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래 난 이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두려움과 공포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전신이 화들화들 떨리기 시작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쥐새끼들처럼 다들 어디가 숨었어? 어서 기어 나오지 못해. 다 총살해버리기 전에! 이런 개, 돼지보다 못한 새끼들! 명색이 군인이란 놈들이 전쟁이 터졌는데 싸울 궁리는 안하고 제살 궁리부터 하다니. 빌어먹을!”
 민병기 소대장의 목 갈린 부르짖음이 멀리, 아주 멀리에서 들리는 우렛소리처럼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요란한 폭음과 함께 소대장의 짤막한 독전도 뭉텅 삼켜버리고 말았다.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고 마는가!
 박병술은 억울한 생각이 들어 참호바닥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산더미처럼 등을 짓누른 흙더미가 어찌나 무거운지 쉽지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젖 먹던 힘까지 써서야 가까스로 흙먼지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눈을 뜨고 보니 그사이 고지는 온통 불바다로 변해있었다. 참호는 허물어져 구덩이가 메워졌고 나무는 허리가 부러져 줄기만 남은 채 불이 펄펄 붙고 있다. 뿌리 채 뽑혀 참호 안에 굴러든 갈참나무도 보인다.
 옆에 있는 돌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던 박병술은 에크! 하고 놀라며 손을 뗐다. 돌덩이가 벌겋게 달아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빠지직-빠지직- 하얀 수증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충천하는 화광은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혔고 어둠 속을 가르는 탄도의 곡선은 황홀한 붓질로 드넓은 어둠의 화폭에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그린다. 화염은 뭉게뭉게 솟아오르며 어둠에 더 짙은 먹칠을 했다.
 어디선가 벌써 부상자들의 자지러진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충천하는 불기둥 속으로 누군가의 동강난 팔뚝이 M1소총을 부여잡은 채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뒤쪽등성이 어딘가로 날아가 떨어졌다.
 “내 다리, 내 다리 어디 갔어? 이 개새끼들아. 내 다리 찾아내!”
 질겁한 병사들은 하나 둘 진지를 버리고 후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박병술도 참호에서 뛰쳐나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손이 뒤에서 그의 발목을 으스러지게 거머잡았다.
 “같이 가. 개자식!”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박병술은 힘차게 군홧발로 그 병사의 어깨를 걷어찼다. 그러나 힘을 너무 준 탓에 그 역시 참호 속으로 다시 굴러 떨어졌다. 그의 손이 물컹거리는, 물기가 질퍽하고 뜨끈한 무언가를 짚었다. 어느 병사의 파열된 복부바깥으로 비주룩이 흘러나온 창자였다. 그 창자에는 비릿한 핏물이 흥건했고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옆의 전사는 거죽만 간신히 붙어있는 다리를 가져다가 이어보려고 잉-잉- 울면서 버둥거린다. 화광 속에서 먼지와 화염에 꺼멓게 그을어버린 병사의 얼굴은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키득키득 웃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하얀 이발만 벌씬 벌씬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엔가 포격은 중지되고 잠시 고지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정적 속에 묻혀버렸다.]
 다행이도 박병술은 머리털 한 곳 다친데 없이 멀쩡했다. 참호 주위의 초목조차도 성한 것 없이 죄다 날아가고 황폐화됐는데 아직도 멀뚱멀뚱 살아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북괴군이 공격해 온다!”
 누군가의 경악한 부르짖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북쪽 먹골 방향 계곡을 타고 인민군기갑부대가 남진하는 궤도의 절그럭 소리가 어둠 속에서 분명하게 들려왔다. 좁은 산길인데다 기복이 심하고 비까지 내려 질척거려서 군사이동이 쉽지 않을 텐데도 그 소리는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병술은 육감으로도 진지에서 적군 사이의 거리가 몇 천 미터 정도밖에 안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먹골에서 역동교를 지나 진다리까지는 금방 밀고 내려올 것이다. 도로변의 수많은 냇물들이 밤새 내린 비에 불어서 그들의 공격로에 장해로 되었으면 좋을 테지만 그런 천연장애도 효험이 없는 듯 인민군의 선두공격부대는 도로와 옥수수 밭, 감자밭을 짓뭉개며 새벽어둠 속에 은폐한 채 고속도로 남진하고 있었다.
 지휘관이고 병사들이고 모두들 망연자실하고 아연실색한 채 아무 대책도 없이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벌써 많은 병사들은 전사했거나 부상당했으며 일부는 부대를 이탈해 도망하기까지 했다.
 “대대장님의 철수명령이시다. 모두 서둘러라. 야, 이 새끼들아! 뭘 굼벵이처럼 꾸물대고 있어. 어서 이 부상병새낄 등판에 업지 못해! 이미빼기에 콩알을 박아 넣기 전에!”
 민병기 소대장은 아무에게나 늑대처럼 으르렁거렸다. 손에는 권총을 뽑아들고 마구 휘둘러댔다. 어디에 부상을 당했는지 그의 손등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중대장님. 싸워보지도 않고 이렇게 패주해야 합니까? 총 한방 쏴보지 않고 패퇴하다니. 이게 무슨 군댑니까. 더러워서!”
 소대장은 소대를 둘러보러온 중대장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명령에 복종하는 건 군대의 천직이야. 잔소리 말고 집행이나 해!”
 “야, 이 새끼들아! 모두 귓구멍이 막혔어. 퇴각이라잖아. 절골 방향으로 퇴각해서 거기서 521고지를 차지해야 되니까 빨리 서둘라고.”
 그즈음 B중대도 좌측의 내린천 쪽으로 철수하는 모양 욕지거리소리와 군사 장비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플래시불빛도 번뜩거린다.
 중대는 급급히 전연진지를 포기한 채 산줄기를 타고 전략이동지인 521고지를 향해 남쪽으로 급행군 했다.
 아직도 공포가 가시지 않은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통에 소대들은 부대편성이나 점검을 할 사이가 없이 혼란한 지휘 상태 그대로 이동했다. 부상병들 때문에 부대의 이동은 굼뜰 수밖에 없었다. 탈영병들과 전사자들로 소대의 병력은 훨씬 줄어든 상태였지만 행군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적군이 뒤를 바싹 쫒고 있기 때문이었다.
 산길은 미끄러웠고 질척거렸다. 길이랄 것도 없이 그냥 계곡과 비탈과 능선과 숲을 헤치고 전진해야만 했다. 병사들의 행색은 꾀죄죄했고 장교들의 입에서는 거친 욕설들이 난무했다. 모두들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 있었고 부대의 사기는 일락천장 했다.
 박병술은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발걸음만 옮겼다. 말할 기운도 없었고 기분도 없었다. 개미 한 마리 살아남기가 힘든 맹포격에 살아남았다는 기적적인 사실하나만이 신기할 뿐이었다. 싸워보고 싶다는 소대장과 같은 그런 불타는 의욕도 없었고 탈영병들처럼 군인의 양심을 저버리려는 절망감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피곤하고 졸렸고 날이 밝으면서부터는 산길에 지친 때문인지 시장기가 심하게 발작했다. 군복팔소매는 어디서 떨어졌는지 잘린 채로였고 철모도 보이지 않아 맨머리 바람이었다. 도대체 군인의 행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죽지 않았다. 나는 죽지 않았다. 목숨이 붙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15

 도로를 따라 남진하는 인민군은 산길을 헤쳐야 하는 국군보다 더 먼저 이동하여 521고지를 선점했다. 그러나 그들은 척후병인 듯 소규모의 부대였다. 중대의 공격에 적의 방선은 저항 한번 변변히 못해보고 금방 무너졌다.
 드디어 박병술은 군인답게 총을 발사해보았고 구겨진 군인의 체면도 만회할 수 있었다. 공격전에서 그는 소대의 선두에서 능선을 향해 돌격했다. 적의 총탄이 귀뿌리를 쌩쌩 스쳤지만 그는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늑대 같이 험악하기만 한 민병기 소대장의 무서운 독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죽은 전우들에게 살아있다는 것이 미안했고 그들의 몫까지 싸워야겠다는 군인의 사명 같은 것도 어렴풋이 있었던 것 같다. 패퇴의 수치감에서 해탈하여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감정 같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박병술은 분명히 목격했다. 진지를 버리고 도망하는 적군의 등을 향해 발사한 그의 사격에 인민군전사가 금방 풀썩하고 땅바닥에 꼬꾸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박병술이 난생처음으로 죽인 사람이었다. 옹진지구전투에서도 개인적으로 적군을 살상해본적은 없었다. 가슴에서 솟구친 선지피가 초록색 인민군군복을 흥건히 적시는 모습을 보며 박병술은 갑자기 발작하는 구토로 위장 속의 음식물을 왈칵왈칵 토해냈다. 적군은 두 눈을 뜨고 있었는데 흰자위만 번뜩거렸다. 두 다리와 팔은 한동안 푸들푸들 경련했다.
 “이 자식은 사람이 아니라 적군이야. 빨갱이 새끼지. 잘 죽였어. 개새끼, 돼지새끼를!”
 어느새 소대장이 등 뒤로 다가와 박병술의 어깨를 툭 치며 격려한다.
 사람이 아니라 빨갱이 새끼! 사람이 아니라 빨갱이 새끼!
 박병술은 연신 입 속으로 중얼거리며 군홧발로 시체의 엉덩짝을 걷어찼다. 그러나 적군의 얼굴은 아무리 내려다 봐도 자신과 꼭 닮은 10대의 앳된 청년이었다. 순박하고 천진하기까지 했다.
 생긴 건 같아도 속은 다르겠지. 속이 빨갱이겠지. 개자식! 개새끼!
 박병술은 저도 모르게 악에 받쳐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다. 다리가 부러진 병사와 창자가 복부 밖으로 길게 흘러나왔던 전우가 생각나며 적개심을 격증시켰다.
 그러나 저녁 무렵에는 대대지휘소로부터 중대더러 현리남쪽 엄수동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대대는 자은리에서도 철수하여 홍천 북방 큰말고개에 방어선을 형성한 연대지휘부와 교신마저 단절된 채 오미재 일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28일 오후에는 현리, 오미재, 서곡리, 부목재를 경유하여 홍천으로 이동하여 연대지휘부와 합류하였다. 관대리 남쪽 38교 방어지점에서 인민군12사단의 공격을 2시간이나 지연시킨 1대대와 2대대는 이미 큰말고개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28일에는 7연대방어구역인 원창고개와 2연대방어구역인 큰말고개를 향해 잠시 진격이 느슨해졌던 적군의 맹공격이 재개되어 아군의 전세가 불리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민군은 전차와 SU자주포를 앞세우고 큰말고개를 공격해 왔다. 마침 2연대를 지원 나온 16포병대대의 포사격이 적의 전차와 보병을 분리시키고 57mm대전차포로 전차를 파괴함으로서 적의 공격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일단 공격을 좌절시키는데 성공했다. 
 큰말고개는 우측방의 화양강이 흐르는 철정리에서 성산리의 작은 말고개에 이르는 남하도로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요충지였다. 동쪽산자락 밑으로는 금방 모내기를 끝낸 푸른 논벌과 강우에 불어나 검푸른 화양강이 보이고 서쪽 고개 밑으로는 큰박골에서 새말에 이르는 좁고 긴 논배미들이 보이는 능선길이다.
 인민군은 반드시 이 고개를 지나야 하는 전략적요충지이기도 했던 만큼 국군의 사수의지도 그만큼 강했다. 적군의 새로운 증강공격에 대비하여 사단사령부에서는 홍천에 금방 도착하여 휴식도 취하지 못한 3대대를 즉시 큰말고개방어선의 남측방 성산리지역에 긴급 투입했다.
 박병술이 소속된 A중대는 대열수습도 못한 채 다시 북방전선으로 이동해야 했다. 비상상황이었던 만큼 연대와 대대의 군용트럭을 동원하여 이동속도를 높였다. 박병술은 오래간만에 연대부에서 제공한 급식을 포식한 뒤라 몰려드는 식곤을 이기지 못해 트럭위에서 끄덕끄덕 졸았다.
 중대가 성산리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성산리의 작은 말고개는 점말과 새말을 낀 해발이 그리 높지 않은 산등성이었다. 동쪽기슭으로는 화양강이 에돌아 흐르고 남쪽 개활지에는 성산논벌이 푸른색을 띤다.
 중대는 행장을 풀기 바쁘게 참호구축작업에 착수했다. 여기저기서 잘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야전용 삽날이 돌멩이에 부딪치며 불꽃이 반짝반짝 튕겼다. 적의 공격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니 급히 서둘러야 한다.
 “말고개 귀신이 되지 않으려거든 좀 더 깊이 파. 포탄 한발에 무너지지 않도록.”
 민병기 소대장은 힘에 부쳐 잠시 앉아 휴식하는 소대원들의 엉덩짝을 군홧발로 걷어차며 부산스레 참호구축작업을 독려했다.
 “이놈아. 넌 철모는 어떡했어? 갑자기 적탄이 날아오기라도 하면 이마빼기에 구멍이 뻥 뚫리려고 이렇게 너희 집 안방처럼 방심하고 있어.”
 민병기 소대장은 손에 든 채찍으로 박병술의 더부룩한 뒤통수를 철썩 후려쳤다.
 “현리전투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자식. 대갈통은 잃어버리지 않았어. 자 받아.”
 소대장은 자신의 철모를 훌렁 벗어 박병술에게 건넨다.
 “소대장님은 ……”
 “난 죽지 않아. 총알도 날 피한단 말이야. 괜한 걱정 말고 뒤집어쓰기나 해. 대신 제발 뒈진 꼴은 보이지 마. 구역질이 나니까.”
 부하의 머리에 푹 뒤집어씌워주고는 저쪽으로 성큼성큼 가버린다. 철모가 어찌나 큰지 눈 등까지 푹 내리 덮인다.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런데도 박병술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입만 뻥끗하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악의적이고 거친 욕설과는 전혀 다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민병기 소대장의 긴 머리카락이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참호구축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도 전방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작업은 밤늦게야 끝났다. 전쟁터답지 않은 밤의 고요와 정적 속에 이름모를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산 아래로 흘러가는 화양강의 물소리만 또렷하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박병술은 M1소총을 품속에 껴안은 채 참호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평화롭고 아늑하기만 한 분위기다. 이 땅에 불과 며칠 전에 전쟁이 발발했고 사람들의 피로 얼룩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도 꿈만 같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낯익은 소대원이 아닌 전혀 생소한 얼굴들이다. 죽었다는 건 잠시 곁을 비웠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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