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서 산란한 마음을 좀 정리해야겠어요.”
 “절이라니? 출가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공양주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사찰에 갈 수만 있다면 뭐라도 좋아요.”
 “사찰에 가고 싶으면 일요일마다 불공 다니면 되잖아. 출가까지 할 필요가 뭔데.”
 “갈 거예요.”
 뜻밖에도 강경하고 단호했다. 음성은 차분하고 잦아드는 듯 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의지가 강하게 실려 있었다. 열흘이 다 되도록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던 윤정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때 그녀의 결심은 이미 굳혀졌음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이지? 가더라도 이유쯤은 말할 수 있잖아. 남편인데 그만한 것도 알 권리가 없어. 그런 권리마저 묵살해버려야겠어.”
 하마터면 섹스의 권리마저 묵살하더니 하는 불만이 튕겨 나올 번했다. 기실 남편이라고 해서 무슨 권리 같은 것이 있겠는가.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면 또 몰라도. 그는 아내의 슬픔을 위로해주지 못했으니 남편자격이 없다. 그것이 결격사유로 되여……
 윤정은 이제 할말은 끝났다는 듯 조용히 벤치에서 일어나 집안으로 들어갔다. 탈진한 그녀의 육신이 마른 삭정이처럼 눈에 띄게 휘청거린다.
 “사찰에라도 가서 살 수 있다면 몰라도. 이대로는 죽을까봐 두려워.”
 대답이 없다. 정도가 다가가 부축했지만 가볍게 손을 밀어냈다.
 “정 소원이 그렇다면 일단 며칠 가서 지내보던지. 불편하면 언제라도 다시 집으로 내려오고.”
 “내려오지 않을 거예요.”
 “그럼 절에서 내리깔고 영원히 비구니라도 되겠다는 말이야.”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조용히 침대위에 드러눕는다. 아내는 산 사람이 아니라 무슨 유령 같다. 움직여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걸음을 걸어도 안개가 흘러가는 듯 고요하다.
 윤정은 두 눈을 사르르 감았다. 정도는 참고 있던 화가 버럭 나 짜증을 긁어내려다가 그녀의 눈가에서 맑은 이슬 한 방울이 새어나와 베개위로 굴러 떨어지는 걸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웬일인지 가슴이 뭉클했다.
 아내는 죽었어!
 뇌리를 스치는 번개 같은 예감에 전신이 오싹해났다. 느닷없이 침대위에 자그마하게 꼬부리고 누운 윤정의 모습이 측은해보였다.
 정도는 말없이 이불귀를 당겨 아내의 몸에 덮어주고 침실에서 나왔다.
 혼자 있고 싶어요.
 시골마을의 칠흑 같은 골목에서 조용히 말하던 윤정의 목소리가 귀전에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그래. 실컷 혼자 있어봐. 혼자 있다가 외로워지면 다시 날 찾아오라고.
 이튿날 아침 일찍 윤정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산사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묻지 않아도 미미가 깨어나기 전에 떠나려고 그럴 것이다.
 정도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윤정이 챙긴 짐들을 승용차 짐칸에 실었다. 그녀도 남편의 성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정도에게 남편의 소임을 다할 기회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절로 갈 건데?”
 “용천사요.”
 그리 크지는 않으나 아늑하고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이다. 영험한 석불을 모셔 신도들의 발길이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산사이기도 하다.
 “연락은 돼 있어?”
 “네. 주지스님한테.”
 윤정은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타이어에 휘감겨 짓이겨지는 낙엽처럼 기진맥진해 보인다.
 가까운 서울교외인데다 이른 아침이어서 차도 막히지 않아 두 시간쯤 달리자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댄 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에서도 험한 산비탈을 따라 한참 올라가야 한다. 좁은 계곡에는 돌다리가 놓여있고 그 밑으로 흐르는 냇물위로는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들이 바위사이를 곤두박질하며 허둥지둥 아래로 떠내려갔다. 바윗돌들을 잘 다듬어놓은 비탈길을 따라 능선을 타고 올라갔다.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어둑한 산길에는 낙엽이 융단처럼 두텁게 깔려있었다.
 허약해진 아내의 온몸은 금시 땀에 흠씬 젖어버렸다.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는 길가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곤 한다. 윤정이 이 힘든 길을, 이 깊은 산길을 걷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묻지는 않았다. 소지품을 짊어진 정도도 이마에 땀방울이 돋았다. 이런 곳에서일망정 윤정의 마음의 병이 완치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아내는 너무 깊은 병이 들어있다.
 용천사는 바위위로 낙수가 굴러 떨어지는 산중턱의 벼랑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승복차림의 사미승 한분이 산자락으로 이어진 석계에 쌓인 낙엽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모습이 초연하다.
 대웅전은 웅장하면서도 세월의 흔적이 묻은 태고연한 깊음이 있고 높은 처마의 관음전은 아담하면서도 기상이 늠름하다. 약사전, 영산전, 산신각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사찰분위기는 고색창연하면서도 수수하고 위엄스러우면서도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아 청정하고 평화롭다. 법당과 강원講院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불자들의 염불소리가 은근하면서도 구성지고 향을 사르는 향기가 그윽하면서도 깊다. 정도는 언제나 절문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저도 모르게 경건한 기분이 든다.
 영험하다고 소문난 석불은 거대한 암각바위에 양각된 불 조각인데 부처의 얼굴이 자애롭고 평화롭다. 신도들이 각자 소원을 담아 불공과 예배를 드리며 사른 초불과 향이 부처의 제단에서 그물그물 타오르고 있다. 

 주지스님은 진작 연락이 닿은 듯 법당 대돌 앞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손을 합장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의 얼굴에는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은 고승에게서만 볼 수 있는 그런 평온과 화기애애함이 가득하다. 목에 건, 배에까지 드리운 염주는 깨달음의 씨앗처럼 묵직해 보인다.
 “이렇게 원로의 피로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빈승貧僧을 찾아주시어 감사합니다.”
 “스님께 제 아내를 잘 부탁드립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저 일주문 안에 들어서면 벌써 세속의 인연을 절반은 끊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보살님께서 수행을 통해 마음속의 불심을 발견하시고 성불하시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집 생각이 나면……”
 “세상은 모두 공空입이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도 가족도 사랑도 그 모든 것이 공이라는 불법을 깨닫게 되면 허망 된 미련을 버리고 삼독三毒을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인연은 고통의 근원입니다.”
 인연은 고통의 근원이라?
 그렇다면 인연을 끊는 건 고통이 아니란 말인가.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윤정의 소지품들을 그녀가 거취하게 될 법당 뒤의 자그마한 암자에 옮겼다. 사람 하나가 겨우 기거할 만한 쪽방이다. 정도가 보기에는 그냥 그 방 자체만으로도 외로움이요 고독이었다. 그런데도 윤정은 이 쪽방에서 마음에 든 병을 치유하겠다고 한다.
 “미미가 보고 싶으면 아무 때라도 전화 해. 데리러 올게.”
 작별을 고하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으나, 그 말이 혹시 윤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마지막 기대를 걸어보았으나 아내는 침묵한 채 암자 뜰에 오도카니 서있을 뿐이었다.
 정도는 설득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저만치 아래로 내려와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돌아서는 아내가 손등으로 눈시울을 훔치는 것을 얼핏 보았다.
 결국은 사람인데, 여자이고 아내이고 엄마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산중에 아내를 버리고 돌아서야만 하는, 자신은 아내 없는 홀아비로 딸애는 엄마 없는 자식으로 만들 줄밖에 모르는 무능한 자신이 미워졌다. 윤정이 만큼이라도 지독했다면 그는 아내를 홀로 산중에 버리고 하산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더구나 슬픈 것은 그래도 명색이 남편이라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아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갑자기 이런 첩첩산중에 들어왔는지 그 까닭조차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성불하려고?
 죽음이 두려워서?
 혼자만 영원히 살려고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린 윤정의 소행은 정당한가. 올바른 선택인가.
 모든 수수께끼와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산 속에 버리고 떠나야만 했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그 방법과 길을 알아야 바르게 살 것이 아닌가. 윤정의 외할아버지는……
 며칠 뒤 은파랑은 다시 사진관에 나타났다. 확대하여 액자에 넣은 사진을 일곱 폭이나 주었으나, 그렇다고 그에 해당하는 값을 받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을 뿐이다. 어쩌면 이 세상엔 그녀를 놀라게 할 사건이란 하나도 없는 듯싶다.
 도리어 놀란 쪽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도였다. 촬영기술입문서를 빌려준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는데 밀착인화를 통해 나타난 사진들은 놀랄 만큼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사진의 모든 기술들, 심도조절, 노출조절, 구도선택, 광선의 선택, 초점거리 등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라고 믿기에는 어려울 만큼 거의 프로다운 높은 기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어는 적절한 셔터조절에 의한 소리, 동감, 리듬감의 표현과 순광, 사광, 역광, 톱라이트top light 등 광선의 특징에 의한 효과, 아침과 저녁, 흐린 날과 맑은 날의 적절한 구분에 의한 최선의 선택과 같은 『노련함』까지 과시했다.
 마치도 지금까지 그녀가 폐품들만 촬영한 건 정도를 골리려고 고의적으로 장난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이 정도의 습득능력은 엔간히 총명한 머리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녀가 찍은 사진들은 거의가 예술품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바람은 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빗줄기는 올올히 선명하고 폭포에서는 그 힘찬 물줄기와 물보라가 금방이라도 옷에 튕길 것만 같다. 평균측광에 규제되지 않고 위아래로 자유롭게 도약하며 때로는 하이라이트부분을 기준으로, 때로는 어두운 부분을 기준으로 노출을 조절하면서도 촬영한 화면구성은 촬영자의 심상까지 담아내는데 손상이 없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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