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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에 우리민족의 “학춤”,“아박춤”발굴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로 찾아간 날은 기자의 흥분과는 달리 비가 질척거렸다. 하지만 연길-안도 구간의 신건도로는 연길-안도의 시간거리를 한시간안에 압축시켜 안도가 연길권에 속했나 착각이 들었다. 하기에 주인공과 인차 만날수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안도현문화관 강덕수(55세)관장이다. 관장이라면 예술, 행정분야를 총괄하는데 총감독(예술)이라면 감독이고 제작(행정)자라면 제작자로 둔갑해야 하는 등 관내의 모든 분야를 이것저것 부산하게 챙겨야하는 자리다. 강덕수씨는 성미도 그쯤으로 걸걸했는데 가까운 사람들사이에서 은밀하게 류행되는 신조어를 빈다면 “강도깨비”같은 별명을 갖고 있을만치 관장의 파워를 갖고 있는 번대머리 사내였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강덕수씨는 민족예술에 공헌이 큰 사람이였고 민속춤발굴과 계승에서 통렬할만치 집착을 갖는 문화관 광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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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볼 때 공화국의 창건 된후 연변에서의 민간예술발굴사업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였다고 볼수 있지만 크게 세개 단계로 볼수 있는데 강덕호씨는 지난세기 80년대 초에 시작된 민간예술발굴사업에 뛰여들어 (김정훈씨 61세와 함께) 민간에 소장된 민속춤을 발굴해냈다. 시와 음악이 시간속에 존재하고 회화와 조각,건축이 공간속에 존재한다면 무용은 시간과 공간속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만큼 민간무용은 포옹력이 높고 전파령역이 넓은 군중예술이다.  우리민족민간무용은 이민생활과 정착전반이 밀접하게 결합되여  있는데 대개 모체가 조선반도에 있지만 이주 후에 나름으로 발전한것으로 특징지을수도 있다. 하기에 조선족들의 춤은 시각보다 즐기것으로 특징지어진다. 하지만 민속춤은 특정한 사람에 의하여 안무되는 무용이 아니고 기록과 자세한 자료가  없다. 그리고 특정인에 의하여 늘 공연되거나 관중을 상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하기에 지방향토색이 짙다. 상기한 특점은 정리와 발굴이 따라가야한다. 그는 장흥에서 “놀악놀이”,만보금하에서  “거부기춤”,명월진의 한 은둔예인으로부터“학춤”과 “칼춤”을 성공적으로 발굴해 냈다. 현재까지 그가 발굴, 정리한 민속춤으로는 “지게춤”,“강강수월런,“바줄당기기춤”,“룡두놀이(차전놀이)”,“아박춤”,“상모춤”“까깍깍이 춤”,“거북이춤”등 20여가지의 민속춤을 발굴, 정리해냈다. 그가 발굴,정리했다는 민속춤들은 낮선 민속춤들이 아니고 이미 예술사에 등재가 되고 발굴과 정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을가 독자들이 물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민족의 민간에 소장된 민속춤은 이름이 동일해도 지역적인 문화의 차이로 다른 측면이 많다. 그것은 민요“아리랑”에서 충분하게 볼수 있는데 “강원도 아리랑”,“정선아리랑”,“충정도아리랑”등 수십가지의 지역“아리랑”이 있듯 동일선상에서 리해하면 깨도가 될수 있다.  강덕수씨가 발굴,정리한 민속춤은 안도라는 특정지역적인 문화와 민속이 배여 있고 안도라는 인문환경과 그속에서 살아가던 서민들의 온갖 애환과 숨소리가 배여 있다는데서 예술적인 가치가 있고 지역특색이 있는것이다.그가 발굴해낸은 “학춤”과“아박춤” 은 2007년6월에 길림성성부와 길림성문화청으로부터 성급비물질유산으로 명명되였고 “학춤”은 중화인민공화국국무원과 중화인민공화국문화부로부터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명명되였다. 그리고 “학춤”,“아박춤”, “지계춤”은 국가문화부에서 출판한 《중국조선족 민간무용집성》책에도 등재되였다.이것은 강덕수의 예술성과에 대한 충분한 긍정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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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춤”은 무보(舞譜)가 있는 따로 있다고 볼수 있는데《악학궤범》 권5의 무보를 보면 연못을 상징하는 네모진 널빤지를 놓고 그 주위에 련꽃, 칠보등롱,연통을 놓는다. 그 연꽃 모양의 두 연통에는 동녀(童女)를 숨어 있게 하고 청학과 백학이 나와 연통을 중심으로 춤을 추다가 연통을 쪼면 그 속에 숨어 있던 두 동녀가 나오고 두 학은 이를 보고 놀라 뛰어나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하지만 강덕수씨가 발굴해낸 “학춤”은  조류인 학을 인인화를 하면서 학의 청초함과 우아한 몸짓 등을 소박한 민속의 율동에 용해시킨다.그리고 동녀가 학을 타고 피리를 불며 환상의 세계로 가는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음악으로는 꽹과리 ,징,장구 ,북 등 타악기가 중심이 되고 굿거리장단으로 반주한다.“아박춤”도 안도지역특색으로 특징지어진다.
   특정년대의 세대로서 공장,집체호를 두루 전전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잃은 강덕수씨는 무용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집체호 시절 문예선전대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면서 긍정을 받고 1978년 안도현문화관으로 무용보도원으로 일하면서 문예부주임, 부관장으로, 1996년에는 문화시장관리판공실주임,그리고 2005년 문공단과 문화관이 합병한 문화관관장으로 사업하기까지 30년의 예술생애를 자랑한다.하지만 예술사업에 대한 사랑은 지칠줄 모르고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그는 2006년부터 선후로 연변주정부로부터“로력모범”“민족단결선진개인”칭호를 수여받았고 그 이듬해에는 해마다 연변군중문화계통 선진공작자, 우수문화관장으로 되기도 했다.

금후의 타산에 대해 물었을때 강덕수관장은 “깍깍이춤”과 “지신밟 기”를 군중성대형무용으로 추진할 타산을 갖고 있다면서 안도의 민속무를 발전시켜 안도만이 갖고 있는 문형문화재로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타산도 숨기지 않았다.

연변일보 사진/ 글 최국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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