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박병술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은 뒤 이튿날 아침에야 의식을 개복했다. 다행이도 무성한 머루덩굴위에 떨어져 생명은 건졌으나 발목이 퉁퉁 부어있었고 이마가 찢어져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떨어지면서 풀뿌리나 나뭇가지에 충돌한 모양 어깨의 통증도 발목의 통증 못지않게 극심했다.
 아침이슬에 축축하게 젖은 심곡深谷에는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자옥했다.
 여기가 어디지?
 소대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소대장님은?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개미들만 소리 없이 그러나 분주하게 그의 몸뚱이 위를 기어 다닌다. 털고 일어나려고 했으나 발목의 통증발작으로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디로든 가야 한다.
 부대를 따라서 가야 한다. 이곳은 이미 적군의 점령지일 가능성이 많다.
 무심코 머리를 들고 보니 아스라니 높은 벼랑이 하늘을 찌르며 아득하게 막아서있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분신쇄골이 되고 콩가루가 되었을 법도 한데.
 뒈지지 말아야 해. 구역질이 나니까.
 소대장님. 저 뒈지지 않았습니다. 이러게 멀쩡하게 살아있다고요.
 박병술은 근처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지팡이로 삼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한시라도 빨리 적구를 떠나야 한다. 적의 손에 들어가면 죽는 길밖에 없다. 죽지 말아야 한다. 살아서 민병기 소대장님을 만나  뒈지지 않은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총도 어디 갔는지 없고 군용배낭도 보이지 않는다. 군화도 오른쪽만 발에 걸쳐있다. 군복은 갈기갈기 찢어져 넝마조각처럼 넌덜거렸고 정강이며 팔뚝은 긁히고 부딪치고 허벼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래도 살았으니 그는 행운아인 셈이다.
 나무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안개가 자옥한데다 이슬에 젖은 바위들이 미끄러워 한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대충 남쪽이라고 짐작되는 방향을 잡고 뒹굴기도 하고 벌렁벌렁 기기도 하면서 숲을 빠져나왔다.
 산 아래로 거의 내려오자 안개도 어느새 걷히고 햇빛이 숲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새들이 귀청을 찢을 듯이 요란하게 지저귀기 시작했고 다람쥐며 산토끼 따위 산짐승들이 인기척에 놀라 깡충깡충 풀덤불 속으로 사라진다.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유난히 또랑또랑했다.
 그 쪽으로 가면 홍천방향일 거라고 어림잡았던 산기슭아래에서 난데없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정의의 깃발아래 조국에 바친 몸
 영예로운 별빛이 머리위에 빛난다.
 나가자 인민군대 용감한 전사들아
 인민의 조국을 지키자 목숨으로 사수하자

 전혀 생소한 노래이다.
 북괴군?!
 적군이 벌써 그를 뒤에 남겨두고 남쪽으로 진군한 게 틀림없다. 그러니 이곳은 적 후방이고 나는 적구에 갇혀버린 것이다.
 높직한 바위위에 올라가 산 아래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했다. 인민군전투부대의 긴 대열이 질서정연하게 도로를 따라 남진하고 있었다. 보병은 길 좌우편에 종대를 지어 급행군을 하고 도로중앙에는 T-34탱크, SU-76자주포와 소련제 군용트럭, 육중한 122mm고사포, 76mm사단포, 122mm평사포, 122mm곡사포, 120mm박격포를 끄는 포차들과 군수품을 만재한 중국식 마차들이 앞뒤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기다란 장사진을 늘이고 있었다. 지휘관들의 초록색 지프와 군인들의 군모 그리고 어깨에는 위장용 나뭇가지들이 꽂혀있었다. 군용차량들의 질주로 도로에는 먼지가 뽀얗게 일고 있었다. 전차와 자주포의 무한궤도소리, 군용트럭들의 부르릉거리는 엔진소리, 포차들의 덜커덕거리는 소리, 마차의 말발굽소리, 군인들의 노랫소리에 좁은 골짜기가 들썽거렸다.

 우리는 2연대 용사 씩씩한 국방군
 자유와 정의의 총칼을 들고서
 찬연한 우리 겨레 한데 뭉쳐서
 영원한 새 나라를 건설하자
 ……  

 저도 모르게 2연대군가를 입 속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패잔병이긴 하지만 나도 당당한 군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 자존심을 복구하고 싶었다.
 눈앞의 상황은 홍천방향이나 서울방향으로의 이동은 위험이 동반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해주고 있었다. 인민군의 주공격방향이 편벽한 산간지역인 강원도가 아니라 서울, 경기와 중부전선일 거라는 건 군인이 아닌 사민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산악지대인 동부전선이 이쯤 뚫렸으면 중서부전선은 진작 홍수처럼 밀고 내려갔을 것이다.
 동쪽 산악지대로 발길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안전을 도모한 다음 부대복귀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살아남아야 부대에도 귀대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험준한 산길밖에 택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인데다 상한 발목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부어나고 통증마저 가중되어 하루에 십리 길을 걷기마저 힘들었다. 게다가 굶주림까지 겹쳐 기진맥진해졌다.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아직 익지도 않은 산열매들을 따먹으며 창자를 달래야만 했다. 떫고 시고 쓴맛쯤은 견딜 만 했지만 배가 차지 않았고 때로는 식중독 때문인지 설사까지 나가 마지막 남은 털끝만한 기운마저 빠져 손가락하나 까딱할 맥조차 없었다. 
 박병술이 강원도오지의 어느 시골마을에 당도한 것은 전쟁이 일어난 날로부터 아흐레 만인 7월 4일이었다. 군복이 갈기갈기 찢기고 살갗이 터져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가 삼 검불처럼 헝클어진데다 얼굴마저 그을고 때오르고 수척하고 초췌한 그의 몰골은 도깨비나 귀신이 보아도 놀라서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아마 이대로 하루만 더 농가를 만나지 못했어도 그는 산 속에서 짐승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
 뒈지지 말아야 해. 구역질이 나니까!
 민병기 소대장의 그 욕설이 아니었어도 박병술은 진작 생의 의욕을 포기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사선을 넘어 생명을 완강하게 지연시켜준 힘의 원천은 바로 소대장의 그 한마디의 욕설이었다.
 뒈지지 말고 살아야 한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오막살이 농가는 골짜기에 널려있는 마을과는 좀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이 마을도 인민군의 천하가 되었을 거라는 예상이 박병술을 긴장하게 했다.
 하지만 인민군에게 포로가 되어 굴욕적인 죽음을 당하나 굶어죽으나 극한상황이기는 매일반이었다. 지금 상황 같아서는 먹을 것만 준다면 인민군에게 투항이라도 할 기분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뒈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인들 마다하랴 싶었다.
 농가 뒤의 개암나무와 싸리 숲을 헤치고 살금살금 오막살이를 향해 기어갔다. 절구통만큼 팅팅 부은 다리가 자신의 몸에 달린 하체 같지 않은 느낌으로, 무슨 나무토막처럼 당기는 대로 질질 끌려온다.

19

농가주위는 인기척 하나 없이 물 뿌린 듯 조용하다. 새들과 벌레들의 울음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이다. 냇물이 자갈위로 흘러가는 쪼르륵 소리가 가늘지만 절주 있다. 한낮의 무더운 태양이 폭염을 쏟아 붓는 농가는 전쟁 같은 것은 아예 없었던 듯이 권태로우면서도 평화로웠고 아늑하면서도 지친 모습이다.
 밥 한 그릇만, 보리밥 한 그릇만이라도 아니, 감자 한 덩이만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군침이 저도 모르게 목구멍을 타고 꿀떡 넘어갔다. 가물거리던 의식도 머리를 쳐드는 식욕의 유혹에 불심지를 돋운다.
 젖 먹던 기운까지 다 내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굴뚝을 돌아서 집 앞으로 나갔다. 싸리바자 안에 붉은 벽체가 당금이라도 허물어질 듯 금이 나 있고 문짝마저 찌그러든 오막살이가 나타났다. 뜰에는 닭 몇 마리가 한가로이 모이를 쫒고 있다. 노란 햇빛이 발바닥에 묻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가득 깔려있다.
 창호지가 찢어져 넌덜거리는 부엌문이 삐거덕 열리더니 한 농부가 삼태기에 무언가를 담아들고 툇마루로 불쑥 나서는 바람에 박병술은 미처 몸도 피신하지 못한 채 그냥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있었다.
 농부는 삽짝문밖에 갑자기 나타난 국군병사를 보자 놀란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인민군치하의 마을에 백주에 국군병사가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할 것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우? 국군이 어떻게 여길…… 어서 안으로 들어 가유. 누가 보기라도 하면 내남없이 죄다 목이 날아나요.”
 농부는 허둥지둥 뜰을 달려 나오더니 아랫마을 쪽을 연신 흘끔거리며 박병술을 부축하여 서둘러 집안으로 들인다.   
 “배가 고파서요. 먹을 것만 주면 곧장……”
 “글쎄 우선 집안으로 들어갑시다. 들어가서 얘길 해유. 밖에 서있지 말고. 발각되면 큰일 납니다.”
 “이 마을에도 북괴군이 들어왔습니까?”
 “들어오다마다요. 인민군천하지유.”
 말소리를 듣고 집안에서 나온 두 여인의 얼굴에도 순식간에 공포와 두려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40대의 여인은 농부의 아내로 보이고 10대의 어여쁜 처녀는 딸인 듯싶다. 봄날의 버들가지처럼 물이 통통 오른 처녀는 수태를 담뿍 머금은 채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엄마의 등 뒤에 숨어서 불청객을 가만히 훔쳐본다.
 “어서 그 군복을 벗고 옷부터 갈아입어요. 누가 보기 전에.”
 농부는 벌써 눈치껏 챙겨온 아내의 손에서 낡은 무명한복 한 벌을 내놓는다. 낯선 군인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도 좋고 자기가족의 신변안위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좋고 아무튼 농부의 진심에 박병술은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문전축객한들, 인민군에 고해바친들 궁지에 몰린 그로서는 할말이 없는 처지가 아닌가. 이 무시시한 세월에 목숨을 걸고 남을 돕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댁에 몸을 숨기려고 들어온 게 아닙니다. 배가 고파서 들어왔으니 먹을 것만 좀 주면 더 이상 폐 끼치지 않고 그냥 선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되지도 않을 소리구만요. 그 몸으로 어딜 간다고 그래요. 안보면 몰라도 두 눈 뻔히 뜨고 보고서도 이대로 보낸다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요. 다른 말 말고 어서 시키는 대로 옷이나 갈아입구려. 여보, 거기 어디 감자 삶은 것 있지? 그거라도 먼저 들여오구려. 보리밥은 나중에 지어주고. 우선 배고플 테니까 요기라도 해야지.”
 박병술은 하는 수없이 농부가 주는 옷을 갈아입었다. 체소한 농부의 몸에 맞춰서 지은 한복이 몸집이 우람한 그의 체구에 맞을 리가 없다.
 농부의 아내가 부엌으로 나가더니 커다란 버들광주리에 식은 감자 대여섯 덩이를 담아들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열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예쁘장한 딸은 하릴없이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불청객에게 신비한 눈길을 자꾸만 던져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병술은 짐승처럼 감자를 집어 들고 껍질 채로 닁큼닁큼 베어 삼키기 시작했다. 체면이고 인사고 차릴 경황조차 없었다. 감자 맛이 천하별미라는 걸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
 “천천히 먹게나. 젊은이. 체하겠네. 얘. 복금아. 물 한 그릇 떠오너라.”
 심한 수줍음을 타며 엄마 뒤에 숨어 몰래 시선을 던져오던, 복금이라고 호명된 애가 아버지의 분부가 떨어지기 무섭게 쪼르륵 밖으로 달려 나가더니 마당안의 우물을 길어서는 한 그릇 떠들고 방으로 올라온다.
 복금은 우연히 박병술과 눈길이 마주치자 그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또다시 엄마 등 뒤에 숨어 물그릇만 달랑 내민다. 수줍음을 몹시 타는 그 모습이 더구나 앳되고 순진하다.
 “발이 심하게 부었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 쑥 뜸질을 하던지 오소리기름을 바르던지 해야겠어. 이런 발로 어떻게 산 속을……”
 “복금이 아빠. 인민군이나 민청에서 반동분자색출이라도 나오면 어떡해요?”
 농부의 아내는 걱정스러운 듯 박병술의 부은 발목과 남편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그녀의 초췌한 얼굴에 우려와 걱정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있었다.
 “오겠으면 오라고 해요. 오면 숨으면 될 거잖아요.”
 복금이가 엄마의 등 뒤에 얼굴을 묻은 채 나직하나 당돌하게 말한다.
 “언제 올 줄 알고.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불시에 들이닥치는데……”
 “괜찮아. 다 방법이 있어. 그 뭐냐. 젊은이만 괜찮다면 그냥 우리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하게나. 집은 전라도에 있는데 전쟁난리판에 길이 막혀 못 갔다고 둘러대면……”
 “복금이 아빠!”
 “아버지!”
 두 여인은 동시에 농부의 말을 제지한다.
 박병술이도 농부의 느닷없는 제안에 흠칫 놀라 먹던 감자를 허공에 든 채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이 난데없이 데릴사위라니?!
 박병술의 눈길과 시선이 마주친 복금이의 얼굴이 금시 빨갛게 고추물이 든다. 옷고름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밖으로 졸랑졸랑 달려 나간다.
 “그러잖아도 복금이 저년 때문에 크게 걱정했는데 차라리 잘 됐어. 조병태놈이 자꾸만 복금일 눈독 들여 어떡하나 근심했는데.”
 “당신 민청위원장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화를 당하려고 그래요.”
 “당신은 걱정 마. 잠자코 굿이나 보다가 떡이나 먹으라고.”
 “지금이 누구천하인데 감히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겠다는 거예요.”
 “내가 비록 천한 농사꾼이긴 하지만 딸을 그 망나니 병태놈한테는 안줘. 차라리 개한테 주면 주었지.”
 “목소리 좀 낮춰요. 누가 듣겠어요. 이 양반이 오늘 환장을 했나 원.”
 “듣겠으면 들으라지. 내 딸 갖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어느 놈이 뭐라 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농부의 눈길은 부단히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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