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영문팀장 곽승지 저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한국사회와 조선족동포 간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한쪽만의 문제로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문제의 근원을 주로 조선족동포들에게서 찾으려 한다.

그러면 한국사람들 눈에 비친 조선족동포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러한 문제점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첫째 가치관의 문제와 관련해 지나친 배금주의적 경향이다. 조선족동포를 선의로 대했던 사람들도 흔히 그들이 지나치게 돈을 쫒는 것이 불쾌했다고 말한다. 보수를 일거리 선정의 기준으로 삼음에 따라 조금이라도 보수를 더 주면 가차 없이 옮긴단다. 또 자신들의 이익은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야 말로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적 특징과 관련,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금전만능의 세상이라고 꼬집는다. 그만큼 돈이 중요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탈냉전적 상황에서 전 세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 그러한 경향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세계 어느 나라든 또 어떤 사람이든 돈을 쫒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배금주의적 행태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돈을 벌 기회도 적고 상대적 박탈감이 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족동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한국에 나온 대부분의 조선족동포들은 돈을 버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두 번째는 생활태도에서 예의범절이 지키지 않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싶어 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누군가가 평가하고 감사하면 그 자체로도 즐겁고 신이난다. 그러나 조선족동포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감사의 표현이 인색하단다. 앞서 예시한 것처럼 돈 몇 푼 더 준다고 한순간에 안면을 바꾸어 다른 일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한국인들에게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예의에서 벗어나는 일임에 분명하다.

한배에서 나온 형제도 제각각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에 따라 가치관도 다르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사회적 환경과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양과 생활방식을 습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교정치학에서는 체제비교를 할 때 생활양식의 차이를 중요하게 취급한다. 자본주의체제냐 사회주의체제냐에 따라 기본적인 생활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며 교육받았다. 따라서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 상대의 자유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왔다. 공중도덕과 예절 교육을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족동포들은 사회주의체제하에서 공중도덕과 예절 교육이 아니라 집단주의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교육받아 왔다. 이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개인이 하여야 할 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도 또 교육받지도 않았다. 따라서 중국학생들은 인사하는 것이 굉장히 인색하다. 조선족동포들은 그래도 우리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예절을 잘 지키는 편이다. 예절과 예의에 관한 문제를 단순히 조선족동포들의 인격과 결부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의식적 측면에서 중국적 사고방식을 고집하려는 점이다. 조선족동포들은 한국사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다른 사고방식이 이해되지만 시간이 지나고 또 함께 생활하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한 불편함과 거부감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화에서 중국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워 중국을 편드는 것이나 한국의 법질서를 지키지 않으면서 한국사회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의식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보다 심각하고 또 오래 지속되는 속성이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헤아림으로써 보다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한국사회가 조선족동포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식 역시 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따라서 감정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관용, 즉 똘레랑스가 필요한 이유이다.

20세기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폴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는 약자의 삶의 모습이 그들 고유의 것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흑인들의 폭력적인 행태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흑인들이 자란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어린 흑인아이를 백인아이와 같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한다면 분명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비치는 조선족동포들의 부정적 모습은 그들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조선족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일그러지게 비칠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우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연변을 찾은 한국인들의 삐뚤어진 행태나 한국의 악덕기업주들의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냉대 및 폄하, 한국정부의 조선족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동포들의 행태 등등. 이러한 사유들이 조선족동포들로 하여금 우리와 멀어지게 한 또 다른 동인이라면, 그 책임의 절반은 우리의 몫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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