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화 저

제4절 조선인의 의료위생

1. 개황

재만조선인의 위생조건은 극히 차하였고 위생관념이 희박했다. 가옥의 구조를 보더라도 생활난으로 하여 대부분이 비좁고 창이 좁아 통풍이 잘되지 않으며 해빛도 충족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편이다. 더우기 우사칸을 함께 하기에 파리와 모기들이 끝칠새 없었다. 또 변소는 헐망하고 소변은 아무곳에나 보고 오물도 집앞 마당에 마구 버리는 상황이다. 일단 병에 걸리면 병원에는 별반 가지 못하며 풀뿌리나 나무껍지 또는 산열매 등 약재에 의해 민간료법으로 치료하며 또 원시적인 미신습성으로 비는 습관도 있다. 도호지 외의 지역은 목욕시설이 거의 없어 조선인은 목욕을 자주 못하며 특히 겨울에 그러했다. 여름에는 하천에서 목욕하는 정도이다. 재만조선인 대부분은 빈곤으로하여 영양흡취가 충분하지 못하며 기후관계로 질병에 귀이 걸린다. 만주는 여름과 겨울의 날씨 차이가 심하여 열대와 한대의 특색적인 질병을 모두 지니고 있다. 보통병으로는 소화계통병, 호흡계통병, 핀부병, 오관과병, 치질 등이 있다. 전염병으로는 페스트 (흑사병 (黑死病)), 곽란, 카라, 아잘 등이 있다.

페스트(흑사병) 농안을 중심으로 약 10만 km 지대가 페스트의 중점지역 이었다. 매년 여름에 발생하고 (페(腺)페스트) 때로는 동기 (페(肺)페스트)도 간간 발생한다. 그 실예로는 1910-1911년에 러시아 트란스바이칼지방으로부터 만주에 친입한 페(肺)페스트는 5만 명이란 생명손실을 빚었고 1920-1922년에도 1만 명이란 희생자를 내였다.

곽란은 1902년 러시아 울라지브스또크에서 유행하다가 훈춘일대까지 만연되였는데 400여 명이 전염되었고 많은 사망자를 냈다. 1933년에 연길일대에서 유행되던 곽란은 많은 사망자를 냈다.

카라·아잘 만주에서 흔히 보는 질병으로 특히 남만의 발해만 연해지역에 많다.

이밖에 상한, 부상한, 발진상한, 마진(홍역), 성홍열 등 각종 급성전염병은 사시장철 끊임 없이 크고 작게 유행되였는데 발병률은 간도지역의 0.27%에 달하였고 개별지방은 41.5%에 달했다.결핵병같은 만성전염병의 환병률은 아주 높았다. 1944년 간도의 3만 9000명 건강한 중소학교학생에 대한 조사통계에 의하면 결핵병환병률이 1.8%이었다.

만주의 지방병은 수토병(大骨节病), 극산병, 지방성 갑상선종 등이 있다.

1934년 6월말 현재, 만주에는 156개의 의료기관이 있었는데 그중 조선인이 경영하는 것이 99개였으며 교회에서 경영하는것이 1개였다. 1914년 카나다장로파교회에서 용정 동산에 창설한 제창병원이다.

사진 1-09-07 용정 제창병원, 오른쪽이 김영 원장, 30년대 상해 영화계의 황제로 이름난 김염의 형이다.

 

1933년 7월 -1934년 6월, 조선인이 전염병에 걸린 인수는 2263명, 그 중 127명이 사망되었다. 천연두환자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바 약 9.6%였다. 창(肠)티푸스환자가 764명 으로서 가장 많으며 전염병환자의 33.8%를 점하며 사망률은 4.7%이다. (《재만조선인 개황), 일본외무성 편)

 

2. 지역별상황

1).간도지방

1905년 이전, 간도의 의료위성 특점은 살만(萨满)식 무의(巫医)의 의료활동을 위주로 하였는데 거기에는 약방까지 겸영하는 외지 중의업자들이 나타났다.

9.18사변 전 경찰기구에 위생행정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위생법령을 반포하였으며 위만통치시기에는 《위생공작3대방침》(의료기관의 보급, 전염병의 예방 및 위생 행정기관의 충실)을 제기하여 위 민정청 소속으로 보건과를 설치하였으며 현공소 민정과 소속으로 보건고가 설치되었다.

1905년이후 간도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 각 지역에서 중의와 약장사군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1920년이전 한의 200여 명이 있었다. 1922년 1월 연길경찰청에서는 《위경률 (卫警律)》에 의해 《의사취체잠행규칙》(10조)를 반포하고 그해에 처음으로 《의사허가증》을 발급하였다. 1928년 간도의 한의는 319명으로 급증했다.

1899년, 러시아인이 훈춘에 병원을 세웠으나 중국사람의 병을 보지 않았다. 1907년 일본인 의사 3명과 간호원 1명으로 용정에 《간도자혜병원》을 꾸렸는데 이는 간도의 첫 서의병원이다. 중국측에서 간도에 세운 첫 공립병원은 문진부와 입원부(14개 침대가 있음)가 있는《변무병원》이다. 1908년 6월 국자가에 세워졌다. 원장은 천진의학당출신인 이소량(李绍良)이다. 1909년 11월, 일제는 《간도병원》을 내오고 의사를 초빙하였으며 후에 와서는 《간도자혜의원》으로 개명하였다.

1913년 카나다해외선교부에서는 용정 《영국더기》산비탈 길 옆에 반지하실이 있는 100여 m²의 회색양옥으로 된 《제창병원》을 세웠다. 1918년 10월에 확건하여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전염병과 진찰부를 두었다. 선교사이며 의학박사인 마딩이 원장으로, 영국인 로은혜 여사가 간호장이었다. 3명의 조선인 간호원과 이익걸, 최관실, 정창성 등 5명의 의사가 초빙되었다. 20년대부터 《영국더기》에 있는 두 개소의 남녀중학교 사생들의 위료보건까지 맡아주었다. 봄, 가을에 신체검사를 하고 의사를 보내서 학교의 생리위생과 교수를 책임지었다.

1920년 간도에는 27개소의 사립서의병원이 있었고 30년대초에는 52개소로 증가되었다. 일제통치시기에는 종합병원 3개소, 공립병원 20개소, 서의개인진료소 52개소, 중위, 한의 개인진료소 360개소가 있었다. 1940년 7월에는 용정에 《개척의학원》이 꾸려졌고 1945년까지 5기에 거쳐 157명을 초생하여(그중 127명 졸업) 서의로 양성하였다. 해방직전까지 간도에는 150개소의 서의병원, 197명의 서의, 130명의 간호원이 있었다.

1940년, 종업원 10여 명을 가진《간도방역소》가 세워졌다. 당시 간도에는 전염병이 심하였다. 위 만주국의 통계에 따르면 1940-1941년 간도 5개 현의 전염병환자는 2029 명, 그해에 죽은 이는 256명으로서 사망률이 12.6%이다. 부녀의 산욕열발병률이 매우 높으며 난산으로 죽은 이가 적지 않았다. 영아사망률은 20% 좌우이며 신생아 파상풍 발병이 극히 많으며 사망률은 68%의 높은 숫자로 기록됐다.

1945년말, 연변전원공서민정과에 보건고를 설치하고 위생행정업무를 책임, 처리하였다.

1948년부터 선후하여 연변병원과 각 현 위생소를 세웠다. 연변방역소는 1952년에 세워졌다.

2). 남만지방

안동, 대련, 철령, 무순, 장춘, 길림과 같은 도회지역에 있어서는 상하수도시설이 구비되여 있고 의료기관도 구전했다. 그 외 지방에 있어서는 공기가 건조하고 먼지가 자주 일어 호흡계통질병환자가 많았고 음료수로는 강물과 우물을 그대로 마시기에 소화 계통질병환자가 많았다. 목욕을 자주하지 않으며 의복을 오래동안 세탁하지 않기에 피부병환자도 적지 않았다.

관동지방에 있어서 흥미있는 일은 조선인 대부분이 산간에 거주하고 있기에 천연적인 혜택을 많이 보게된 것이다. 신선한 공기, 청결한 냇물은 보건적 생활을 보장하며 교통불편으로 하여 흑사병같은 류행병이 만연되지 않는다.

1921년 조선총독부의 2400원의 의료보조금이 있어 병원이 섰고 이주자에게 그해 9월부터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봉천지방에 있어서는 조선총독부가 1921년 11월에 의사 라영환씨를 파견하여 10칸 방에 협제병원을 앉혔고 지방농촌순회치료를 하였다. 흥경지방은 정치곤씨, 통화지방은 김영걸씨, 유하지방은 피희태씨, 양자소지방은 조병헌씨가 조선총독부의 의료보조금으로 병원을 개업하였다.

철령지방에 있어서는 1922년 9월 1일, 조선총독부의 3000원의 의료보조금으로 철령 북대가에 공애병원(共爱病院)을 개설하고 최경하씨가 책임졌다.

길림의 동포의료시설은 1921년 8월 서정목씨가 2400원의 보조금으로 길림성내에 동성병원(东省病院)을 개설하였다.

정가툰에 있어서는 이필근씨가 보조금 2900원으로 요동병원(辽东病院)을 개설하였다.

3). 북만지방

북만지방에 있어서 도시 외 기타지방의 조선인 의료위생상황은 간도나 남만과 별다른 구별이 없었다. 본지방 조선인의 질병은 호흡계통, 소화계통 질병이 제일 많고 피부병과 부인병 및 아편중독자가 다음으로 가는 상황이다.

할빈에 있어서는 의사업종은 동포의 각종 직업중 가장 성공한 직업이다. 20세기 20년대초 이미 6000-7000원 내지 1만 원, 가장 많은 자는 3, 4만 원의 재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 동포의 병원을 적어보면 고려병원(원장 이원재, 의사 박정식), 북만병원 (원장 박동하, 의사 이종시), 조선병원(원장 이웅), 서법(西法)병원(원장 김도근, 의사 이웅), 극동병원 (원장 유동운, 의사 이병천), 민제(民济)병원 (원장 한민제) 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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