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안방에 성큼 들어서서 두 남녀가 이불 속에 나란히 껴안고 누운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병태는 실망한 듯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뭘 멍하니 보고들 있어? 어서 나가자.”
 동행한 민청원들을 휘동해가지고 우르르 마당으로 쓸어나갔다.
 박병술은 그들이 삽짝문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기 바쁘게 후다닥 이불 속에서 뛰어 일어났다.
 “미안합니다. 복금씨. 미안합니다. 본의 아니게……”
 연신 고개를 조아려 사과하며 엉금엉금 사잇문 턱을 넘어 사랑방으로 내려왔다.
 “허허허. 군인이라는 사람이 여자 앞에서는 벌벌 기기는. 장가들긴 다 글렀네그려.”
 이호남은 곰방대에 담배를 붙여 물고는 껄껄 웃는다.
 “어르신. 불민한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절……”
 “죄는 무슨 죄. 내 딸을 구해주었으니 우리가 도리어 자네한테 신세를 진 거지. 안 그래, 여보.”  
 방 한구석에 옹크리고 선 이호남의 아내는 갑작스런 봉변에 놀란 나머지 당황하고 민망하여 할말마저 잊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복금이는 여맹에 불려나가 전선원호사업에 참가해야 했고 박병술이도 다리가 채 낫기도 전에 민청에 나가야만 했다. 각종 군중대회에 참가해야 했고 군수물자운반, 폭격에 파괴된 도로와 교량복구 작업, 토지개혁을 위한 농지조사, 혁명가요 배우기 등 해방구의 모든 일상생활에 참여해야 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위에
 역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국

 이라는 노래도 배웠고

 동무들아 준비하자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 침략자를 때려 부수고
 용진勇進 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 천만번 죽더라도 원수를 갚자

 라는 항일유격대시절 가요도 배웠다. 마을의 젊은 청년들 속에서 노동당가입을 유도하는 선전선동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복금이는 여맹위원장의 설득으로 벌써 노동당원이 되었다. 이호남은 농민위원회에서 토지분배위원이 되었고 그 아내도 여맹에 나가 전선원호사업에 참가했다.
 “지주,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인민이 다 같이 잘사는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의 후계자인 우리 민청원들이 앞장서야 하오. 박병술 동무도 빈농의 아들이잖소. 그러니 누구보다도 혁명사업에 솔선수범해야지. 노동당에 가입하시오. 이것은 혁명에 대한 박동무의 태도를 시험하는 기회요.”
 병태는 선전사업의 예봉을 유독 박병술에게 집중했다.
 “아마도 무슨 냄새를 맡은 모양일세. 산에 가면 산노래 부르고 들에 가면 들노래 부르라는 속담도 있지 않나. 살기 위해서라도 어쩌겠나. 눈 꺽 감고 노동당에 가입하게나.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봐야할 게 아닌가. 더구나 자넨 인젠 혼자 몸이 아니네. 내 딸을 봐서라도.”
 이호남이 덩달아 부채질한다.
 조국을 배반하고 군인의 양심을 저버리는 비굴한 처사라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이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게 그를 핍박하고 있었다. 입당을 거부하면 혁명에 대한 그의 태도가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고 그러면 의심과 추궁이 뒤따르고 국군이라는 신분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혼자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호남과 복금이도 피치 못할 재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밖에도 시세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솔직히 대세는 이미 결정된 판국이나 다름없었다. 인민군은 벌써 남반부국토면적의 3분의 2를 『해방』시켰고 『토지개혁법령』공포와 실시에 의한 인민대중의 『공화국』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극치에 달하고 있었다. 어쩌면 『공화국』은 그들의 주장대로 인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상의 낙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해방정국이후 일찍이 농촌이 이처럼 활기를 띠었던 적은 없었다. 솔직히 자신의 신념이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동요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는 놀랐다.
 결국 그는 당세포조직의 선전과 이호남의 설득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낫과 망치를 그린 붉은 당기 아래서 주먹을 불끈 부르쥐고 혁명의 명의로 선서를 하는 순간 박병술은 그 장엄하고 비장한 분위기에 마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했었다. 동지들이 합창하는 『적기가赤旗歌』는 감동적이었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기 밑에서 굳게 맹서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이 깃발을 지키리라

 국군병사가 노동당원이 되었다.
 1950년 7월 25일.
 그 날은 박병술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믿기지도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무슨 행위를 하고 있고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몰랐다. 모든 결단은 상황에 따랐고 최종결정의 이유는 생명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안 되어 그는 병태의 선동으로 의용군에 입대했다. 드디어 국군복장대신에 인민군복을 입고 동료의 가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다. 그래도 박병술은 별로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그는 단지 대세의 흐름을 따라 갈뿐이었다. 오래잖아 인민군은 남반부전체를 『해방』할 것이고 반도 땅에는 통일된 공화국정부가 수립될 것이다. 그것은 당시 대부분백성들의 생각이었다.
 의용군훈련소로 떠나가기 전날 복금이는 집 뒤의 밤나무 숲 속에서 박병술과 작별을 고했다. 그처럼 수줍음을 잘 타던 복금이가 스스로 옷을 벗고 순결을 바치기를 자원했을 때 박병술은 흥분할 대신 도리어 당황해졌다.
 “복금씨!”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전 이미 당신의 아내가 된 몸이에요.”
 그날.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 밤나무 숲 속에서 박병술은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사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복금이를 여자로 태어나게 했다. 그것은 현실이면서도 꿈이었다. 
 “언제까지라도 기다릴게요.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마을의 동구밖까지 따라 나오며 복금이는 연신 두 볼로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찍어냈다.
 “병태녀석 조심해.”
 그 말밖에 다른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 포옹이라도 해줄 수 있었는데도. 병태는 동지이면서도 그에게는 여전히 연적이었다.
 동지이면서 적!
 이게 다 무슨 말인가. 

23.

  1

 

 윤정의 외할아버지의 회고록은 정도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정도는 그분을 애국자이고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영웅이고 신념과 사명에 충직한 대한민국국민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의 신조를 저버리고 조국을 배반하고 군인의 사명을 망각한 배신자라니?! 노동당가입은 무엇이고 의용군입대는 또 무엇인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생전에 그분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기에, 그분을 아내의 가족을 빛낸 영웅으로 우러렀기에 그 실망감과 실망감은 그만큼 체적이 큰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뒈지지 않기 위해서」신념도 조국도 소신도 죄다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것이 정당한 명분으로 될 수 있는가? 그러면 정의란 무엇이고 신념이란 무엇인가. 생명영위가 그 모든 것을 지불하고서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가.
 정도는 3분의 1도 채 읽지 못하고 이름 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회고록을 방구석에 내던지고 말았다.
 부처님 뒤도 뒤져보면 삼검불 뿐이라더니!
 허탈감이 폭풍우를 거느린 먹구름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들었다. 결국 믿음은 결여를 완벽함이라고 보는 어리석음과 무지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생활의 신조란 한낮 허울 좋은 장식품에 불과한 것이던가. 생명을 위한 어떠한 선택도 정당하다면 신념과 정의는 자신의 지고무상의 권좌에서 퇴진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고 온갖 술수와 음모와 기회주의와 배신이 난무랄 것이고.
 이상하게도 배신감과 허탈감은 정도의 가슴에 커다란 불만의 황무지를 만들었고 본능은 그 황무지위에서 마구 날뛰는 흉악한 야수처럼 으르렁거린다. 공들여 축조했던 마음속의 견고한 구조물들이 홍수에 말끔히 밀려가고 폐허가 된 느낌이다. 마음의 계곡에는 쓰레기들만 고약한 악취를 풍기면서 퇴적물로 쌓여있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점유욕도 그만큼 집요하고 강압적이기까지 했던 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명분을 구실로, 뭔가 정당한 삶의 지향을 통해 구멍 난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다. 물론 그런 욕망은 영적인 것이기 전에 육적인 것이었지만 명분도 서고 정당성도 기저에 안받침된 것이어서 중력을 잃고 일탈을 꾀하는 그의 마음이 매달릴 만한 지푸라기쯤으로는 충분했다.
 그러나 윤정은 학봉리에서 상경한지 3일째가 되었으나 그의 요구를, 남편으로서의 정당한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침묵만 지켰고 모든 의욕을 상실한 식물인간 같았다.  지어는 자신의 몸을 단장하는 일까지도 죄다 포기한 채 외할아버지의 회고록을 보지 않으면 정원에 나가 맥을 버리고 벤치에 앉아 먼 산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머리마저 빗지 않아 푸시시한데다 몸도 씻지 않았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옷도 온종일 헐렁한 추리닝만 대충 걸치고 있었다.
 “자기 왜 그래? 우리 얼마 만에 만났는데. 꼭……”
 정도가 윤정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 그녀는 말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버린다. 유치함과 비굴함도 무릅쓰고 거실까지 따라 나가 뒤에서 허리를 껴안으면 얼굴을 찌푸리고 몸서리를 쳤다.
 정도는 갑자기 그러는 아내가 두려워졌다. 윤정의 가냘픈 신변을 견고하게 에워싼 싸늘한 기운은 달아오른 그의 육신을 얼어들게 하는 얼음장 같은 한기가 포만했다. 가까이에 다가서기만 해도 금시 불방망이처럼 달아오르던 윤정이었다. 수줍어 얼굴을 붉히며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살포시 숙이던 윤정이었다. 남편이 하는 대로 조용히 몸을 내맡긴 채 부끄러운 몸짓으로 가볍게 응해왔었다. 버들가지처럼 나근나근하고 봄날의 햇볕처럼 따스하고……
 그런데 지금의 윤정의 태도는 남편의 존재를 거의 경멸하는 듯싶다.
 왜 그러지?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지 않은가. 단지 윤정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밖에 우리사이에는 변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종전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윤정은 남편을 외면하고 거부하고 심지어는 역겨워하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벌룩거리는 콘돔에 절망하는 석준범과 남편의 성적장애에 불만을 느끼는 미경의 뒤를 이어 나도 불행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벙어리 속은 낳은 엄마도 모른다고 한다. 도대체 말을 해야 영문을 알 터인데 달래고 화내고 설득을 해보아도 윤정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물론 아내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다. 윤정에게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이기도 하고 어머니이기도 한 특별한 존재였다. 세상전부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 분이 타계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 거라는 짐작이 쉽게 간다. 그렇다고 그 충격이 남편을 외면하고 경멸할 이유까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도리어 남편에게 더 기대고 의뢰함으로서 외로움과 슬픔을 위안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가사를 정도가 직접 챙겨야 했다. 가정부아줌마는 이틀 전에 그 주정뱅이 신랑이 찾아와 집으로 끌고 가버렸던 것이다. 남자에게 가사를 돌보는 일이 성가시긴 했지만 가정부아줌마가 떠난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도리어 무슨 큰 짐을 벗어버린 듯이 홀가분한 기분이다. 이유 없이 받아야만 했던, 모성애 같은, 부담스럽고 풀기 있게 실려 있던 사랑의 시선……모든 것이 정도에게는 사랑이 아닌 고문이었고 구속이었을 뿐이다. 가정부는 남편 형태의 폭력에 끌려 나가면서도 미미며, 담가야할 초절이김치며 앞뜰의 화분이며 빨아야 할 이불에 대해 걱정했다. 특히나 아내의 식사에 대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해요. 식사를 하셔야죠. 사모님께서 전복 찜을 좋아하시기에……”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어서 따라 나와! 제 코밑도 닦지 못하는 년이 남의 걱정은 빌어먹을!”
 형태는 가정부의 등짝을 사정없이 밖으로 떠밀었다. 가정부는 그대로 계단 아래로 뒹굴며 땅바닥에 넘어졌다.
 “미미는 사탕을 적게 먹여야 돼요. 이가……”
 “씨발 년아! 그만 씨부렁거리고 바라나가. 네년이 아니라도 이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아간단 말이야. 우린 굶어죽기 일보직전이고 젠장!”
 윤정은 창문 앞에서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아내는 말이라는 걸 아예 망각한 모양이다. 혹시 충격 때문에 실어증이 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아니면 윤정은 이 세상 모든 인간에 대한 관심의 등불이 꺼지고 의욕을 포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인정, 사랑, 가정, 일상……
 결국은 정도 쪽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죽음은 윤정에게 모든 생의 가치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이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의 사랑이라는 것도 늑대의 광기와 동물적 욕망의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였을 테고. 어쩌면 정도자신도 사랑을 빙자하여 자신의 행동을, 윤정의 육신을 한낮 성욕의 도구로, 쾌락의 대상으로 여겼던 무례함을 정당성이라는 현란한 포장 속에 은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윤정은 이제 더 이상 남편의 성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성도구가 되기 싫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죽음은 윤정에게 어떤 영적이고 기적적이고 돌연적인 깨달음을 준 것은 아닐까. 윤정은 분명 한 순간에 세상의 모든 허위와 인생의 무상함을 달관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결코 진지한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며 사랑은 절대로 섹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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