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로드맵] 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이승률 저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동북아란 용어가 식자들 사이에서 약방의 감초 격으로 풍미했던 적이 있었다. 중국수교가 이루어진 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정, 경, 관,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가장 폭넓게 다루어 온 정책과제 중 하나가 ‘동북아경제중심국가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종종 대두된 화두가 한반도 동북아허브론이다. 동북아허브의 역할이란 한마디로, 대륙의 상징인 중국과 해양의 상징인 일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이를 인프라삼아 동남아, 연해주,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등과 연결시켜 미래사회를 아시아, 유럽대륙 간 경제공동체시대로 이끌어냄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도도하게 서진하는 인류 역사의 흐름이 한국에 요구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아직도 동북아의 진로는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아니 오히려 중국과 일본의 무관심속에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지는 감이 없지 않다. 최근에 한중일 삼국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사건들, 즉 고구려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나,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집요한 망언과 일련의 시도,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한국의 지나친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응 방법들은, 동북아 세 주역의 관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게다가 숯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북한 핵문제로 인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이고, 동북아 관계성 확립에 중심역할을 해야 할 한국은 내부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치와 경기침체, 이로 인한 심상치 않은 국론분열조짐으로 스스로 족쇄를 채운 듯 한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반도가 동북아 사회에서 허브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우리에게 중국도 일본도 갖지 못한 독보적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반도성(半島性)이다. 즉 천운이라 불러도 좋을 역사적 기회를 눈앞에 두고, 우리가 반드시 회복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이 바로 반도성이라는 기질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이 반도성이라는 것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아니,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우리는 반도국이란 표현을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반도인이라는 용어는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외면하거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와같이 반도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인식은, 일제강점기에 싹튼 것이다. 대륙도 섬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지대, 너희는 그저 대륙과 섬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그러니 너희는 대륙진출을 꿈꾸는 일본을 위해 존재하는 한낱 길에 불과하다던 일본의 집요한 세뇌의 결과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반도국가인 우리의 지정학적인 운명에 대해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가진 반도성이란 게 그런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일까. 우리는 반도성이란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고서도 그토록 기피했던 것일까.

지난 8월,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우리나라 각계 각층의 석학 60명이 60일에 걸쳐서 연속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첫 번째 연사는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 20세기 한국 최고의 석학이신 이어령 교수였다. 그날 그는 조국이 탄생하고 성장하며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60주년을 맞는 감동적인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생애 가장 큰 기쁨이라고 전제하면서 ‘우리말에 내일이라는 순 우리말은 없어도 모레, 글피라는 순 우리말은 있다. 당장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말로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심오한 사색과 책임있는 각성으로 우리들이 일상에 묻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일깨우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현대 한국 사회의 나아갈 길을 일러주는 이정표와 같은 지식인이라고 할까. 그런 이어령 교수만큼 우리의 반도성에 대해 극명하게 해석한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흔히 한국은 반도라서 지정학적으로 불운하다고 말합니다. 중국과 일본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구요. 그래서 동북아시대니 뭐니 하는 것도 그리 반가와 하질 않습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중국과 일본 그 두 나라만으로 동북아시대가 잘 돌아갈 거라고 보십니까? 전형적인 대륙문화국가인 중국과 전형적인 해양문화국가인 일본은 충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충돌하는 한 동북아에 평화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기 위해선 제 3의 완충지대가 필요한데 두 나라 사이엔 반도인 한국 밖엔 없습니다. 그러니까. 동북아시대의 성패는 한국의 반도성 회복에 달려 있는 거죠.

다시 말하면 한국의 반도성 회복에 중국, 일본의 공존과 번영과 평화가 걸려 있는 겁니다. 열쇠가 우리 손안에 있어요. 이건, 아전인수가 아닙니다. 원래 반도국가가 그래서 중요한 거죠. 이탈리아반도의 로마가 유럽지역의 모든 문화를 융합해서 위대한 문명을 싹틔웠죠. 이슬람교와 불교가 인도차이나 반도 안에선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죠. 그게 반도국가가 꼭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완충지대가 없다면 어떤 문명도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반도국가라는 것은 한계나 약점이 아니라 축복이고 장점이고 기회죠. 우린 반도성 회복과 반도국가의 역할에 우리의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걸 잘해야 주변국가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도 우리 조상들이 그 역할을 기가막히게 잘 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린 어떻게 하고 있는 줄 압니까. 반도라는 걸 부인하면서 자꾸 한 쪽으로 치우쳐요. 한때는 대륙문화 흉내 내면서 해양문화를 극렬히 배척하고 비하했지요. 그래서 일본의 침략을 자초했구요. 최근에는 또 어떻습니까. 해양문화인 일본의 싸구려상업문화를 추종하면서 중국 문화를 얕보는 경향이 강하죠. 한쪽 편에 기울면 이건 죽자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를 소화해야 합니다. 균형을 지키면서 모두 감싸 안아야 합니다. 양팔을 연결하는 어깨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요. 세상 어느 나라도 할 수 없는,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그거고, 그러니까 양국이 강대국이 될수록 우린 좋아해야지요. 두려워할 게 아니라. 왜냐, 우리의 상품가치가 그만큼 높아지니까요.’

얼핏 들으면 기발한 역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반도성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이처럼 냉정하면서도 긍정적으로 선언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어령 교수의 지적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여실히 입증된다.

과거, 우리가 겪은 국가적 위기는 모두가 한쪽으로 치우친 데서 시작됐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 역사에 치명적인 치욕을 안겨주었던 병자호란과 일제강점이다. 병자호란때에는 명(明)에 대한 의리를 지나치게 의식해 신흥세력인 후금(後金)을 자극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수많은 조선의 처녀들이 유린을 당했고, 귀족의 자제들이 인질로 끌려갔으며 왕이 후금의 장수 앞에 세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행했다. 그때 만일 왕이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를 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후금에 편입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와같이 2천 년간 중국의 왕조가 수없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그들과 외교관계를 통해서 단일민족국가를 유지해온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조 말기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권력의 암투로 말미암아 절대 흔들려서는 안되는 대외정책까지 틈을 보임으로써 결국 망국의 비운을 맞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이 우리의 땅을 강점하고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잠식하는 동안에도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일본을 파악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변화와 야심을 잠재울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댓가를 우리는 톡톡히 치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보는 시각은 지금이나 그때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감정적으로 일본을 대할 뿐, 그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들식으로 접근해서 그들을 이해시키려 하는 노력은 별로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모든 면에서 아직도 일제 강점의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지금도 그들의 주도면밀한 한국연구를 따라갈 일본전문가들이 없는 형편이다.

어쩌면 한반도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 자신보다 그들이 더욱 정확하게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한번쯤 중국과 일본의 시각에서 한반도를 살펴본다면, 한반도의 존재가치를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속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한반도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그 중요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집요하게 독도에 대해 미련을 가진 채 심지어는 망언도 서슴치 않는 것이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을 감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를 자국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필사적인 전략이자 경쟁인 것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한반도를 보는 양국의 시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는 중국대륙의 동쪽 끝, 그러니까 중국이 일본 및 러시아와 미국을 상대하여 태평양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혜의 연안반도다. 또한 동으로는 일본열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태평양바다에서 일어나는 태풍과 홍수, 해일을 온몸으로 막아준다. 때문에 태평양으로 뻗어갈 천혜의 항만시설이 즐비하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가장 먼저 동해안에 배를 정박할 수 있는 포구를 조성했다. 포항, 속초, 원산, 청진 등 많은 항구들이 그때 조성됐다. 또한 태평양에서 흘러드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접점으로 삼면의 바다엔 풍부한 해양자원이 있고, 공해상을 통하여 주변국가들에 이르는 항로의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실제로 지금도 일본의 주요도시에서 해외로 나갈 때는, 일본의 서부해안에 있는 항만을 이용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동남해안의 항구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물류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천혜의 길목에 위치한 한반도의 주권을 한국이 차지하고 있음으로서 중국은 동북지역 경영에서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해야 했다. 실제로 중국의 동북삼성은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반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문화와 산업의 심장부인 산동반도와 동북삼성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한반도와 필연적으로 유대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일본에 있어 한반도가 갖는 가장 커다란 매력은 대륙의 일부라는 점이다. 작은 섬나라라는 치명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과도 직접 국경을 마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세계 최대의 시장인 중국과 지상교역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그토록 집요하게 무력과 불법을 동원해 한반도를 점령한 뒤, 영원히 그들에게 복속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일본화하려 했던 것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는 ‘존재감’ 만큼 중요한 것이 ‘관계성’이다. 얼마나 많은 나라들과 원활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그 집단의 존재가치가 높아진다. 그 나라들이 강대국일수록 징검다리역할을 하는 나라의 존재가치도 높아진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중국과 일본에겐 한반도와의 관계, 특별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거의 선진국에 근접한 한국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전혀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진 두 나라, 장차 다가올 역사의 주역이 되고 싶어하는 두 강대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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