은 대체로 6면체나 8면체 등 다면체의 평면 구조이고, 각 면과 면의 접합부는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직선과 평면 중심의 건물들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직선과 평면 중심의 건물들은 육중하고 안정감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고색이 창연한 서양의 옛 건물들이 수백 년을 잘 견디어 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거의가 빈틈없이 짜여진 사각형과 삼각형의 평면 구조와 직선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선과 평면은 단조로움을 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메우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들을 쓰고 있다. 건물의 외벽에는 여러 가지 조각품들을 새기거나 붙여 놓는다. 지붕의 외곽선에는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들을 세우기도 하고, 성곽처럼 가장자리를 따라 많은 탑형의 돌출부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기본적인 직선미와 평면미에 적절히 변화를 주는 효과를 위한 배려들이다.

   또한, 큰 건물의 경우 작은 직선이나 평면들을 양방(兩方) 또는 사방(四方)으로 배열하기도 한다.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많은 창이나 방, 난간이나 조각 장식들의 배열이 그런 것이다. 이들은 사방연속 직선미와 평면미 다수가 모여 어울린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 준다. 집단 도수체조나 군인들의 제식훈련을 보는 것과 같은 집합미(集合美)를 더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현대식 고층 건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양 건물들의 기본적인 미는 역시 직선미(直線美)와 평면미(平面美)에 있고, 서양인들의 미의식은 크고 안정감을 주는 둔중미(鈍重美)와 똑같은 작은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어울려 나타내는 집합미(集合美)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동양의 건물들은 곡선(曲線)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건물의 용마루도 그렇고, 처마들도 대부분이 양쪽으로 들려 있는 곡선형이다. 추녀 부분을 바깥으로 나가면서 서까래를 덧댄 것도 전체적으로 곡선이 되게 하고 있다.

   지붕의 바닥면도 단순 평면이 아니고 휘어져 있다. 얹은 기와도 곡면이고 그들의 배열 또한 곡면과 곡면이 엇갈려 맞물린 양방연속 모양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미시적(微視的)으로 보면 휘어진 작은 곡면의 연속에 무수한 곡선이 배열된 모습이어서 직선이나 평면이라고는 별로 느낄 수가 없게 되어 있으면서, 거시적(巨視的)으로는 직선미와 평면미를 함께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의 건물들에는 서양처럼 여러 가지 장식물이 없다. 뾰족 지붕이나 첨탑(尖塔)도 없고, 지붕의 가장자리에 성벽 같은 탑형 난간들도 설치하지 않는다. 외벽에도 조각품이나 형상들을 세워 두지 않는다. 이미 곡선미와 곡면미를 충분히 살려 만든 것이기에 그러한 것들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추녀 부근에 장식물이나 조그마한 입체상 등을 설치하는 정도로 그친다.

따라서, 동양 건물의 기본적인 미는 역시 곡선미(曲線美)와 곡면미(曲面美)에 있고, 동양인들의 미의식은 곡선과 곡면에서 느끼는 부드럽고 아담한 소박미(素朴美)와 잔물결 무늬 같은 아기자기한 변화미(變化美)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건물들을 바라보면 동양의 다른 나라 건물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면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같은 곡선미와 곡면미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건물미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지붕 처마의 선만 해도 그렇다. 일본의 것은 거의 직선에 가깝다. 그래서 곧고 분명하긴 하나 단조롭고 밋밋함을 면하지 못한다. 중국의 것은 직선으로 가다가 귀퉁이 쪽에서 꺾인 듯이 많이 휘어버린 곡선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의도가 강하게 담겨서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들은 모두가 꼿꼿한 막서까래를 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처마 선은 자연스럽게 살짝 들린 날렵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위치에 따라 각도를 조금씩 달리하도록 다듬은 자흔서까래에다, 네 귀퉁이의 처마 쪽으로 나가면서 부채살처럼 펴듯 하는 선자서까래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떨어져서 바라보면 직선인 듯하면서 좌우로 나가면서 조금씩 휘어진 곡선이 되고, 가까이 다가가면 두 날개를 하늘로 살짝 펴 든 듯한 보다 날렵한 곡선을 이룬다.

   그런데, 뜰에서 쳐다보면 양쪽 끝은 밖으로 나가고 가운데가 안으로 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처마선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면 더욱 뚜렷이 보인다. 선자서까래의 길이를 가운데는 짧게 하고 양쪽으로 나가면서 점점 길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물의 처마 선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신비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양쪽이 위로 휜 수평각(水平角) 곡선과 가운데가 안으로 휜 수직각(垂直角) 곡선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묘한 착상(着想)이요 멋진 표현 기술이다.

   용마루의 선도 마찬가지이고, 사방으로 뻗은 지붕의 날개 선도 똑같다. 양쪽으로 나아가면서 살짝 휘어져 들린 산뜻한 곡선이다. 마치 긴 동아줄을 양쪽에서 잡아당겼을 때 약간 늘어진 모습과 같아 아주 자연스럽다.

   지붕의 면(面) 또한 특별하다. 일본의 것처럼 너무 평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중국의 것에서처럼 너무 휜 듯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처마와 용마루 선의 날렵한 곡선에 맞추어 위로 향해 약간 치켜든 모습이다. 얼른 보면 평면같이 보이면서도 가만히 바라보면 선을 따라 조금씩 휜 곡면이다. 부분적으로는 평면미(平面美)를 살리면서 전체적으로는 적절한 곡면미(曲面美)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궁전이나 대웅전 같은 큰 규모의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와집이나 대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조그마한 누각이나 정자를 지어도 지붕 선은 직선인 듯한 곡선이요, 그 면은 언제나 평면이면서 살짝 휘어진 곡면미를 살리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물들의 용마루와 처마의 선들은 남다른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직선인 듯한 곡선에 수평각과 수직각의 양곡선을 다 지닌 오묘한 선(線)의 미(美)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붕의 면 또한 남다르다. 평면인 듯 곡면이고, 곡면인 듯 평면일 수 있는 기묘한 면(面)의 미(美)를 보여 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미(美)들이 각각으로도 보이면서 또한 모두로도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직선과 곡선의 두 가지 선의 아름다움과 함께, 평면과 곡면의 양면이 나타내고 있는 개별미(個別美)를 보이면서, 그것들이 알맞게 조화된 변화미(變化美)와 집합미(集合美)를 같이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다 이들이 함께 어울어져 이들의 미를 초월한 신비미(神秘美)까지 느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우리나라 전통 건물들로 하여금 특별한 아름다움과 남다른 멋이 살아 있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가끔 전통 가옥이나 옛 궁전들을 찾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을 살려내고 이처럼 멋진 건물들을 만들어낸 선조들의 놀라운 미적 감각과 의장(意匠)에 탄복하면서 그 아름답고 멋진 모습에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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