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칼럼

▲ 10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경기장에서 열린 2010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한국 대 중국의 경기에서 중국의 첫 골을 성공한 유하이가 동료들과 골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0.2.10
중국축구가 지난 32년간 이어온 공한증(恐韓症)을 극복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중국과의 2010동아시아축구대회 2차전에서 졸전 끝에 0-3으로 완패했다. 물론 해외파가 빠진 국내파간의 승패이지만 제3국에서 치른 국가팀간의 A매치로, 그동안 27경기 11무17패의 절대적 열세로 전전긍긍해온 중국축구가 드디어 공한증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주목된다.

1990년대 중국 언론이 제기한 공한증은 당초 부진한 중국축구의 동산재기를 바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그 후 한중 언론에 의해 이데올로기가 가미되면서 민감한 스포츠용어로 이용(移用)되었다. 백과사전에도 올라있는 공한증은 한국인에게는 자긍심의 상징이지만, 중국인들에게 수치심과 반발심을 유발하는 ‘정치·스포츠용어’로 이질화되었다. 매번 중한 축구경기가 있을 때마다 양국 언론들은 축구경기보다 공한증 타파 및 지속여부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주목되는 것은 신임 감독과 젊은층으로 세대교체를 진행한 중국팀의 눈에 띄는 변화는 패스워크를 통한 팀플레이다. 이번 대회에서 활약 중인 중국팀의 주축멤버 대다수가 23세 이하 베이징올림픽대표팀 출신으로, 스타선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공한증을 타파한 것이다. 특히 아쉬운 점은 ‘소림축구’로 불릴 정도로 거친 경기를 치렀던 중국팀의 유연해진 팀스타일과는 달리, 경기가 끝난 후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한 한국선수들이 과거 한국전 후 중국선수들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최근 국내리그에서의 승부조작 및 뇌물수수가 드러나면서 비리척결의 주역이 된 중국축구가 사면초가에 빠지면서 중국정부는 이미 동아시아대회 중국팀 생중계를 전격 취소한 상태다. 최근 중국 공안당국이 축구도박·뇌물수수로 경기승패에 영향력 행사 혐의를 가진 축구협회 주요 책임자와 각 팀 경영진 및 감독들을 소환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팀이 예상외로 역대 전적의 최대 점수차로 중국팀에게 완패를 당한 것은 ‘범의 목에 단 방울’을 풀어준 것이다.

중국팀의 승전에 ‘운이 따랐다’는 중국팀 감독의 자평과는 달리 중국 언론들은 ‘암흑기 서광’에 비유하면서 한국팀 승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둥팡망은 “중국 남자대표팀이 중국축구의 희망을 보여줬고, 중국축구는 ‘부패 침체기’속에서 한국전 승리로 공한증에서 벗어났다”고 자축했다. 반면 한국 언론은 축구경기 내용보다는 ‘공한증 타파’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축구경기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로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한 경기 승패로 ‘역사’를 말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공한증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 축구경기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공을 둥글기 때문이다. 한편 각종 평가전 승리와 월드컵 예선을 4승4무 무패로, 탄탄대로를 달려온 허정무호에게는 ‘유익한 승패’가 될 수 있다. 지난 2002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도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5 대패를 기록했지만, 4강 신화를 달성했다.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허정무호에게 이번 실패가 ‘쓴 약’이 되길 바란다.

중한 양국 축구는 바야흐로 축구역사 속에 사라진, 이데올로기가 가미된 공한증의 질곡에서 탈피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윈-윈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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