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저

아내가 권유하는데다 하체불구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매제가 불쌍해서 받아주었더니 그런 은혜는 모르고 제멋대로다. 요즘은 맞은편의 중국집배달을 하는 홀아비아저씨와 눈이 맞아 돌아가느라 사진관일은 아예 뒷전이다.

 “이 계집애 나오기만 해봐라! 종아리를 분질러놓던지 해야 정신을 차릴 건가 봐.”

 가족사진, 백일기념사진, 환갑잔치사진 몇 장만 덩그러니 전시된 자그마한 진열창은 벽 한  면을 다 차지한『동방사진관』의 화려한 진열창의 기염에 압도되어 촌스럽기만 하다.

 스튜디오 안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소파 몇 개와 볼품없는 카운터, 필름건조캐비닛이 비좁게 놓여있다. 안방촬영실과 암실로 쓰는 지하실까지 해도 모두 16평이 되나마나하다. 

정도는 가방을 소파위에 털썩 내던지고는 빗자루를 손에 잡았다가 도로 집어던졌다. 졸음이 자꾸만 몰려들었다. 석준범이 녀석과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셨었다. 그녀석이 출판비용을 대주어 정도는 숙원이던 사진촬영집을 출간했고 둘만의 기념파티를 가졌던 것이다. 준범은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방송국 PD에 취직하여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정도는 어찌된 영문인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밑바닥에서 굴러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친구의 우정은 퇴색하지 않았다.
 “준범아. 난 아무래도 사진관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
 “왜. 갑자기?”
 준범은 술에 녹초가 되어 벌써 눈이 게슴츠레하다.
 “손님이 없어.”
 “그 동양사진관 때문에?”
 “그래.”
 “그만한 일로 문을 닫아. 넌 자존심도 없어. 아무리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그놈은 신참이고 넌 고참이야. 내가 자금을 해결해줄테니까 너도 사진관확장공사를 하고 새로운 설비를 들여앉히면 될 거 아냐.”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우냐. 적은 돈도 아닌데.”
 “걱정 마. 이 친구가 있잖아.”
 준범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다. 이목구비도 준수했지만 마음이 더 정직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인 정직함은 그들 사이를 막역지우로 이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기만과 위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준범은 정도에게 얻기 힘든 보배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고뇌와 불행은 있었다. 

 “콘돔, 콘돔, 그 저주로운 콘돔! 난 인젠 그놈의 콘돔을 보기만 해도 구역이 올라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부르짖었다. 부부간의 잠자리에서 반드시 콘돔을 착용할 것을 강요하는 아내의 고집에 준범은 탈진할 대로 탈진해보였다.
 “몸매관리. 그게 그렇게 중요해. 사랑보다 더 중요한가 말이야. 몸매관리 때문에 남편에게 상처와 불행을 주고 임신까지 거부하다니 난 이해 안돼.”

 정도는 준범의 절규와 호소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친구라도 부부생활에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그들 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 제3자의 개입이나 설득, 조언 같은 건 무의미할 뿐이다.

 아내에게 당하는 수모가 어떤 것인지 정도도 알고 있다. 이틀 전에 집에 잠간 다녀간 아내, 아주 잠간, 무슨 소지품인가를 챙기러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갔었다. 보름 넘게 갈라진 사이 적치되었던 욕구는 정도를 아내의 정복욕에로 내몰았다. 그러나 유정의 반응은 뜻밖에도 얼음장처럼 냉랭했다. 다리를 오므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남편의 손을 밀어냈다.
 “전 생각 없어요.”

 나직하지만 정확한 발음, 부드럽지만 확실한 의미전달, 그것은 그대로 한 대야의 냉수가 되어 달아오른 그의 정욕에 끼얹어졌다. 그것은 울적함이나 수치를 넘어 수모 그 자체였고 무시였다. 그 순간 정도는 아내 앞에서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아내가 부여할 수 있는 각종 이유들, 생리 때문이라거나 외할아버지의 병환 때문이라거나 기분이 별로라거나 하는 것들도 그 밤에 당한 수모를 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도는 무료한 나머지 소파에 주저앉아 어제 출간된 화보집을 꺼내어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 사진들은 모두 촬영당시에는 명작들이라고 흥분까지 했던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인쇄된 걸 감상하니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드러나 보여 부끄러울 정도의 졸작들이었다. 이 보다는 좀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뿐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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