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소설가

 

▲ 장혜영 소설가
[장혜영 주요 작품]

 

 장편소설: "바람의 아들", "살아남은 전설", "무지개 그림자", "여자의 문", "희망탑"
 학술저서: "한국을 해부한다" 대학교재
 중단편집" "하늘과 땅과 바다"
 번역작품: "러시아에서 만난 여인" 외1편 일본에서 출판 (공저)  

 

 

 

1장  이상한 사진

 보광동삼거리.

 말이 삼거리지 도심지처럼 번화하지도, 그렇다고 시골처럼 한적하지도 않은 그저 수수한 강변동네이다. 그래도 81, 79-1, 81-1번 노선버스종점이라서 그런지 심심치는 않은 분위기다. 듬성듬성하긴 하지만 노점, 매점, 상가들도 삼거리답게 두루 거느리고 있다.

 윤정도는 81번 종점을 에돌아 보광동길로 꺾어들었다. 가파르진 않으나 완만한 언덕길은 무성한 플라타너스가로수의 그늘에 묻혀 무슨 터널처럼 좁고도 어두컴컴하다. 간신히 뚫린 그 숨 막히는 구멍 속으로 개미떼처럼 수많은 차량들이 붐비며 기어다닌다. 검붉은 플라타너스가로수 사이로 간혹 보이는 한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서둘러 노란 단장을 하고는 요염한 자태로 행인들의 시선을 유혹하며 추파와 교태를 던지기에 여념이 없다. 보도에는 어느새 부들부채만한 플라타너스 잎들과 동전만한 은행낙엽들이 널려 구둣발에 바삭바삭 밟힌다. 

 정도는 집을 나설 때부터 목이 졸리는 듯한 불쾌감에 휩싸여 있었다. 아내가 있었다면 그녀가 골라주었을 넥타이를 요즘은 가정부아줌마가 챙겨준다. 누구도 가정부아줌마더러 주인의 넥타이에까지 신경 쓰라고 부탁한 적은 없었다. 아내가 친정외할아버지병간호차 시골로 내려간 뒤 그녀는 자진하여 아내가 비워둔 자리를 대신해나섰다. 가정부라는 소임치고는 그 도를 넘는 관심이라서 그런지 정도는 아줌마의 과분한 친절이 고맙기 전에 부담스러웠다. 어머니나 아내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그런 각별한 정이어서 지어 당혹스럽고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녀에게서 그런 친절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주인이 지급하는 한달봉급 100만이라는 대가만큼만, 더 정확히 말해 집안청소와 주방일 그리고 딸 미미를 보살펴주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무난하고 원만한 것이다.

 정도는 목에서 타이를 풀어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무슨 까닭인지 가정부는 꼭 아버지가 즐겨 착용하시는, 구식의 커피색 굵은 줄무늬디자인을 권유한다.

 아버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취향과 일치한다는 우연함이 꺼림했다. 그리고 또 그녀가 불가사의한 그런 은정을 베푸는 것으로 정도를 정이라는 그물 안에 포획하고 이 가정의 서열에 끼어들려는 듯한 권력쟁탈의 인상을 준다는 사실에도 신경이 쓰인다. 물론 그녀  입장서는 그냥 착한 심성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명분 없는 은혜는 받기가 거북하다.
 가정부에 대한 불쾌감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아내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군 한다. 내려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가. 벌써 스무이틀이나 되는데 돌아올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아내는 장기체류를 염두에 두고 생활정보지에 구인광고를 내어 가정부까지 미리 들여앉혀놓고 떠난 건지도 모르겠다. 가정부가 아무리 잘해주어도 아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느낄수록 정도는 아내의 귀가를 고대했다.

그런데 노인의 병환이 점점 더 악화되는 건 아닐까? 아버지와 박병술노인은 윤정도가 가장 존경하는 분들이시다.

『패밀리사진관』이라는 에나멜네온간판이 오늘따라 초라하게 보인다. 25분 완성, 여권, 증명, 백일사진이라는 광고문도 신선도를 잃은 채 퇴색해있다. 

 3년이라는 세월만큼이나 정이 훌쩍 들어버린 스튜디오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난으로 빈둥거리는 조카의 처지가 딱했던지 삼촌이 직원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작년 가을 삼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사진관을 넘겨받을 때까지도 여기서 나오는 수입이 짭짤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금년 여름 길 맞은편에 『동양사진관』이 새로 개업하면서부터 급속한 사양斜陽의 비탈길을 뒹굴기 시작했다. 설비나 가격이나 봉사 어느 쪽으로도 『패밀리』는 『동양』의 게임 대상이 아니었다. 이 자그마한 동네에서 수십 년간 호황을 누리던 『패밀리』의 독점시대는 이미 그 운명을 다한 느낌이어서 사진관 앞에 설 때마다 정도의 마음엔 그늘이 드리운다.

 기분이 잔뜩 잡친 데다 진작 열려 있어야 할 스튜디오의 셔터마저 아직 굳게 닫혀있다. 풀대가 없다뿐이지 『패밀리』앞은 아침부터 손님이 줄을 잇는 건너편의 『동양사진관』에 비하면 쑥대밭이나 다름없이 썰렁하고 한적하다. 

 “미경이 이 계집애. 오늘아침부터는 여덟시에 출근해서 실내청소도 하고 마당도 쓸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정도는 투덜거리며 자물쇠를 열고 셔터를 들어올렸다. 녹이 쓸어서인지 절커덕-드르륵거리는 쇳소리가 유난히 요란해 귀청을 긁는다. 자동전동개폐기를 설치한 『동양사진관』의 그 배불뚝이사장이 비웃을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길 건너편을 흘끔 바라보았다. 여동생 윤미경은 오빠의 이런 고뇌도 모른다. 애초에 그 계집앨 사진관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하는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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